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아니…”
천운기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젊은 판관을 쳐다보았다.
물론 이 젊은 판관의 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천운기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이치로 설명이 되는 재주였다.
당장 도지휘사가 갖고 온 난제도 백화루의 협객들이 소문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해결이 불가능했을 터.
하지만 이건 정말 어떻게 알아낸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대체 천문과 지리로 도지휘동지 장명중의 치부책을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한림원의 학사들이 듣는다면 ‘대체 저게 무슨 술법이냐’하며 배우러 와도 이상하지 않을 재주였다.
“천문과 지리에 뭐가 쓰여 있었길래…?”
“대인,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서두르셔야 합니다. 사갈 같은 장명중을 또 놓치실 겁니까!”
“아, 아닙니다. 지금 갑니다.”
연우혁이 호통을 치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감찰어사는 찔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명정대한 판관은 나랏일에 집중해야 할 사람이 사소한 호기심으로 일을 망치려 하는 걸 두고 보지 않는 것이다!
* * *
염정나찰(艶情羅刹) 장소경과 환령마군(幻靈魔君) 고광독은 배교의 고수로서, 온갖 기괴한 술법을 부릴 줄 아는 술사들이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한단 말이냐!”
고광독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앞에 앉아있던 염정나찰은 그 짜증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는지 퉁명스럽고 날카로운 태도로 대꾸했다.
“늙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냐? 조정에서 나온 관리 놈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감찰어사 천운기는 명석한 판단력과 날카로운 직감을 갖고 있었지만, 도지휘동지에 대해서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도지휘동지 장명중과 결탁한 이들은 혈교가 아니라 배교였던 것이다.
배교는 벼슬아치들을 홀리는 걸 즐겼는데, 처음에는 선량한 양민인 척 거금을 바치다가 어느 정도 친밀해지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술법을 하나씩 보여주며 벼슬아치의 혼을 빼놓았다.
단순무식한 무인보다 온갖 사술을 부리는 배교의 교인들은 꿍꿍이 많은 관리에게 입 안의 혀 같은 존재. 거금을 받던 장명중도 어느새 역으로 거금을 바치며 배교에게 일을 맡기게 되었다.
이번에 장명중이 의뢰한 일은 조정에서 나온 관리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죽림 지하 암옥을 지키는 것.
장명중이 받고 바친 뇌물들이 빼곡히 적힌 장부들부터 시작해 온갖 치명적인 서신들이 즐비한 만큼 배교 고수까지 고용해서 지킬 만했다.
배교 입장에서도 만약의 경우 장명중과 배교가 연관된 증좌들을 없애버리고 빠져나가야 하는 만큼 썩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워낙 심심하고 지루한 일이어서 그렇지.
“내 말은, 이 죽림 아래에 있는 암옥을 아는 놈이 있겠느냔 말이다. 장가 놈도 참으로 이상한 놈이다! 아무리 쥐새끼처럼 겁이 많아도 그렇지, 여길 찾아올 놈이 어딨겠느냐!”
고광독은 겁 많은 고관 놈을 욕하며 한탄했다.
차라리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군말없이 대기하며 적들을 경계했을 테지만, 절대 올 일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은 사람의 기분을 참으로 한심하게 만들었다.
“교의 사정이 아무리 궁하다 하더라도 이런 일까지 들어주며 금붙이를 긁어내야 하다니.”
“저런! 지금 환령마군께서는 교의 방침을 비판하신 겁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다.”
염정나찰이 떠보듯 묻자 환령마군은 허겁지겁 말을 바꾸었다.
저 염정나찰은 겉으로는 명문가의 규수 같은 외관을 갖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는 마두였다. 괜한 말을 했다가 배교 내에서 공격당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배교의 위세가 예전보다 크게 줄었고, 무림의 음지에 머무르며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 수작이나 부리는 처지였지만 환령마군 하나 죽일 힘은 충분했다.
“기다려라. 조정에서 온 관리가 뭘 할 수 있겠느냐! 헛수고만 하다가 돌아갈 것이야.”
염정나찰은 환령마군보다 참을성이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도지휘동지에게 거금을 받는데다가, 또 이 일 자체가 상대에게는 약점 아닌가. 언젠가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이만한 이득을 얻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그걸 생각하면 염정나찰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끼이익-
“……”
“……”
두 배교의 고수는 지하 암옥 입구에 걸린 범종이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얼어붙었다. 소혼범종(消魂梵鐘)이라고 불리는 이 배교의 보물은 한 번 걸어놓으면 침입자가 근처에 나타났을 때 스스로 우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착각이겠지. 약초꾼일 거다. 사냥꾼이나…”
“쉿! 조용히 해라. 이 근처에는 약초꾼이나 사냥꾼이 없다. 주변 촌락을 확인했단 말이다.”
염정나찰은 환령마군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재빨리 술법을 펼쳤다. 배교의 이혼안(離魂眼)과 함께 지상 위의 새가 보는 풍경이 염정나찰에게도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그 순간 새에게 깃든 술법이 그대로 끊어졌다. 염정나찰은 타격을 입고 기혈이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침… 침입자!”
“!!!”
환령마군은 같은 교의 마두가 하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떤 놈이냐?”
“모, 모르겠… 술법이 끊어졌어!”
“술법이 끊어졌다고?! 혈교 놈이냐!”
대뜸 혈교를 의심하는 게 정파 무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지만, 배교와 혈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요사스러운 사이비라 하더라도 자기들끼리는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배교의 극렬한 광신도들이 빠져나가 혈교에 합류한데다가, 혈교는 끊임없이 배교의 남은 세력을 삼키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배교 안에 남은 온갖 술법들은 혈교 측에서도 군침이 도는 재산이었다.
게다가 배교의 술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본인들도 술법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혈교 무인을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모르겠어. 보기 전에 끊겼으니까,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군. 서책! 만일을 대비해서 교와 관련된 서책부터 찾아내!”
장명중은 정말 만약의 경우, 이 암옥에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그냥 안에 있는 모든 서책을 불태워주길 원했다.
하지만 배교 고수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기들도 빠져나가기 힘든데다가 상대방이 독기가 올라서 그들을 쫓아올 것 아닌가.
교와 관련된 서책만 치워버리고 나머지는 남겨놓는 게 현명한 짓이었다.
“두 시진은 필요할 텐데!”
“충분하고도 남아! 설령 혈교에서 보낸 놈이라 하더라도 이 암옥을 찾아 들어오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까.”
염정나찰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암옥은 단순히 지하에 숨어있는 게 아니라, 죽림 전체에 설치된 배교의 진법, 환술, 기관진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혹시나 장명중이 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는 소문을 듣고 의심해서 찾아와도 지하 암옥을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숨겨진 진법을 하나씩 풀고 있는 사이 그들은 이미 빠져나가고도 남을 것이다.
“알겠다. 일이 지루하다 싶었는데 괜한 말을 했군. 어쩌다 여기로 새서…”
덜컥, 찰칵, 쿠르릉!
“???”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상으로 연결된 암옥의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둘은 기겁해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장명중 본인인가?’
‘장명중 이 놈이 붙잡혀서 우릴 밀고했나? 우릴 잡으러 이렇게 온 건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열린 철문에서 들어온 것은 젊은 판관과 중년의 감찰어사였다. 서로 눈이 마주친 넷은 순간 정지했다.
‘아니. 배교 무인들이잖아?’
영안을 갖고 있는 연우혁은 상대방의 정체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당황했다.
원래 여기 지하 암옥에 서책들은 있어도 배교 무인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군. 내가 너무 빠르게 돌파했나?’
원래라면 여기까지 돌파하는 사이 상대방에게 도망칠 시간이 있었는데, 연우혁이 너무 빠르게 와버린 탓에 도망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어, 어떻게! 장가 놈이 밀고했나!”
“?”
연우혁은 배교 무인의 외침에 무슨 소린가 싶었다가 금세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도지휘동지가 살기 위해 네놈들을 팔았다.”
“요 기름에 튀겨 죽일 새끼! 썩어빠진 관리 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속지 마라, 멍청한 놈 같으니!”
염정나찰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환령마군에게 일갈했다. 환령마군은 당황해서 시선을 던졌다.
“저 옆의 놈을 봐라. 전혀 모르는 기색이잖느냐!”
“!”
연우혁이야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지만 감찰어사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남아 있었다. 도지휘동지가 살기 위해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뒤늦게 감찰어사는 정신을 차리고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연 대인! 저 때문에 계략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괜찮습니다. 마두들을 조금 놀렸을 뿐입니다.”
연우혁의 말에 두 마두의 눈빛에 분노가 감돌았다.
“이 서생 놈아. 목숨이 몇 개라 여기 내려온 건진 모르겠지만 관복만 믿고 내려온 거면 이 어르신께서 후회하게 해주마.”
“네놈은 이 관복만 보이고 관직이 어떤 관직인지는 모르느냐?”
이미 상대의 무공 수준을 확인한 연우혁은 전혀 거리낌 없이 되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환령마군은 살짝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판… 판관?”
“떠오르는 게 없느냐?”
“요 도둑놈 돼지 새끼가 또 혓바닥을 놀려 어르신을 농락해!”
상대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환령마군은 분노를 폭발시키며 한 쌍의 육장을 펼치려고 했다. 그 순간 연우혁의 손끝에서 빛줄기가 뻗어져 나왔다.
“!”
어떠한 허초나 변초도 없는 단순한 암기술이었지만 환령마군은 짧은 사이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환령마군은 기겁하며 준비한 초식을 틀어 앞으로 뻗었다.
푹!
“크악!”
환령마군은 왼손과 오른손의 장심(掌心)을 동시에 꿰뚫는 비도의 일격에 커다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기뻐하는 환령마군 옆에서 염정나찰이 비명을 질렀다.
“무… 무영암룡!”
“!”
판관 옷을 입고 무공을 익힌 괴인은 무림에 한 명밖에 없었다. 뒤늦게 상대가 누군지 떠올린 환령마군은 경악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놈의 경지가 이 정도였다고?’
보통 무림에서 괴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그렇게 무공이 높지 않았다. 절정의 벽을 바라보고 있는 환령마군을 이렇게 암기 하나로 제압하다니. 그렇다면 상대의 경지는…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연 대협을 이렇게 뵙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염정나찰은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외쳤다. 뒷일과 별개로 살기등등한 절정 고수와 생사결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날 아나?”
“예! 탐관오리들의 목을 치고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목은 안 쳤는데.’
연우혁은 상대의 아부에서 묻어져 나오는 헛소문이 약간 신경 쓰였다. 다른 관리들한테 ‘정말 탐관오리 목을 잘랐나?’같은 시선을 받는다면 여러모로 처신에 불편한 것이다.
“그렇군. 염정나찰 장소경, 환령마군 고광독. 배교의 두 무인이 여기서는 뭘 하고 있는 건가?”
“…!”
“!!!!”
두 마두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상대방이 둘의 별호와 배교 소속이라는 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알아맞힌 것이다.
물론 둘이 강호에서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지만, 이 별호를 가진 뒤 무림에서 잊혀진 세월이 얼마던가. 이건 상대방이 그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마냥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희는 그저 몇 푼 안 되는 은자를 받고 가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연우혁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내딛었다. 두 마두는 긴장감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두 걸음 물러섰다.
-어떻게 할 거냐?
-지금 고민 중이니까 조용히 해라!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있는 거냐?
-그대로 덤비면 힘들어도 술법을 쓸 시간만 번다면…
-좋아! 네가 목숨을 걸면 내가 쓰지!
-네가 목숨을 걸면 내가 쓰겠다!
“서로 술법 누가 먼저 쓸지 이야기하고 있나?”
“…!!!”
환령마군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 이립도 안 된 것 같은 젊은 놈에게 이렇게 위압감을 느낄 거라고는 상상도 한 적 없었다.
“내가 맞춰보지. 자네는 귀혼안을 쓰려고 했을 거야. 자네는 환령섭혼술을 쓰려고 했을 거고. 어.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뀌었군?”
쿵!
환령마군이 옆으로 쓰러졌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혼절하기 직전이었던 염정나찰은 어이가 없어서 환령마군을 쳐다보았다.
기절한 척이라니, 무슨 저런 하찮은 수법을 펼친단 말인가.
하지만 통한다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염정나찰은 연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정말로 혼절했군?”
“……”
그제야 같은 교의 마두가 진짜 혼절했다는 걸 깨달은 염정나찰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