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빨리 죽여야 한다!’
마치 대낮처럼 장원 곳곳이 환해지고 일어난 사람들이 외치는 고함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자 옥면개는 두려움과 동시에 살심을 굳혔다.
진충비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지금 상황의 급박함은 그 분노를 되새길 여유도 없었다.
눈앞의 저 놈에게 너무 많은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오늘 죽이지 않는다면 옥면개는 무조건 궁지에 몰렸다. 물론 진충비도를 죽인다 하더라도 의심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억지라도 부려보려면 저 입을 반드시 막아야 했다.
“타구진(打狗陣)을 펼쳐서 놈을 포위해라!”
다행히 옥면개가 데리고 온 개방의 제자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심 하나 없이 옥면개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이들도 진충비도의 명성을 알고 있는 만큼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 분명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개방의 제자답게 의문이 든다 하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충실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진법이 형태를 갖추었다.
개방이 자랑하는 진법, 타구진은 그 수련과 개진(開陳)이 별로 어렵지 않고 진법을 펼치는 인원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었다.
거지들을 모아다가 한두달만 연습해도 대충 꼴은 갖출 수 있는 게 타구진이었고 그 중 몇 명이 빠지면 또 모양을 바꿔서 펼칠 수 있는 게 타구진이었으니 실로 개방과 잘 맞는 진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구진을 얕볼 순 없었다. 익히기는 쉬우나 그 심오한 위력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정진이 필요한 게 타구진이었다.
지금 옥면개와 같이 한경에 온 개방의 제자들은 오 년 이상 손발을 맞춰가며 타구진을 수련한 무인들.
그만큼 진법의 개진도 빠르고 위력도 강력했다. 즉시 진충비도를 포위해서 고깃덩어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진충비도는 타구진이 완성되기 직전에 생문으로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개방의 거지들은 놀란 눈으로 진충비도를 쳐다보았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정확히 생문의 방위를 찾아 빠져나간 것도 놀라웠지만, 방금 진충비도가 보여준 보법이 예상 외로 신묘했던 것이다.
다른 개방 무인들이 견제할 여유도 주지 않고 뒤로 빠져나가는 표홀함은 보법만으로도 무림의 명성을 얻을 만했다.
‘놈…!’
옥면개도 개방 무인들과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경지가 더 높은 만큼 더욱 가슴이 싸늘했다.
‘결코 하수가 아니다!’
방금 보여준 보법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니 뒷목이 쭈뼛거리는 기분이었다. 연우혁의 보법이 사실 뒤로 물러날 때 가장 쾌속하다는 걸 모르는 옥면개로서는 더더욱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명성이야 높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판관으로서, 독특한 기책으로 쌓았다고 생각했지 무공은 분명 자신 아래라고 생각했었는데…
‘무공을 숨기고 있었나!’
혈옥비를 상대하며 피하는 모습에 옥면개는 확신했다. 보법뿐만 아니라 저 초식 하나하나는 내기(內氣)가 충만하지 않다면 보여줄 수 없는 동작이었다.
연우혁이 짧은 기간 동안 무공을 성취한 걸 몰랐기에 옥면개는 진충비도가 일부러 무공의 경지를 어느 정도 숨겼다고 판단했다.
‘심계가 무시무시한 놈이다. 죽여야 해!’
타구진을 빠져나가는 진충비도 뒤로 오대세가 무인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옥면개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팽 형! 진충비도가 혈교와 결탁했습니다! 금의위에게 뇌물을 바쳐 무림을 짓밟으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단 말입니다! 지금은 소림철권만 잡혀갔지만 앞으로는 누가 더 잡혀갈지 모릅니다. 저 자를 죽여야 합니다! 흉악한 마공을 펼치기 전에!”
‘이 자식. 제법이군.’
연우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와 정보로 영안을 어지럽기 직전까지 사용하는 와중에도 살짝 감탄했다.
혈교의 첩자란 걸 들킨 만큼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 텐데, 그 상황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해 책략을 짜내고 있지 않은가.
연우혁의 장점이 판관이라면 단점도 판관이었다. 무림인은 기본적으로 관료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물며 소림철권이 잡혀간 지금 저런 말은 더욱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팽 형은 나도 설득할 수 있다.’
옥면개는 오대세가 무인들, 그 중에서도 팽주성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외쳤다.
여기 있는 무인들 모두와 친분이 있는데다가 팽주성은 특히 잘 아는 만큼 충분히 조종할 자신이 있었다.
팽주성만 조종하면 다른 오대세가 무인들도 따라오리라.
“팽 형! 저번 용봉지회 때 얻은 별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팽 형이 아니라면 누구도 하지 못할 겁니다. 혈교의 첩자가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그래. 알고 있네! 기다리게!”
팽주성이 긍정적으로 화답하자 옥면개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북팽가의 직계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
옥면개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조종이 통했으면 진충비도한테 달려들어야 하는데 팽주성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도광(刀光)이 번쩍이며 옥면개를 일도양단하려고 들었다. 새삼 저번 용봉지회에서 도룡이란 별호를 받은 팽주성의 저력이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쯧!”
“그거 하나 속이지 못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뒤에서 팽주희가 팽주성을 힐난하자, 팽주성은 동생의 비난에 억울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이에 개방도들이 많아서 허점을 완전히 노출할 수도 없었고, 다가가는 사이 옥면개의 의심을 피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팽, 팽 형! 나를 못 믿는 겁니까!? 이 옥면개 종조일을?!”
옥면개는 방금 죽을 뻔한 분노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꾹 눌러 참고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한시가 바쁜 상황에 오대세가 무인들까지 상대할 수는 없었다.
“못 믿네!”
팽주성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평소 저만한 호인이 없다고 회자될 정도로 사람 좋은 팽가의 무인이 예상 밖으로 행동하자 옥면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개방의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
타구진을 펼친 개방의 제자들이 옥면개를 지키기 위해 오대세가 무인들에게 경고했다.
하북팽가의 무인은 몰라도 다른 세가의 무인들까지 싸움에 끼어들 것 같자 강경하게 나선 것이다. 개방의 이름으로 강하게 막아선다면 아무리 오대세가의 무인이라도 달려들기 쉽지 않았다.
“너야말로 당문의 일을 방해하지 마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기가 날아왔다. 당령이 암기를 날리자 모용소가 검을 휘두르며 개방도를 공격했다.
설마 오대세가의 자제들이 이렇게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몰랐던 개방 무인들은 당황해서 펼친 진법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해보자는 거요?!”
“저 놈을 잡아라! 모용세가의 공적을 세워야겠다!”
“형님께서는 멋대로 명령하지 마시오!”
모용세가의 공자들은 서로 싸늘하게 내뱉으면서도 한 가지 목표는 흔들림 없이 공유하고 있었다. 바로 옥면개의 목을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세가의 자제들이 보여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은 그 옆에 있던 무인들에게도 전염되었다. 마음속에 의문이 남아 있는 개방도들과 달리 이들은 소가주들을 확실하게 믿었다.
‘이 정도쯤 되면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
설마 공자들이 아무 근거 하나 없이 진충비도의 말 하나만 듣고 덤비는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한 채 세가 무인들은 병장기를 휘둘렀다.
‘…좋지 않다!’
옥면개는 안에 철을 채운 죽봉을 꽉 쥔 채 상황을 둘러보았다.
다른 오대세가 무인들은 타구진에 막혀있다지만 팽주성, 팽주희 이 두 강견한 직계 두 명이 넘어온 것만으로도 계산 밖이었다.
‘혈교의 무공을 꺼낸다면 바로 죽여야 하는데 시간이… 저 놈이 도망이라도 가면…!’
옥면개는 초조한 눈빛으로 혈옥비를 제압하는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거의 제압이 끝나 가는데, 연우혁이 도망치는 순간 옥면개는 팽가 남매 둘을 제압한다 하더라도 끝장이었다.
‘하늘이시여, 제발!’
다행히 하늘이 이번에는 마두의 편을 들어주었다. 옥면개와 친분이 있는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이 뒤쪽에서 나타난 것이다.
“진충비도가 혈교와 결탁했네! 소림철권을 잡아갔듯이 금의위를 꼬드겨 다른 자들을 더 잡아가게 하려고 하고 있어! 오대세가 무인들은 진충비도의 교언에 넘어갔으니 자네들밖에 없어!”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은 일제히 발검했다. 연우혁은 간신히 혈옥비를 제압하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 있는 후기지수들과 비무할 일을 대비해서 여러모로 준비를 했는데,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진충비도. 움직이지 마시오. 점혈하겠소!”
“그럴 순 없다.”
“흥!”
무당파의 제자 운령이 장력을 뿜어냈다. 추혼장(追魂掌)이라는 별호는 얼핏 들으면 무당파의 도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살벌함이 있었지만, 운령이 펼치는 무당면장을 한 번 보면 그 별호를 납득하게 됐다.
쾌속함으로 상대의 혼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 부드러움으로 끈질기게 상대의 혼을 쫓는 장법.
이번 용봉지회에서 용의 별호를 받을 것이라 기대되는 후기지수다운 무공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우혁은 그런 도사와 맞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손으로는 날뛰는 혈옥비를 단단히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권법을 펼치는데도 오히려 운령이 밀려났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운령의 일장이 권격에 튕겨나가는 소리였다. 운령은 경악의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절정의 경지를 엿보고 있다고!?’
진충비도란 별호를 들은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류 말입을 넘어 절정을 엿보고 있다니.
구파일방의 일대제자 중에서도 이 정도면 손에 꼽혔다. 운령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돕겠다!”
화산파의 제자, 단수평이 연달아 암기를 날렸다. 장강에서 펼친 협행으로 장강일지(長江一指)란 별호를 얻은 단수평은 화산의 무공 자양지(紫陽指)를 막힘없이 사용했다.
이 지법은 화산 특유의 암기인 매화표와 어우러지면 암기술이 되고, 암기가 사라지면 단단한 돌벽에도 상처를 남기는 양강의 무공이었다.
이 또한 이번 용봉지회에서 용의 별호를 노리는 후기지수인 만큼 연우혁이 느끼는 압박은 한층 더 가중되었다. 연우혁은 한손으로 권격을 날려 운령을 밀어내고 영안으로 매화표를 피한 뒤 재빨리 비도를 날렸다.
연우혁의 별호인 만큼 단수평은 비도가 날아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물러났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비도의 기세는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이다.
“큭! 남익. 뭐하나!”
“지금 가세하지.”
마지막으로 점창파에서 온 석화검(石火劍) 남익이 달려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 중 가장 쾌속하고 표홀한 검법을 자랑하는 남익은 숨도 내쉬지 않고 연달아 살벌한 검초를 내찔렀다.
연우혁은 쌍사보를 펼치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하나씩 상대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지만 동시에 달려드니 영안이 타들어갈 것처럼 숨이 막혔다.
‘최소한 손이라도 두 개였다면…!’
연우혁은 날뛰는 혈옥비를 단단히 움켜쥔 채 나머지 한 손으로 권법을 펼치고 비도를 날렸다. 오대세가 무인들이 개방의 무인들을 상대하고 있고 팽주성과 팽주희가 옥면개를 잡고 있으니 시간은 연우혁의 편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한 초식 초식을 펼칠 때마다 영안이 경고를 보냈다. 알면서도 적들이 공간을 좁히는 걸 막는 게 불가능했다.
“진충비도. 당신이 이 정도의 고수인 줄은 몰랐소. 용봉지회에서 만났다면 분명 졌을 것이오. 항복하시오! 억울함이 있다면 이후에 풀 수 있지 않겠소!”
“이 멍청한 도사 놈아. 저기 옥면개가 날 죽이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점혈당하란 거냐?”
연우혁도 마음이 급한 만큼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기 후기지수들이야 옥면개를 믿고 있는 만큼 설마 멋대로 행동하겠냐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지금 옥면개는 죽느냐 사느냐 직전이었다. 일단 연우혁이 점혈당하면 무조건 달려와서 죽이고 생각할 것이다.
“그럴 리 없지 않소!”
“운령. 떠들 시간에 집중해라! 놈을 제압하고 떠들어도 늦지 않다!”
단수평이 고함을 질렀다. 화산의 도사는 심계가 독한 만큼 일단 상대를 제압하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수십 초가 찰나의 사이에 오가고 마침내 자양지가 처음으로 연우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끈한 고통이 올라왔다.
점창의 사일검법이 옆구리를 덮은 천을 찢어발겼다. 한 치만 옆으로 들어갔어도 치명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한 무당면장이 정면에서 뻗어져 나왔다. 연우혁의 영안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전력으로 경고했다.
극한의 순간 연우혁의 집중력이 절정에 달하며 시간이 느려졌다. 연우혁은 비도를 꺼내들어 가볍게 던졌다. 내공을 전부 쏟아 붓는 탈혼비도가 아닌, 그저 초식만 같고 내공은 적게 담긴 허초였다.
그러나 그 비도는 무당면장을 꿰뚫고 도사의 어깻죽지까지 꿰뚫어버렸다. 좌중의 후기지수들이 경악에 물든 눈으로 비도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