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다행히 한경에는 지부 대인 같은 관리만 있지 않았다. 유능하고 영리한 관리들도 여럿 있었다.
연우혁과 같은 관직을 가진 궁 판관이 바로 그런 관리 중 하나였다.
“지금 태상노군에게 빌 때가 아닙니다. 하찮은 새도 폭풍이 오면 뽕나무 뿌리로 둥지를 막는데(桑土綢繆), 한경의 고관이 되어서 감찰어사가 오기만을 기다려서야 되겠습니까!”
“오오!”
궁 판관이 서릿발 같은 위엄을 흩뿌리며 말하자 두려움에 질려 있던 한경의 관리들이 기운을 차렸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판관 어른?”
“한경에 쌓인 장계와 계서(啓書)를 뒤져서 실수를 먼저 찾아내야 하네. 세은의 양이 실수로 다르면 빌려오고, 군량의 양이 실수로 부족하면 채워넣게.”
‘그게 실수로 다를 수가 있는 부분인가?’
연우혁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한경의 관리들은 매우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친분 있는 자들이 여럿이라 오해 받기 쉬운 자들은 단단히 입단속을 해놓도록,”
“하지만 궁 판관. 공무라는 것은 원래 그 양이 막대하여 실수도 찾으면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지금 다 수습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사라진 은이나 군량, 혹은 기타 관물들을 돌려놓을 자신이 없었던 관리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궁 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경우에는 불을 질러라!”
“불을 지르라니?”
“이런 아둔한 자 같으니. 불을 지르면 장계든 계서든 불에 탈 것 아닌가. 화마 때문에 서책이 몇 권 타버린다면 아무리 감찰어사가 신통해도 그 내용을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궁 판관. 자네의 재주가 하늘에 닿았네그려!”
몇몇 뜻 있는 관리들 덕분에 한경의 관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 년 이상 쌓인 실수를 최대한 치우고 숨길 수 있게 행동에 나선 것이다.
금 통판은 우두커니 서있는 연우혁을 보고 조언했다.
“자네도 서둘러 대비하게.”
“뭘 말입니까?”
“실수한 일들 말일세. 우연히 은덩어리가 전낭에 들어가 있었다거나…”
“전 없습니다만.”
“하하하! 없을 리가 있나?”
젊은 판관이 농담하는 줄 알았던 금 통판은 웃다가 멈칫했다. 연우혁의 표정이 진지했던 것이다.
“…정말로 없나?”
“예.”
“……”
금 통판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한경의 관리가 되어서 책잡힐 곳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 * *
“허. 고묘에 그런 강시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경의 포두들 중 가장 유능하다고 소문 난 적 포두는 연우혁에게 직접 있었던 일을 듣자 감탄했다.
고관들이야 감찰사를 걱정하지만, 포두나 포쾌들은 감찰사를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감찰사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와도 그렇지 포두나 포쾌의 전낭까지 뒤지지는 않는 것이다.
무림인 출신인 적조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고묘와 그 안의 비밀, 그리고 현 무림의 정세였다.
“사독문 놈들이 포악질을 하더니 아주 제대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다른 마두들을 협박하고 있는 게 놀랍지만 말이야.”
“이제 와서 달랜다고 한들 마두들이 응하겠습니까? 기호지세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적조는 고소하다는 듯이 사독문을 비웃었다.
정파 내에서도 서로 갈등이 있는데 사파 내에서 그런 게 없을 리 없었다. 특히 사독문처럼 같은 흑도칠문도 서슴치 않고 살수를 뻗는 곳은 천지에 원수가 즐비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일이 있었는데.”
“특이한 일 말입니까?”
적 포두는 이 젊은 판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무림의 어지간한 비사(祕事) 정도로는 연우혁에게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을 테니…
“은림당에 대해 아나?”
“!”
살막 출신으로서 적조의 눈빛에 호승심이 번득였다. 무림에서 살수의 이름이 나오면 언제나 언급되는 두 세력인 만큼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 허풍 심한 놈들이 어째서??”
연우혁은 냉수사와 한 거래 내용은 제외하고, 사독문이 거금을 들여 은림당의 적안호리를 고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냉수사 고송을 노린다는 의뢰까지 더불어서 말이다.
“큭…!”
적조는 분통을 터뜨렸다.
만약 적안호리가 정말 휘하의 살수들을 이끌고 냉수사 같은 고수를 쓰러뜨린다면, 그 명성은 다시 한 번 강호를 진동시킬 터였다.
“은림당 놈들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뢰만 한두 개 받아서 수행한 뒤 그것을 부풀려서 악명을 떨치는 자들입니다. 더군다나 상대를 고를 때 문파의 세력도 주도면밀하게 따져, 관계에서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건드리지도 않지요. 그런 놈들이 무슨 살수란 말입니까!”
‘저건 극찬 아닌가?’
연우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냉수사한테 대가를 받았네.”
“무슨 대가 말입니까?”
“적안호리를 상대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비책을 원하더군. 대가가 괜찮길래 거래했지.”
처음에는 판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적조의 얼굴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가, 곧 충격 받은 표정이 되더니, 마지막에는 기대감으로 환해졌다.
“그, 그, 그러니까 지금… 적안호리 그 자의 체면을 완전히 먹칠할 기책을 떠올리셨단 겁니까?!”
“…그 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냉수사가 자기 목숨을 건져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 정도…”
“그게 기책이지! 적안호리, 이 놈! 드디어 임자를 만났구나!”
포두는 어찌나 기뻤는지 존대도 잊고 발을 굴러댔다.
그러다가 문득 의아함이 들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살막의 일을 몇 번 방해한 만큼 적안호리를 싫어하고 질시했지만, 적조는 적안호리의 실력마저 무시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적안호리는 무공은 물론이고 살수로서의 기량도 적조보다 한 수 위의 무인인 것이다.
그런 자를 어떻게 속이지?
“판관 어른…”
“쉿. 저기 보게.”
연우혁이 눈짓을 보내더니 앞을 가리켰다. 한낮의 시전(市廛)에는 벌써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노점에서 국수와 만두로 허기를 때우는 일꾼들부터 시작해서 땀을 식히기 위해 다점(茶店)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까지.
평소 한경의 풍경이기에 적 포두는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저 자. 이상하지 않나?”
“??”
연우혁이 가리키는 남자를 적 포두는 다시 한 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보부상 같아 보였는데, 허름한 차림에 들고 있는 짐 또한 부피가 작고 가벼워 보였다. 그리 썩 유복한 보부상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한경에는 저런 식으로 한 몫 잡아보겠다고 올라오는 놈들이 많았지만 그 중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적 포두는 이 자가 뭐가 이상한가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참고 끈기 있게 관찰했다. 연우혁이 허튼 소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은 것이다.
“!”
유심히 지켜보던 적 포두는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보부상의 가죽신이 유독 새 것처럼 보인 것이다. 게다가 그 질 또한 꽤 고급이었다.
가난한 보부상이 저런 가죽신을 신고 다니다니.
재산이 없는 보부상은 한 푼이라도 아껴서 밑천을 만들어야 했기에 싸구려 신을 여럿 갈아 신거나 맨발로 다녔지 저런 가죽신을 신고 다니진 않았다. 저건 확실히 이상했다.
“찾았습니다. 판관 어른. 저 자는 행색이 허름한 보부상처럼 보이지만 유독 신발은 비싼 걸 새로 신은 것처럼 보입니다! 가난한 상인이 저런 식으로 다닐 리 없습니다.”
포두는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외쳤다. 명판관 밑에서 오래 일한 보람이 있는지 자신도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군. 확실히 수상하군.”
연우혁은 포두를 칭찬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한 건 저 자가 허리춤에 요패(腰牌)를 차고 있다는 거였다.”
관졸이나 병사, 포쾌 등등이 자기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갖고 다니던 나무패는 보부상이 갖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
“하지만 신발도 좋은 지적인…”
“됐습니다…”
적조는 앞으로 돌아다니는 자를 보면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것부터 다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연우혁이 저 가짜 보부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오히려 보부상이 먼저 달려왔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한경의 명판관이신 연 대인 맞으십니까?”
“맞네.”
한경 안에서 연우혁을 알아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냥 걷기만 해도 은혜를 빚진 사람들이 인사를 해대니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연우혁은 괜히 부정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보부상은 더욱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주인이신 천운기 어른께서 대인을 남몰래 독대하고자 하십니다. 부디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마. 앞장서라.”
연우혁이 순순히 수긍하자 관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돌아서서 움직였다. 적조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천운기 어른이 누굽니까?”
“이번에 온 감찰사다. 근처에 도착한 모양이군.”
“…!”
* * *
감찰사가 머물고 있는 곳은 한경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느 친척 가문의 장원이었다. 겉으로 보면 평화로워보였지만 연우혁 같은 사람이 보면 ‘이 장원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있군’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호위로 붙은 고수 대여섯과 휘하 관병들. 일을 돕는 하급 서리(書吏)들.
감찰사도 바보가 아닌 만큼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 홀몸으로 오진 않았다. 눈 먼 화살이 목숨을 앗아간 다음에 조정이 원한을 갚아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나저나…’
연우혁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감찰어사가 연우혁을 이렇게 남몰래 따로 불러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감찰어사는 주변을 탈탈 털어대기 위해 온 만큼 그 권한의 영역도 매우 넓었다. 그 중 하나가 이제 지방의 고관들도 멋대로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만약 한경의 세수가 지나치게 적게 잡히고 누군가 횡령을 한 것 같아서 수상한데, 그걸 조사하려면 외부인 혼자서의 힘으로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경의 관리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아주 기쁘게 방해할 터.
이 때 이제 감찰어사는 비교적 가까운, 한경과 관련 없는 곳의 관리들을 불러서 한경을 털어댈 권한이 있었다.
즉 이 근처의 남주 같은 대도시의 형사를 털고 싶다면 연우혁 같은 한경의 판관을 동원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연우혁은 그럴 가능성은 좀 낮다고 생각하긴 했다.
‘이런 일은 보신과도 상관이 있으니.’
연우혁의 명성이 드높고 대단하긴 하지만 원래 이런 일은 정석대로 해야 뒤탈이 없었다.
훨씬 오래 판관으로 일한 궁 판관을 내버려두고 괜히 연우혁을 불러 일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나중에 조정에 돌아갔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몰래 부를 이유는 없는데? 부를 거면 당당히 불러도 되는 일 아닌가?’
연우혁은 혹시 한경의 지부가 너무 많은 횡령을 저질러서 이렇게 따로 불렀나 두려워졌다. 만약 연우혁에게 협조를 구한다면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천치 연기를 해야 한다.’
“모셔왔느냐?”
“예! 어르신.”
“이리 들어오십시오. 연 판관!”
감찰어사는 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의 문관이었다. 지금 가진 권한은 안찰사나 포정사, 도지휘사도 두려워할 만큼의 권한이었지만 의외로 그 품계는 그리 높지 않았기에 판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연우혁은 긴장을 풀지 않고 인사했다.
“천 대인의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실로 기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한경의 명판관에 비해 제 명성은 보름달 앞의 반딧불 아니겠습니까.”
천운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연우혁의 칭찬에 꽤나 기쁜지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상대의 반응에 연우혁은 살짝 긴장이 풀렸다.
‘안 좋은 건 아닌가보군.’
“실은 이렇게 부르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당당하게 백주 대낮에, 대인의 명성을 사방에 알리며 불러야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 정도는 아닌…?”
“하지만 지금. 대인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앞에 두고 대인을 당당히 불렀다가는 소문이 퍼져나가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꼴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
연우혁은 감찰어사의 말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졌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니?
“혹시 무림인들이나 마두를 붙잡으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혈교도들이나…”
“아닙니다! 하하. 제가 장수도 아닌데 그런 일을 맡을 수 있어 보이십니까?”
“그럼 절 두려워하는 자들이 누굽니까?”
“그야 도지휘사부터 시작해서 안찰사, 포정사… 다 두려워하고 있지요!”
“컥.”
연우혁은 혈교의 원한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커다란 충격에 기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