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6)
96화 금은 금일 뿐
에드워드는 요하나를 앞에 태우고 말을 달렸다. 그녀를 끌고 나오던 감시병은 기절해 버렸고, 다른 경비병들은 붉은 서코트를 보고 관심을 꺼 버렸다. 요하나는 마치 바람처럼 토벌대 캠프를 빠져나왔다.
“믿기지 않아. 이렇게 쉽게…….”
“평소에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한 이유지. 배신은 결정적일 때 하는 거야.”
에드워드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의 뒤에서는 카치운이 쫓아오고 있다는 건 숨긴 채.
“경비병은 어떻게 속이고 나왔어?”
“말 안 해요.”
“흠. 요강은 텐트 안에 있을 텐데.”
“그런 거 묻지 마요!”
요하나는 빽 소리를 지른 다음 스스로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쫓아오는 자는 안 보였다.
“추적자는 없나요?”
“왜? 걱정되나?”
“감시병도 죽이진 않았잖아요. 그가 깨어나 소란을 피운다면…….”
“기사의 군마를 쫓아올 말은 흔치 않아. 그리고 난 돈을 원하지, 교회 병사를 죽이고 추적당하길 원하는 게 아니야.”
“참 신실한 분이군요. 그런데 이단의 돈은 받아요?”
“금은 금일 뿐이야.”
비꼬는 투에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대답해 주었다.
길 안내는 요하나가 했다. 그녀는 깊은 숲속으로 방향을 잡아 어느 오두막 앞에 내린 다음, 그 문을 두드렸다. 다 늙은 노파가 나오자 요하나는 암호를 읊었다.
“백장미와 붉은 장미, 수고비를 요구해요. 파란 돌 아래에서 만나요.”
노파는 기사 에드워드를 곁눈질하더니 문을 닫았다. 요하나는 에드워드에게 돌아갔다.
“가요.”
“뭐야, 여기가 본거지 아니야?”
“여기는 연락소예요. 말을 전달하고 약속을 잡죠.”
“뭐라고 했는데?”
“절 도와준 교회 사람이 돈을 요구한다고 했어요.”
교리법무성의 상징은 붉은 바탕에 흰 망치. 백장미는 요하나, 붉은 장미는 에드워드를 뜻하는 암호일 것이다.
“도와준 교회 사람은 붉은 장미라. 적대적인 교회 사람은 뭐라고 하는데?”
요하나는 약간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양귀비요.”
“대답이 오래 걸리는군.”
“우리 암호를 당신한테 알려 주는 건데 그럼 바로 대답이 나오겠어요?”
“그럼 아예 안 알려 주지 그랬어?”
“그랬다간 안 믿을 테니까.”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 약속을 잡으면 어디서 만나는데?”
“먼저 가서 세 시간쯤 기다려야 해요. 길 안내는 내가 할 테니 어서 가요.”
요하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며 말을 몰았다.
“복잡하네.”
“어차피 떠날 때도 마음대로 떠날 것 아니에요? 갈 때 정도는 제 말대로 하세요.”
“그러겠습니다, 레이디.”
“레이디를 뒤에서 찌르는 기사도 있나요?”
“그럼 네가 허벅지로 누르지 마. 둘이 밀착해서 앉으면 별수 있나.”
“수련이 부족하시군요.”
“안 참는 수련은 열심히 하고 있어.”
에드워드는 한번 비꼰 다음 다시 말을 몰았다.
잠시 뒤 두 남녀는 어느 삼거리에서 멈췄다. 말에 두 사람을 태운 채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어서, 에드워드는 요하나를 내리게 했다. 도망쳐 봤자 말로 쫓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는 기약 없이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다. 세 시간째 침묵만 이어졌다. 서로 신경이 곤두선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약속 시각이 가까워질 때쯤 입을 열었다.
“정말 어색한 소개팅이군.”
“소개팅?”
“그런 게 있어. 이번에도 바로 본거지로 안 가는군.”
“제가 바보예요? 당신을 그런 데로 안내하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돈이 금방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돈 받을 수는 있나?”
“가지고 나오라고 했어요. 계속 기다리시죠.”
“네 암호 중에 액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나?”
두 남녀는 시선을 부딪쳤다. 그 직후 두 남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카치운!”
“쏴 버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살들이 삼거리를 갈랐다.
* * *
교회의 추적을 뿌리친 요하나와 이단자들은 바위성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만들어진 성이었는데,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한참 올라가야 겨우 정문에 도달했다. 그곳은 교회개혁파에 찬동한 성주의 것이었다.
성채 외에도 옛날에 신을 칭송하는 장소였다는 고대의 극장 유적이 하나, 근래에 건립된 수도원이 하나 있는데 이 세 건물이 이어져 바위산 위를 가득 채웠다. 유적도 나름 요새에 맞게 개조된 상태였다.
그곳이 교회개혁파 이단들의 본거지였다.
요하나는 동지들과 서로 포옹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나체파도 발견했다.
“맙소사, 저들이 왜 여기 있죠?”
“회합이야. 교회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각 종파 수뇌부들이 모이기로 했어.”
한 중년 여자가 대답했다. 요하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회합이요?”
“그래. 공세가 워낙 빠르고 단호해서 우리만으로는 무리야.”
“엥겔 선생님은 저들이 약물과 난교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고 비난하셨는데!”
“선생님도 마지못해 동의하신 거야. 그리고 저들만 온 것도 아니니까…….”
“그럼 누가 주장한 거예요?”
“군사지도자들.”
요하나가 자세히 돌아보니, 나체파만 있는 게 아니긴 했다. 그 내역을 잘 모르는 시골 처녀의 눈으로 보아도 확연히 결이 다른 이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망치를 들고 다니는 성상파괴주의자, 학자 차림의 사도계승권 부정론자, 탁발수도승과 분간이 안 가는 음모론자, 상체를 탈의하고 고깔 가면을 쓴 채찍질 고행단 등등. 직위도 농민반란군 지도자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다양했다.
“그보다 엥겔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 네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몰라.”
중년 여성은 요하나를 성채의 더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홀에서는 한 늙은 수도사가 기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요하나를 보자마자 대화를 중단하고 양팔을 벌렸다.
“요하나! 무사히 도착했구나!”
“선생님이야말로 무사하셨네요.”
요하나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성결자 엥겔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토닥였다.
“마을 소식은 들었다. 끔찍했다지. 설마 베니아 대주교가 이렇게 과격한 수로 나올 줄이야.”
“다들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어요.”
“베니아에는 기사들과 용병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니까. 전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아, 잠시만 기다리렴. 손님들과 대화하고 있으니.”
“네.”
엥겔은 도로 손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잠시 시선을 돌린 것에 대해 사과하고 마저 이야기를 진행했다. 잠시 뒤 엥겔은 홀 구석에 놓인 궤짝들로 가더니, 그중 하나를 열었다. 촛불과 횃불 아래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기사들은 하인들을 시켜 궤짝을 날랐다. 요하나는 당황해서 엥겔에게 외쳤다.
“선생님?! 그 돈은 다 뭔가요?”
“군자금이란다. 각 마을에서 모은 상납금이지. 황금으로 회유되는 사람들도 있거든.”
“아…….”
금을 받아가는 사람들은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나체파도, 성상파괴주의자도, 음모론자들도 받아갔다. 요하나는 그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다, 마지막 사람이 나가고 빈 궤짝이 닫히자 다시 엥겔에게 말을 붙였다.
“돈을 저렇게 써 버리면 앞으로 어쩌죠? 모은 돈도, 교회로부터 뺏은 돈도 넉넉하지는 않을 텐데요?”
“걱정 말거라. 돈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단다.”
엥겔은 홀 한쪽을 가리는 천을 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는 아까와 같은 궤짝들이 그득그득 쌓인 방이 드러났다. 요한나는 크게 놀랐다.
“어디서 이런 돈이…….”
엥겔은 웃으면서 요하나의 어깨를 짚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해서 모아 뒀지.”
요하나의 눈이 흔들렸다. 엥겔의 영향을 받고 상납금을 내는 마을이 수십 개라 하더라도, 저 액수를 모으려면 지출의 비중을 극도로 줄여야 한다. 엥겔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빨리 온 게 문제지만. 얼마 전부터는 교회 주교들한테도 적잖이 내고 있단다.”
“네? 교회는 우리 적이잖아요? 교회한테 빼앗아 교회한테 주다뇨?”
“베니아 대주교는 강경한 원칙주의자지만,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은 주교들도 있거든.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해. 일정한 영역과 지지만 확보하면, 토벌대도 우릴 쉽게 공격하지 못해.”
“선생님은 사제의 역할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협상할 여지가 생기죠?”
엥겔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내 뜻과 최종 목표는 그렇지만, 북풍과 햇빛은 언제나 함께 써야 할 전술이지. 나는 과격파들로 교회의 통치가 흔들림을 보여 주고, 사제들이 비운 영역을 우리 종파가 도맡겠다는 설득을 시도하려 했단다.”
엥겔은 가림막을 도로 내렸다.
“그런데 예상보다 대주교의 행동이 빨랐어. 거래를 거부하고 교회 내부를 단속하는 한편 토벌대를 파견한 거야. 착실히 마을을 건설하고 농사를 지어 세를 불리느니, 당장 쓸 수 있는 것부터 써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지. 하지만 괜찮아. 이건 투자야. 곧 성과가 돌아올 거야.”
“성과요?”
“내가 설마 교회와 손해 보는 거래를 하겠니?”
“손해는 물론 피해야죠…… 하지만 교회와 거래하기 시작하면 결국 부패와 타락의 손길이 우리한테까지 미칠 거예요. 사제란 족속들은 금이 생기면 사치스러운 교회를 짓거나 고리대금업을…….”
“요하나.”
엥겔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가 뿌리는 돈이 더 많은 돈과 물자로 돌아와 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초석이 될 거란다. 간부가 될 자라면 이해해야지.”
“간부요?”
“그래. 너의 성가대는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고 확고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해. 게다가 너는 기지로 교회 토벌대의 추적을 뿌리치기까지 했지. 우리 종파의 간부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내 후계자로서 사도가 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니야.”
“그건 기쁜 일이지만…… 전 상납금이 이런 식으로 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새 교회와 병원을 짓고, 빈자들을 구원하는 데 쓰일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단들도 모자라서 기사와 교회와 거래한다는 건…….”
엥겔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은 다음 다정한 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받은 충격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전략이고, 지금은 비상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잖니. 우리 종파가 살아남고 더 커져야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딨단 말이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신의 나라를 건설하겠니?”
“하지만…… 결국 교회와 함께 금을 새끼 치는 거잖아요…….”
엥겔은 고개를 저었다.
“금은 금일 뿐이야.”
* * *
“아주 여유롭군.”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카치운은 이제 알았냐는 투로 말했다.
“나라도 저런 성채를 갖고 있으면 여유로울 것 같소.”
에드워드와 카치운은 이단자들을 놓친 게 아니었다. 놈들은 에드워드를 쫓아낸 뒤 빗자루로 발자국을 지우는 등 나름 애를 썼지만, 끝까지 철저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카치운은 놈들의 수법을 뛰어넘은 추적술을 가진 유목민 전사였다.
“댁하고 헬레나 중에 누가 더 예민할까 가끔 궁금해지는군.”
“멀리 보는 건 그 여자가 낫겠지.”
“오오. 역시 엘프. 유목민 전사도 경외하는군.”
“근데 딱 그거뿐이오.”
“저런.”
“청력도 좋거든요?”
헬레나가 딴죽을 걸었다. 두 남자의 뒤까지 쫓아온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 경도 참 아슬아슬한 데다 뻔한 계획을 짜시네요.”
“척후로서는 내가 더 우위임을 명백히 하고 싶…….”
“카치운 씨, 그 이야기 그만하죠? 과묵하던 분이 가르달 씨를 닮아가는 것 같네요.”
“내가 어때서! 이런 연초 친구를 어디서 구해?”
가르달이 끼어들었다. 그의 뒤로는 토벌대 본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머네. 밤샘 행군은 피곤해.”
에드워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요새를 버리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휴식하고 요새 공략을 시작하는 게 맞겠지.”
“방법 있어?”
“바위성이 제법 커서 이 병력만으로 포위하기는 어렵고, 소금산의 오크들처럼 불 지르기도 소용없을 것 같고. 정면 공격 말고는 답이 없네.”
“저걸?”
“그 외의 방법은 보통 잠입 부대를 짜거나, 병량이 떨어지길 기다리거나, 배신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식이지.”
베로니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지원군을 부르는 건 어때?”
“그 방법도 있지만, 포위할 만한 병력이 도착할 때쯤이면 놈들이 탈출을 시도할 거야. 아니면 자기들 구원 부대도 부르겠지. 뒤에 적을 두고 포위할 수는 없어.”
“흠. 까다롭네. 네가 말한 대로 여자 포로들을 써서 도발하는 건? 성 밖으로 끌어내면 싸우기 쉽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괜히 분노만 더 돋구면 기세에서 밀릴 수도 있어. 좀 더 정찰해 본 다음에, 아니면 상황을 봐서 써야 할 방법이야.”
“신중하네.”
“뭐, 최악을 대비해서 지원군을 부르는 것 자체는 찬성이야. 일단 뒷배가 있으면 좋은 건 사실이니.”
“좋아. 그럼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뭔가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식으로 공략하자.”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래서, 다른 방법은 뭘 생각해 뒀어?”
에드워드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첫째, 캐슬린을 보내서 내부 상황을 정찰한다. 둘째, 상황이 적당히 파악되면 잠입한다. 셋째, 본대의 공격 타이밍에 난동을 부리고 문을 연다.”
“결국 잠입이네.”
“그리고 제일 드라마틱하지.”
“이야기가 그렇게 잘 풀릴까?”
에드워드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