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하지만 환령마군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겉으로 보면 마두라는 자가 대화만 나누다가 쓰러졌다고 착각할 수 있었으나, 속으로는 나름 치열한 술법의 공방이 있었던 것이다.
환령섭혼술을 쓰려고 내공을 끌어올려 영력을 만들었는데 젊은 판관한테 허를 찔린 탓에 진기의 흐름이 꼬였다. 안 그래도 지금 상황이 워낙 충격적이라 심적인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 내상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결코 대화만으로 쓰러진 건 아닌…
“연, 연 대인. 속임수 아닙니까?”
감찰어사 천운기는 쓰러진 마두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외쳤다.
무림인들간의 대결에 문외한인 자신이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연우혁처럼 공명정대한 사람이 마두의 속임수에 넘어갈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혼절한 거 맞습니다. 천 대인.”
“하, 하지만… 무림의 마두들은 손짓으로 귀신을 부리고 숨결로 사람을 죽인다는데, 대화 좀 나눴다고 혼절하는 게 말이 됩니까?”
“……”
염정나찰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수치스러워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무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벼슬아치께서 말은 청산유수시군요!”
“천 대인. 가끔 상황에 따라 말로도 사람을 혼절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연우혁은 방금 있었던 진기의 꼬임과 내상에 대해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간단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천운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수가! 정말 세 치 혀로 악인을 거꾸러뜨릴 수가 있을 줄이야!’
붓을 잡고 학문을 배우는 서생들이야 누구나 처음에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처럼 글줄 하나로 악인을 토혈하게 만드는 재주를 꿈꿨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그게 허황된 이야기라는 걸 느끼게 되는 법이었다.
일필휘지의 재주로 마두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세상의 일들이 이리 혼란스러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천운기도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천운기는 오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식견이 참으로 좁았구나!’
당당한 호령만으로 마두를 쓰러뜨릴 수 있다니. 조정의 타락한 선비들에게 이 광경을 진심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좋지 않다.’
염정나찰은 시선을 힐끔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환령마군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절한 건 그녀로서도 꽤나 뼈아픈 일이었다. 한심한 자였지만 어쨌든 같은 교의 무인이었고, 또 같이 맞서서 시간이라도 끌어줄 수 있는 마두였으니까.
‘대체 어떻게 이걸 다… 아무리 장가 놈이 불었어도 이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장명중 그 놈이 잡혀서 나불댔다 쳐도, 그 짧은 사이 죽림의 진법을 모조리 돌파하고 여기 들어와 제압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평소부터 배교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정신차리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염정나찰은 다시 한 번 시선을 힐끔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지금 궁금한 건 한 푼 가치도 없는 진실이 아닌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이었다. 일이 이 정도로 꼬인 이상 금은보화 욕심은 버리고 자기 한 목숨만 건져서 챙겨나가야 했다.
상대는 본인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지만 다행히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옆에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약한 부분을 노리는 것이 마두의 싸움. 정면에서 맞붙는 싸움에 익숙한 정파의 고수들은 이런 진흙탕 싸움에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귀혼안!’
염정나찰의 눈동자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요사스러운 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연우혁을 노리는 게 아니라 천운기를 노린 공격이었다.
눈만 마주치면 천운기의 심령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 바로 명령을 내려 돌발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그 잠깐의 틈으로 염정나찰은 도주하리라.
푹!
그러나 연우혁은 가볍게 손을 털어 암기를 날렸다. 염정나찰이 아니라 천운기를 향해서였다. 혈도를 짚인 천운기는 심령을 제압당하기 전 그대로 혼절했다.
“……”
나름 각오하고 펼친 비장의 술법이 허무하게 끝나자 염정나찰은 당황해서 눈을 부릅떴다. 설마 같은 관리를 공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이러셔도 되는 건가요! 저 관리가 깨어나면 공격한 책임을 대협께 물을 겁니다!”
귀혼안을 펼쳐서 제압하려고 할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걸리기 전에 혼절시키는 것이긴 했다. 염정나찰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들이란 원래 속이 좁고 고리타분한 자들이라 자신을 호위하는 무인이 멋대로 자신을 건드리는 걸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염정나찰이 자신 있게 천운기를 노린 거였는데…
“천 대인은 나와 친분이 깊어서 이해해줄 거다. 다 했나?”
연우혁은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단순해 보이는 한 걸음이었지만 염정나찰은 커다란 압박감을 느끼며 물러났다.
‘이런 빌어먹을!’
눈치채보니 어느새 원래 있던 곳에서 다섯 장 가까이 물러난 상태였다. 염정나찰은 그제야 저 젊은 판관 놈의 속셈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든지 출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옥 안의 서책들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 각종 수법을 막기만 하며 천천히 압박한 것이다.
차라리 서책을 끼고 목숨을 협상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놀아나다니.
‘미친 판관 놈!’
생각해보니 같은 관리를 가차 없이 공격하는 것부터 평범한 관리 놈은 아니었다. 염정나찰은 자책을 그만두고 각오를 다졌다. 팔 하나쯤은 주더라도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나와라, 악귀들아!”
염정나찰은 발을 구르며 배교의 술법으로 악귀들을 불러왔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통로를 타고 악귀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연우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조금 더 뒤로 밀고 싶었는데 눈치챘군.’
상대가 어떤 발악을 해도 서책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조금 더 뒤로 밀어버린 다음 해치우고 싶었는데 상대도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서책 몇 권 훼손시킨다는 협박에 흔들릴 만큼 연우혁은 어리석지 않았다. 어차피 악귀라고 해봤자 강시와 비슷한 놈들. 술사만 죽이면 그만이었다.
탈혼비도로 단숨에 꿰뚫는다!
악귀 몇 마리가 뒤로 날아가 서책을 찢던 말든 염정나찰의 숨통을 끊을 각오로 비도를 꺼내자, 허리춤의 다른 무기가 귀곡성을 토해내며 멋대로 움직였다.
바로 귀령비(鬼靈匕)였다.
“!”
설마 배교의 보물이라 연우혁을 배신하고 배교 마두를 돕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귀령비는 허공에 떠올라 귀곡성을 발하더니 빙글 돌아 악귀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통로 위쪽으로 정신없이 날아가던 악귀들은 마치 천라지망에 갇힌 참새마냥 귀령비에 갇혀버렸다. 제압을 끝낸 귀령비는 연우혁의 손으로 돌아와 짧게 귀곡성을 토해냈다. 마치 스스로의 예리함을 자랑하는 듯했다.
“…잘했다!”
“귀, 귀령비!”
졸지에 애써 모은 악귀들을 전부 날려버린 염정나찰은 충격 가득한 눈빛으로 외쳤다.
지금 염정나찰이 불러낸 악귀는 평범한 악귀들이 아닌 배교의 보물 귀혼선(鬼魂扇)으로 모으고 키운 악귀들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절정의 고수라 하더라도 몇 마리 정도는 빠져나가 뒤를 어지럽혀야 했다.
그런데 그런 악귀들이 마치 처음부터 저 비수를 주인으로 모셨던 것마냥 갇혀버리다니. 그런 비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귀령비가 당신 손에!”
연우혁은 대답 대신 비도를 가볍게 쥐었다. 그 동작에서 자신의 죽음을 엿본 염정나찰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상대를 끝장내려던 연우혁은 멈칫했다. 솔직히 자신이 외치면서도 멈출 줄은 몰랐기에 염정나찰은 살짝 당황했다.
“믿, 믿어주시는 겁니까?”
“그럼 거짓말이었나?”
“아, 아니… 아닙니다.”
연우혁이야 영안이 있어서 상대가 시간을 끌려고 던진 게 아니라 진심으로 외쳤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염정나찰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상대가 멈추자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구나!’
“교주의 진전을 이으신 것이… 맞군요!”
귀령비는 단순히 손에 넣는다고 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배교 교주의 진전을 잇지 않았다면 저렇게 굴복시키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즉 저 젊은 판관은 어디선가 배교 교주의 진전을 이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꽤 많은 것들이 설명됐다. 먼저 저 젊은 판관의 빠른 성장도 납득 가능해졌다.
그리고 왜 무림인이 공명정대한 판관인 척 앉아있는지도 설명이 됐다. 관의 힘을 빌려 정파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또 혈교를 먼저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실로 두려운 심계다!’
배교도 무림에서 심계의 깊음만 놓고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파였다. 마교와 혈교, 두 거대세력과 모두 충돌을 빚고 교주의 죽음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암암리에라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무림의 정, 사, 마 모두를 적으로 두고서 버티고 있는 셈 아닌가. 은밀하고 끈질긴 심계가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젊은 판관은 그런 배교의 심계를 부끄럽게 만드는 계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배교 교주의 진전을 잇자마자 정, 사, 마를 속이기 위해 관으로 들어가 저렇게 공명정대한 관리를 위장하다니…
“너희 교주의 진전을 왜 나한테서 찾느냐?”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현재 저희 교는 교주께서 사라진 뒤 각자도생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이 모든 게 혈교 놈들 때문이지요!”
염정나찰은 배교의 역사와 몰락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마교와, 그 다음에는 혈교와.
배교가 가진 술법 때문에라도 마도의 무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해왔다.
그 과정 사이에서 교주는 죽고 진전은 실종되었으며 장로들은 각자 흩어져 살아남기 위해 점조직 형태로 교를 변화시켰다. 나름 배교 내의 고수인 염정나찰과 환령마군도 알고 있는 장로가 고작 두셋일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배교의 고수들은 부자를 붙잡고 홀리거나 관리를 붙잡고 홀려서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처참하군.’
연우혁은 배교의 마두한테서 직접 설명을 듣자 솔직히 놀랐다. 저 정도면 거의 교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조직이 무너진 상태였다.
장로들도 서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각자 흩어져서 살아남기에만 급급한 꼴이면 거의…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대협께서 혈교 놈들을 토벌한 것도 결국 그 진전 때문 아니겠어요?”
“음!”
물론 배교 교주의 진전 때문이 아니라 혈교 놈들이 그냥 먼저 시비를 건 것에 가까웠지만, 연우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알려주는 정보가 꽤 흥미로웠던 것이다.
“대협께서도 진전을 잇고서 이렇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슴에 큰 뜻을 품으셨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혈교 놈들은 대협 혼자서 토벌할 수 없어요! 교주의 진전을 이으신 이상, 교의 무인들 또한 이끄는 게 어렵지 않을 테지요! 무인들을 이끄셔야 합니다!”
염정나찰은 열정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에는 당장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외친 말이었지만, 말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이만한 사람도 없겠다 싶었다.
천하를 속일 만큼 흉심이 깊으면서도 그만한 무공 실력이 있으니, 이 자라면 정말 혈교의 무리를 박살내고 흩어진 배교의 무인들을 한 데 끌어 모아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강하면서도 교활하고 사악한 자! 교주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무엇을 고민하고 계신지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아직 저희를 믿지 못하시는 거겠지요! 대협 같은 분이 저희를 쉽게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해요.”
연우혁이 고민하는 것 같자 염정나찰은 진지하게 간언했다. 저런 심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이득이 된다 하더라도 손쉽게 손을 잡지 않았다. 부하가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염정나찰은 그런 의심을 해소시킬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귀령비를 갖고 계신 만큼 혼백을 제압해 금제를 거세요! 교의 술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목숨을 내던지는 것처럼 위험한 짓이었으나, 어차피 저런 고수를 상대로 납득시키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염정나찰은 그럴 바에는 새로운 고수 밑에서 싸우는 걸 택하고 싶었다.
매번 혈교 놈들을 피해 도망치고 정파 놈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삶이란 말인가!
“아니. 고민하고 있었던 건 다른 거였다.”
“그게 무엇인가요, 대협?”
“너희들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고민을…”
“……”
생전 처음 듣는 모욕에 염정나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