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감히 어디서 그 건방진 혓바닥을 놀리느냐?”
천문세가 무인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객잔이나 주루에서의 싸움에 익숙한 무림인들은 재빨리 탁자를 옆으로 밀어버리고 공간을 만들었다. 연륜이 있는 무림인들은 이럴 때 휘말리지 않고 구경하는 법을 잘 알았다.
당사자만 아니라면 이런 싸움만큼 즐거운 눈요깃감도 없는 것이다. 그 어떤 경극도 이런 싸움의 박진감을 따라오기는 힘들었다.
“당, 당신들은 누구요?”
상대가 보통 세가 출신이 아니라는 걸 짐작한 무림인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만큼 쉽게 물러날 수는 없었는지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려는 게 보였다.
“우린 천문세가의 사람들이다.”
“천문세가!”
이름을 듣고 놀란 무림인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천문세가에서 왜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우린 천문세가와 아무런 원한도 없소이다!”
“닥쳐라. 진충비도 연 판관의 명성을 모욕해놓고 어디서 발뺌이냐? 여기서 했던 말을 번복하고 사죄할지 천문세가의 검을 받을지 결정해라.”
천문세가 무인들은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싸늘하게 쏘아보는 눈빛부터 시작해서, 객잔 주인에게 은자 주머니를 미리 던지고 도망치지 못하게 문을 막는 것까지 진심이 느껴졌다.
상대가 적당히 압박한다면 도망쳐도 굳이 잡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저렇게 행동한단 건 사죄를 받지 못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뜻 아닌가. 방금 실언한 무림인들은 대체 판관과 천문세가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몰라 억울해했다.
“설령 진충비도 본인이면 모를까 천문세가가 이 일에 왜 끼어드는…”
마지막으로 조금이나마 체면을 지키기 위해 무림인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무림인은 불행히도 여기가 어디인지 잊고 있었다.
“닥쳐라, 이 마두 놈!”
“판관 나으리를 모욕하다니 사파 놈이 분명하구나!”
“?!”
다닥다닥 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성난 소리가 튀어나오는 건 물론이고 주루 밖에서 소란을 듣고 구경하러 온 인파들 사이에서도 야유가 흘러나왔다.
“내가 왜 마두냐! 나는 서주의 오대검객 중 하나인…”
“오대혈마 놈아 닥쳐라!”
“오대혈마 중 하나라고? 어쩐지 눈빛이 흉악하더라!”
“……”
팽주성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무림인을 보고 동정심을 느꼈다.
원래 천문세가가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도를 휘두를 생각이었지만, 저렇게 모욕을 당하는 걸 보니 분노가 사라지고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무림인은 눈앞의 천문세가 무인들 때문에 덤비지도 못하고 주루 안팎으로 한경 사람들에게 계속 욕을 얻어먹었다. 천문세가 무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 치의 자비 없이 윽박지를 뿐이었다.
“사죄할 테냐, 검을 받을 테냐?”
“…사죄하겠소.”
결국 술에 취해 떠든 무림인들은 바닥에 엎드려 사죄를 해야 했다. 천문세가 무인들은 구경꾼들에게 ‘앞으로 진충비도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은 천문세가의 검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하고 외치고 떠나갔다.
“허. 놀랍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인들이 달려와서 재빨리 안을 치우고, 점소이가 공짜 술을 돌리고 나서야 다시 주루 안이 시끄러워졌다. 팽주성의 말에 당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세가 놈들이 요즘 오대세가를 넘본다더니, 행동거지에 절도가 있고 빈틈이 없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 자들이 왜 나선 걸까요? 희아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천문세가가 진충비도에게 은혜를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진충비도의 재주라면 천문세가 내부에 난제가 쌓였다 하더라도 사흘이면 다 풀겠지요.”
평소 허물없이 이야기하던 두 남매였지만 아무래도 앞에 당문의 어른이 있다 보니 팽주희도 조금 더 신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팽주성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당등은 의외로 수긍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혹시 달리 생각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있다!”
“그렇다면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원래 진충비도는 당문의 무인은 아니지만 사문(師門)으로 따진다면 당문과도 인연이 있는 녀석이지.”
한경 강 노인의 출신을 떠올려보면 독혼수가 저렇게 말하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문세가는 삼 년 전에 나와 악연을 맺은 적이 있다.”
당등은 과거 일을 떠올리며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깊게 만들었다.
삼 년 전 야산에서 발견된 영약을 두고 천문세가와 충돌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결국 당등이 도착한 뒤 천문세가가 물러나게 됐지만, 그 원한은 사라지지 않고 앙금처럼 남아있었으리라.
“그렇습니다…?”
팽주성과 팽주희는 당등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아서 의아해했다.
“놈들은 진충비도가 용봉지회에서 활약을 하면 당문의 명성이 같이 드높아지는 걸 꺼려해 미리 나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팽가 남매는 독혼수라는 별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소신을 밝혔다. 당등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 * *
스스로 태성 인근에서 명성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태성일검(台省一劍) 위상은 눈앞에 서있는 진충비도를 보고 긴장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실력보다는 주변 관중들이 보내는 함성 때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데 무슨 태성일검이냐!”
“아니. 판관 나으리께서는 맨손인데 왜 저 놈은 검을 들고 있는 거야?”
“사파 놈아 검 내려놔라!”
용봉지회의 비무를 감시하는 몇몇 고수들이 앞에 나선 뒤에야 야유가 조금 잦아들었다. 연우혁은 민망함을 참으며 사죄했다.
“사과드리겠소. 태성일검.”
“…한경의 판관으로 백성의 사랑을 받았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일 터. 신경 쓰지 않소.”
사람인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지만 보는 눈이 많은 여기서 뭐라고 해봤자 속 좁은 놈이 되는 건 위상이었다. 한경의 백성들은 냉혹하기 그지없어서 칼 든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가차 없이 모욕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위상도 진충비도의 명성을 노리고 있었다. 진충비도를 노리는 수많은 무림인들 중 한 명으로 뽑히는 행운을 붙잡은 만큼 이 정도 야유는 감당할 생각이었다.
황자가 손수 골라서 내보냈다고 하지만 위상은 진충비도의 무공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제갈세가가 오대세가 내에서 무공으로 높게 평가받지 않듯이 보통 무림의 군사는 지략과 기책으로 명성을 쌓지 무공으로 명성을 쌓지 않는 것이다.
진충비도 또한 그 별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암기술을 수련한 무인일 터. 소문에는 당문의 무인에게 무공을 전수받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위상은 크게 믿지 않았다.
‘아마 암기 몇 개를 받은 게 와전되었을 터.’
게다가 비무에서 암기란 무기는 그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낯설다는 장점이라도 갖고 있는 여러 기문병기들과 달리 암기는 상대가 예측하는 순간 위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까.
생각하는 사이 신호와 함께 비무가 시작되었다. 위상은 보법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마지보(五馬之步)라고 불리는 이 보법은 기병의 편성(五馬)에서 그 움직임을 따온 보법이었다. 좌우로의 변화는 부족하지만 전진하는 힘이 뛰어나고 그 안에 강(强)과 패(覇)의 묘리가 숨어 있었다.
때문에 위상을 처음 상대하는 무인들은 예상보다 더 빠른 접근에 허를 찔려 허둥대곤 했다. 위상은 젊은 판관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살짝 기대했다.
그러나 진충비도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보법을 펼쳐 위상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에 위상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내 소문을 들었군.’
진충비도의 움직임은 능숙하다 못해 마치 위상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건 위상에 대해 미리 탐문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이런 비무대회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무인들에게 파훼법이 따라오는 것도 일종의 숙명 같은 것. 위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날아올 암기를 각오했다. 암기술을 쓰는 무인이라면 슬슬 암기가 하나쯤 날아올 때가 됐다.
그러나 암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진충비도는 보법을 밟으며 접근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에 위상은 경악했다.
지금 보여주는 보법만 봐도 상대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이런…!’
당황스러움과 별개로 위상의 검은 물흐르듯 움직였다. 오랫동안 익힌 하산북두검(河山北斗劍)은 자연스럽게 상대의 요혈을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오마지보가 처음 보는 무인들을 당혹하게 만든다면 하산북두검은 위상과 몇 번 검을 맞댄 무인들도 매번 놀라게 만드는 검법이었다.
특히 이 거익태산(去益泰山)이란 초법은 같은 초식이라도 언제 어느 초식과 같이 펼치느냐에 따라 위력과 변화가 달라져, 위상의 검법을 파악했다고 착각하는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디 한 번 막아봐라!’
그러나 위상의 기대와 달리 진충비도는 냉정하게 거익태산 초식도 가볍게 빗겨서 피했다. 권격이 휘둘러지자 검격의 궤도가 변했다.
위상은 적이 검 안으로 파고들려고 하자 재빨리 태산홍모(泰山鴻毛) 초식을 펼쳐서 막으려고 했다. 검법이지만 박투술의 묘리도 들어가 있어 상대와 가까이 밀접했을 때 쓸 수 있는 초식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위상은 팔꿈치에서 통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진충비도는 권법을 펼쳐 위상이 검을 든 팔을 마비시켰다. 요혈을 제대로 맞았는지 힘이 빠져 검이 툭 떨어졌다.
“크윽…!”
상대가 예상 외로 권법의 고수라는 걸 깨달았지만 위상은 포기하지 않고 발악하듯 남은 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진충비도는 냉담한 얼굴로 그 주먹마저 파훼한 뒤 위상의 가슴을 타격했다. 울컥 올라오는 충격이 위상을 뒤흔들었다.
‘커헉!’
상대가 손속에 사정을 뒀다는 게 느껴졌다. 비무가 아니었다면 이 일격에 가슴뼈가 뭉개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위상은 포기하지 않고 보법을 펼쳐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중재를 위해 있던 고수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위상을 쳐다보았다. 방금 진충비도가 손속에 사정을 뒀는데 그걸 무시하고 저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건 체면에 어긋나는 짓인 것이다.
하지만 도망치는 위상에게 그 시선이 닿을 리 없었다. 위상은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 내상을 회복한 뒤 다시 검을 붙잡아 승부를 보려고 했다.
팍!
섬광 같은 빛줄기가 날아오더니 위상의 바짓자락과 가죽신 끄트머리를 바닥에 꿰어버렸다. 그걸 본 한경 백성들이 함성을 질렀다.
“저게 그 비도술이군!”
“그렇지! 판관 어르신께서는 저걸로 악인 백 명을 잡으셨다네!”
“졌… 졌소.”
그제야 싸움이 끝났다는 걸 인정한 위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찌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위상은 비무 끝에 취해야 할 예도 무시하고 비무대에서 훌쩍 내려가 버렸다.
그걸 본 고수가 분노한 기색으로 소리치려고 하자 연우혁이 말렸다.
“진정하십시오. 졌는데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진충비도. 비도술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권법도 제법이군그래.”
“감사합니다.”
연우혁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가장 뛰어난 일절은 비도술이지만!”
“……”
연우혁은 마지막에 비도를 괜히 던졌다고 후회했다.
* * *
패배한 무인들이 대개 그렇듯 태성일검 위상은 술과 골목길에서 퍼붓는 욕설로 스스로의 화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비열한 진충비도 놈. 속임수를 쓰다니!’
딱히 상대가 속임수를 쓰진 않았지만 위상은 자신이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권법의 고수인 걸 알았다면 분명 다른 수를 썼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에 대해 꿰고 있었지만 자신은 상대에 대해 거의 모르지 않았던가.
‘은자를 써서 내 정보를 산 게 분명하다!’
성질 같아서는 진충비도의 저택에 뛰어 들어가 다시 한 번 겨뤄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위상은 자신이 압도되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제기랄, 왜…”
숙소로 돌아오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등을 켜고 모여 있었다. 위상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오?”
“혹시 당신이 위상이오?”
“맞소. 태성일검…”
“그건 모르겠고 위상이 맞소?”
“맞소만…”
“여기 위상이란 자가 왔답니다!”
“놈을 붙잡아라. 끌고 가서 추문하겠다!”
안에서 구파일방의 표식을 달고 있는 고수들이 나오며 차갑게 내뱉자, 위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네가 옆 객실의 무인을 죽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따라와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누명이오! 누명! 이, 이보게. 누명이야. 자네도 알지 않나?!”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를 발견한 위상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친구가 대답할 틈도 없이 위상은 고수들에게 끌려갔다.
“그, 그럴 친구가 아닌데… 그럴 친구가 아닌데!”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위상의 친구를 본 몇몇 사람들이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 중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억울하다면 판관 나으리를 찾아가보시오.”
“나는 그만한 재물이 없소. 저 친구도…”
“누가 뇌물 바치랬소? 하여간 외지인 놈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