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충격을 받은 건 죽림서생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도지휘사 도공형도 충격을 받고 진땀을 흘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번 백화루의 일은 인근 관리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상인들이 바보가 아닌 만큼 이런 일을 널리 퍼뜨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아랫사람들도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을 터.
그런데도 저 젊은 판관한테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가 흘러갔다.
강호의 협객들이 이해득실을 떠나 의협심으로 움직인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이렇게 보니 보통 두려운 게 아니었다. 도공형의 부하 중에서도 남몰래 저 판관의 힘이 되기 위해 나서는 자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 그… 그렇다면 연 판관. 자네는 이 일의 내막을 알고 있나?”
“그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연우혁은 방금 호통도 쳤겠다, 더 호탕하게 맞받아쳤다.
원래 일의 내막을 밝힐 때는 숨은 이치 자체보다 이치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설득이 더 어려운 법.
한동안 판관의 권위를 휘둘러 편하게 설득해왔었지만, 원래 연우혁은 포쾌였을 때도 윗사람을 홀려서 설득한 전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기선을 제압하는 거지.’
상대방을 완전히 홀려서 연우혁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더라도 믿을 정도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망망대해처럼 드넓은 군영에서 감찰어사 한 명과 어떻게 순안을 하겠는가. 안 그래도 수많은 견제가 들어올 텐데.
최소한 두려워서라도 가만히 있게 만들어야 뒷일이 편할 터.
“정, 정말 이 일의 내막을 안단 말이냐?”
도지휘사는 지금 연우혁이 또 한 번 재주를 보이면 대계(大計)가 어그러지는 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번루에 숨겨놓은 친우한테 전해들은 젊은 판관과 달리, 도지휘사는 안찰사가 들은 온갖 시시콜콜한 보고를 같이 공유해 확인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젊은 판관은 벌써 일의 내막과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고, 만약 정말로 알아낸 거라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다.
“안, 안 됩…”
운산담이 넘어진 채 도지휘사를 말리려고 했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었지만 지금 저 판관이 말하는 걸 내버려두면 안 됐다. 어떤 트집과 핑계를 잡아서라도 내막을 밝히는 걸 막아야 했다.
“이 일은 무림인들이 엮인 일입니다!”
“무림인들이라?”
“예.”
그러나 이미 판관은 낭랑한 목소리로 상황의 설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림인… 확실히 무림인이라면 이런 기괴한 일들도 설명이 되긴 한다. 하지만 다 되지는 않아!”
지휘사는 그렇게 내뱉으며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본인도 호신을 위해 무공을 익혔고, 또 휘하의 호위 중에는 더 대단한 고수들도 있는 만큼 도공형은 무공을 익힌 무인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몇 장이 넘는 길이를 단숨에 뛰어넘고 다섯 층은 되는 누각의 벽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게 무인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리 기괴하고 독특한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법이었다.
“별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하인이 다시 열기 전까지 그 문은 열린 적이 없었고! 아무리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귀신이 되어서 문을 통과하는 재주가 있지는 않을 것 아니냐. 설마 이 도지휘사가 무공에 대해 잘 모를 거라 생각해서 그런 허황된 무공이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겠지?”
“제가 감히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 연 모는 평소부터 대인의 명성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연우혁은 허초를 날리듯 아부를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도 대인. 밖으로 나갈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바로 창(窓)입니다.”
“…창 또한 닫혀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별실에는 문뿐만 아니라 군정호를 볼 수 있도록 창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창은 내내 닫혀 있었다. 창호지로 덮인 창을 귀신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쪽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대인. 조금만 더 들어주십시오. 이 기괴한 일의 내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별실을 빌린 무인이 왜 계속 창을 닫고 있었는가?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답은 연우혁이 닫고 있으라고 조언했기 때문이었지만, 모르는 척 연우혁은 질문을 던졌다.
도지휘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옆에 있던 감찰어사 천운기가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습격! 무림인이니 습격을 두려워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경치 좋은 별실을 빌려놓고 창을 닫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과, 과연. 습격을 두려워한 거라면… 잠깐. 하지만 삼층 별실에 있는데도 창을 닫을 만큼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가? 아무리 무공의 고수여도 그만한 거리는…”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대인.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특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림에 그만한 거리를 두고 상대를 격살할 수 있는 고수는 몇 되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살수, 은림당의 적안호리! 알고 있는 자는 많지 않지만 그는 탄궁(彈弓)의 고수입니다. 저는 사람을 풀어 은림당의 적안호리가 의뢰를 받았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이더군요.”
“…!”
자신이 맡은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문을 듣고 난 그 짧은 사이에 일의 내막을 짐작하고 쐐기를 박을 증언까지 확보하다니.
판단은 물론이고 그 행동까지 비범했다.
‘놀… 놀랍다…!’
물론 진실은 조금 달랐다.
적안호리의 의뢰는 냉수사에게, 적안호리가 탄궁을 쓰는 것은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 무인은 적안호리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두려워하던 거였군요!”
“맞습니다. 천 대인.”
“그런데 그게 이 일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겁니까? 적안호리한테 당한 거라면 시체가… 시체가 남았을 텐데? 혹시 주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게 복잡한 일을 벌일 필요가 없지요. 게다가 대인께서는 한 가지를 놓치고 계십니다.”
집중해서 듣고 있던 도지휘사가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그게 뭔가?”
“창호지로 덮인 창 안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주루 밖에서 말입니다.”
“그, 그렇군. 적안호리, 그 살수가 죽였다 하더라도 창호지 안을 볼 수는 없을 텐데.”
“그렇습니다. 적안호리가 절초를 펼쳤다면 확신이 있기에 펼쳤을 것. 바로 창호지에 그림자가 비친 겁니다.”
“!”
도지휘사는 물론이고 죽림서생까지 눈을 부릅떴다.
“창가에 서있다는 걸 알았다면 즉시 쏠 뿐. 적안호리는 그 때 절초를 날렸겠지요.”
“그, 그러면 그 무인은 그 때 죽은 건가?”
연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원래 냉수사가 아닌, 적안호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무명의 무인이 보여준 속임수였다.
원래 적안호리는 창호지 너머 그림자를 보고 상대의 숨통을 정확히 노렸다. 상대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 기습인 만큼 충분히 목숨을 끊을 만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기막힌 우연이 무인의 목숨을 구했으니, 실은 그 그림자는 무인의 그림자가 아니라 웃옷의 그림자였다.
적안호리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찜찜해진 무인은 혹시 상대가 천안통이라도 있을까봐 창호지 위에 웃옷을 걸어놨던 것이다.
그 덕분에 탄궁의 일격은 무인 대신 웃옷을 꿰뚫었고…
…무인은 구멍이 뚫리는 걸 보고 기겁해서 엎드렸다가 뒤늦게 이게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적안호리가 자신의 솜씨에 의문을 가질 리 없을 테니, 잘 빠져나가기만 하면 적안호리 이놈도 자신이 죽은 줄 알 것 아닌가?
‘하지만 시체가 없다는 소문이 놈의 귀에 들어간다면 의심할 수도 있을 텐데!’
고민하던 무인은 그 짧은 사이 기발한 꾀를 짜냈다.
안에 피와 물을 섞은 걸 질펀하게 뿌려놓고 빠져나가면 사람이 죽었다고 소란이 일어날 테니, 적안호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
설령 시체가 없다 하더라도 이 정도 소란이면 주루 놈들이 치웠으리라 의심하지 안 죽었다고 의심하겠는가!
실제로도 적안호리는 이걸 이상하다고는 생각해도 설마 상대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연우혁이 냉수사한테 목숨을 구할 속임수로 자신 있게 이 꾀를 권한 것이다.
-이, 이게 정말 통한단 말이냐?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못 믿는다는 게 아니고… 끄응. 알겠다. 한 번 해서 손해볼 건 없겠지.
“…이렇게, 그 무인은 창호지와 웃옷에 구멍이 뚫리자마자 꾀를 짜낸 겁니다.”
연우혁은 태연하게 설명하며 냉수사를 팔아넘겼다.
적안호리에게서 목숨을 구해줄 기책을 준다고 했었지 도지휘사한테까지 비밀을 지켜준다고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무인 놈의 기책이 대단하군…!”
“맞, 맞습니다. 그 다급한 상황에.”
“강호에는 기인이사들이 많습니다. 이런 기괴한 일들을 볼 때마다 실로 그런 생각이 들지요.”
자신이 방법을 제안해놓고 연우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동의했다.
“창호지를 확인해보시면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을 겁니다. 또, 근처 군정호의 뱃사람들을 불러서 물어보시면 그날 작은 조각배를 혼자 빌려 호수 위를 계속 맴돌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잠, 잠깐!”
도공형은 연우혁을 불러 세웠다.
이 기묘한 사건에서 이것 외의 다른 내막은 전혀 생각나지도 않은 만큼 거의 넘어왔지만, 아직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대인?”
“그 무인은 별실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창으로 탄궁의 암기는 들어와도 무인이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것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참으로 쉽다?”
“예. 생각해보면 증언 중에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처음으로 발견한 하인이었다.
한 식경 정도 기다렸다가 지루해진 하인이 조심스럽게 기침을 하고 문을 열었다가 피투성이인 방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백화루 같은 곳의 하인이 기다리다가 지루해졌다고 먼저 문을 연다니. 다른 주루의 하인도 이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호되게 매질당할 겁니다.”
“…그렇군, 그게 맞다!”
도지휘사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주루도 하인이 저렇게 멋대로 문을 열진 않는 것이다.
“그 하인 놈은 대체 어째서?”
“간단합니다. 무인이 위장한 겁니다.”
“!!!”
먼저 하인을 불러 술에 취한 척 옷이 탐난다고, 서로 갈아입자고 제안한 뒤 밖으로 몰래 나가 새 옷을 사오라고 은자를 두둑하게 쥐어준다.
술에 취하면 더 이상한 짓을 하는 손님들도 많은 만큼 하인은 의심하지 않았다. 손님이 있는 동안에는 문 앞을 지켜야했지만 원래 은자를 두둑하게 받으면 규칙도 잊혀지기 마련. 하인은 의심하지 않고 요령껏 몰래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사이 냉수사는 역용술을 펼쳐 하인인 척 비명을 질러 사람을 불러 모으고,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조용히 빠져나가면 끝이었다.
뒤늦게 돌아온 하인은 자신이 일을 빼먹고 나간 사이에 큰일이 벌어진 게 두려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
“부디 하인은 용서해주십시오. 대인. 주루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워낙 그 권세가 드높으니, 백화루의 규칙을 어기라 강권하더라도 그걸 거절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 아니. 하인을 처벌할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았다…”
도지휘사는 무인이 그 짧은 사이에 몰래 빠져나간 꾀에 압도되어서 여전히 되새기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꾀였다. 웃옷에 탄궁의 구멍이 뚫린 뒤 그 짧은 사이에 이런 꾀를 꾸미고 도망치다니.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이걸 보지도 않고 암암리에 전해만 들었는데도 일의 전후를 파악한 저 젊은 판관이었다.
판관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몄어도 이렇게 자세히 알기는 힘들리라!
지휘사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두려움과 경외심이 같이 치밀어 올랐다.
“연 판관. 자네는 진정 한경의 무불통지다. 자네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감히 의심한 날 용서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