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연우혁은 자신이 너무 과하게 명성을 쌓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자신에게 전권을 넘길 줄이야.
물론 장로들은 선의로 한 일이겠지만 연우혁 입장에서는 두 장로가 자신을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아니. 정신 차리자. 상황이 예상 밖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아직 최악은 아니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연우혁의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
화산파와 무당파의 정예들. 그것도 장로들이 이끄는 정예들이었다. 거기에 하씨세가나 적원방, 천화회 무인들과 낭인들까지.
이 정도면 어지간한 중소 문파 두세개는 그대로 쓸어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적의 정체였다.
‘혈강시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연우혁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사독문 무인들이 저렇게 몰살을 당한 이상 저 강시는 혈강시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정말 고묘 안에 잠든 존재가 하나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큭!’
영안으로 강시를 확인하려던 연우혁은 두통을 느꼈다.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와 강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걸려 있는 술법이 보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줬다. 명교의 술법이 분명했다.
‘최소한 절정 말입 이상…!’
연우혁도 절정의 경지에 올랐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강함이었다. 독마가 무림잡배마냥 도망쳤다는 게 납득이 갔다.
만약 초절정의 벽까지 넘었다면…
‘아니. 강시가 그럴 순 없다.’
강시가 절정 말입 이상인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연우혁은 초절정의 경지는 넘지 못했으리라 믿었다. 의념을 다루지 못하는 시체가 어떻게 초절정의 경지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상대가 정말 초절정의 경지를 넘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계획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군.’
연우혁은 미동도 하지 않는 명교의 강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덤비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먼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진법으로 포위망을 만들어서 적당히 가둔 다음 상대가 덤비면 뚫리는 척 비켜난다면…
물론 도시에 있는 무림 문파나 방파들은 그만한 고수들이 강시 하나를 놓치냐고 불평할 수야 있겠지만, 그건 연우혁이 알 바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목숨을 걸고 있는 건 연우혁과 다른 고수들인 것이다.
“병사들이다!”
“병사들이 왔다고? 군관 놈들이 미쳤나?”
냉수사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금 분타 저택 안에는 사독문 무인들의 시체만 있는 게 아니라 관병들의 시체도 굴러다녔다. 눈치 있는 군관이라면 무림의 혈사에 굳이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더 멀리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다니?
갑주를 갖춰 입고 도착한 군관이 연우혁을 보며 외쳤다.
“판관 어른! 역시 판관 어른이 맞군요! 여기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누명을 벗겨주신 은혜. 이 자리에서 갚겠습니다!”
“……”
어쩐지 낯이 익다 싶더니 예전에 한경까지 찾아와서 누명을 벗겨달라고 애걸복걸한 군관이었다. 두려움과 믿음이 반씩 섞인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는 관병들을 보니 속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젠장.’
병사들이 있어봤자 슬쩍 강시를 도망치게 하는 일에 방해만 되지 도움이 될 게 하나 없는 것이다.
“진법은 완성됐네.”
연우혁이 고민하는 사이 알아서 포위망을 완성한 무당과 화산의 장로들이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당장이라도 저 강시에게 출수하려는 기세였다.
탐관오리인 연우혁과 달리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혈사를 일으킨 저런 강시를 보고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장로들은 연우혁도 분명 그들과 똑같이 생각하리라 믿고 있었다.
“좋다. 나도 거들도록 하지.”
“!”
냉수사의 말에 연우혁은 살짝 당황했다.
“같이 싸우겠다고?”
“물론. 저 강시 놈이 아무리 강해도 절정 고수 넷을 못 당할까. 대신 무당과 화산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다오. 이 일이 끝나면 이 늙은이를 멀쩡하게 보내주겠다고.”
‘강시의 경지를 잘못 판단하고 있군…’
연우혁은 냉수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절정 고수 넷이면 저 강시가 아무리 강해도 충분히 이길 테니, 이기는 싸움에 한 몫 거들고 자기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속셈이었다.
아쉬운 건 연우혁과 장로들일 테니, 교활하게 틈을 잘 노린 계략이었다.
문제는 강시의 경지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확실히 이길 수 있다면 연우혁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겠는가.
“알겠네. 약속하지.”
“역시 화산이라면 무엇이 중요한지 잘 판단하리라 생각했소. 자. 점혈을…”
“놈이 움직입니다!”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 있던 강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로 빠르게 흩어지는 무림인들 사이로 절정의 고수 넷이 저택의 담벼락을 넘었다.
“독마!”
냉수사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설마 독마까지 죽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도 되는 마두면 자기 목숨 하나는 어떻게든 건져서 도망쳤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강시의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머리통은 아주 낯이 익었다.
바로 독마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냉수사는 갑자기 오랜만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수 시절, 상대의 수준을 잘못 파악하고 덤볐을 때 느꼈던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흡!”
극성의 빙요수(氷妖手)가 펼쳐지고 시체처럼 비쩍 마른 시푸른 두 손이 강시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치명적인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어떤 회피나 방어도 하지 않자 냉수사는 덜컥 겁이 났다.
슈우우욱-
기묘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고인 피가 강시에게 쭉 들어가더니 뭉개진 가슴팍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냉수사는 강시의 주먹이 갑자기 커지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물러나게!”
다행히 정망거사가 현천연환검(玄天連環劍)을 펼쳐 냉수사를 구해냈다. 무당의 검법 중에서도 그 움직임이 특히 복잡하고 난해하기로 명성 높은 검법을 대성한 장로의 검세는 실로 강렬했다.
검광이 번뜩이는 사이 검기가 충천되더니 강시를 잘라내려는 듯이 뻗어나갔다. 순간 강시가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정망거사 뒤에서 나타났다.
“!?”
정망거사는 자신의 몸이 마치 술법에라도 걸린 것마냥 움직이지 않자 경악했다. 다행히 소매검객 조오렴이 고함을 지르며 뇌전적하검(雷電赤霞劍)을 펼쳤다. 벼락같은 검초가 강시를 관통하고 타격을 주었다.
“저 놈, 강시가 아닌 무슨 배교 교주 같군!”
“동감일세!”
강시 주제에 장로들도 당황스러운 술법을 몇 개나 선보일 줄이야. 독마가 왜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연우혁은 신중하게 비도를 꺼내들고 광명갑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상대의 술법을 보아하니 파사(破邪)의 힘이 있는 광명갑이 제법 쓸만할 것 같았다.
‘영안은 더 조심스럽게 써야겠군.’
저 정도 되는 술사 상대로 영안을 함부로 썼다가는 오히려 본인이 다칠 수도 있었다. 연우혁은 강시 본인을 응시하는 대신 술법만을 파악하기 위해 영안의 사용을 더욱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다듬었다.
무공의 경지가 절정에 오른 만큼 신통력 또한 실력이 크게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 강시가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자리에 있던 무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내공을 전신 경맥에 순환시켜 몸을 보호하려 했다. 어떤 술법인지 감히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연우혁만은 예외였다. 상단전이 열려서 영기가 쌓인 만큼 가장 술법에 저항하기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광명갑이 연우혁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팟!
“…?!”
정신을 차렸을 때 연우혁은 본인만 강시와 외딴 공간에 있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큰일났다!’
단순한 보물인 줄 알았던 광명갑이 이렇게 주인을 배반할 줄이야. 심지어 다른 고수들은 끌려오지 않고 연우혁 혼자만 끌려온 상황이었다.
혼자서 저 강시를 상대할 수 있을까?
“소교주. 집중하시오.”
“…?”
강시가 갑자기 사람 말을 하자 연우혁은 당황했다.
그리고 소교주라고 부르자 한 번 더 당황했다.
‘여기 다른 놈이 있나?’
“소교주. 집중하라고 말했잖소.”
“지금 나보고 소교주라고 한 건가?”
“그럼 누가 소교주겠소. 광명갑을 가졌고 교주의 비술을 익혔으니 당신이 소교주요. 당신이 호법의 후예든 장로의 후예든, 혹은 배교의 후예든 그건 중요하지 않소.”
“셋 다 아니…”
“집중하시오. 소교주. 밖의 방해가 많소. 빨리 진전을 이어야 하오.”
“……”
당장 그 방해하러 온 사람이 본인이었지만, 연우혁은 일단 듣는 시늉을 했다. 지금 괜히 덤벼들었다가 독마 꼴이 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진전이라면… 명교 교주의 무공인가?”
“그렇소.”
“!”
연우혁은 크게 놀랐다.
당장 고묘에서 본 천마군림보, 아니, 충혼의백술도 대단한 술법이었다.
그런 술법을 익히고 있는 명교 교주의 무공이라니.
어떤 절세신공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떤 무공이지? 권법인가? 검법? 심법?”
“모든 것이오.”
“?!”
광오한 강시의 말에 연우혁은 더더욱 놀랐다.
모든 것이라니.
‘잠깐. 말이 되나?’
연우혁은 놀라워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만류귀종이란 말이 있다지만 그건 결국 무공 사이의 유사한 원리 같은 것 정도가 한계였다. 권법을 익혔다고 검법의 고수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구배지례(九拜之禮)를 하시오.”
일단 연우혁은 하라는 대로 했다.
초대 교주에게 세 번, 전전대 교주에게 세 번, 전대 교주에게 세 번…
“명교의 진전을 이어 백성들을 구원하고 이들을 이끌 것을 하늘에…”
“……”
연우혁은 별 생각 없이 따라서 맹세했다. 강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 있었다면 불타버렸을 것이오.”
“…?!!”
갑작스러운 말에 연우혁은 기겁했다. 딱히 명교를 믿지 않고서 따라했던 것이다.
‘뭐지? 허풍인가?’
“소교주는 미륵이 되어 백성들을…”
강시는 급하다면서 무공을 전수하는 대신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고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 명교의 철학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명교 무인들보다 수십 배는 백성들을 더 돌보고 챙겼을 연우혁에게 저런 조언은 심드렁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전수하겠소.”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우혁은 막대한 내공이 전신에 파도치듯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떠한 초식도 철학도 없는 순수한 내공이었다.
워낙 당황스러워서 연우혁은 처음에는 상대가 무슨 격산타우를 아주 고명하게 펼치고 있나 싶었다. 무공을 가르쳐준다면서 내공으로 전신을 치기만 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말로 계속해서 내공만이 밀려왔다. 연우혁은 하단전에 내공이 억지로 쌓이는 것을 느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후에는 거의 상승세가 느껴지지 않던 단전에 유의미할 만큼 내공이 쌓이자 연우혁은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이제 본인도 고수인 만큼 내공을 이렇게 무차별로 쌓기만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내공은 오히려 무공의 상승수법이나 절학을 펼치는 데에 방해가 됐다.
“무공은… 무공은?”
“이게 무공이오.”
짜내듯 질문을 던졌지만 강시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연우혁은 자신이 상대방의 함정에 걸려서 내공에 질식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천천히 시야가 흐려지더니,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어두워지고…
“헉!”
“괜찮나?”
연우혁이 소리를 내자 정망거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가장 젊은 고수인 만큼, 방금 강시가 지른 고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놈이 생각보다 강하고 까다롭네.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장기전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소매검객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정 고수 넷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한 번 겨뤄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 강시의 실력은 아직도 밑바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냉수사도 한풀 기세가 꺾였는지 동의를 표했다.
“그러는 게 좋겠소. 차륜전을 펼치면…”
연우혁은 비도를 꺼내들더니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탈혼비도가 강시의 미간에 꽂히자, 강시가 그대로 먼지로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