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98)
98화 회개의 날
성가대장 요하나는 돌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렸다. 그녀는 존경하던 선생님이 자신에게 날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에는 신뢰도, 애정도, 헌신도 없었다. 의심과 분노만 가득했다.
“내 성가가 잘못된 거야? 왜? 뭐가?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아무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수도원 안으로 끌려갔다. 잠시 뒤, 성채를 점령한 토벌대는 중앙극장으로 몰려와 살아남은 이단들을 쳐 죽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의 잠입조와 토벌대가 합류하자 이제 남은 건 중앙극장 건너편의 수도원뿐인 상황.
“파쇄추 가져와!”
한 고참병이 외치자 이미 내성을 돌파하는 데 썼던 파쇄추가 앞으로 나섰다. 대단한 건 아니고, 쓰러뜨린 기둥에 밧줄을 엮어 즉석에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도원 문짝을 두들기는 데는 충분했다.
“하나, 둘, 셋!”
쿵!
방패를 든 동료들의 보호 아래, 파쇄추를 든 병사들은 구령을 붙여가며 문짝을 두들겼다. 어떤 병사들은 사다리를 갖고 와 벽에 붙였다.
수도원은 분명 요새였지만, 연결된 다른 요새인 성채와 원형극장 유적까지 넘어간 상태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에드워드 경! 이단 기사들이 항복했습니다! 회개와 전향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조 없는 놈들일세. 하긴, 귀족이면 목숨은 부지하겠지.”
뒤이은 보고에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훔친 서코트를 벗었다. 밴시 리안나가 쪼르르 달려와 에드워드의 붉은 서코트를 넘겼다. 에드워드는 교리법무성의 문장이 그려진 그 서코트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거 내 취향 아니야.”
“빨간색 싫어하세요?”
“아니, 문장이 좀.”
그 순간 수도원 정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지끈!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들고 돌아섰다.
“스텔라 불러. 틈새 보이면 번개 마법 때려 박으라고 해.”
“이미 왔어요!”
스텔라는 발 빠르게 따라붙었다.
“마법사님이다!”
병사들이 환호하는 소리에 스텔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맛에 마법사들이 용병하는 거려나요?”
“폭발 마법은 쓸 수 있냐?”
“폭발 굉장히 좋아하시네요. 시약 분배 계획이 헝클어질 거니 추천 안 해요.”
“그런 거 능숙하게 처리하는 게 전투 특화 마법사 아냐?”
“전 경험이 없잖아요!”
“그러니 취직을 못 하지!”
“비겁한 공격이에요!”
스텔라가 항의하는 순간 수도원 빗장이 부서지면서 문이 반쯤 열렸다. 스텔라는 짧은 주문만으로 번개 주문을 완성해 그 틈새로 던져넣었다. 콰르르릉! 문짝을 지키던 이단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가장 잘 쓰는 마법이 곧 가장 강력한 마법!”
바로 그 순간 문이 마저 열렸다.
* * *
조금이라도 싸울 수 있는 이단자들이 수도원의 모든 문을 닫고 토벌대와 맞서며 시간을 끄는 동안, 요하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그녀는 밧줄로 장대에 묶인 채 성가대석에 매달렸다. 그녀는 짧은 기간 동안 자신에게 닥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전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을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렸고, 토벌대가 왔고, 맞서 싸웠고, 나쁜 기사에게 협박받고, 꾀를 부려 탈출했고, 격려받고, 설득되어 회합 때 성가를 불렀는데…….
“저 여자가 빛을 노하게 하였다!”
“그 이상한 빛으로 토벌대에 무슨 신호를 보낸 건지도 몰라!”
“배신자를 죽여라!”
성결자 엥겔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조금이라도 생존의 가능성을 올리려면 혼란을 수습하고 생존자들을 하나로 묶어야 했다. 여기서 반격하고 샛길이든 어디든 탈출구를 찾는다면 토벌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면 자신이 이끄는 종파는 물론, 섞여 들어온 다른 이단 종파 생존자들까지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
요하나는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케 하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씨앗이었다. 탈출한 뒤에는 아깝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당장의 생존이 더 중요했다. 적어도 책임 추궁은 피해야 했다.
그녀를 단결의 도구로 희생시키는 것이 답이다.
원망하고 희생시킬 대상이 생긴다면, 의례의 수준도 그것에 맞게 떨어진다.
“빛을 찬양하라! 신을 찬양하라! 신의 나라에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동지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을 증명할 때입니다!”
엥겔의 외침에 이단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요하나는 사람들이 들끓는 본당을 굽어보았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옛 동료였고, 또 어떤 사람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녀가 싫어하고 꺼리던 종파의 사람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녀를 규탄하고 죽이라 한다.
희생제물 전례라는 말도 아까운 아우성 속에 한 남자가 요하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 침은 그녀의 치맛자락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뭔가 자질구레한 것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엥겔도 잠시 몸을 피해야 할 정도였다.
요하나는 뭔가 목구멍에 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걸 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곧 뜨거운 열기가 되어 눈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다 결국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부 불타 버려라, 이 이단의 소굴아!”
와장창!
바로 그 순간, 여기저기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지며 토벌대의 기사가 난입했다. 그는 도둑질한 갑옷 위에 자기 서코트를 입은 에드워드였다. 그는 자신에게 긴 촛대를 내지르는 이단자를 단칼에 목을 베고 걷어찼다.
“기사 등장! 소원을 들어주러 왔다! 방금 소리친 거 누구야? 아군인가?”
뒤이어 다른 기사들도 유리창을 깨부수며 본당에 쳐들어왔다. 다들 완전무장한 상태였고 이단자들이 내지르는 무기 따위로는 상처 입지를 않았다.
강철 인간들.
엥겔은 그 공포스러운 광경에 맞서 소리쳤다.
“숫자는 아직 우리가 더 많다! 저들을 물리쳐라! 활로를 뚫어라!”
그 순간, 에드워드 역시 눈 앞에 펼쳐진 이단자들을 열쇠검으로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백성과 교인들을 우롱하고 속여온 너희들을 오늘 단죄하러 왔다! 조져!”
새로 발 내디딜 만큼의 땅도 남지 않고 사람으로 꽉 들어차 서로 죽여대기 시작하는 본당을 보고 요하나는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간만에 그녀의 기도가 통했다.
* * *
기사들을 선두로 돌입했던 토벌대도 쉬운 싸움을 한 건 아니었다. 기사는 그 존재 자체로 두려움을 일으켜 적진을 붕괴시키지만, 궁지에 몰린 광신자들은 아무래도 쉽게 물러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전이 끝나고 한 병사가 시체들을 일일이 살펴본 결과를 보고했다.
“엥겔을 못 찾겠습니다. 혼전을 틈타 깨진 창문이나 개구멍으로 도망친 모양입니다.”
“재주도 좋군.”
에드워드는 인상을 썼다. 그는 아직 묶여 있는 요하나 앞에 섰다. 치맛자락까지 피가 튀어 있었지만 용케도 상처 하나 없었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신이 보살피신 건가? 그나저나 우리 구면인 것 같은데?”
“넉살도 좋으시네…….”
요하나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에드워드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풀어줘.”
병사들은 곧 요하나의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고 그녀를 내렸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이단과 이단과 이단을 옮겨 다녀 본 경험이 어때?”
“끔찍해요.”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에드워드가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한 기사가 외쳤다.
“에드워드 경! 보물을 찾았답니다! 성채에 있던 것만큼 많다고 합니다!”
“신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군.”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하지만 엥겔을 놓친 게 거슬렸다.
“그나저나 이 웃기는 자식이 어디로 갔을까?”
에드워드는 요하나를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선생을 팔면 회개한 셈 쳐 줄 수 있을 거다. 최소한 고통 없이 죽겠지.”
요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팔아요.”
“그래?”
“거저 줄게요. 성채 밖 돼지우리 쪽에 샛길이 있어요. 유사시엔 그쪽으로 탈출할 거라 했죠.”
“성채? 완전히 반대쪽이잖아! 토벌대의 눈을 피해 거기로 간다고?”
“샛길은 하나가 아니니까요. 절벽 중간에 옆으로 기다시피 가야 하는 좁은 보폭의 비밀통로가 있어요.”
에드워드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성 만드는 새끼들은 변태 중의 상변태 새끼들일 거야. 그런 길이 있었나.”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돌아보았다.
“아직 그 통로를 통과하는 중이면, 내려다보고 활만 쏴도 잡겠네?”
“그렇겠지. 바로 잡으러 갈 거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가씨. 일어나.”
“네?”
“선생값 줄게. 그 자식이 어떻게 죽는지는 봐야지.”
“그런 걸 봐서 뭐하게요? 제가 보든 안 보든 그는 어차피 죽고, 저도 죽을 거예요. 달라지는 건 없어요.”
“있지.”
“네?”
에드워드는 검을 거꾸로 잡고 손잡이 끝으로 요하나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그 자식이 안 돌아올 거라는 건 확인해야 할 거 아냐?”
요하나는 잠시 멍하니 에드워드를 보다, 결심한 듯 손잡이를 붙잡았다.
* * *
성결자 엥겔은 절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게걸음을 친 끝에 돼지우리를 시야에 넣었다. 더러운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 하수 배출구 아래로 비밀계단이 파여 있다는 건 몇몇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요하나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이 비밀통로를 분다면 노력도 헛되이 붙잡히고 말 것이었다.
‘서둘러야 해. 이 통로를 아는 놈들은 그 혼전에서 다 죽었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엥겔은 연습해 봤던 것보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했다. 그러나 카치운은 더 빨랐다.
“안녕하쇼.”
카치운은 절벽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엥겔을 내려다보았다. 엥겔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카치운은 파이프를 꺼내 연초를 채우기 시작했다.
“왜 멈춰? 계속 가지.”
“모, 못 본 척해 주게. 돈을 주겠네. 내 허리춤에 돈주머니가 있어…….”
“신께 기도해 볼 생각은 없나?”
침묵. 카치운이 다시 말했다.
“처음엔 성결자 소리 듣던 개혁가 사제 양반이 실은 이단 반란을 획책하고 폭주해 버렸다…… 언제부터, 어디부터 이단이 되었는지는 비전문가인 내가 알 리가 없지만, 일단 당신 주장을 그대로 돌려줄 순 있겠군. 한번 받은 빛의 힘은 쉽게 잃지 않는 거라 사제들이 오만에 빠진다고.”
카치운은 불씨 붙은 나뭇가지로 파이프에 불을 붙인 다음 말했다.
“그런데 그 일이 당신한테 벌어졌지? 사제라면 도박하는 셈 치고 보호 마법이라도 걸어서 여길 뛰어내렸을 것 같은데.”
“쓰, 쓸 수 있소! 다만, 아까 그 난리통에 남은 주문을 다 써 버렸을 뿐이오!”
“그래?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줄까? 사제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마다 쓸 수 있는 주문이 하나씩 회복되는 거로 아는데?”
카치운의 말에 에드워드가 낄낄 웃었다.
“은근히 악취미구만. 댁도.”
“웃기는 게 사실이잖소.”
카치운이 덤덤히 말하며 불붙이지 않은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에드워드, 카치운, 요하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이제 엥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 이 냄새 나는 곳으로 탈출하는 거야?”
“저 아래 해자는 똥물이 잔뜩 고여 있을 텐데?”
“어떤 의미에서는 비밀통로 맞구만…….”
웅성거리는 와중에 가르달이 소리쳤다.
“제발! 저 새끼 목은 내가 날리게 해 주시오! 난 이번에 한 게 없어! 조무래기밖에 못 잡았다고!”
에드워드가 짧게 말했다.
“기각.”
“그럼 손가락! 손가락만 도끼로 찍게 해 주시오!”
“그럼 저거 떨어져 죽잖소.”
“내 말이 그 말이오!”
구경거리와 농담거리로 전락한 자칭 성결자 엥겔은 참담한 심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요하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말은 없었다. 엥겔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항복하겠소. 포로로서 살려 주시오. 재판은 받아야 할 것 아니오? 내 구명을 탄원해 줄 주교들에게 편지를 쓰겠소. 혹 돈이 필요하면 조달해서 나눠 주리다.”
에드워드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베로니카 아직 안 올라왔지?”
“아직 안 올라오셨습니다.”
“잘됐네.”
에드워드는 잠시 돼지우리 쪽으로 가서 부스럭거리더니,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요하나에게 안겼다.
“자.”
요하나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그 돌덩이를 안고 섰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엥겔을 향했다. 엥겔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당신은 교회의 기사잖소! 정당히 재판받을 권리를 무시하는 거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이 이야기도 참 오랜만에 하네. 첫째, 난 교리법무성의 문장을 걸치고 있지만 교회 소속 기사가 아니다. 이단심문관에게 개인적으로 고용된 몸이지. 둘째, 우린 굉장히 성차별적이라 늙어빠진 남자보다 살릴 수도 있는 여자 포로가 더 가치 있다고 봐. 이해했나?”
“안 돼! 안 돼!”
엥겔은 비명을 질렀다. 요하나가 돌을 그의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면 꼼짝도 못 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요하나를 향해 사정하기 시작했다. 구질구질한 옛 인연들까지 전부 끌고 나오는 구걸이었다.
요하나는 눈을 질끈 감더니, 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왜? 아직 정이 남았냐?”
“아뇨. 저자를 이단심문관님께 넘길게요. 재판정에 세워 주세요.”
“왜?”
요하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야 저자가 어떤 인간인지 모두 알게 될 테니까요.”
“저자가 어떤 인간인데?”
“사제면서 이단에 빠져 빛의 주문을 잃어버렸고, 제자를 이용하다 죽이려 했으며, 남몰래 똥통으로 도망치다 오줌까지 지린 자요.”
신랄한 평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며 박수를 한 번 쳤다. 짝!
“고발 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