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탐혈광견, 아니 탐혈광랑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깥을 쳐다보았다.
그 밑의 혈견대 무인들도 마찬가지로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혹독하게 훈련 받은 혈교의 무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방심이었다.
“불가능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 놈들은 귀신이라도 된다는 거냐?”
“그건…”
말을 꺼낸 혈견대 무인은 탐혈광랑의 눈빛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입을 다물고 있었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나불거린 것이다.
탐혈광랑의 눈빛에서 살기가 폭사되더니 그대로 손가락이 갈퀴처럼 휘둘러졌다.
주인의 심기를 읽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는 죄로, 혈견대 무인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제법 재주가 있는 놈이군.”
탐혈광랑은 하 교위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눈앞의 금의위 교위 놈에게 한 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손수 키운 혈견대 무인들의 감시를 뚫고 흔적을 남기다니.
덕분에 랑(狼)이 아닌, 부하들에게나 어울리는 견(犬)의 별호를 스스로 자처한 꼴이 되었다.
“어떻게 흔적을 남긴 것이냐? 추종향? 비표?”
“……”
하 교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교위 본인도 다른 무인들이 이곳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침묵을 다르게 생각했는지 탐혈광랑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곧 뒤질 놈이 혓바닥은 납덩이처럼 무겁구나. 고통 없이 편하게 죽고 싶지 않나?”
“탐혈광견 당신이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금의위 교위가 빙그레 웃으며 조롱하자 탐혈광랑의 분노가 폭발했다. 손가락 끝에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짐승의 발톱마냥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냈다. 지원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보겠다는 살벌한 의도가 느껴졌다.
“멈춰라, 마두 놈들아!”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목소리가 들렸다. 탐혈광랑은 턱 끝으로 혈견대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신이 동굴 안의 적들을 해치우는 동안 막고 있으란 뜻이었다.
“탐혈광랑. 멈춰라!”
이제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외치는 소리에 탐혈광랑은 어이가 없어서 비웃었다.
“멈추라고 하면 이 어르신께서 멈춰줘야 한단 말이냐?”
“그래, 삼 년 전 네놈을 암습한 혈교 장로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다면 멈추지 마라!”
“…?!!”
처음 보는 놈이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대뜸 외치자 탐혈광랑의 눈빛이 크게 떠졌다.
* * *
“혈견대, 그렇다면 저 놈은… 탐혈광랑! 저 마두가 여기에 있었다니!”
혈견대를 알아본 선도광의 다급한 외침에 연우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탐혈광랑은 연우혁도 들어본 적 있는 혈교의 마두 중 하나였다. 최소한 절정 중입 이상의 경지인 만큼 예전에 상대했던 적면혈뇌나 옥면살검 같은 마두하고는 급이 달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아니. 정말 뭘 믿고 이러시는 거지?’
연우혁은 주 공공의 호언장담에 당황했다.
물론 상대가 갖고 있는 보물 때문에 영안으로 정확한 확인은 힘들었지만 주 공공의 경지가 연우혁보다 크게 높지는 않았다. 높게 잡아줘도 절정의 경지 미만일 터였다.
내공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자신보다 몇 단계 위의 고수를 상대할 때는 내공이 많다는 것만으로 이길 수 없었다. 높은 경지의 고수는 한 줌의 내공만으로도 전신 세맥에 진기를 정확히 흘려보내 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저번처럼 휘하의 동창 무인들도 없는 상황 아닌가. 연우혁과 선도광, 제갈규가 전부였다.
주 공공도 분명히 알 텐데 저런 자신감이라니.
‘…믿기로 한 이상 믿는다.’
연우혁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주 공공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수가 없다면 다 같이 죽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연우혁이 할 수 있는 건?
‘탐혈광랑, 혈견대를 이끄는 혈교의 고수. 조법에 능하고. 호전적이고 난폭한 성격에, 피를 사용한 마공을 익혔다. 내가 놈에 대해 아는 건… 잠깐. 혈견대주면 혹시 그 사건의 당사자인가? 검으로 금의위를 찾은 사건과 시간 차이가 대충…’
상대를 어떻게 도발할지 고민하던 연우혁은 기억 속에서 사건을 떠올린 뒤 외쳤다.
“탐혈광랑. 멈춰라!”
“멈추라고 하면 이 어르신께서 멈춰줘야 한단 말이냐?”
“그래, 삼 년 전 네놈을 암습한 혈교 장로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다면 멈추지 마라!”
“…?!!”
‘통했나!’
상대의 반응을 보자마자 연우혁은 자신이 제대로 짚었다는 걸 깨달았다.
전에 연우혁이 해결한 사건들 중에는 혈교와 관련된 일들도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네놈이 어떻게?”
탐혈광랑은 정말 놀랐는지 손끝에 맺힌 붉은 기운을 흩어버리고 공격을 멈췄다.
삼 년 전에 혈교 내부에 있던 탐혈광랑을 암습한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절정의 고수인 탐혈광랑을 죽일 뻔한, 실로 지독한 흉계였었다.
이런 계략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연히 혈교 장로 중 하나일 터였고, 그 중에서도 혈뇌의 별호를 가진 책사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사건건 탐혈광랑과 충돌하는 앙숙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탐혈광랑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암습을 벌인 무리들의 정체를 찾고 있었다.
정체만 잡아낸다면 그걸 빌미로 혈교 내부에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고 권력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놀랐나보군.”
“…하. 속을 뻔했군. 첩자 놈에게 들은 건가?”
아무리 피에 미친, 마공을 익힌 고수라 하더라도 탐혈광랑이 이지(理智)가 없진 않았다.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서 침착을 되찾았다.
혈교가 다른 문파나 관아에 첩자를 심어놓듯이 금의위 또한 혈교 내부에 첩자를 심어놨을 터.
그렇다면 누군가 탐혈광랑을 암습했다는 소문을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첩자 정도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소문이었다.
그걸 저렇게 이용해서 아는 척을 할 줄이야.
제법 교활한 놈이었다.
“말재간이 제법이구나. 다른 놈이었다면 속았을 거다. 하지만 이 어르신을 속일 수는 없지. 소문을 듣고 아는 척을 한다고 통할 줄 아느냐?”
“믿기 싫으면 마라. 네 손해지. 난 홍혈지독(紅血之毒)에 대해 말해주려고 했다. 혹시 그 날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눈앞이 붉게 가려지지 않았나? 이것도 첩자가 알 만한 소문인가?”
“…?!!!!”
탐혈광랑은 자신이 암습 때 당한 독을 정확히 맞히는 젊은 놈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건 탐혈광랑 본인과 습격자들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정보였던 것이다.
의심 많은 무인인 탐혈광랑은 부하들도 믿지 않았고, 암습 이후에도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절대 밝히지 않았다.
스스로 독을 조사했고, 해독 때 재료를 구해 온 부하들은 모조리 죽여서 비밀을 지켰는데…
저 놈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네가 냉정히 생각했으면 진작 맞혔을 일이지. 그 날 주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봐라.”
“주연에서 있었던 일?”
“그래. 자리에 처음 들어온 자가 누구던가?”
“…그건 왜 물어보는 거냐?”
탐혈광랑은 어느새 연우혁의 말에 홀려 있었다. 이제까지 연우혁에게 홀렸던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됐다. 됐어. 내가 뭐하러 알려줘야 한단 말이냐?”
“말해라, 이 찢어죽일 놈! 네놈이 정말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말해라!”
탐혈광랑이 포효했지만 연우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격장지계를 쓰는 건가?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
자신의 속마음이 들켰다는 걸 깨닫자 탐혈광랑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어지간히 범인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탐혈광랑은 설득하듯 연우혁을 불렀다.
“뭘 원하는 거냐? 말해봐라. 제대로 말해준다면 하늘에 맹세코 네놈은 살려서 보내주마!”
물론 탐혈광랑은 맹세를 지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말에 연우혁은 조금 솔깃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인가?”
“그래! 이 어르신이 비록 마두란 말은 많이 들어도 맹세한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은 없다.”
“…그래. 좋다. 저기를 봐라.”
연우혁은 손가락을 뻗어 탐혈광랑 뒤쪽의 소나무를 가리켰다. 굽이굽이 휘어진 소나무는 꽤 특이한 모양새였다.
“뭐냐?”
“저걸 보고 생각해봐라.”
“…뭔 말을 하는 건지… 잠깐, 설마?”
탐혈광랑은 소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굽을 곡(曲)이라면 설마 염곡수(捻曲手), 그러니까 장로 청살혈뇌의 독문무공을 암시하는 것인가?
‘청살혈뇌! 놈이… 그런데 주연과 무슨 상관이지? 소나무에 다른 깊은 뜻이 더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몸의 본능이 탐혈광랑에게 경고를 날렸다. 탐혈광랑은 보법을 펼치며 몸을 비틀었다. 번뜩이는 빛과 함께 공간을 찢듯이 날아들던 비도가 따라서 궤도를 비틀었다.
푹!
한쪽 팔뚝에 비도가 꽂히자 탐혈광랑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속았다 하더라도 고작 일류 경지 정도 되는 무인 놈의 암습에 당하다니?
‘뭐냐, 이 공격은?’
단순히 빠르고 강해서, 혹은 도중에 술법이라도 썼는지 궤도가 비틀렸다고 해서 놀라운 게 아니었다. 방금 일격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일류 경지의 무인이 던진 공격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놀라워하던 탐혈광랑은 찰나의 시간이 끝나자 곧바로 격노해서 울부짖었다.
“놈!!!!!”
“주인님!”
혈견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놈이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적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금의위 무인들이 동굴 안에서 재빨리 뛰쳐나오고 있었다!
“네놈들은 뭘 한 거냐? 됐다. 찢어 죽여주마!”
탐혈광랑은 비도를 뽑아서 던진 뒤 혈도를 짚어 지혈하고서는 달려들었다.
애초에 적의 말을 듣고 있었던 건 여기 있는 자들이 전부 다 같이 덤벼도 탐혈광랑 혼자서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의 지원이 오는데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잘 했구나. 설마 탐혈광랑을 속일 줄은 몰랐는데!”
주 공공은 연우혁을 치하하며 암기를 꺼내 날렸다.
날아오는 암기를 본 탐혈광랑은 더욱 더 분노해서 독문기공 탐혈현기공을 펼쳤다.
본인이 익힌 사악한 심법을 대성해야만 쓸 수 있는 이 기공은 스스로의 피를 마치 내공처럼 끌어내 잠력을 격발시키는 강력한 기공이었다.
별호와 무공에 들어간 탐혈이란 단어만 제대로 해낸 상태라면 잠력을 격발시켜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강력한 무공.
연우혁은 안 그래도 강력한 탐혈광랑의 내공이 증가하고 기세가 더욱 살벌해지자 순간적으로 압도됨을 느꼈다.
“!”
상대를 도발하고, 시간을 끌어 금의위 무인들을 빼돌리고, 심지어 기대하지도 않은 상처까지 입혀서 반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절정 중입의 고수는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한 수가 있는 만큼 방심하지 못하는 게 절정 중입의 고수였다.
탐혈광랑은 조법을 펼쳐서 암기를 막아내지도, 보법을 펼쳐서 암기를 피하지도 않았다. 귀찮다는 듯 입에서 핏물을 뱉어내서 암기를 부숴버리려고 했다. 혈폭각(血爆咯)의 수법이었다.
‘무슨 내공이…!’
강호의 고수들 중 숨결이나 뱉는 침을 무기로 삼는 자가 있다지만, 대부분은 옛이야기에나 나오는 고수였다.
무림에 왜 검을 쓰는 무인이 많겠는가? 그만큼 효율적이고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내공을 낭비해가며 숨결이나 침을 무기로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탐혈광랑은 경지에 오르면 내뱉는 핏물도 살벌한 암기가 된다는 걸 보여주듯이 움직였다. 주 공공이 날린 암기는 탐혈광랑의 핏물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약해보였다.
그 순간 암기가 번쩍이더니 탐혈광랑의 핏물을 찢어발기고 회전하듯 날아들었다. 탐혈광랑이 분노로 반쯤 미친 와중에도 비명을 질렀다.
“빙백표(氷白鏢)!”
운철로 만든 삼백 년 전 북해빙궁이 잃어버린 보물.
속설에 빙백표의 위력은 강기를 능히 쪼갠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직접 보게 되자 탐혈광랑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빙백표는 허공에서 얼음을 뿌리듯 움직이며 다시 한 번 적을 찔렀다.
주 공공은 상대가 절정 중입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보법을 펼쳐 앞으로 덤벼들었다. 허리춤에서 뽑아드는 검에서는 마두들을 본능적으로 제압하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녹… 녹옥탕마검(綠玉蕩魔劍)?!!!”
탐혈광랑은 날아드는 검광에 소문으로만 듣던 소림 장경각 깊은 곳의 보물을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눈앞의 적이 휘두르는 검은 소림의 지보를 연상시켰다.
내공을 회복시키던 연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동창의 힘이… 정말로 대단하구나!’
아무리 동창이라지만 어떻게 소림의 보물을 일개 당두가 갖고 다닌단 말인가?
소림 방장의 약점이라도 잡지 않은 한 절대로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