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잠깐 침묵이 이어지더니 주 공공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물 때문에 영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한심하다는 감정이 짙게 느껴졌다.
“나도 함께하겠다. 판관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 보고 들어야 알 수 있는 게 있는 법이니.”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연우혁은 의아해했다.
기본적으로 환관, 그것도 높은 지위의 환관들은 무림인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 공공 정도 되는 지위라면 느긋하게 앉아서 부하들을 부려도 될 텐데 직접 나서려고 하다니.
“귀관도 판관의 자리에 올랐으면서 왜 직접 돌아다니려 하지? 국사에 힘쓰는 자라면 지위가 높다고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되는 법이거늘.”
“과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연우혁은 주 공공의 말에 살짝 감동했다. 높은 자리에 앉은 관리로서는 당연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저런 관리는 보기 드물었다.
당장 한경의 모 지부만 해도 용봉지회를 맞아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오대세가나 구파일방 출신 손님들을 맞아 축연은 매일 같이 열어대고 있었지만 그걸 일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궁 판관이나 금 통판이 찾아가서 넌지시 권할 정도였다.
-그, 조금 관무를 신경 쓰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괜찮네, 괜찮아. 자네들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나? 자네들은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인 것 같네. 자. 한 잔 하게나.
-…지부 어른.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에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치지 말라)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인지우(杞人之憂)란 말도 있네.
-아시다시피 무림인들의 용봉지회라면 금의위나 동창도 관심을 가질 터인데…
-괜찮네. 괜찮아. 연 판관은 금의위의 일을 도운 적이 있지 않나. 또, 동창의 일도 도운 적이 있지! 그것도 두 번이나. 그 정도면 총애를 받고 있지 않겠나?
-……
궁 판관이나 금 통판 모두 말도 안 되는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
금의위든 동창이든 일 한 번 도와줬다고 좋게 봐줄 만큼 너그럽고 인심 좋은 조직이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부 어른도 설득이 통할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고, 결국 궁 판관은 돌아와서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한가 같으니! 그 놈이 국문을 받으면 나도 받는 것인데!
-실로 안타깝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네 녀석이 금의위의 총애를 받고 동창의 총애를 받을 테니 별 문제 없을 거라는구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그러니까 말이다!
이런 관리들만 봐온 입장에서 주 공공의 적극성은 꽤 감명 깊은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봐온 주 공공은 뇌물도 별로 탐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새삼 대단한 사람이군.’
동창의 높은 자리에, 능력도 뛰어나고, 청백리라니. 이런 소수의 인재가 있기에 조정이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참. 공공께서는 어떻게 위장하실 생각이십니까?”
“규수로 위장하는 게 좋겠구나. 용봉지회가 머지않았으니 구경 나온 이들이 많을 터. 신분을 숨기기 좋겠지.”
“과연. 원하신다면 포쾌로 위장하셔도 좋습니다. 목소리나 말투는 벙어리라고 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흐음… 아니다. 규수가 낫겠구나.”
고민하던 주 공공은 포쾌로 위장하는 걸 거절했다. 아무래도 신분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괜히 포쾌로 위장해서 곤욕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대답을 들은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와 제 벗들이 모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혹시 여장을 좋아하시는 건가?’
포쾌라는 편한 위장이 있는데 규수로 여장을 고집하는 걸 보면, 혹시 여장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주 공공 본인이 환관인 만큼 그런 쪽에 친숙할 가능성도 높았고.
‘배려해드려야겠군.’
주 공공만큼 뛰어난 관리라면 여장이 아니라 허 중관처럼 하물을 절단하고 다녀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연우혁은 뛰어난 상관을 존중하는 만큼 취향 또한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동창의 당두라니…!”
“공공께서는 뛰어난 분이니 분명 도움이 될 걸세.”
연우혁은 놀라워하는 선도광에게 설명했다. 무림인들 중 동창을 두려워하거나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은 만큼, 괜한 무례를 저지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진충비도께서 그렇게 말하신다면 틀림없을 겁니다. 자, 무엇부터 하실 겁니까?”
선도광은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번쩍이는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한경 외곽을 순찰할 걸세. 공공께서 직접 둘러보고 싶어하시더군. 안에서 소문을 듣는 것도 좋지만 결국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
“맞는 말씀입니다.”
연우혁은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포쾌들까지 동원해서 한경 외곽을 돌기 시작했다.
용봉지회로 인해 한경 안은 물론이고 밖에도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거지나 부랑자처럼 보이는 이들도 제법 됐다.
사실 가난한 무림인들이 먼 길을 여행하게 되면 거지나 부랑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긴 했지만, 저들 중에는 사람들의 전낭을 노리거나 한경에서 무언가를 훔치려는 이들도 분명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있었는지 포쾌들은 긴장 섞인 시선을 던졌다.
“제갈 공자. 저 자들을 보십시오.”
선도광은 산길 아래 공터에 자리 잡고 있는 무림인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곤륜파의 젊은 무인이 보내는 눈빛에 옆에 있던 제갈규는 괜히 부담 가는 걸 느꼈다.
같이 움직이기로 결정내린 뒤, 제갈규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 선도광은 그보다 나이 많은 제갈규를 형으로 대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원래라면 문제될 게 없었지만 선도광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아는 제갈규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 곤륜파의 젊은 무인이 왜 제갈규를 저렇게 존중하겠는가.
아마 진충비도와 맞먹는 재주를 보여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어서가 분명했다.
“…보이는군. 선 소협은 왜 그러시오?”
“저 자들이 조금 수상하지 않습니까?”
“으음!”
제갈규는 선도광의 말을 듣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확실히 공터에 앉아 있는 저 무림인들은 조금 수상한 점이 있었다.
행색이나 복색은 부랑자처럼 초라했는데 차고 있는 검은 잘 갈무리되어 있어서 칼집에도 진흙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물론 오는 동안 꼴이 엉망이 된 걸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신경이 쓰였다.
저렇게 모여 다닐 정도의 무림인이라면 어느 정도 권세가 있을 텐데 저런 꼴이라니.
“확실히 이상한 것 같소.”
“고견을 들려주시겠습니까, 공자?”
“저들의 행색은 앞뒤가 맞지 않소. 복색은 너무 초라한데 병장기는 좋지. 게다가 저런 자들이 저렇게 모여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소.”
“과연, 무리의 숫자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선도광의 대답에 제갈규는 들키지 않게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체면치레는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내 생각에는 사파 출신의 무림인이나 낭인들 같소. 용봉지회 기간 동안 칼 든 낭인을 찾는 곳도 많으니 저렇게 일확천금을 찾아올 수도 있겠지.”
“저희가 찾는 첩자와 상관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교의 첩자는 의심 받지 않을 자로 위장하고 숨어있지, 저런 식으로 공터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요. 당장 의심 받기 좋지 않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도광은 제갈규와 의견이 일치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의 첩자라면 저런 식으로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인. 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을 갈무리한 선도광이 질문을 하자 연우혁이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연우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주 공공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저들의 정체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들은 사파 무인처럼 위장한 개방도다. 아마 정보를 캐기 위해 나왔나보군.”
연우혁의 대답에 주 공공은 동의한다는 듯이 첨언했다.
“잘 변장했지만 검의 매듭고리가 반대로 묶여있구나. 또, 주먹이 발달했는데 저건 권법의 달인이다. 굳이 검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사파 무인인 척 변장해서 정보를 캐려고 하는 거겠지요. 아무래도 같은 낭인이면 입이 가벼워지니 말입니다.”
“개방도인 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구나. 무슨 연유로 알아차린 것이냐?”
“저 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역용술을 썼지만 알아볼 수 있더군요.”
“이런!”
둘의 대화를 듣던 선도광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나야 개방도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으니 알아차린 거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제갈 공자도 저와 같이 판단했습니다만.”
“……”
연우혁은 상대가 제갈규를 끌고 오자 살짝 당황했다. 설마 제갈규도 틀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누구나 틀릴 수 있는 일이지. 한 번 틀렸다고 해서 그리 마음을 쓰면 안 되오.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니. 진정 지혜롭기 위해서는 대범하게 마음을 써야 하오!”
“과연…!”
선도광은 젊은 판관의 조언을 깊이 받아들였다.
이 판관과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꼈다. 곤륜파와 곤륜산 근처에만 머물며 경험했던 것이 강호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명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시오.”
연우혁은 선도광을 격려해줬다. 곤륜파 출신 무인인 만큼, 돌아가서 진충비도 칭찬을 하게 만드는 것도 제법 쏠쏠한 일일 터였다.
그 격려 덕분인지 선도광은 순찰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저 자들이 다투고 있습니다! 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상단의 짐을 훔쳤다는데, 제갈 형. 중재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 소협은 누가 수상하다고 생각하시오?”
“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수상합니다. 저들의 위치를 보면 저건 육합검진의 진법. 적을 포위해서 노리는 진법인데 저런 무인들의 실력으로는 금세 펼치기가 힘듭니다.”
“음. 일리가 있소! 저 무인들의 수준으로 육합검진을 빨리 펼치는 건 힘들었을 거요. 아마 상단의 짐을 뺏은 뒤 진법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었겠지.”
연우혁은 살짝 미안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저건 육합검진이 아니라 팔괘망절진이고, 적을 포위해서 노리는 진법이 아니라 공격을 막는 진법이오. 저 상단 무인들은 짐을 도둑맞았다고 하지만 행색에 곤궁함 하나 없으니, 저들은 도둑맞은 게 아니라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자들일 거요.”
“……”
“……”
이런 일들이 몇 번 더 반복되자(그 중에는 강물을 잘못 마셔 복통으로 쓰러진 줄 알았지만 십년지기 친우가 독을 먹인 무인과 보름 가까이 수상한 서찰을 받은 도사들도 있었다) 주 공공은 슬슬 무림인들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면사로 얼굴을 가렸기에 눈빛이 보이지 않아 망정이었지, 만약 눈빛이 보였다면 선도광과 제갈규는 수치심에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 공공을 제외하더라도 둘의 부끄러움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연우혁은 물론이고 포쾌들도 옆에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포쾌들은 하늘 같은 무림인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그게 역으로 둘의 기분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선 소협. 사실 말할 게 있소.”
제갈규는 더 이상 수치스럽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열었다. 선도광은 침울한 눈빛으로 저 먼 산 너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사실 진충비도만큼 뛰어나지 못하오. 이번에 첩자를 찾기 위해 같이 움직인다고 했을 때, 사실 내 부족한 재주가 발각날까봐 그렇게 말한 것이었소.”
“…!”
선도광은 놀란 눈으로 제갈규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자신처럼 하나도 못 맞춘다 했더니 저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제갈세가의 이름을 등에 업은 사람이… 부끄러울 뿐이오.”
“아닙니다. 제갈 공자!”
자책하는 제갈규의 모습에 선도광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 또한 내 재주가 별 것 아니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문파에 있었더라면 아마 계속 착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모자람을 알았다면 정진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선 소협… 선 소협은 나보다 훨씬 나은 무인이로군!”
“제갈 공자야말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분 아니겠습니까!”
나름 자기 문파에서 지모(智謀)로 자신 있었던 둘은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의기투합했다.
부족함을 느꼈다면 다시 정진하면 될 뿐!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주 공공은 연우혁을 불러서 물었다.
“저 자들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인가?”
“…순, 순찰에 의욕이 넘쳐서 그렇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무인들을 상대할 때면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