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벌써 해결이 된 것마냥 이야기하는 환관들의 태도가 어이없긴 했지만, 백검대 무인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들도 탈혼신군이 나선다면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낭을 통째로 걸라고 해도 걸 수 있을 정도였다.
“연 대인. 고작해야 탐관 놈들 다툼입니다. 굳이 도와주실 필요도 없어요!”
환관은 영 못마땅했는지 다시 한 번 설득하려고 했다.
용화공주를 모시고 가는 이상 길에서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막말로 웬 마두 놈이 대로변에서 검을 휘두르며 사람을 죽여대도 마차 반대쪽으로 간다면 동창의 환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터였다.
하물며 탐욕스러운 관리 놈들 두 명의 싸움, 그것도 당사자들도 아닌 하인 놈들의 싸움이라니. 저런 싸움에 끼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그래도 중요한 일일 수 있지 않나.”
“연 대인께서는 너무 공명정대하십니다. 여긴 한경이 아니고 저 자들은 가난한 백성들이 아니라니까요.”
정말 양보해서 한경의 백성들을 도와주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일반적으로 판관들한테 일을 맡기려면 재산 절반은 쓸 각오를 해야 하는 만큼, 청백리라면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인근 관리 놈들, 그것도 여기 땅을 갖고 있는 놈들이라면 가문은 물론이고 재산까지 떵떵거리는 놈들일 텐데 무엇하러 연우혁이 도와준단 말인가?
그냥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알아서 끝장을 보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음. 이건 좀 경우가 다른 일일 텐데.’
연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환관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연우혁도 자기보다 가문 좋고 땅 많은 관리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자기들이 알아서 싸울 텐데 무엇하러 끼어들겠는가.
연우혁이 도와주려는 건 이번 일과 관련된 사연 때문이었다.
조정 근처에서 예부우시랑의 하인들이 주인에게 바쳐야 할 선물을 빼앗긴 사건이라면 분명…
“맞습니다. 연 대인! 관리 놈들은 자기들끼리 다투게 둬야 마땅합니다!”
“잠깐.”
어떻게 해야 투덜거리는 환관들을 설득할까 고민하던 연우혁은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자네들, 내 명령을 무시하는 건가?”
“……”
“……”
환관들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조용해졌다.
원래 요직을 맡은 관리들 앞에서도 건방을 떠는 게 동창의 환관이라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였다. 당장 황제를 직접 대면하러 가는 관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거기에 이제 용화공주나 제독동창의 총애가 들어가고, 본인 또한 동창 환관들이 상대하기 힘든 무공의 고수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연우혁이 평소 워낙 겸허하게 행동해서 순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당장가서놈들을붙잡아놓겠습니다.걱정하지마십시오대인.”
“대인께서빈천을가리지않고옳고그름을구분하시는데제가감히도울수있다니기쁠뿐입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동창 환관들은 화살보다 빠르게 뛰쳐나갔다. 백검대 무인들은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그 괴팍하고 오만한 환관들을 저렇게 손가락 하나로 쉽게 부릴 줄이야…
* * *
“네놈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남궁세가 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제압당한 양측 하인들은 방금까지 싸우던 걸 잊어버리고 입을 모아 백검대 무인들을 협박했다.
백검대 무인들은 기가 막혔다. 무림을 돌아다니면서 남궁세가의 이름이 이렇게 하찮게 여겨지는 건 또 처음이었다.
-남궁세가의 이름으로, 더 이상 싸움은 허가하지 않겠소! 모두들 진정하시오!
-야, 이 낭인 나부랭이 같은 놈이 뭐라는 거냐! 남궁세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 주인님은 예부우시랑 송 대감이시다! 당장 엎드려서 빌지 못해!
-천박한 무림인 놈들이 미쳐서 위아래를 모르는구나! 우리 주인님은 시강학사 육 대인이시다! 당장 이마를 바닥에…
-…닥쳐! 닥치라고!
중경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백검대 무인들은 고향이 벌써 그리워졌다. 왜 무림의 선배들이 벼슬아치들을 피해 강호에서 야인으로 지냈는지 알 것 같았다.
-남궁 소협. 내 한 마디 조언하겠소. 여긴 강호가 아니니 빨리 풀어주고 사죄드리는 게…
-닥쳐라.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
더 짜증나는 건 호위로 일하고 있는 같잖은 무림인 놈들도 위세를 부리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강호에서 만났으면 눈도 못 마주쳤을 놈들이 대감집에서 몇 년 있다 보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엇. 환관들이 날아옵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 있어라. 책임은 나 혼자 지면 된다.”
“부대주님! 안 됩니다!”
백검대 무인들도 눈치가 있는 만큼 이렇게 일이 커진 상황에서 환관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 배배 꼬인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저리 비켜라!”
“??”
“야, 이 종놈 새끼야! 네놈들이 지금 누구 행차를 방해한 지 아느냐!”
환관들은 백검대 무인들을 옆으로 밀어버리더니 하인들에게 달려가 고함을 쳤다.
기세 좋게 외치던 하인들은 환관들의 관복을 알아보고 움찔했다. 촌놈들이면 모를까 중경에서 환관들한테 함부로 덤비는 멍청이는 드물었다.
“어, 어느 귀인을 모시고 오신 겁니까요…?”
‘저, 저 놈들이 진짜.’
백검대 무인들은 갑자기 공손해진 하인들을 보자 기가 막혔다.
남궁세가 이름은 귓등으로 듣던 놈들이 환관들을 보자 저렇게 고개를 숙여?
“네놈들이 감히 행차를 방해한 것도 모자라 캐묻기까지 해? 목이 몇 개가 되는 것이냐? 오호라! 네놈 주인이 시킨 거로구나. 맞겠지? 종놈이 어떻게 이리 멋대로 행동하겠느냐?”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양쪽 하인들은 우는 시늉을 하며 빌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더러웠지만 만에 하나 이 환관들이 모시고 나온 게 황족이기라도 하면 일이 아주 크게 꼬일 수 있었다. 울분이 치솟아도 참아야 했다.
“이제 곧 네놈들의 하찮고 쓸데없는 다툼을 해결해주실 분이 도착할 텐데, 절대 건방 떨지 말고 묻는 대로 성실하게 대답해라. 한 마디라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다면 모조리 목을 잘라주마!”
“예, 예!”
하인들은 굽신거리면서 작게 속삭였다.
“자네 가진 거 있나?”
“아까 받아서 나온 거 있네. 그대로 바쳐야겠지?”
“아꼈다가 무슨 경을 치려고… 다 꺼내게.”
환관의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 황족을 모시고 나온 모양이었다.
황족들이란 대체로 구실을 붙여서 금은붙이를 뜯어내는 걸 좋아하는 자들인 만큼, 하인들은 주인의 땅을 돌면서 거둬들인 수확과 자기들 주머니에 있는 은조각까지 모조리 꺼냈다.
아까워 죽겠지만 황족들은 이런 일에 몸수색하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 만큼 괜히 잔수작 부렸다가 온몸의 뼈가 부러질 수 있었다.
“??”
“????”
연우혁이 나타나자 하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아무리 봐도 황족이 아닌 것 같았다.
복색부터 시작해서,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빈틈 하나 느껴지지 않는 저런 움직임은…
‘무림인 아니야?’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환관들만 아니었다면 하인 중 한 명은 질문을 던졌을지도 몰랐다. 연우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쪽이 송 대감의 하인들인가?”
“그, 그렇습니다.”
“이쪽이 육 학사의 하인들이고?”
“예…”
연우혁은 송 대감의 하인들 앞에 섰다.
“먼저 이쪽에 물어보도록 하지. 송 대감에게 바쳐야 할 귀한 선물이 뭐였나?”
“그, 그게 말입니다. 하수오였습니다. 수십 년 묵은 놈이었다고 들었습죠.”
“구엽설삼(九葉雪蔘)이 아니고?”
“…?!!”
하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자 연우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한 게 맞군.’
옆에 있던 백검대 무인들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하수오가 아니라 구엽설삼이라니. 그 귀한 걸 어디서 찾았단 말인가?”
수십 년 묵은 하수오는 귀한 물건이긴 했지만 은자만 있다면 꽤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였다.
그러나 구엽설삼은 아무리 금은보화를 쌓아올려도 채삼꾼이 발견하지를 못하면 그림자도 볼 수 없는 귀한 영약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구엽설삼은 본 적 없는 이들이 많았다.
만약 단약이나 환약으로 만든다면 무인에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리라.
“……”
“……”
하인들은 백검대 무인들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연우혁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오로지 의와 협을 위해 행동할 뿐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주인이 있는 영약을 훔치지는 않으니.”
“엇. 으음.”
“그, 그렇습니다.”
백검대 무인들은 칭찬에 반응하는 게 반 박자 늦었다. 그만큼 구엽설삼이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구엽설삼을 찾으러 나온 게 맞느냐?”
“…예. 맞습니다. 주인님께서 절대 떠들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만…”
“그렇겠지.”
견물생심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구엽설삼 같은 영약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벼슬아치들도 괜히 관심이 가서 찔러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예부우시랑이 고관이라지만 여기 조정에서는 그보다 더한 권신들도 많은 법.
당연히 남몰래 조용히 챙겨오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사라졌군.”
“예! 저 놈들이…”
“저 놈들은 아니다.”
연우혁이 딱 잘라서 말하자 육 학사의 하인들이 기세등등해져서 외쳤다.
“들었냐, 이 빌어먹을 놈들아!”
“네놈들이 주인 물건 간수 못 해놓고 행패를 부렸으니 이 책임은 어떻게 질 거냐!”
“저 놈들은 그냥 개방 거지들에게 뇌물을 받으러 여기까지 나온 거다.”
“……”
육 학사의 하인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하인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무슨 뇌물을?! 개, 개방은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
“여기가 육 학사의 땅도 아닐 텐데 이 숫자로 돌아다니면 뻔한 거지.”
“아닙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십 리만 가면 나옵니다!”
“그래. 아까 오면서 봤다. 이 계절에 무슨 소작인들을 찾아가나. 추수를 했어도 진작 했을 텐데.”
“……”
말문이 막힌 육 학사의 하인들은 벙어리가 된 것마냥 다시 조용해졌다. 백검대 무인 중 한 명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연 대인. 저 놈들이 꿍꿍이가 있어서 몰려나온 건 알겠습니다만, 개방은 무슨 소리입니까?”
“대도(大都)일수록 거지들이 함부로 행동하기 힘든 법.”
원래 도시가 크고 번영할수록 거지들은 멋대로 행동하기 힘들었다. 괜히 음식 안 준다고 징이라도 쳤다가는 바로 끌려가는 수가 생겼다.
그런 만큼 노련한 거지들은 몇몇 권세가들의 저택을 알아놓는 편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버려지는 음식이 맛도 좋고 양도 많았다.
당연히 공짜로 받을 수는 없고 이런 건 저택의 하인들과 친해야 했다. 하인들은 거지들에게 뒷돈을 받는 대신 버려지는 음식을 내놓았다.
오늘 육 학사의 하인들이 이렇게 몰려나온 건 혹시 뇌물을 받다가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질까봐 걱정해서였다. 거지들은 수틀리면 주먹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걸 개의치 않아하는 만큼 여럿이 가는 게 안전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 거지들이 개방 소속이란 건 어떻게 압니까?”
“거지들이 아무리 풍족해도 그렇지, 여기까지 하인들을 따로 불러내서 크게 대접하고 뇌물을 바칠 리가 있겠나? 당연히 하인들을 구워삶아서 소문을 얻어내려고 하는 거지. 그런 짓은 개방밖에 안 하네.”
“……”
육 학사의 하인들은 반대쪽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새파랗게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
그냥 거지들이 권세와 위엄에 굽신거리면서 대접하려고 부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놀아나고 있는 건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럼 저놈들도 아니면… 누가 가져간 겁니까?”
송 대감의 하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기대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눈앞에 있는, 연 대인이라고 불린 이 사람이라면 혹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헉! 혹시 개방 놈들입니까?!”
하인들의 외침에 백검대 무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탄식했다. 연우혁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다.”
“…아닙니까?”
“그래.”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이 놈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즉시 납득해버리다니. 하긴 원래는 개방도 범인으로 의심받았던 만큼 수상해보이긴 할 것이다.
“구엽설삼을 바치기로 한 채삼꾼을 어디서 만나기로 했었나?”
“저기 작은 초옥 보이십니까? 그런데 채삼꾼 놈은 없었습…”
“저기 가서 바닥의 판자를 치우고 땅을 다섯 자 정도 깊게 파보게.”
“…???”
하인들은 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움직였다. 환관들이 멈추면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뭔 용한 박수무당 같은 건ㄱ…’
“허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