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이단 토벌 (1)
베니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기사들이 에드워드 일행에게 말을 붙이며 주변 소식을 묻고는 했다. 에드워드는 그 기사들에게 물었다.
“베니아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요? 팔츠 공작께서는 휴전했다고 들었는데?”
“공작께서 휴전한 건 제후들 간의 큰 전쟁뿐이고, 여기저기의 소소한 싸움은 아직 이어지고 있소. 도적이라든가, 소영주 간 감정 싸움이라든가. 그래서 남은 기사도 많다오.”
“당신들도 남은 거요?”
“그 반대요. 우린 내후년의 종군 의무까지 다했기 때문에, 더 추워지기 전에 그만 귀향하는 거요.”
연간 40일의 종군 의무를 3년 치 해치웠다는 말은 120일을 종군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들은 귀향 후에는 자기 영지 경영에나 몰두하다, 공작이 보채면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돈을 보탤 것이다. 에드워드는 서임 이후 자기 영지를 가져본 적이 없고 계속 왕실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좀 낯선 이야기였다.
“3년 치라.”
“간만에 큰 전쟁이긴 하지요.”
“예비군 훈련을 한 해에 몰아서 받으면 그런 기분이려나.”
“예?”
“혼잣말이오.”
에드워드는 도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벽 밖 수많은 천막들. 여기 남은 기사와 병사들은 용병이란 뜻이다. 절반 이하의 급료라도 받는 게 나은 사람들.
당연하지만 이들을 소화할 일자리 따위는 없다. 시 경비대도 무한정 인원을 늘리진 않으니까. 게다가 사람이 몰린 만큼 물가는 오르므로, 약탈이 이어진다.
“몸조심하시오. 베니아는 공작을 지지하는 도시라 안전하지만, 그 밖은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소.”
기사들은 작별인사를 하고는 자기들 길로 떠났다. 에드워드는 아직도 도시 한복판에서 치솟는 연기를 보고 중얼거렸다.
“설마 재산이 탐나서 애꿎은 이단 사냥을 하는 건 아니겠지?”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통이니 기강 잡기 하는 거겠지. 뭐, 싹 쓸다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군.”
“네가 할 말이니? 그나저나 너무 많이 죽이면 나중에 수습이 어려울 텐데, 여기도 참 큰일이네.”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찌 됐든 얌전히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기왕 사건 터질 거면 좀 쉽고 편한 대박이 터지거나.”
“게으른 소원이네.”
일행은 여자의 비중이 높아서 용병들의 눈빛이 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로니카를 보자마자 다들 눈을 돌려 버렸다는 것이다. 다들 이단심문관을 두려워한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네가 추녀로 보이나 보다.”
“맞을래?”
성문을 통과하는 것도 한세월이었다. 숨겨 놓은 밀수품이 없는가, 이단의 증거가 없는가 수색이 한참 이어졌다. 이단심문관 일행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가르달은 1인당 연초 반입량이 크게 제한되었단 소식에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가, 에드워드와 헬레나의 짐에 나눠 담았다. 그대로 갖고 들어갔다간 관세를 얻어맞을 판이었다.
마법사들이 쓰는 커다란 고깔모자에도 세금이 매겨졌다. 학생들은 그냥 벗어 버리겠지만 진짜 마법사인 스텔라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모자세? 그런 것도 있어요?!”
마법사들은 존재를 의무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곳이 많아서 고깔모자가 필수품이었다. 사실상 면제가 어려운 과세였다. 약은 수법이다.
“날붙이달린지팡이세? 지금 농담하나요?”
헬레나도 당황했다. 그녀의 글레이브에 세금이 매겨진 것이다. 엘프도 놀라게 한 세금. 경비병은 태연했다.
“용병들이 함부로 큰 무기를 든 채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세금입니다.”
에드워드는 작게 투덜거렸다.
“그래도 날붙이라는 단서는 붙였네. 지팡이세를 안 거둔 것만 해도 양심적이라고 해 줘야 하나?”
“그랬다간 사제와 순례자들과 노인과 장애인까지 전부 세금을 냈겠지.”
베로니카가 딱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헬레나는 자기만 일행과 따로 동떨어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성벽 밖 남의 손에 무기를 맡길 수도 없었다. 그녀는 결국 세금을 내고 무기를 반입했다. 그녀는 베로니카의 옆으로 와 넋두리처럼 말했다.
“정말 정신 나간 도시군요.”
“전쟁이 터져서 그런가 봐요.”
밴시 리안나는 요정을 개 취급하던 소금산과 달리 면세 대상이 아니었다. 경비병은 밴시를 면밀하게 살펴보더니 말했다.
“일하는 요정은 과세 대상.”
“왜요?!”
“옛날에 어떤 요정이 제화공의 집에서 밤새도록 구두를 만들어 주는 바람에 시장 교란이 일어났거든.”
“전 그냥 허드렛일 하는 세탁부 집요정인데요!”
“안 돼. 예외 없어.”
“요정 차별! 노동자 탄압이다!”
“뭐야, 그게?”
리안나는 황급히 베로니카를 불렀다.
“사제님! 저 좀 통과시켜 주세요!”
이단심문관은 머리를 싸맸다.
“난 세금이 싫어. 거둘 땐 좋은데 말이야.”
“다 그렇지 뭐.”
“저 요정 사건도 핑계일 거야. 요정이 그리 흔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일행은 그 모든 절차를 통과하여 어렵게 베니아 시에 들어왔다.
잠시 뒤 일행은 숯덩이가 된 시체들이 즐비한 광장에 들어섰다. 조금 전까지 타들어 가던 이단자들이었다. 성문을 통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면 아직 숨이 붙었거나 덜 탄 자들을 봤을지도 모른다. 리안나는 시퍼렇게 질렸다.
“이제부터 기도 열심히 할게요.”
“안 하고 있었냐?”
“기사님한테서 구원해 달라고 빌어도 안 듣길래 포기하고 있었죠 뭐.”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거꾸로 들었다.
우편물은 성묘수호기사단 지부에 잔뜩 밀려 있었다. 베로니카는 자기 앞에 놓인 우편물 더미 중 하나를 집어 읽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환장하겠네.”
“왜?”
“오빠가 보낸 편지야. 신랑감 알아놓을 테니까 위험한 짓 그만하고 돌아오라네.”
“뭐라고 답할 거야?”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결혼 대상과 육아 퇴직은 온전히 내가 결정한다.”
“단호하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소포를 하나하나 뜯어 보던 리안나가 말했다.
“방한복도 있네요. 그 외에는 교리법무성에서 보낸 자료와 편지들이에요.”
베로니카는 교리법무성 문장이 찍힌 편지봉투들을 뜯었다. 그녀는 그 내용을 읽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두 달 가까이 쉬었더니 근무평점이 떨어졌어.”
서늘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거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
“상대평가.”
그때 한 기사단 직원이 다가오더니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사제님도 이단재판 때문에 오신 건가요?”
“아뇨.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런가요? 아까 근무평점 이야기를 하시던데, 지금 이 도시에는 다른 이단심문관님들도 몇 분 계시거든요. 그분들의 일을 도우시면 어떨까요?”
“평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재판을 열지는 않아요.”
“아뇨. 재판이야 사제님께서 안 열어도 계속 열릴 겁니다.”
그 말에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단 재판은 끝난 것 아닌가요?”
“이제 시작입니다. 이단심문관님들도 처음엔 한두 분이셨는데 열 명까지 증원되셨어요.”
100명을 태운 건 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에드워드는 뜨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쟤처럼 평점에 미친 사람들이 10명씩이나…….”
짜악!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린 다음, 기사단 직원을 향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교회에 가 봐야겠네요.”
* * *
일행은 숙소를 기사단 대신 교회로 잡았다. 교회 숙소가 그나마 자리가 남은 탓도 있고, 그 안이어야 오히려 스텔라와 리안나가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베로니카는 이단심문관들이 작당하고 일을 크게 벌인 것인가 의심했다. 한참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으며, 다른 이단심문관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그동안 수집된 증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하루 만에 그녀는 충격과 공포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다 진짜야.”
“뭐?”
에드워드도 놀라서 물었다. 베로니카는 다시 말했다.
“지금 살펴본 건 진짜 이단들이야.”
“그 뭐냐, 서류 앞부분은 진짜로 채우고 뒤로 갈수록 성의가 없어진다 그런 패턴 아냐?”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앞부분 서류만 타 지역 평균치를 훨씬 넘겨. 엄청나네.”
헬레나는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퀴타니아 남부의 이단 반란이 생각나는군요. 거기도 순식간에 이단이 퍼졌다고 들었어요. 이 도시도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쪽은 악마가 개입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쪽은 자연 발생 같네요.”
“네? 자연 발생이요?”
“애매하고 광범위한 영역에 점조직 형태로 퍼져 있어요. 교회개혁수도회나 농민 반란에 특히 영향력이 크네요.”
“사교도의 짓이라기보다는 내부의 불만이 불거진 경우인가요?”
“네. 결과적으로는 사교도도 합세하고 어둠에 물들게 되지만 발생 원인은 다르죠.”
그 말을 듣던 가르달은 씹어 내뱉듯 말했다.
“대충 짐작 가는군. 전쟁과 세금이오. 그 둘은 지역을 황폐화시키지.”
“정치적인 것도 있는 듯하네요. 교황청을 비난하고 있어요.”
“교황청을?”
“교황청이 트레베리아의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는다는 비난이에요. 새로운 왕을 선출하도록 촉구해도 모자랄 판에, 분쟁을 방관하고 있다는 거죠.”
“교황청이 그럴 이유가 있나?”
“근거가 없진 않아요. 트레베리아 국왕들은 힘이 강해지면 교황을 무시하거나 그 영역을 침범하곤 했으니까…… 교황청이 새 트레베리아 국왕을 정하는 데 급할 게 없다는 추측도 가능하죠.”
“그래 봤자 음모론 수준이군.”
“음모론이어도 분노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데는 충분하죠. 사실 모두가 사제가 되어 기적을 쓸 수 있는데 교회가 사제 서품 의식을 독점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도는 판국에 뭘.”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점점 과격해지고 있어요. 어떤 종파는 아예 나체족이 되었더군요.”
“이 겨울에 나체라니. 웃기는 놈들이군.”
“죽이기 전에 감상해 줄 용의는 있는데.”
가르달과 에드워드가 한마디씩 붙였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봐준 다음 적발된 혐의들을 읊었다.
“어둠의 유용성 논쟁, 교황의 권위 부정, 교회의 사제 서품 의식 독점 음모론 유포, 전례 절차에 대한 부정, 계급 부정, 납세 거부, 결혼 부정과 공유 재산 주장, 원시 회귀 운동, 순결주의 운동, 난교, 영아 유기, 영아 살해, 유괴, 납치 감금, 살인, 방화…….”
“뒤죽박죽이군. 순결 다음엔 난교야?”
“계파가 다 달라. 점조직이 다 그렇지.”
리안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순결주의 운동이 뭐에요?”
“개인 수양 목적의 금혼 서약을 훨씬 더 초월한 건데…… 쉽게 말하면, 육신은 죄의 감옥이니까 성교를 하거나 애를 낳으면 안 된다는 운동.”
“이단이네!”
리안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베로니카는 쓰게 웃었다.
“촌구석 밴시도 아는 것에 혹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인간이 죽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다?”
“대체 어느 대악마 새끼가 한 말이니, 그거?”
“크라우저 2세.”
“듣도 보도 못했는데?”
둘의 만담이 더 이어지기 전에 헬레나는 황급히 물었다.
“증거도 발견되었나요?”
“방화나 시체 발견 장소는 읊기도 힘드네요. 죄에서의 해방이라나.”
에드워드는 썩은 표정을 지었다. 듣기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단 준동은 확실하다 이거지? 젠장. 드디어 이단심문관의 본업을 뛰는 날이 오는군. 그럼 이제 뭘 해야 되는데?”
“너 좋아하는 거.”
“응?”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너 전에 이단 한번 태워 보고 싶다 그랬지?”
“와! 그걸 기억하냐?”
“축하해. 소원 성취하게 됐네.”
에드워드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 뭐 간절한 소원은 아니고, 그냥 호기심에 해 본 소리였는데…… 근데 진짜 다 죽이는 거야?”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심각한 놈들, 맞서는 놈들부터. 몇몇 파벌이 마을이나 요새 단위로 세력 확대를 했대. 영주들을 포섭하는 시도도 포착됐고. 이건 아직 비밀인데, 대주교께서는 먼저 선공을 걸 생각인가 봐.”
“더 커지기 전에 밟는단 말이군.”
“아니면 남부 아퀴타니아처럼 수천, 수만의 군대로 전쟁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마침 남는 용병들이 있으니 이때 토벌대를 편성하겠단 말이지.”
“우리도 참여하나?”
“그래. 대주교님께 위임장을 받을 거야. 심심한 용병대장이나 귀족들도 응하는 모양이네.”
“다른 이단심문관들은 부대 편성 안 하나?”
“그치들은 호위병이나 데리고 다니지, 나처럼 앵글리아의 왕실 챔피언을 데리고 다니진 않아.”
에드워드는 한껏 가슴을 폈다.
“내 가치가 이런 데서 빛나는군.”
“전직이지만.”
“그런 수식어구는 쓸데없어. 추가수당은? 그리고 한 놈당 얼마 쳐 준대?”
“넌 나한테 고용된 인간이라 월급에 변동 없어. 전리품이나 잘 챙겨 보든가.”
“젠장.”
카치운은 씩 웃었다.
“뭐, 약탈은 전사의 전문 분야잖소.”
헬레나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세금과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대안과 개혁을 찾는 건 이해하지만…… 증거는 정말 확실한 거죠?”
“우리 첫 목표는 살인과 방화 전적이 있네요. 교회에 불을 지르고 사제를 죽였다나.”
헬레나는 결심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에드워드 경의 적이면 제 적이죠. 증거가 있다면야.”
“이단자 대가리 하나는 오크 대가리 두 개보다 가치 있는 법이지. 바로 준비해서 갑시다!”
가르달은 안달이 난 것처럼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저도 의심 안 받으려면 참전하는 게 좋겠죠?”
“아, 설마 또 울어야 되나…….”
리안나가 맥이 빠진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재판은 우리 이단심문관들이 할 테니, 맞서는 건 싹 다 쓸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