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중앙극장의 학살
점심 때쯤. 허리띠 캐슬린은 에드워드 일행 앞에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입구 검문은 어떻고, 어떤 파벌이 있고, 누가 어디에 있고, 뭐가 어디에 있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과 이름은 무엇이고…….
헬레나는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그 허리띠를 보았다.
“뱀이 날개가 달리면 저럴까요?”
“와! 엘프는 나만 보면 시비야!”
“몰래 숨어들어 보고 듣고 속삭이는 사악한 혓바닥이라. 거기다 길쭉하니 딱 뱀 이미지이긴 하네.”
드워프 가르달도 동의했다. 허리띠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댔다.
“기껏 열심히 정찰하고 왔는데 칭찬은 못 해 줄 망정!”
“그야 망령을 누가 믿겠어요.”
밴시 리안나마저 이때다 싶어 갈굼에 동참했다. 그러자 캐슬린은 밴시의 목을 매달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이 밝힘증 망령!”
“이 꼬맹이 노예!”
서로 투닥거리는 노예들을 보고 카치운이 중얼거렸다.
“쟤들은 항상 진지하질 못하군.”
“익숙해지쇼. 여하튼 대충 방법이 보이네.”
에드워드는 노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단 연락소 오두막의 노파였다. 그녀는 메시지 전달 후 카치운의 뒤를 따라오던 헬레나가 제압했고, 암호를 술술 불어 버렸다.
에드워드는 결론을 내렸다.
“정면으로 침투한다.”
카치운은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되는 거요? 당신 얼굴 아는 여자가 저 안에 있소.”
“그 여자는 사소한 문제요. 암호도 알았고, 복면 쓰기 좋은 핑계도 있지. 성채는 험준한 곳에 있지만 경비가 엄하진 않고. 아직 안 들킨 거라고 생각한 거요. 그리고 놈들은 점조직이라 서로를 잘 모르는데, 회합을 위해 온갖 낯선 놈들이 다 모이고 있지.”
카치운은 납득했다.
“호기는 호기군.”
복면 쓰기 제일 좋은 핑계는 채찍질 고행단이었다. 상체를 탈의하고 바지만 입은 채 대충 만든 고깔 복면을 쓰자 곧바로 채찍질 고행단 차림새가 되었다. 유일한 흠은, 채찍질 상처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처와 흉터는 어쩔 거요? 없으면 의심받을 텐데.”
한 기사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지목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채찍질하고 회복 걸어 봐. 별수 있냐.”
베로니카는 당황했지만, 스텔라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상체를 탈의하고 복면을 쓴 근육질 남자들을 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근육, 땀, 피, 신음…… 세상에 이런 흥미진진한 과제도 다 있군요.”
* * *
여자들한테 맞으면 그나마 덜 아프고 덜 기분 나쁠 거라는 판단이었지만, 여자들이 채찍질에 재미 붙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엔 헬레나마저 채찍을 쥐어 보았다. 몇몇 기사들은 복면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소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소.”
에드워드도 나지막이 불만을 중얼거렸다. 물론 안 좋은 성벽에 눈을 뜬 기사도 있었다.
“레이디들의 감미로운 포상이라 봅시다.”
다른 기사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뭐, 기사가 숙녀에게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이 자기 학대에 가까운 경우도 많긴 한데…… 채찍질을 업계 포상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뭐, 이 차림새부터가 기사다운 건 아니잖소? 그런가 합시다.”
한 기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난 이게 더 편한데.”
“그렇소? 저번 기마 돌격 때는 우리 중에서는 제일 잘 싸우시던데?”
“그게 자제하는 거요. 손아귀 힘에 저주가 걸려 놔서 기병으로서는 항상 풀 컨디션이 아니라니까.”
“그런데 진짜 은자와 말싸움하셨소?”
“술김에.”
“용맹하긴 하구만.”
잠시 아웅다웅했지만, 어쨌든 가짜 채찍질 고행단은 커다란 술통을 얹은 짐마차를 끌고 성 앞으로 나아갔다.
경비병들은 일행을 보자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암호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일행은 미리 입수한 정보로 술술 대답했다. 어디에서 회합 때문에 왔으며 누구의 소개를 받았고 약속된 암호는 꾀꼬리 뻐꾸기…….
마지막으로, 경비병들에게 수고가 많다며 술을 한 잔씩 건넸다.
“채찍질 고행단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신다죠?”
한 경비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에드워드 일행은 알지도 못했다.
“속죄에 방해가 안 될 만큼은 마십니다.”
한 기사가 점잖게 대답했다.
그 경비병은 바가지를 재빨리 비우고 넘긴 다음,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그는 성문 안쪽을 향해 눈치를 살피다 외쳤다.
“통과!”
잠입조는 쉽게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댁이 우리 중에선 제일 술고래잖소.”
“그게 속죄엔 방해가 안 될 정도로 마신 거요.”
안내된 숙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방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비좁고 더울 지경이었다. 다른 채찍질 고행단도 눈에 띄었지만, 그들은 에드워드 일행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좁아서 움직이기도 싫은 게 분명했다. 에드워드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방이 이것뿐이오?”
“송구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일행은 구석 자리에 앉았지만 거기선 할 일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회합이 진행되는 시간과 우두머리에 대한 정보를 상기하면서.
그때 한 여자가 다른 하녀들과 함께 나타났다. 성가대장 요하나였다. 그녀와 하녀들은 커다란 빵 덩이들을 들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식후 곧바로 오늘 자 회합을 시작하니 모두 극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 * *
각 종파 수뇌부의 호위를 겸하는 참석자 대다수가 참석하는 대토론회는 저녁부터 밤까지 이어지고, 수뇌부 회담은 그다음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게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요하나는 방을 나가는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 주다가, 채찍질 고행단 순서가 되자 슬쩍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녀의 종파도 급진적이긴 했지만, 서로 안 맞는 종파는 있는 법이었다. 나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까지 빵을 돌리는 게 끝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숙소를 나섰다.
“그래, 금은 금일 뿐이야. 이게 다 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거야…….”
요하나는 스스로 말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베로니카의 말대로 종파에는 막대한 금은보화가 쌓여 있고, 성결자가 폭력적인 교회 기사와 같은 말을 했지만, 그건 그저 우연이다. 겨우 그런 우연 하나 때문에 신앙이 흔들릴 수는 없었다.
‘이것도 시련이야.’
요하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때 한 여자가 요하나를 찾아왔다.
“성가대장님, 성가대도 준비하래요. 일정을 바꿔서 성결자님 연설 후 바로 합창을 시작한대요.”
“네, 곧 가겠어요.”
요하나는 도로 바쁘게 일상으로 뛰어들었다.
* * *
에드워드 일행은 몰래 대열을 벗어나 도둑질을 시작했다. 이단 기사들의 갑옷을 훔쳐 입고, 무기고를 털었다. 자물쇠 따위는 에드워드의 손아귀 힘을 버티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부서진 자물쇠 대신 쇠막대기를 걸어 꼬아놓았다. 이제 누가 무기고 문을 열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잠입조는 곧 채찍질 고행단이 아니라 완전무장한 기사와 중무장보병이 되었다.
“서코트도 걸칩니까?”
한 기사가 이단 기사의 서코트를 들고 말했다. 자기 것이 아닌 문장을 걸친다는 데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와 달리 주저 없이 입으며 말했다.
“장남이쇼?”
“그렇습니다.”
“그럼 남의 문장을 쓰는 데 안 익숙할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깜짝쇼로 괜찮을 것 같지 않소?”
다른 기사들도 낄낄 웃으며 훔친 서코트를 입었다.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기사도 별수 없이 따랐다. 에드워드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서두릅시다. 죽은 경비병들이나 하인들이 발견되는 건 시간 문제이니.”
잠입조는 중앙극장을 향해 달렸다. 벌써 회합이 시작된 듯, 낭랑한 연설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짧은 개회 연설이었다. 잠시 뒤 성가대의 합창이 시작되고, 하늘 위에는 오색찬란한 빛이 내리쬐었다. 중앙극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어?”
아까 문제를 제기한 기사가 당황하여 소리를 냈다. 에드워드는 그를 돌아보았다.
“또 뭐가 문제요, 장남?”
“저거, 저러면 안 될 텐데?”
“무슨 뜻이오?”
“이렇게 많은 이단이 모인 곳에는 당연히 주술사, 학자, 사제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 저 빛이 신의 것인지 아닌지 판별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에이, 그렇게 판별할 수 있으면 쟤들이 이단이오?”
“신의 것은 몰라볼 수 있어도, 아닌 것은 알아볼 수 있지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에드워드가 그 말을 곱씹기 시작한 순간, 극장 안에서 먼저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단의 술수다!”
“합창을 멈춰라! 저건 신의 빛이 아니다!”
이단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재빨리 달려간 에드워드는 곧 원형극장 안에 가득 찬 이단자들을, 그리고 당황한 요하나와 그녀의 성가대를 볼 수 있었다. 최초 연설자였던 성결자 엥겔마저도 당황한 티가 났다. 그는 흥분한 군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진정하십시오!”
에드워드는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찼다.
“저자가 엥겔인가. 저 작자는 저게 통할 거라 믿었나 본데?”
“아니면 정말로 빛을 분간하지 못한 건가 봅니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저건 이제 사제도 아니네.”
엥겔은 자신의 팔을 잡는 요하나를 뿌리치고, 그녀더러 연단 아래로 내려가라 명령했다. 요하나는 이를 거부했지만, 엥겔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저 빛은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요하나는 충격받은 표정을 짓고는, 동료들에 의해 연단 아래로 끌려나갔다. 엥겔은 연설을 계속 이어 나갔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염원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가 ‘님’에 담아 오늘 보여 드렸습니다! 여러분, 님이란 무엇입니까? 님이란! 바로 영원한 낙원인 신의 나라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님을 만나…….”
에드워드는 바로 고함을 질렀다.
“개소리 집어치워! 무슨 님을 만난다는 거야!”
그걸 신호로 기사들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팔과 다리가 날아다니고 피가 뿜어지는 학살이 시작되자 이단자들은 놀라서 서로 넘어지고 짓밟기 시작했다.
“살려줘!”
“기사들이 칼을 뽑았다!”
“리카르도 경이?!”
“배신자다!”
“저건 내 갑옷…….”
“함정이다! 우리가 속았다!”
서로 다른 종파의 이단자들은 하나로 단결해서 침입자들에게 맞서지 못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성가대의 빛을 두고 서로 언성을 높이던 참이었다. 당연히 극장 안에서 싸움이 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곧 수많은 이단자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짓밟기 시작했다.
한 기사가 이단자의 지팡이를 칼로 받아내며 소리쳤다.
“에드워드 경! 일이 너무 잘 풀립니다!”
“방심 말고! 마조와 술고래가 성문을 열 때까지는 버티쇼!”
엥겔은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에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그는 결국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배교자다! 전위대! 전위대!”
* * *
“이야, 화끈하게 개판을 쳐 놓네.”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토벌대 본대는 회합 시간에 맞춰 바위산 앞에 도착했다. 토벌대를 보고 분주해져야 할 경비대는 성벽 위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성문이 열리고 도개교가 내려왔다.
“서두르시오! 오래 못 버티오!”
한 기사가 소리쳤다. 그러나 성문까지의 진입로는 구불구불해서 말을 바쁘게 달려도 시간이 아슬아슬할 판이었다.
제일 먼저 달려나간 건 헬레나였다. 그녀는 경사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치 계단처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토벌대에서 제일 느린 발을 가진 가르달은 비명을 질렀다.
“반칙이야!”
가르달이 항의하거나 말거나, 헬레나는 바람처럼 올라가 성문을 점거한 사람들과 합류했다. 방심과 내부 혼란이 겹친 판에 엘프 전사까지 난입하자 경비대는 싸울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토벌대다!”
카치운과 남은 기병들이 그다음으로, 보병들이 그다음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성안을 마음대로 휘저었다. 경비병들의 비명이 계속 이어졌다.
“화살! 화살을 더 가져와!”
“무기고가 잠겼다! 열 수 없어!”
“누가 영주님을!”
“성결자께서는?!”
잠시 후 성안으로는 벼락의 섬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 스텔라까지 합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베로니카는 바위산 아래에서 그 아수라장을 소리로나마 즐겼다.
“이단자들의 요새가 무너지는 건 언제 들어도 즐겁지.”
뒤이어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심영이가 도망간다!”
베로니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심영이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