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진정하거라.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지 않느냐? 꼭 금의위의 위사로 일해야 나랏일을 하는 게 아니다.”
황자는 동생이 건방진 판관에게 분노를 터뜨린 줄 알고 급히 달랬다.
금의위 무인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긴장으로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판관이 용화공주의 진노를 받는 건 알 바 아니었지만, 공주의 성정을 생각해봤을 때 자신들에게까지 불이 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들어보도록 하지요.”
정작 안쪽의 용화공주는 보기 드물게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깨진 다기(茶器) 조각을 소매로 치우고 있었다.
밖의 오해와 달리 이번은 건방진 아랫사람의 태도에 분노를 터뜨린 게 아니었다. 그저 놀라서 찻잔을 떨어뜨린 거였다.
설마 저기서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황자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설령 부지휘사가 제안했어도 거절할 사람이 드물 텐데, 하물며 황자가 자신의 사람이 되라고 내민 제안을 저렇게 거절하다니.
‘믿기 힘들군…’
실제로 이제까지 진충비도의 행적을 유심히 지켜봤던 용화공주는 ‘이 정도면 제안을 받겠군’하고 예상했었다.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인만큼 더더욱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 *
‘차라리 마두를 상대하는 게 낫겠군.’
밖의 연우혁은 진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황자나 부지휘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거절하기 위해 마음을 다졌는데 안의 공주까지 분노를 터뜨리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황자나 금의위와 척을 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히 건방지다고 용화공주의 원한을 사는 게 아닌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이 더 최악의 선택. 연우혁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밀고 나갈 결심을 굳혔다.
연우혁이 황자의 제안을 거절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안정된 정관의 직위를 버리고 금의위에서 일하는 것의 위험성, 가문 없는 외인으로서 오만한 금의위 무인들을 상대하는 것의 어려움 등은 물론이고…
‘동창에게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어.’
특히 주 공공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인간적인 감사함을 떠나서 그렇게 받았는데 인연을 자르고 금의위로 가버리면 후환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연우혁은 부지휘사가 태감에게 못을 박아주겠다고 한 걸 믿지 않았다.
원래 사람의 원한이란 건 음습한 것이라 겉으로는 하지 못해도 언제든 암암리에 보복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 공공이 동창 내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권신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위험했다.
주 공공이 나름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긴 했지만 원래 한 길 사람의 속을 파악하기는 힘든 법. 영안으로 읽지 못한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주 공공이 대승적으로 국사(國事)와 황자를 위해 도량 넓게 양보해줄 거란 기대는 너무 연우혁의 형편에만 좋게 생각하는 일이었으니까.
지금 연우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가장 그럴듯한 거절이었다. 거절하면서도 금의위와 황자의 호의를 살 수 있도록.
“금의위에 들어가게 되면 분명 전하의 덕을 천하에 밝히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터럭만큼이나마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 성인이 말하기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직 수양이 부족한데 어떻게 천하의 일을 관장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통촉해주십시오!”
‘됐다!’
연우혁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좌중의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부드러워지자 안도의 한숨을 얕게 뱉어냈다.
부지휘사는 물론이고 다른 깐깐하고 오만한 금의위 무인들도 방금 말에는 꽤 호의적인 태도를 보내고 있었다. 황자가 인정할 정도의 관리가 겸양하는데 그걸 나쁘게 볼 사람은 드물었다.
“진충비도. 천하의 판관들이 다 그대와 같다면 요순시대가 어찌 옛말이겠나!”
황자도 꽤나 감명을 받았는지, 얼굴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외쳤다.
“그래. 한경 백성들에게서 그대 같은 명관을 뺏어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들어보니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한경의 백성들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부지휘사는 황자가 결정하자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황자는 웃으며 연우혁에게 말했다.
“그래도 진충비도. 그대의 재주가 필요한 일이 분명 있을 텐데 아쉽긴 하군.”
“언제든 불러주시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동창의 중관들이 진충비도와 친하다고?”
마지막 말은 연우혁에게 물어본 게 아니라 부지휘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부지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금의위 위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쪽에서 오해를 하진 않을까?”
“아닙니다. 전하.”
부지휘사는 겁없이 나서는 연우혁을 보고 놀란 눈빛을 던졌다. 마치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까 용화공주 전하께서 노여워하시는 걸 보면서도 건방지게 끼어들다니, 겁이 없느냐?’
하지만 연우혁도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제가 만난 동창의 중관들은 모두 다 국사와 관련된 일로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금의위 무인들을 만난 일로 쓸데없는 오해를 하진 않으실 겁니다.”
금의위 무인들은 연우혁의 말에 비웃듯 입술을 비틀었다. 동창과 앙숙인 만큼, 금의위는 환관들을 탐욕스러운 돼지새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우혁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괜히 부지휘사가 나서서 ‘태감한테 말해서 금의위 사람이라고 언질만 남겨놓지요’라고 한다면 결과가 꼬였다.
차라리 금의위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하하. 그렇지. 진충비도. 그대는 아는군? 동창 무인들이 오해를 받지만, 사실 그들만큼 충성스럽고 선량한 이들도 드물지.”
“……”
“……”
부지휘사는 물론이고 연우혁까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황자 앞에서는 태감도 간, 쓸개를 빼놓고 굴 테니 그렇겠지만…
“맞… 맞는 말씀이십니다.”
다행히 연우혁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부지휘사도 거기에 호응했다.
“분명 오해를 받는 면이 있지요. 관리들이 금의위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충비도 그대가 다른 관리들처럼 동창을 두려워하지 않고 같이 국사에 힘쓰니 기쁘군그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연우혁이 동창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확인해주자 황자는 더 이상 걱정하는 걸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정무로 바쁜 판관을 그만 성가시게 해야겠군.”
‘살았다.’
황자의 말이 떨어지자 연우혁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호랑이 굴, 아니, 황태자의 굴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것이다.
심지어 금의위나 동창, 황자 중 어느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고서!
어느 무림인도 이런 업적을 알 수 없겠지만, 연우혁은 오늘 스스로가 해낸 업적이 무림이 마교를 멸문시킨 업적보다 더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걸로 됐다. 황자에게 이름을 알렸으니, 판관으로서 공을 착실히 쌓아가면 충분히 더 출세할 수 있겠지.’
금의위나 동창 또한 연우혁을 쉬이 건드리진 않을 테니, 다른 관리들에게는 없는 특권이 하나 생긴 셈이라고 봐야 했다. 사실 관리로서 이 둘만 피해도 면사금패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진충비도.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
다 끝난 줄 안 상황에서 질문이 들어오자 연우혁은 고개를 들었다.
‘뭐지?’
황자가 뭘 물어보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시 황궁 내의 내밀한 일이나 음모를 물어보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바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연우혁은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이 해결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번 용봉지회에서 누가 우승할 것 같은가? 동생한테 들리지 않도록 나한테만 말해주게.”
“……”
* * *
비단과 금을 하사품으로 받고서 나오는 연우혁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과연 황자는 어진 인물이었다. 한 번 만남으로 이렇게 값을 지불할 줄이야.
‘금의위로 갈 거 그랬나?’
마지막으로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긴 했지만, 다행히 용화공주가 제재했다.
-다 들리고 있습니다.
-하… 하하, 농담 좀 해봤다.
황자는 이번 용봉지회에서 동생과 내기를 했는지 찔끔 말을 거뒀다.
“하사품은 바로 바꾸지 말고 반 년 정도는 창고에 두도록 하거라.”
부지휘사, 조굉은 연우혁을 손수 배웅하며 말했다.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의 하사품은 그 질이 너무나도 뛰어난 게 문제였다. 궁궐에서 쓸 법한 비단이나 금이 돌면 눈치 빠른 이들은 괜한 의심을 할 수 있었다.
“예.”
“네 총명함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무림인들에게 혹시라도 가볍게 말하는 것은 삼가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답을 듣자 조굉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혁이 총명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스스로를 무림인으로 자처하는 자들은 예상 밖의 행동으로 일을 난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괜한 의협심으로 다른 무림인들에게 황자 전하가 있다는 이야기라도 꺼낸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전하께서 용봉지회를 존람하신다는 사실은 언제 밝히실 겁니까?”
“지금도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은 충분히 알고 있다.”
조굉은 연우혁에게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지 화제를 돌렸다.
“금의위에 들어오지 않은 건 예상 밖이었다. 아주 겸손하더구나.”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데 과분한 자리에 앉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다른 젊은 놈들한테 들려주고 싶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법인데… 동창의 환관들과 사이가 돈독한가?”
“나랏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친하지 않겠습니까?”
“내 앞에서 돌려서 말할 필요 없다. 환관들과 사이가 좋은 것 같으니 더 이상 말하진 않으마. 대신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내 아랫놈들만큼 환관 놈들도 성가신 놈들이니.”
‘알고 있습니다.’
연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연우혁이 동창을 조심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피곤하게 외줄을 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용화공주께서 널 좋게 보신 모양이더군.”
“?!”
의외의 말에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조굉은 왜 놀라냐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널 좋게 보지 않았다면 아까 불호령이 날아왔을 거다.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너는 목숨을 건진 거다.”
“예.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널 부른다면 행동거지를 각별히 삼가도록 해라. 재주 있는 자는 좋아하시지만, 아랫사람이 실망시키는 일에 관대한 분 또한 아니시니.”
“저를 부르신다면 무슨 일로…?”
“무불통지로 소문난 한경의 판관을 부른다면 무슨 일이겠나.”
조굉은 더 이상은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이 대답해주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연우혁은 속으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황자는 몰라도 용화공주는 걱정인데…’
실수 한 번 하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지 않는 만큼 더더욱 무서웠다. 연우혁은 궁 판관을 만나 황족한테 아첨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하나 고민했다.
“혈교 놈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무림인 놈들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나?”
조굉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혈교의 첩자가 이번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문파들 중 있다는 건 금의위한테도 전달된 소식이었다.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귀빈의 신분을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첩자가 누군지 찾고 발본색원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으나, 조굉은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품을 만큼 애송이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기대는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면 혈교가 그리 끈질기게 성세를 이어나갈 수도 없었으리라.
이번 일에서 조굉이 기대하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금의위 무인들이 철저하게 황자를 모시고 어떤 위험도 없이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지 마무리짓는 것.
둘은 무림인들이 혈교도를 찾아내던, 찾아내지 못하던 계속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서로 상잔하는 것.
무림인들 입장에서는 발끈할 기대였지만 조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림인들끼리 서로 죽이는 게 낫지 혈교도가 황족을 보고 턱없는 음모라도 꾸민다면 괜히 일이 귀찮아졌다.
둘이 서로 이를 드러내고 싸울수록 금의위 입장에서는 일이 수월해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조굉은 이 유능한 판관이 의심스러운 자들을 어느 정도 골라주길 원했다.
판관의 총명함을 보면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자들을 골라낼 수 있으리라.
물론 의심스럽다고 심문하려고 하면 꽤 큰 소란이 일어나겠지만 그건 조굉도 바라는 바였고…
“다른 무림인들은 잘 모르겠고, 저는 이틀 후에 첩자를 붙잡을 생각입니다. 다음 일은 첩자를 심문하고 진행해야겠지요.”
“그렇군. 잠깐, 방금 뭐라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