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4)
94화 개 조심
나체의 남녀들이 언 땅 위를 맴돌았다. 연령대는 다양했는데 아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검을 차기 위한 허리띠라도 착용하고 방패를 든 사람은 그나마 뭔가 몸을 가릴 게 있는 셈이었다. 대부분은 그냥 신발만 신고 몽둥이, 지팡이, 도리깨, 창 따위를 들었다.
“저것들은 춥지도 않나.”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 옆에는 한 남자 노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놈들입니다! 저놈들이 저희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고! 식량과 가죽을 약탈했습니다!”
과연 그 말대로, 식량과 가죽을 실은 수레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옷을 입지도 않는 놈들이 왜 가죽을 챙겼을까요?”
한 기사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베로니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끄러움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모피를 걸쳐도 된다는군요.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신는 논리와 마찬가지죠. 지금 저놈들은 전투의 흥분으로 아직 모피를 안 걸친 듯하네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원시로 돌아가고 싶으면 사는 곳도 약속의 땅으로 할 것이지. 민폐가 보통이 아니군.”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보병으로 쫓아가면 잽싸게 도망갈 것 같고, 거리도 꽤 있네.”
“어떻게 할까요?”
경기병이 물었다. 에드워드는 결론을 내렸다.
“약속에 안 늦으려면 별수 없지. 기병만으로 쫓아간다.”
그러자 에드워드와 카치운을 포함한 18기의 기병이 나섰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간단히 지시를 내렸다.
“승마보병은 전령으로, 보병과 궁병은 현 위치 대기!”
그 말만 남기고 기병대는 언덕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기병들을 발견한 나체파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기사들이다!”
기사들은 적절한 위치까지 달려간 다음 속도를 늦추고 삼각형 모양의 돌격 대형을 갖추었다. 나체파들도 수레 주변에 모여 싸울 준비를 갖췄다. 한 기사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놈들. 갑옷도 무기도 변변찮은 것들이.”
“그래도 방심은 말자고. 신앙방어에 나선 인간들은 귀찮거든.”
에드워드는 짧게 주의를 시킨 다음, 기병들을 향해 외쳤다.
“돌격! 짓밟아라!”
카치운이 나체파의 머리 위로 명적을 날렸다. 삐이이이이익! 화살이 하늘 찢는 소리를 내자 기병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신호용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위협용이었다.
나체파들의 숫자는 기사들의 6배를 넘는 120명이었다. 그들은 전투 의지도 높았다. 기사도 군마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광신자들다운 전투법이었다.
그러나 기사들도 멈추지 않았다.
콰직! 콰드득! 우득!
운 나쁜 기병 한둘이 도리깨에 맞았지만, 곧 나체파들은 비명을 지르며 군마 아래에 깔리거나 기병들의 검날에 베였다. 이미 광신자들이 상식 이상의 전투 의지를 보여 준다는 걸 깨달은 기병들은 전혀 놀라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더 큰 충격을 주기 위해 박차를 가할 뿐.
1차 돌격만으로도 나체파는 와해되었고 덜 신실한 자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말! 말을 노려라!”
수레 위에서 한 광신자가 소리치며 돌을 던졌지만 카치운이 바로 화살을 날려 머리통을 꿰뚫어 버렸다. 그걸로 끝났다. 나체파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흩어져라! 숲으로 도망쳐라!”
열쇠검으로 광신자들의 대가리를 깨 놓던 에드워드는 소리 지르는 놈들을 주목했다.
“저 새끼가 지휘자구나!”
에드워드는 바로 말을 몰아서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카치운이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소리쳤다.
“가까운 놈부터 족치쇼!”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화살을 꺼내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한 광신자의 등에 화살을 날렸다. 나머지는 에드워드의 몫이었다. 그는 제일 크고 건장한 놈의 등짝을 향해 말을 몰았다.
콰직!
“끄아아악!”
커다란 군마에 등을 짓밟힌 나체파가 비명을 질렀다. 주변의 비명이 더 커졌다.
“설교사님이 당했다!”
나체파들의 도주 속도가 더 빨라졌다. 기병들은 놈들을 쫓아다니며 쳐 죽였다. 그러나 숲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향해 다시 손을 흔들었다.
“약속 시각이다!”
카치운은 다시 명적을 쏘았다. 삐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숲에서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컹! 커엉!”
“으아아악! 개다!”
“살려 줘어!”
전투 의지를 잃은 데다 아무런 방호 장비도 없는 나체파들은 곧 커다란 개들의 습격을 받았다. 개들은 지친 나체파들보다 끈질기고 강해서 살아남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피에 흥분한 개들이 짖는 소리에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잠시 뒤 숲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인근의 소영주로, 곧 은퇴할 나이의 사내였다. 그가 에드워드가 보낸 전령의 편지를 받고 개들과 사람들을 이끌고 매복한 것이었다. 그는 이단자들의 시체들을 피해가며 에드워드 앞으로 걸어왔다.
“약속대로 병사와 군견들을 끌고 왔소.”
“환상적인 타이밍이었소. 제때 오셨군. 전투 중이라 말 위에서 인사하는 걸 용서하시오.”
사실 에드워드가 지각한 셈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따지지는 않았다. 영주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천만의 말씀이오. 당연한 일이니. 꼭 증인이 되어 주시오. 내가 이단자들을 토벌하는 데 협력했다고 말이오.”
그 소영주는 트레베리아 내전이 터지자 이단자들을 용병으로 부리다가 교회에 찍히고 경고를 받은 자였다. 장남은 이미 그 혐의를 벗기 위해 주교에게 편지를 전달한 다음, 기사로서 출정해 토벌을 시작했다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나이 든 영주 역시 친히 토벌에 나선 것이었다.
증원군은 개 20여 마리, 개몰이꾼 8명, 사냥꾼 5명, 무장병사 8명, 기병 2명, 영주 1명. 영주는 논외로 쳐도 적잖다. 마지막 남은 병력들이라 대단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제때 활용만 한다면 역시 큰 자산이었다.
에드워드는 소영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방을 가리켰다.
“저어기 이단심문관이 오고 있으니까 인사나 합시다.”
영주 입장에서는, 악마를 잡은 영웅과 교황청 이단심문관이 왔다면 남은 병사가 셋뿐이라도 맨발로 뛰어나올 일이었다.
* * *
영주가 보탠 자금, 나체파의 약탈품은 토벌대의 소중한 군자금이 되었다. 먼저 토벌한 이단자 마을의 생존자들은 상납금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위치까지는 모른다고 끝까지 잡아떼는 통에 ‘희망’이 제시되질 않았다.
그런 판국에 적은 액수지만 드디어 ‘보상’을 쥐어 본 기사들과 병사들은 희희낙락했다. 에드워드는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약간의 식량과 가죽을 돌려준 다음, 나머지를 분배했다.
“이런 싸움만 이어지면 좋겠네. 편한데?”
“머리를 쓴 덕이지. 항상 이렇게 잘 풀릴 거라고 기대하지 마.”
이단심문관 베로니카가 핀잔을 줬다. 드워프 가르달은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말 타고 싶소! 노새라도 타고 달려갈 걸 그랬어!”
“농담 마요. 노새가 불쌍하니까.”
엘프 헬레나가 점잖게 태클을 걸었다.
베로니카는 지원군 규모를 살펴보고 말했다.
“장남에 영주에 개몰이꾼까지 출정해 버리면 영지는 어떡한대?”
“부인과 며느리가 병사 몇 명 데리고 지키고 있대. 영지 자체가 요충지 두 곳만 막으면 방어가 되는 곳이라나.”
“못난 남자들 때문에 부인들까지 고생하네.”
“기사님! 저 개들 좀 치워주세요!”
리안나는 개를 싫어했다. 개몰이꾼들이 목줄을 붙잡고 있음에도 저 멀리까지 도망쳐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개 싫어했냐?”
“큰 개는 싫어요! 영주님들이 저만 보면 사냥개부터 푼단 말이에요!”
밴시. 곧 죽을 자의 옷을 빨래하며 우는 요정. 일반인은 그냥 내쫓겠지만, 심기 안 좋은 영주라면 개를 풀고도 남았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개들을 돌아보았다. 영주들이 키우는 개는 군견과 사냥개의 경계가 애매한 편이었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했다. 이게 개인가 맹수인가 헷갈릴 정도로 크고 사납다는 것이다. 악덕 영주의 대표적인 악행 중 하나가 영지민들을 물고 다니는 개들을 단속 안 하는 것일 지경이니.
“무서워할 만한……?”
그때 몰이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야! 누가 개 풀었어?!”
“사고다! 줄 잡아!”
몰이꾼들이 소리 지르는 순간 리안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밴시 살려!”
에드워드는 밴시, 개, 몰이꾼들의 쫓고 쫓기는 광경을 보고 노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분명히 저런 내용의 노래가 있었는데.”
베로니카가 물었다.
“누가 개를 풀어놓은 거냐는 구절로 시작하는 노래?”
“응? 알아?”
“아니. 니가 말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런. 패턴을 간파당했네.”
“레퍼토리 좀 바꿔 봐.”
다행히 사태는 헬레나가 뛰어가 개를 안 죽이고 제압하는 거로 끝났다.
* * *
나체파는 거의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 광신적이기로 치자면 앞서 토벌한 마을보다 더 심했다. 물론 그 정도 믿음이 있어야 한겨울에도 나체로 다니며 약탈을 자행하겠지만.
“역시 본거지를 터는 게 제일 좋겠어.”
지휘부 천막 안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던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도 동의했다.
“돌아다니는 놈들보다는 거점에 처박힌 놈들이 많겠지. 날도 춥고.”
“거점을 공략하려면 뭐가 필요해?”
“글쎄. 거점이 얼마나 방어태세가 잘 되어 있냐, 그거에 따라 다르지. 간절한 건 공성 병기? 앞서 마을에서 인력식 투석기를 뜯어오긴 했는데. 조잡해서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아.”
“흠. 식량은?”
“꾸준히 공급 안 받으면 우리가 오히려 말라죽을 판이지.”
“밥벌레부터 줄여야겠네. 포로들을 해결하자.”
“지금 죽이게?”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재판도 없이 죽이지는 않아. 다른 데 맡기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영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왕 만난 김에 포로들 좀 처리합시다. 도시까지 돌아가기는 거리가 좀 있고, 귀하의 영지에 가두고 싶소. 가둘 곳이 있소?”
영주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 성의 감옥이 비었으니 거기 가두면 될 거요. 그래도 모두 맡기는 어려운데.”
“교회 지원군이 올 때까지만 맡아 둡시다. 그리고 여자는 안 보낼 거요. 그것만으로도 숫자가 꽤 줄어들 테니.”
“그런 거라면야.”
영주가 납득하자 에드워드는 개 2마리와 몰이꾼 1명, 그리고 병사 셋을 차출토록 명령했다. 그들은 포로들을 데리고 바로 출발했다. 지휘부 밖 소음에 귀를 기울이던 헬레나가 말했다.
“남은 여자 포로들은 어떻게 하나요?”
“끌고 다니다 죽을 정도의 년들은 아니니까 데려가지 뭐. 여차하면 쓸 데가 있을지도 몰라.”
“쓸 데요?”
“자기네 여자가 포로로 잡힌 거 보면 눈이 뒤집히는 놈들이 있거든. 도발용으로는 딱이지.”
“아름다운 전술은 아니군요.”
“난 이기면 그만이야.”
베로니카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둠과 이단에는 무자비해도 돼. 전적으로 맡길 테니 맘껏 날뛰어 봐.”
영주도 호평했다.
“거점에 처박힌 놈들을 상대로 정면 공격을 하면 분명 힘들지요. 좋은 방법이오. 병법을 누구한테 배우셨소?”
에드워드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이름 중 하나를 입에 올렸다.
“앵글리아의 위대한 왕이자 오크들의 재앙인 로버트 폐하.”
영주와 헬레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가 짧게 로버트의 평을 말했다.
“그쪽 전술이 좀 거칠다고 들었죠.”
“엘프도 한 방에 납득시키는 명성이라니, 우리 폐하는 대체 뭘 하고 다니신겨.”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농담을 꺼냈다. 그때 한 병사가 천막 밖에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성가대장을 데려왔습니다. 지금 들여보낼까요?”
에드워드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불렀어.”
“왜?”
“확인할 게 좀 있어서.”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
잠시 후 양 갈래 갈색 머리의 아가씨, 성가대장 요하나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에드워드한테는 벌벌 떨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은 잡아떼는 게 많은 여자였다. 그녀는 영주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당신! 이 배신자!”
영주는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이단심문관께서도 짓궂으시군. 굳이 이단자와 대면을 시키는 이유가 뭐요?”
“당신과 계약했던 이단자들은 이 파벌이 맞나 보군요.”
“그렇소. 존경받는 교회개혁 수도회라니까 후원 좀 했지요.”
“교회의 간섭도 약화시킬 겸?”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영주가 말끝을 흐렸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여자가 당신을 아는 것 같은데요.”
이단자 쪽이 먼저 알아본 이상 잡아떼는 건 무의미했다. 영주는 선선히 인정했다.
“이 여자의 마을을 방문한 적은 있소.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준다고 해서 방문했지요.”
“이 자들의 우두머리가 누군지 아시나요?”
“사제요. 성결자라 불렸지. 편지는 교환했지만, 만나 본 적은 없소.”
“이름은요? 우리 포로들은 이름을 입에 안 올리더군요.”
“흥, 존경의 뜻이겠지. 그자의 이름은 엥겔. 모두가 참여하는 전례, 성직자의 재산 몰수,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 신분과 세금이 없는 신의 나라 건설을 주장했소.”
이야기를 듣던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기울였다.
“빨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