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곧 장 독주가 낭패한 얼굴로 후다닥 뛰쳐나왔다. 관복을 적신 찻물을 털어내며 장 독주는 중얼거렸다.
“으음. 잘못 생각했군.”
용화공주는 언제나 효율적인 일처리를 중요시했고 이번 일 또한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먼저 해결을 듣는다 하더라도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역정을 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이 늙은 내시가 실수를 저질렀구나. 젊은 연정을 가늠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색하진 않아도 잔뜩 화가 난 황녀를 보니 장 독주는 미안해졌다. 월하노인 노릇을 해야겠다고 자부했는데 눈치 없이 훼방을 놓아버린 것이다.
하긴 아무리 노련하고 뛰어난 제독동창이라 하더라도 모든 일에 능숙하진 않았다. 특히 젊은이들을 자연스럽게 붙여놓는 일 같은 게 바로 그랬다.
궁에 있다 보면 상대를 비단으로 둘둘 묶어서 침실에 던져 넣는 일을 많이 하지 매파를 보내는 일은 없었으니까.
장 독주는 차라리 동창의 젊은 환관들에게 맡겨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독주 어른. 혹시 착오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정말로 전하께서 그런 연정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습니다만…”
허 중관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간언했다. 고민하던 장 독주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네놈이 보기에 방금 전하께서 화를 내신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전하께서 가장 먼저 답을 알고 싶으셨는데, 그 재미를 뺏겨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중관의 말에 공주를 모시던 다른 환관들도 동의를 표했다. 연 판관이 보여주는 신묘한 재주는 어지간한 기담집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재미를 갖고 있었다.
그걸 가장 먼저 듣는 기회를 뺏겼으니 총명하고 명석한 공주께서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틀렸군. 이놈들에게 맡길 순 없겠다.’
장 독주는 혀를 찼다. 연정이라고는 고작해야 독수공방으로 몸이 달은 궁녀나 바깥의 기녀 정도밖에 모르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이 생각하는 연정은 아마 육정(肉情) 같은 것이리라.
“주둥이 다물고 판관 불러와라. 공주 전하 앞에서 다시 설명을 시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환관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들은 속으로 ‘이미 다 들었는데 전하께서 재밌어하진 않으실 것이다’라고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느낀 장 독주는 굽은 허리를 더 굽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창이 이렇게 힘을 쓰지 못하는 일이 있다니, 만약 세상 사람들이 안다면 참으로 비웃을 일이었다.
* * *
“다시 말입니까?”
“그렇다네.”
“독주께서 제대로 전하신 게 아닙니까?”
“글쎄, 전하셨는데… 공주 전하께서는 역시 직접 듣고 싶으신 모양이야. 아무래도 당사자한테 직접 듣는 게 생생하지 않겠나.”
허 중관의 말에 연우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독동창이 중간 역할을 해주는 줄 알고 마음을 놓았는데 용화공주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하긴 높은 분들의 변덕이란 이런 거겠지.’
연우혁이 황족이었어도 아마 불러서 한 번 다시 설명해보라고 했을 것 같았다.
원래 사건 뒤에 숨겨진 내막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 사건이 난해하고 배배 꼬였을수록 더더욱 그랬다.
‘제독동창은… 가마 안에 있군.’
연우혁은 영안으로 장 독주를 확인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용화공주도 확인했다. 신주(神珠)를 갖고 있는 용화공주는 마치 안개를 끼고 있는 것처럼 영안의 접근을 막아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연우혁은 당황하지 않고 극진하게 예의를 갖췄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곤궁의 일을 해결한 것을 들었다. 실로 훌륭하구나.”
“전하의 재주에 비하면 보름달 앞의 반딧불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겸손함이 보기 좋구나. 공을 세웠으니 포상을 준비했다.”
“거두어주십시오, 전하! 조정의 관리로서 녹을 먹고 있는데 어찌 사사로이 포상을 받겠습니까!”
“……”
“……”
가마 안에 있던 용화공주는 물론이고 장 독주까지 잠깐 침묵했다.
원래 윗사람이 내리는 포상을 받는다는 건 단순히 이득을 떠나 어느 정도 윗사람의 사람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정말 드물게, 청렴한 관리는 이런 사사로운 포상을 거절하고 청백리로 남곤 했지만…
‘…저 놈은 천 리 밖의 비녀 사라진 일은 알면서 눈앞의 가마 일은 모른단 말인가?’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눈치 없는 짓이 맞았다. 장 독주는 매우 조심하며 거리를 두는 연우혁의 모습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용화공주는 체면 때문에 더 내리겠다고 고집하지는 못하고 짤막하게 내뱉었다.
“…훌륭하도다, 판관의 의기여. 이는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자하산화장(紫霞散花掌) 비급의 행방을 자세히 묻고 싶어서 불렀다.”
“예.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서강 인근에 모인 문파들 중 자하산화장을 숨기고 있는 문파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위씨세가에 찾아가서는 ‘자하산화장을 입수한 걸 알고 있소. 청오보의 무인들이 털어놓았소’라고 말한다.
청오보에 찾아가서는 ‘비급을 입수한 걸 알고 있소. 금장상단의 무인들이 털어놓았소’라고 말하고, 금장상단에 찾아가서는 자양문 무인들이 털어놓았다고 말하고…
그러면 이제 비급을 입수하지 않은 문파들은 흔들리지 않겠지만 비급을 실제로 입수한 문파는 흔들려서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반간계였지만 실제로 이런 계략이 통했다는 걸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신 있게 제안이 가능했다. 게다가 영안이 있는 연우혁은 더욱 더 확실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간단하지만 훌륭한 반간계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구나! 바로 시작하도록 해라. 친히 관람하겠다.”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하께서 직접 방문하신다면 하찮은 무인들이 겁을 먹고 쓸데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연우혁은 용화공주와 같이 서강 문파들을 방문하고 싶지 않았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게다가 이유도 그럴듯했다.
문파들을 적당히 떠보는 게 중요한데 용화공주가 뒤에 있으면 적당히가 절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비급이 없다면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전하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만으로도 저 보잘것없는 자들은 겁에 질려 무슨 일이 있나 쑥덕댈 것입니다! 부디 통촉해주십시오!”
‘이 잡놈 같으니. 재주를 이런 곳에 쓰는구나.’
장 독주는 말문이 막혀서 머뭇거리는 용화공주를 보고 기가 막혔다.
죄 지은 자를 농락하는 재주를 감히 윗사람의 말문을 막는 데에 쓰다니.
“…알겠다. 그러도록 해라!”
용화공주가 결국 포기하고 물러나자 장 독주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저 금지옥엽이 저렇게 어물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서 불호령을 내리고 싶었다.
‘후. 살았군.’
대화가 끝나고 반각 정도가 지났음에도 별다른 명령이 내려오지 않자 연우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허 중관이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알려줄 일이 있네.”
“무엇입니까?”
“…공공께서 곧 오신다는군!”
“아니, 공공께서 말입니까?”
연우혁은 반색했다.
나름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환관인 주 공공이 자리에 오면 연우혁으로서는 든든한 뒷배가 생기는 것 아닌가.
“잘 됐습니다!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중관께서는 왜 그렇게 초조해하십니까?”
“으음, 공주 전하 때문에 그렇다네.”
“과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화산파는 감사하게 될 겁니다.”
“……”
* * *
“저번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공공의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
용봉지회 때 비싼 영약을 받은 만큼 연우혁의 태도는 한층 더 공손했다. 오랜만에 만난 주 공공은 가면 쓴 얼굴을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개의치 않아도 좋다. 국사에 힘쓰는 자를 돕는 건 당연한 일.”
“공공께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천하의 일들을 신경쓰겠습니까. 실로 나라의 홍복이십니다!”
“……”
‘음?’
연우혁은 살짝 당황했다.
물론 주 공공의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평소와 반응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영안 없이도 잡아낼 수 있었다.
원래 이런 아첨을 하면 너그럽게 받아주던 주 공공인데 오늘은 대답이 없는 것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혹시 금의위 놈들과 친하게 지냈다는 소식이 올라갔나?’
“아… 미안하구나.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어디부터 방문할 생각이지?”
“위씨세가입니다.”
“이유가 있느냐?”
“예.”
위씨세가는 비급이 가장 확률적으로 많이 발견되는 곳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연우혁은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위씨세가는 다른 문파와 달리 야심이 큽니다. 또한 보고를 보니 동창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서강의 문파들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위씨세가는 다른 문파들보다 한발 앞서서 전갈을 돌렸다.
다른 문파들은 동창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저택 안의 중요한 물건들을 숨긴 뒤 다른 문파들에게 연락을 보내느라 늦었지만 위씨세가는 연락부터 먼저 보낸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고 솔선수범한다고 볼 수 있었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이건 좀 다른 의미가 됐다.
-비급을 얻은 순간부터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굳이 물건을 숨기지 않고 연락부터 먼저 보낼 수 있었다!
“참. 용화공주 전하께서 존람을 나오셨습니다. 공공.”
“그렇지. …소문이 자자한 분이시지. 그렇지 않느냐?”
“예. 위엄이 추상같은 분이시지요.”
“꼭 그렇지는…”
“엇. 공공께서 친분이 있으십니까?”
연우혁은 혹시 주 공공이 용화공주와 친분이 깊은가 싶어서 놀랐다.
용화공주 성격에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환관과 친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적대하면 모를까.
“친분이 있는… 편이다.”
“과연. 역시 공공이십니다. 그 위엄 넘치는 분의 총애를 받으시다니.”
“…귀관도 추천해줄 수 있는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연우혁은 주 공공이 자신을 시험한다 싶어서 즉시 대답했다.
지금 주 공공이 자신을 좋게 봐주고 있는데 윗사람한테 추천한다고 대뜸 기뻐하면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두 번 정도 더 말해준다면 못 이긴 척 받아들인다.’
“그런가…”
‘이런. 역시 시험이었나!’
* * *
위씨세가의 무인들은 긴장한 얼굴로 장원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떳떳한 이들이라도 금의위나 동창의 이름을 듣고 담대하게 있기는 힘든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번 일은 화산파의 장로까지 엮였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었다. 아무리 서강의 문파들이 서로 한 집안처럼 엮여 외적과 맞서왔다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강대했다. 자칫 잘못 대처했다가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지도 몰랐다.
“다들 경거망동하지 마라! 동창의 무인들은 그저 소문을 확인하러 온 거다. 너희들이 실수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없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만큼 위씨세가의 소가주, 위일표는 엄하게 부하들을 단속했다.
이제 막 사십을 넘은 위일표는 무공과 경영에서 손색없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세가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있는 소가주였다. 현 가주가 병상에 누운 지금 사실상의 가주라고 봐도 충분했다.
‘큰일이구나. 내가 과욕을 부렸단 말인가?’
그러나 위일표의 속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 소란은 화산파의 비급을 손에 넣은 것부터 시작됐다.
자하산화장!
처음에는 위일표도 화산파의 비급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릇에 맞지 않는 보물은 파멸을 몰고 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암상에게 받은 자하산화장의 한 구결을 읽자, 위일표는 결심을 새하얗게 잊어버리고 비급을 손에 넣기로 결심했다.
소가주로서 세가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위일표도 결국 무인이었던 것이다.
저런 비급을 두고 이해타산을 따지며 인내하는 건 불가능했다. 무인이라면 무조건 비급을 손에 움켜잡고 그 심득을 얻어야 했다.
“담 대협. 동창의 무인들이 주변을 뒤지고 있소.”
“들었소. 말씀드린 것처럼 하면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거요.”
세가의 식객으로 머물고 있는 삼절객(三絶客) 담풍호의 말에, 위일표는 약간 안심이 됐다.
우연히 이 고수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위일표는 물론이고 위씨세가의 행운이었다. 이 삼절객은 모르는 게 없었던 것이다.
동창의 환관들이 어떤 식으로 주변을 뒤지는지, 그들의 우두머리인 제독동창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앞에서는 뭘 조심해야 하는지…
“나는 담 대협만 믿소. 참. 이번에 동창의 환관들 사이에 젊은 판관 한 명이 있다는데, 연우혁이라고…”
“음!”
“별 문제는 없지 않겠소?”
“아니. 문제가 생긴 것 같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