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하지만 하 교위는 반박하지 않았다.
원래 동창의 환관들은 괴팍하고 오만한 자들이 많은 만큼 괜히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구명지은을 입지 않았던가.
다행히 상대는 그 이상으로 타박할 생각은 없었는지 더 비난하지 않고 말을 멈췄다.
“다친 자들이 많으니 쉬도록 하거라.”
저 멀리 아래에서 지원 요청을 받은 동창의 무인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멍청하거나 교만한 자였다면 금의위의 공을 뺏기는 게 싫어서 입을 열었겠지만 하 교위는 경거망동하는 대신 깊숙이 예를 표했다.
방금 있었던 싸움만 봐도 이번 일의 공은 동창이 가져가는 게 이치에 맞았다. 교위는 불만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부하들을 눈짓으로 엄히 단속했다.
“대인.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어냐?”
“저희 금의위의 흔적을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하 교위는 동창 무인들이 혈견대 무인들의 시체를 조사하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는 동안 환단을 먹고 운기조식을 한 덕분에 안색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아직도 괴로워하는 연우혁을 유심히 지켜보던 주 공공은 교위의 질문에 시선을 돌렸다.
“금의위의 흔적?”
“예.”
동창의 무인들을 이끌던 영반(領班)이 건방진 질문에 일갈했다.
“하, 너희 금의위 놈들은 모르겠지만 공공께서는 앉은 자리에서도 천 리 밖을 보시는 재주가 있다. 아둔한 놈들에게 왜 공공께서…”
“저기 진충비도가 깨어나면 물어보거라.”
“……”
동창 영반은 머쓱해하며 주 공공을 쳐다보았다. 주 공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우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판관의 증세를 좀 확인해 보거라.”
“혈교의 무리들과 싸우면서 내공을 과하게 쓴 게 아닙니까?”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에게 설명을 들은데다가 운기요상으로 내상을 회복하고 있는 줄 알았기에 영반은 의아함을 표했다.
“회복이 너무 느리구나. 대환단을 먹였는데도.”
“과연. 대환단을 먹였는데도 저렇다면… 예?”
영반은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주 공공이 마음만 먹는다면 보물을 물 쓰듯이 쓸 수 있는 위치라지만 대환단은 이야기가 달랐다.
사실상 소림 연단 공부의 총화 아닌가!
속설에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소림의 이 영약은 한 번 밖으로 나돌면 무림에 혈사가 벌어질 보물이었다.
소림이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는 만큼 주 공공도 그리 함부로 쓰면 다시 구할 수 없을 텐데…
“그걸 저 판관한테 쓰셨단 말입니까? 태감께서는 분명 공공께서 쓰실 줄 알고 내줬을 텐데…”
“난 이미 내공이 충천해서 더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지. 유능한 기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대환단이 아쉽겠느냐.”
“동창에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은 공공밖에 없으실 겁니다.”
말이야 정론이었지만 영반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젊은 판관을 노려보았다. 동창의 다른 환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 판관을 얼마나 질시하겠는가.
젊은 판관의 재주가 뛰어나단 건 조정에도 몇 번 이야기가 나돌아서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원래 강호의 보물은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시와 지시와 인시가 맞아야 얻을 수 있는 게 보물이었다.
그런데 저 판관 놈은 재주 하나로 저런 보물을 하사받다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동창 영반은 창백해진 연우혁의 뒤로 다가가더니 등에 손을 대고 진기요상을 시작했다.
이 판관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 하필 영반 본인이 동창 내에서도 특별히 의술과 독에 뛰어난 환관이었던 것이다.
‘으음?’
속으로 불평하던 영반은 연우혁의 내상을 보고 크게 놀랐다.
상태가 심각해서가 아니었다. 대환단의 명성은 과연 명불허전이라 원래는 심각했을 내상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치료하고 남은 내공으로는 십이경맥을 따라 돌며 판관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상이 얕진 않았다. 특히 기경팔맥부터 전신세맥까지 골고루 퍼져 있는 내상은 대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의아하게 만들었다.
“정신이 드나?”
“…예.”
연우혁은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환관의 진기가 안으로 흘러들어오며 몸의 내공을 유도하는 게 느껴졌다.
상대는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었는지, 연우혁이 현청벽사신공이나 범망공을 운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상을 치유시키고 있었다.
“독문무공에 대해 묻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상태가 워낙 심각해서 안 물을 수가 없군. 특이한 무공을 익혔나?”
“아니오… 권법은 위국권법을, 암기술은 당문의, 심법은 무당의…”
“…그건 그거대로 신기하군.”
동창 영반은 은침을 판관의 혈도에 몇 대 꽂으며 황당해했다. 금의위의 위국권법이야 그렇다 쳐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 관련된 무공을 판관이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무림의 인연이 묘하다지만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마공을 익혔나 했는데 저런 무공들이라니. 더더욱 모르겠군.”
“내공이… 내공이 너무 많은데, 공공께서 제게 무슨 영약을 주신 겁니까?”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연우혁은 위화감을 느끼고 물었다.
언제나 부족한 내공 때문에 영약에 크게 집착했던 연우혁인 만큼, 현재 자신의 내공이 이상하다는 걸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있었다.
내상을 회복시키는 데에 소모된 걸 감안해도 내공의 양이 지나치게 늘어난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영약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거의 한 갑자 수준 아닌가?’
내공만 놓고 보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우혁은 대체 무슨 영약을 먹은 건지 의아해했다.
“동창의 비약이다.”
“동창은 이런 비약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동창의 깊이는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황상의 총애를 받아도 그렇지 당두가 무림의 보물 여럿을 들고 다니고 이런 비약도 만들 수 있다니.
“조용히 해라. 치료에 방해된다.”
“예…”
동창 영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하자 연우혁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막대한 내공을 써가며 치료하고 있는 만큼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었다.
“혹시 탐혈광랑의 무공 때문인가? 있었던 일을 말해봐라. 최대한 자세히.”
영반은 혹시 마두의 무공이 흔적을 남긴 건가 의심했다. 탐혈광랑의 무공이 이런 내상을 입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지만, 그 사이 새로운 무공을 익혔을지도 몰랐으니까.
강호의 기인이사와 독문무공들은 모래알처럼 많지 않던가.
연우혁은 오늘 탐혈광랑과 맞붙었던 싸움을 복기하듯이 차례대로 설명했다. 영반은 퉁명스러운 태도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놈의 팔에 비도를 꽂아 넣었단 말인가?”
“예.”
“그건 대단하군! 놈 같은 고수 상대로 암기를 통하게 하다니.”
암기술이란 쾌와 중, 강의 묘리도 중요했지만 던지는 사람의 오성(悟性)도 만만치 않게 중요했다. 그저 멧돼지처럼 들이받기만 하는 무인은 암기술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 판관은 원래 명석한 두뇌와 신통력으로 이름이 높았으니 암기술에 능한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지만, 그걸 절정 중입의 고수에게 통하게 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도록.”
“그러니까…”
연우혁은 있었던 일을 다시 자세히 말하고, 그 뒤의 일까지 말했다.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까지도.
뒤에서 계속해서 듣던 영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설마… 설마 의념을 쓴 건 아니겠지.”
“의념 말입니까?”
“됐다. 신경 쓰지 마라.”
영반은 젊은 판관이 관심을 보이자 매몰차게 대답했다.
원래 자신의 경지에 맞지 않는, 무공의 높은 절학은 굳이 먼저 알아서 머리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자는 판관 아니던가. 굳이 의념이니 절정 너머의 경지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절정의 벽을 깨고 상단전을 개발해야 볼 수 있는 경지를 말하시는 겁니까?”
“뭐? 어디서 들은 거냐?”
“태극검존께 들었습니다.”
“…?!?!!”
영반은 깜짝 놀라 금침을 떨어뜨릴 뻔했다.
무당파 출신 최고수이자 현 무림에서 손꼽히는 초절정고수의 별호는 아무리 동창이라 하더라도 가볍게 취급할 수가 없었다.
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가 오대세가나 구파일방과 친분을 깊이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대체 어떻게 태극검존에게 무공을 배웠단 말인가?
“태극검존께 무공을 사사받았단 말이냐?”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한 수 정도…”
연우혁은 가볍게 말했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은 가볍지 않았다. 무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수의 한 수는 어떤 비전절학보다 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영반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좋다. 태극검존께 들었다면 말해도 되겠지. 내 생각에, 네 녀석은 탐혈광랑과 싸우면서 미약하게나마 의념을 쓴 게 아닌가 싶다.”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젊은 판관이 대뜸 부정하자 영반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올라왔다. 주 공공이 아끼는 부하만 아니었다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우혁의 황당함에도 근거가 있었다.
아직 절정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의념을 사용했다고 하니 믿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마치 연우혁이 던진 비도에 강기가 실려 있었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선천진기를 끌어낸 게 더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저는 상단전이 열려 있어 종종 선천진기를 끌어내곤 했습니다. 이번 내상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나도 선천진기가 뭔지 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몸의 세맥들이 육편이 되진 않아.”
선천진기를 끌어내는 경험은 노련한 무인이라면 한두번씩 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단전에 쌓은 내공이 바닥났지만 적과는 싸워야 할 때 사람은 결국 자신의 선천진기에 의존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끌어낸다고 해서 판관처럼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 판관이 입은 내상은 훨씬 더 거대하고 강렬한 힘이 휩쓸고 지나가야 가능했다.
“그리고 내공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법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보법을 펼치던 도중 다시 움직임을 보였다고 했지 않나. 그건 선천진기로 불가능하다. 의념을 끌어낸 거지. 네 녀석의 재주가 뛰어나고, 또 태극검존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아주 희박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
연우혁은 상대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멋대로 무공을 사용했다 다친 줄 알았는데 그게 몇 차원 위의 절학의 편린을 붙잡아서였다니.
더 충격적인 건 스스로가 의식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펼친 무공을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다니.
“하지만 처음에 비도를 던졌을 때는 멀쩡했습니다. 그 뒤에는 왜?”
“하수가 의념을 끌어냈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건 아니다. 말했듯이 네가 펼친 의념은 완벽한 의념이 아니라 의념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경지. 당연히 부담도 그만큼 적겠지. 처음 비도를 던졌을 때 담긴 의념은 네 녀석의 내공이 완전했고 집중력이 높았던 만큼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할 수준이었을 거다. 나중에 보법을 펼쳤을 때 꺼낸 의념은 절박한 상황이라 스스로가 다치는 걸 신경 쓰지 못한 걸 테고.”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연우혁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절박하면 스스로 의념을 먼저 꺼내게 된다니. 기쁘기보다는 두려운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상단전이 열린 탓에 위험한데 이제는 거기에 의념까지 추가된 꼴 아닌가.
영반은 쉽게 대답했다.
“경지를 올려서 의념을 버틸 수 있도록 해라.”
“…그것 말고는 없습니까?”
“없다. 처치는 다 했으니, 보름 정도는 쉬도록 해라.”
동창 영반은 마지막 침을 꽂은 뒤 진기요상을 끝냈다. 지금 잡을 수 있는 내상은 전부 처리한 만큼 나머지는 요양만 하면 됐다.
“…감사드립니다.”
‘견제하는 건가?’
여유를 찾은 연우혁은 상대의 감정을 영안으로 확인했다. 연우혁을 꽤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동창의 환관이라면 주 공공의 총애를 받는 판관이 못마땅할 수 있을 터였다. 권력이란 건 원래 비정한 법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나는 건 하수지.’
이럴 때일수록 권력자 가까이서 권신 노릇을 해야 안전한 법. 연우혁은 그걸 몇 번이고 직접 체험한 만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연 판관.”
“교위 어른.”
“어른은 무슨. 이제 편하게 불러주게.”
하 교위는 연우혁이 한 때 포쾌였다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관리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 연우혁은 냉큼 외쳤다.
“하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게나. 이번 일은 정말 고맙네.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하군. 하지만, 그 전에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뭡니까?”
“태자 전하께서 자네를 한 번 보고 싶어하시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