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그런 악한을 겁먹고 죽게 하겠습니까?”
“그래. 나도 추포됐을 때 그렇게 말했었네. 오해라고 말이지.”
“……”
뭐라고 말하던 간에 허 중관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연우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젊은 시절에 다른 관리들을 습격한 사람답게 말도 안 되는 의심이 많았다.
“그래서, 전할 말이란 건 무엇입니까?”
“일을 하나 수행해야 하는데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환관은 찻잔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연우혁은 살짝 곤란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제 소문을 들으셨으면 아시겠지만, 최근에 감찰어사의 일을 돕느라 한경의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멀리 떠나야 한다면 조금 눈치가 보일 것 같습니다만…”
물론 한경의 고관들 중 어느 누구도 연우혁이 자리를 비운 일을 탓하지 않았다. 국법에 따라 일을 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경의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일한 것을 탓할 만큼 썩어빠진 탐관오리는 한경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송덕비를 여럿 받고 총애를 받는다 해서 돈 안 되는 일까지 다 궁 판관한테 맡기고 자리를 비우면 언제 그 원한이 돌아올지 몰랐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궁 판관한테는 일을 오래 맡길 수가 없다.’
처음부터 궁 판관이 맡아서 처리했었다면 모를까 연우혁을 경험한 한경 백성들은 눈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연우혁이 사라지고 궁 판관이 혼자서 일을 처리하게 되면 보름 안에 조정으로 상소문이 올라갈 수도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쉬운 일이니까.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오래 걸릴… 오래 걸릴 수 있긴 하지만, 그건 자네 능력이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믿으니 말일세. 허허.”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연우혁은 여유를 되찾았다.
허 중관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제법 해결하기 쉬운 일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누가 죽었습니까? 세은(稅銀)이 사라지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영곤궁에서 비녀가 사라졌는데 환관의 처소에서 발견되기라도 했습니까?”
“자네, 참 상상이 기발하구만!”
허 중관은 웃었다.
황실의 영곤궁에서 비녀가 사라지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게 환관의 처소에서 발견될 리가 없지 않은가.
저런 기발한 상상을 하는 걸 보면 야담집(野談集)을 써도 잘 쓸 것 같았다.
“그런 것 아닐세. 이번에 용화공주께서 친히 행차하시는데, 자네의 능력이 필요하다네.”
툭-
연우혁은 찻잔을 떨어뜨리고 경악의 눈빛으로 환관을 노려보았다.
지금 누굴 죽이려고 이런 일을 맡긴단 말인가?
“쉬운 일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황족을 수행하는 건 목이 여럿 있어도 부족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거나 심기를 거스르면 손가락 하나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명문가나 권문세족 출신의 관리라면 황족도 날려버리기 전에 받은 뇌물과 선물을 조금 생각하고 머뭇거리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림인 출신의 관리는 그냥 날려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연우혁이 정말 절박한 처지라면 독을 삼킬 각오로 수행하겠지만 지금 연우혁은 한경은 물론이고 주변 성(省)의 고관들이 보내는 지지까지 얻어낸 상황.
조금만 시간을 주면 제대로 웅비할 수 있는데 굳이 사지로 기어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연우혁은 배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허 중관을 쳐다보았다.
‘역시 동창의 양물절단자로구나! 이렇게 등을 찌르다니!’
괜히 벼슬아치들이 동창을 욕하는 게 아니었다. 이제 막 출세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등을 찔릴 줄이야.
“진, 진정하게나. 공주 전하께서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운 분이 아니시니까.”
“저번 용봉지회 때 면알한 바로는 꽤나 엄격하신 분 같았습니다만…”
엄격하다는 건 이제 허 중관 앞이라 좋게 말해준 거였지, 용화공주는 실제로 훨씬 더 까다롭고 괴팍한 사람이었다.
연우혁은 아직도 용봉지회 때 그 금의위 무인들이 쥐 잡히듯 쩔쩔매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집 지키는 개들 주제에 어딜 끼어드는 것이냐?
-오라버니가 너희의 가르침 없이는 부족한 천치라도 되느냐? 네놈들이 윗사람을 어떻게 업신여기는지 잘 알겠다!
금의위 무인들은 연우혁의 별호를 굳이 부를 필요 없다고 한 마디 던졌다가 거의 역모라도 저지른 것처럼 구박을 받아야 했다.
태자가 그 자리에 있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정말 목 몇 개가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였다.
“물론 엄정한 분일세. 하지만 전하께서는 재주 있는 자를 아끼고 좋아하시지. 용봉지회 때 일로 자네를 좋게 보기도 했고 말일세!”
허 중관은 연우혁의 반응이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하자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이걸 왜 설명해야 하나 싶어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다른 관리들은 일생일대의 영광이라며 눈물을 펑펑 흘려도 모자랄 판에 이 건방진 판관 놈은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랬나? 어떻게?”
“조 대인께서 말해주셨습니다.”
‘아.’
금의위의 부지휘사가 나오자 허 중관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산전수전 겪은 금의위의 이 고수는 황궁과 조정을 떠도는 미세한 흐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거물이었다.
당연히 용화공주가 젊은 판관이 세운 공을 높게 평가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느꼈으리라.
“그것 보게. 조 대인께서도 그렇게 말하셨잖나. 전하께서는 그리 두려운 분이 아닐세.”
“조 대인께서는 ‘전하는 아랫사람이 실망시키는 일에 관대한 분이 아니고, 너는 운이 좋아서 목숨을 건진 거다’라고도 하셨습니다만.”
‘이런 빌어먹을 무부 놈 같으니!’
허 중관은 조굉을 속으로 욕했다.
하여간 금의위 놈들이 할 줄 아는 건 무기를 휘두르고 우격다짐으로 일을 망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감히 저런 막말을 내뱉다니.
물론 용화공주가 무능한 아랫사람한테 냉정한 건 맞았지만…
“그건 조 대인 본인이 엄정한 분이라 그런 걸세. 전하 앞에서 행동거지를 각별히 삼가도록 만들기 위해 그런 거지.”
“그런 것치고는 꽤 진심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차피 전하께서 자네를 부른 이상, 자네는 가야 하네.”
슬슬 귀찮아진 허 중관은 권위를 빌려 휘둘렀다.
자기 출셋길을 깔아줘도 걷어차려는 이 판관 놈을 좋게 끌고 가기 슬슬 귀찮아진 것이다.
“으음. 하긴. 그렇겠지요. 죄송합니다. 중관께서는 절 생각해주셔서 말한 건데, 제가 투정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허허.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인가. 우리 사이에. 궁금한 거나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보게.”
“공공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
환관의 눈동자가 순간 파르르 떨렸다. 연우혁은 의아함을 느끼고 환관의 감정을 훑었다. 상대는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과연 노련한 환관답게 허 중관은 곧바로 표정을 다잡았다.
“잘 지내시네. 그건 왜 물어보는가?”
“공공께서 계시다면 만약 제가 공주 전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있더라도 좀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만 좀 걱정하게. 자네 재주라면 충분히 괜찮으니!”
“공공께 무슨 문제가 생기신 건 아니지요?”
“그런 건 아닐세.”
허 중관의 말에서 진실이 느껴지자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태자 전하께서는 같이 안 오십니까?”
“…작작하게. 좀.”
* * *
“전하를 뵙기 전에, 먼저 화산파의 무인들을 만날 걸세. 이번 행차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지.”
용화공주는 다른 황족들과 달리 유람이나 순람을 위해 행차하지 않았다. 한 번 움직인다면 보통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이번의 목적은 바로 화산파였다.
“철심철검(鐵心鐵劍) 평일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예. 만나본 적 있습니다.”
연우혁이 포쾌 시절 만나본 적 있는 화산파의 절정 고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았음에도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물론 연우혁이 평일원을 낯설게 느끼는 것보다 평일원이 연우혁을 낯설게 느끼는 감정이 훨씬 클 터였다. 한낱 포쾌가 갑자기 판관의 자리에 오르고 절정의 경지까지 올랐으니.
“평 장로가 왜 강호를 주유하는지 아는가?”
질문을 던지면서도 허 중관은 연우혁이 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일은 화산파 내부에서도 꽤나 비밀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사라진 무경각의 비급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 아닙니까?”
“…어, 어떻게 알았나?!”
허 중관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한경의 무불통지라 하더라도 화산파 내부에서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까지 알아낼 줄이야??
“다른 장로분한테 들었습니다만.”
“……”
허 중관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얼굴을 끄덕였다. 연우혁한테 말해줄 화산파의 장로라면 아마 한경에서 머무르는 소매검객 조 장로일 터였다.
‘그렇게 안 봤는데 입이 엄청 가벼운 자였나?’
아무리 그 사이 친밀해져도 그렇지 자기 문파의 비밀을 저렇게 술술 털어놓다니. 허 중관은 나중에 소매검객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구파일방이 비급에 보이는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네. 평일원 같은 고수가 문파에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강호를 주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전하께서는 이 일을 돕고 화산파에 빚을 크게 지울 생각이시네.”
“과연. 하지만 아무 단서 없이 찾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만.”
연우혁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흩어진 몇몇 비급들을 눈 감고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뭐라도 단서를 던져줘야 예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 알고 있네. 최근에 꽤 신뢰할 만한 첩보를 얻었지. 그것 때문에 화산파 무인들과 만나려는 걸세. 자. 들어가세나.”
허 중관은 말을 멈추더니 외진 길 옆에 작게 자리 잡은 허름한 객잔을 가리켰다. 누가 이런 곳에 객잔을 차릴까 싶을 만큼 안 좋은 위치였다.
“여긴 무슨 객잔입니까?”
“동창에서 굴리는 객잔이라네. 은밀히 사람 만나기에 이런 곳이 편하지.”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익숙한 무인 두 명만 무뚝뚝한 태도로 안에 앉아 있었다.
“허 중관? 반갑소.”
평일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 소리만으로 허 중관을 알아맞혔다. 허 중관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화산의 평 장로를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 이쪽은…”
“알고 있네. 연 판관이겠지. 뵙게 되어 영광이오.”
포쾌 시절이 기억에 남았을 법도 한데 평일원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예의를 갖췄다. 오히려 옆에 있던 정일이 안절부절 못했다.
나름 적면삼구(赤面三狗) 중 첫째로 악명 높은 무인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삼류 무인들 사이의 이야기였고 절정 경지에 오른 연우혁 앞에서는 눈빛 한 번 마주하기 힘든 것이다.
만약 연우혁이 옛날 언사에 원한이라도 품고 있다면 오늘이 정일의 제삿날이었다. 냉혹한 평일원은 하인 하나 때문에 절정 고수나 동창 무인에게 맞서지 않을 테니까.
“저 또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 소협. 반갑군. 잘 지냈나?”
“…잘, 잘 지냈습니다. 판관 어르신! 아이고. 저를 기억해주시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연우혁이 편하게 인사해주자 정일은 눈물이 왈칵 쏟아 나오려는 걸 참아야했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이 훅 차올랐다.
“해후한 만큼 회포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으나, 지금은 당면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떠들면 어떨까 싶소.”
평일원은 딱딱하고 차가운 태도로 본론에 들어갔다. 그 모습에서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먼저 연 판관. 화산파의 비사에 대해 아시오?”
“알고 있습니다.”
평일원은 그 말에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허 중관을 쳐다보았다.
“허 중관. 아무리 화산이 동창과 손을 잡았다 하더라도 이 일을 멋대로 먼저 말하다니. 약조와 어긋나지 않소.”
‘아차.’
허 중관은 그 말에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연우혁과의 친분 때문에 먼저 말해버린 것이다. 원래라면 화산의 장로가 앞에서 보는 상황에서 말해야 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평일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아무리 판관의 명성이 높다 하더라도 화산파의 비사를 알고 있었다니 그게 말이 된단 말인가.
“조 장로께서 말해주셨습니다만.”
“……”
충격에 입을 다문 평일원을 보자, 허 중관과 정일은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