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첩자의 보고에 도사는 안색을 바꿨다. 방금까지 무표정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탈혼신군이 보였다고 했느냐?”
“예. 하지만 탈혼신군 놈은 교를 토벌한 공으로 관직을 제수받고 중경에 올라왔습니다. 보인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않습니까.”
“틀렸다. 놈의 재주는 결코 얕볼 수 없다.”
“죽, 죽여주십시오!”
혈마, 고중천의 말에 첩자는 넙죽 엎드렸다.
도사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혈교의 전 교주이자 천하제일인을 논하면 언제나 그 이름이 불려나오는 위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떠한 위압이나 기세도 없었음에도 그러했다.
고중천은 찰나의 사이 수십 가지 계책을 떠올리고 가늠했다. 수족에 불과한 첩자와 달리 혈교가 무너지기 전 교의 수많은 보고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들은 혈마였다. 당연히 탈혼신군을 얕보지 않았다.
어떤 계략이든 간에 눈짓 한 번, 질문 한 번에 파훼해버리는데 이게 사람의 재주란 말인가?
천기수사가 젊었을 때도 저렇게는 못했을 것이다. 저건 신선의 재주라고 봐야 했다.
혈교가 무너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던 고중천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또한 탈혼신군 때문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고중천은 애송이마냥 혈기를 드러내며 분개해하지 않았다. 오직 대계(大計)만을 생각하며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고민했다.
어차피 대계가 성공하면 탈혼신군 놈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게 될 터.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놈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첩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명문가의 저택에 들어가 하인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금삼이란 놈 또한 혈마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첩자였다.
중경에 있는 무림인들을 자극한 뒤 누명을 씌울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던 게 바로 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혈마가 찜찜하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제거할 수 있었다. 모든 건 주인의 뜻대로 이뤄질 터였다.
고민하던 고중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직 놈을 찾지 못했다면 괜히 수족만 자르는 꼴이 될 테지. 놈은 아직 쓸만하다. 만약 잡힌다 하더라도 놈은 아는 게 없다. 심문하기도 전에 죽어버리겠지.”
금의위나 동창에 잡혀가서 술법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금삼이 놈은 정말로 토해낼 게 없었다.
고중천이 술법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뒤 손수 세뇌한 놈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심문하려는 순간 바로 자진하도록 명령까지 해놨다.
만약을 대비하는 건 물론이고 그 만약의 만약까지 대비하는 게 바로 고중천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놈이 잡힌다면… 이 장원에서 철수한다.”
“!”
첩자는 깜짝 놀랐다.
황제의 친족인 고왕 주경. 그런 친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장원에서 머무는 건 유용한 것을 떠나 혈마가 준비하는 대계에 필수적인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대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철수한다니.
“주인님. 부디 재고하여주십시오! 놈은 아는 게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심문하려는 순간 심맥이 끊어져 즉사할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장원까지 추적해올 수 있다. 대계를 앞둔 지금, 방해가 될만한 근인을 만들 이유가 없음이야.”
현재 혈마를 섬기는 첩자들은 혈교 때부터 내려온 극소수의 광신도들밖에 없었다.
혈마 본인을 신으로 생각하고 숭배하는 이들.
그런 이들인 만큼 혈마의 결정에 더더욱 괴로워했다. 하지만 고중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계를 위해서 육신도 버리고 평생을 같이한 교도 버렸다.
고작 친왕 놈의 장원 하나 버리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 * *
중경에서 이렇게 여러 문파들의 무인이 모여서 일을 벌이는 건 상당히 드물었다.
점창파, 곤륜파, 청성파, 종남파 등등의 무인들이 모여서 이창한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속아 넘어간 다른 문파의 무인들이 추가되어서 도착한 것이다.
당등은 이창한을 보며 물었다.
“솔직히 말해라. 아직 사기 친 놈들이 더 있는 것 아니냐?”
“제… 제가 알기로는 정말 없습니다만…”
혈교 이야기가 나오자 안 그래도 주눅 들었던 이창한의 기세가 더욱 꺾였다. 단순히 저택에서 꾸지람을 듣는 게 아니라 금의위에 끌려갈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겁먹은 것이다.
“저기가 금삼이 놈이 머무는 곳입니다.”
“가세.”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흉흉한 기세로 하인들이 머무는 별채로 향했다. 연우혁 옆에 있던 당등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놈들, 사고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 죽이면 안 되는데.”
“설마 그런 짓을 하겠…”
-억!
“!?”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 연우혁과 당등은 깜짝 놀라서 달려갔다. 별채 안으로 들어가니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하인이 피를 토한 채 죽어있었다.
도사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놈이 갑자기…”
“이 중에 첩자가 있는 것 아니냐?! 다 같이 들어갔는데 자진 하나 못 막았다고!?”
당등이 눈을 부라리며 의심하려고 했다.
방금 이야기한 건 설마 도사 중 한 명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두를까 걱정한 거였지, 이런 자진을 말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데 하인 놈이 자진하는 걸 못 막았다니.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아닙니다. 놈에게 금제가 걸려 있군요.”
쩔쩔매는 도사들을 구해준 건 연우혁이었다. 무인들은 구명줄이라도 받은 것마냥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연 대협…!”
“금제가 걸려 있다고? 하지만 멀쩡한 놈의 심맥을 이렇게 빨리 끊을 정도의 금제는…”
“혈교의 금제 맞습니다. 의심했던 게 맞군요.”
영안으로 시신을 훑어보던 연우혁은 빠르게 정보를 잡아냈다.
걸려 있던 금제 때문에 강제로 자진했고, 그 금제는 혈교의 금제였고…
당등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혹시 살아남은 장로 놈이 있는 건가? 분명 토벌 때 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멀쩡한 사람을 이렇게 죽게 만들 정도의 금제는 쉽지 않았다. 혈교 내에서도 장로는 되어야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연우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 이거 점점 찜찜해지는군. 혈마 놈과 관련된 게 거의 확실한 것 같은데.’
혈교와 관련된 일이 수상쩍게 계속 일어나고, 혈마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 일만 따로 놓고 보면 그게 더 멍청한 짓이었다.
불을 피우지 않았는데 연기가 괜히 생기겠는가.
‘혈마 놈 진짜 뭔 계획을 꾸미는 거지? 소란을 피우려는 건 확실하고, 그 다음이…’
조정의 중신들 사이를 이간질한 뒤 옥사와 혈풍을 일으키고, 중경에 있는 무림인들을 자극해서 사고를 치게 하려고 하고…
연우혁이 보기에 만약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도저히 못 참고 이창한의 저택 안에서 소란이라도 피웠다면 바로 누명을 썼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무림인들이 난리를 피웠다고 사방이 시끄러웠으리라.
거기까지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란을 피운 다음 뭘 하겠다는 건가?
‘황제를 암살해서 혈교가 망한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겠다는 거면 차라리 이해나 가지. 그럴 놈도 아니고.’
이렇게 소란을 피워서 뭘 하겠다는 건지 떠오르질 않았다.
“연 대협?”
“아. 미안하군. 생각 좀 하고 있었네.”
“놈이 자진했으니 그 뒷배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곤륜파의 도사가 자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지독한 금제가 걸려 있다지만 눈앞에서 자진하는데 그걸 막지 못하다니.
당등은 장로로서 위로해주기는 커녕 도사를 타박했다.
“그러게 왜 서둘러서 들어간 거냐? 도움 안 되는 놈들 같으니. 속았다고 해서 불러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놈과 관련된 곳은 알아냈습니다.”
“!?”
사천당문의 포악한 고수한테 시달리고 있던 무인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고송은 믿기 힘들어서 물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자진한 놈에게서 뭘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당등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술법이군. 죽은 놈을 불러온 거야.”
“정말 그런 걸 할 수 있단 말인가?”
“…못 합니다.”
태극검존이나 할 수준의 술법에 술렁이던 무인들은 당등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당등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나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러면 어떻게 알아낸 건가?”
“놈이 갖고 있는 붓이 황모필(黃毛筆,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양호필(羊毫筆, 양털로 만든 붓)과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전자는 황족에게만 허락된 물건이지요.”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은 귀하디 귀한 붓이라 구하기 쉽지 않았고, 그 물량이 적을 때는 황족들을 제외한 관리들은 쓰지 못하도록 명령이 내려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황족들이 감사해하며 근검절약하진 않았다. 황족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더욱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황모필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저택에서 빌어먹는 식객한테도 던져줄 정도였다.
문방사우에 대해 까다로운 문인이야 황모필과 양호필의 털 차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지만 혈교의 첩자들은 그걸 잘 구분하지 못했다. 붓대가 호화롭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붓이라고 여겼다.
“…!”
연우혁의 말에 무인들은 경악했다. 설마 첩자 놈이 황족과 관련되어 있었다니.
“대체 무슨? 혹시 황실에서 무림을?”
“아니. 그럴 리가 없소. 그렇다 하더라도 금의위나 동창이 나서지 이렇게 황족이 따로 나서서 함정을 팔 리가 없지 않소. 문제가 될 경우 황궁 근처에서 소란이 벌어질 텐데.”
“설마… 설마 황족이 혈교와 관련된 건 아니겠지요.”
무인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별 생각 없이 문파의 실전된 비급을 찾으러 왔다가 휘말린 일치고는 너무 규모가 커졌다. 무인들은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짐작가지 않아 두려움에 떨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무인들은 모두 다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황족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데, 그 중 누군지 알아낼 방법은 없나?”
당등은 사천당문의 무인답게 겁먹는 대신 호승심을 보였다.
그래봤자 황제도 아닌 수많은 방계 떨거지 중 하나일 텐데 그런 놈한테까지 겁을 먹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오죽 못난 놈이길래 혈교 손까지 잡았을까.
“아마 고왕 주경 전하일 겁니다.”
“…그, 그 정도로 높은 사람이었나!?”
예상 밖의 이름에 당등은 당황했다. 설마 저 정도로 권세가 높은 황족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고왕 전하인 걸 안 거지??”
“쉽지요. 최근에 여기 저택에 방문한 적 있는 하인들을 따져보면 됩니다.”
여기 오면서 연우혁은 이창한에게 최근 방문한 적 있는 하인들과 그 주인들에 대해 물었다.
황족이 보낸 하인들 중 그 주인이 너무 방계거나 그리 권세가 높지 않은 이들은 제외였다. 근거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연우혁은 확신했다.
‘일단 혈마의 목적은 반란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황족 중 누군가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거지.’
저번에도 떠올렸다가 왠지 어울리지 않고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넘겼지만, 이제는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단 이게 목표라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어중간한 황족들과 손을 잡을 순 없었다. 남는 건 고왕 주경뿐이었다.
“제가 가서 저택을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잠깐!”
연우혁의 말에 당등이 단호하게 나섰다.
“내 생각에 탈혼신군 네가 가면 안 될 것 같다.”
“예? 어째서 말입니까?”
“혈교 놈들이 겁먹고 도망칠 수도 있어.”
“아니… 혈교 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황족을 버리고 도망치진 않을…”
말하던 연우혁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혈마는 지금 혈교를 포함한 모든 걸 버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자라면 일이 꼬일 경우 황족도 버릴 수 있었다. 타초경사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음. 확실히 당 대협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누군가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텐데요.”
“가도 놈들이 의심하지 않을 만큼 멍청하고 만만한 놈들이 가야 한다.”
“그런 놈들이 있습니까?”
“널 제외한 여기 나머지 놈들.”
“……”
“……”
연우혁은 물론이고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당등은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이놈들을 데리고 적당한 핑계로 방문해보겠다. 설마 의심하진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