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덤벼라. 혈마!”
연우혁은 호기롭게 외쳤다. 혈마는 함정의 유무와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함정이 있더라도 지금은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그대로 돌파한다.’
똑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더라도 혈마와 다른 마두들은 그 격이 달랐다.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운 와중에도 감정을 배제하고 최적의 판단을 할 줄 아는 것이다.
“놈이 움직인다!”
혈마가 수라마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진각을 밟자 주변이 뒤흔들리며 핏빛 기운이 사방으로 난사됐다. 단순히 빠르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보법이 아닌 상대를 압박하고 묶는 술법의 묘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은 연우혁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안에 절정 고수들이 여럿 있었지만 가장 위협적인 게 누구인지는 명확했던 것이다.
“충혼의백술(忠魂義魄術)!”
연우혁은 금의위의 술법 같은 이름을 외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주변을 가로막는 핏빛 기운 자체를 떨쳐내며 모습 자체가 사라지는 신묘한 경신법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혈마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명교의 술법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연우혁은 혈마의 눈썰미에 전율했다.
나름 새로 지은 이름을 크게 외쳐가면서 현혹해보려고 했는데 혈마는 전혀 속아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과연 혈교의 우두머리였던 노마다운 신중함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명교의 술법을 쓰는 것이냐?!”
“하! 마두 놈이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연우혁의 외침에 겁에 질려서 바닥에 엎드려 있던 가짜 도사들과 승려들이 눈을 끔뻑였다.
지금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저 앞에 있는 가짜 도사가 악명 자자한 혈교의 우두머리 혈마라는 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이한 술법은 물론이고 구파일방의 무림인들이 찾아와서 토벌하려는데 멀쩡한 놈일 리 없지 않은가.
그런 놈이 외치는 걸 보니 아마 저 말도 거짓이 분명했다.
“마두답게 혓바닥도 간교하구나…!”
“그러게 말일세!”
“……”
혈마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손을 휘둘렀다. 장력과 함께 가짜 도사와 승려들 사이에서 피가 튀었다. 그 모습에 혈마는 즉시 후회했다.
‘내가 이런 하찮은 격장지계에 당하다니!’
지금 찰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저런 하찮은 놈들을 잡느라 손을 휘두른 것 자체가 평정심을 잃었다는 증거였다. 혈마는 깊게 반성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탈혼신군 놈이 배교 놈들과 은림당 놈들을 부리는 게 놀랍긴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혈마 본인의 대계였다.
또 탈혼신군 놈이 명교의 비전을 이어받아서 쓰고 있는 게 놀랍긴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빌어먹을. 어디서 명교의 비전을 이어받은 거지? 배교의 잔당 놈들이 갖고 있었나?’
다른 건 쉽게 떨쳐내더라도 명교 교주의 비전은 혈마 본인으로서도 의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혈마 본인이 평생 추구하던 것이 무엇이던가.
그 추구를 위해서 혈교의 무공부터 시작해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까지 섭렵해왔다. 잡배라고 무시받는 하오문이나 사파의 무공은 물론이며 서장의 무공까지 찾아서 손에 넣은 혈마였다.
당연히 혈교의 전신이자 마교의 전신인 명교의 무공에도 관심이 많았다.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지만 눈앞의 어린놈이 그걸 갖고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혈마는 배교 놈들을 좀 더 쫓아서 뿌리를 뽑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별 것 아닌 놈들이라고 무시했는데 이렇게 거슬릴 줄이야.
“!”
그 잠깐의 후회를 노리고 적안호리가 일격을 날렸다. 은림당 당주이자 무림최고살수를 논하면 언제나 들어가는 고수답게 그 일격은 치명적인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혈마는 탄궁에서 쏘아져 나온 기묘한 살초를 장력으로 비껴가게 만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듯이 오늘 혈마는 정말로 본인답지 않았다. 정교하게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헝클어지는 기분이었다.
“……”
연우혁과 당등. 고송과 적안호리는 침묵하며 혈마를 응시했다. 혈마가 잠깐 잡념을 가진 사이 네 명의 절정 고수는 합격을 시도할 준비를 끝낸 것이다.
혈마는 적안호리를 보며 말했다.
“암왕 놈이 어떻게 죽은 줄 아느냐?”
“!”
고수들은 혈마의 말에 멈칫했다. 연우혁도 같이 놀랐다.
지금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혈마 본인이었으니까.
‘여기서 말을 건다고? 적안호리를 도발하려는 건가?’
그런 속셈이라면 받아줘서 나쁠 것 없었다. 적안호리는 그런 도발에 당할 살수가 아니었으니까.
“졌으니까 죽었겠지.”
“놈은 눈치가 남달랐다. 남들과 달리 본좌의 대계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 그래서 동귀어진할 각오로 본좌를 찾아왔던 거고. 덕분에 고굉(股肱, 팔다리)이 날아갔다. 놈이 설마 같이 죽을 각오로 덤빌 줄이야.”
당등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다시 자란단 말인가?”
“어린 놈 같으니. 네놈이 아는 건 아주 하찮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혈마의 모욕에 당등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등은 바로 쏘아붙였다.
“그래, 늙어서 좋겠군! 곧 먼저 뒤질 놈이라서 부럽다!”
“…암왕의 유언이 궁금하지 않으냐?”
당등의 도발은 무시하고 혈마는 적안호리에게 말을 걸었다. 적안호리는 침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냐?”
“그건…”
말과 함께 혈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적안호리의 긴장이 아주 살짝 느슨해지는 틈을 타 넷의 포위를 뚫고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극성의 혈라잔혼보(血羅殘魂步). 아까 연우혁을 해치우기 위해 위압감을 뿌리던 보법과는 다른, 쾌와 환을 위주로 한 보법이었다.
연우혁은 당황했다. 혈마가 빠져나와서 당황한 게 아니었다. 그 선택의 의도를 몰라서 당황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간을 끌면 정체가 발각되고 부하가 없는 혈마가 불리하지 연우혁이 불리한 게 아닌…
“전하를 지켜라! 놈을 막아!”
뒤늦게 깨달은 연우혁이 고함을 질렀다.
사실 이 장원에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벌인 이유도 다 친왕 때문이었다. 친왕 앞에서 일을 벌이다보니 제대로 된 증좌나 확신 없이는 멋대로 칼을 휘두를 수도, 습격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혈마도 뒤늦게 그걸 깨달은 게 분명했다.
만약 혈마 손에 친왕이 들어가고 인질극이라도 벌인다면 연우혁의 입장은 매우 곤란해졌다. 적안호리나 고송처럼 잃을 거 없는 마두 놈들이면 모를까 연우혁은 일이 끝나고 나서도 죄인으로 몰릴 수 있는 것이다.
아까 적안호리가 친왕을 빼돌린 뒤 배교의 마두들이 잘 호위해서 밖으로 옮기고 있겠지만, 혈마가 저렇게 나갔다는 건 친왕을 추적할 자신이 있어서가 분명했다.
“놈을 막아!”
뒤늦게 깨달은 다른 고수들도 창백해져서 혈마에게 덤벼들었다. 혈마는 빈틈을 타서 격살하는 대신 친왕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려고 했다.
장원에 머물면서 친왕에게 천리미향을 묻혀놓았는데 그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세상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콰직하고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별채 바닥이 날아가더니 통로가 드러났다. 친왕만이 알고 있는 지하 통로로 빠져나가려던 배교 마두들이 그 굉음에 기겁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하. 전하. 어딜 가십…”
득의양양하게 달려들려던 혈마의 앞을 순간 혼백이 가로막았다. 탈혼신군이나 배교의 술법이라고 생각한 혈마는 깜짝 놀랐다. 술법을 쓰는 걸 전혀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혈마의 앞을 가로막은 건 고왕의 죽은 자식이었다. 아까 구리가 깨지고 혼백이 풀려난 뒤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혈마한테 덤벼든 것이다.
“…이 놈이!”
혈마는 어이가 없어서 일격에 혼백을 찢어버렸다. 설마 이런 같잖은 놈한테 깜짝 놀라서 움직임을 멈출 줄이야!
그 사이 거리를 좁힌 연우혁의 비도가 날아들었다. 적안호리가 쏘아내는 탄궁과 함께 정확히 호흡을 맞춰서 날아오는 일격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당문의 고수 놈은 한술 더 떴다. 놈은 아예 친왕이 뒤에 있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독장을 날렸다. 친왕이 죽으면 인질로서 가치를 잃어버리니 책임도 혈마한테 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결국 혈마는 포기하고 훌쩍 뛰어올랐다. 기세등등한 절정 고수 네 명을 두고 친왕을 챙기는 건 아무리 혈마라도 손해가 너무 컸다.
연우혁은 속으로 한숨을 돌리며 급히 전음을 날렸다.
-당 대협. 설마 전하의 입을 막으려고…?
-어? 뭔 소리냐?
-…아닙니다. 집중하십시오!
혈마는 꼬여가는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않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그 모습이 연우혁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고왕 놈은 놓쳤고, 첩자 놈들은… 이제 못 쓰겠군. 어쩔 수 없나. 아예 물러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군…”
“혈마. 중경에서 도망칠 순 없다. 이 근처에는 동창과 금의위가 펼친 천라지망이 펼쳐져있다. 여길 뚫고 나가더라도 결국 추격은 따라붙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혈마는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친왕의 장원에 오래 머무른 만큼 혈마는 중경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지간한 관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금의위나 동창은 황족을 감시하더라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다른 신하를 감시하듯이 행동했다가는 절대 목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만큼 황족이란 신분이 가지는 힘은 대단했던 것이다.
감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봐야 하는데 장원 근처에 천라지망을 펼쳐놨다?
동창이든 금의위든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그 정도 확신이 있었다면 바로 장원을 습격하고도 남았다. 애초에 무림인들끼리만 여기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본좌 앞에서 그런 헛소리가 통할 것 같으냐. 소식이 다른 놈들에게 도착했을 때면 본좌는 네놈들을 죽이고 여기서 사라져있을 거다.”
“곧 장원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보고 천라지망이 발동될 터.”
“죽어라.”
혈마는 더 이상 떠드는 대신 절정 고수들부터 확실히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친왕을 포기한 이상 절정 고수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여기서 빠져나간 뒤 상황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리라.
그리고 그 때 밖에서 함성과 함께 무인들이 장원을 넘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동창의 복장을 알아본 혈마가 눈을 부릅떴다.
* * *
본인의 자리로 돌아온 제독동창은 부하 환관이 올린 보고를 받고 읽다가 멈칫했다.
“…뭐? 이걸 지켜만 보고 있었느냐?”
평소 친한 이들에게 보여주는 인자하고 노쇠한 모습이 아닌 날카롭고 성마른 태도에 인근 환관들은 기겁했다. 보고를 올린 환관은 겁에 질려서 넙죽 엎드렸다.
“죽,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원래 이 환관이 맡은 일은 연우혁이 머무는 저택 주변을 감시하고 혹시라도 있을 습격을 대비하는 일이었다.
중경에서 원한을 갚기 위해 덤벼들 간 큰 마두들이 있진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환관 놈이 올린 장계를 보니, 연우혁이 혈교의 잔당을 조사하겠다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지 않은가. 황제 폐하와 밀담을 나눈 지 얼마나 됐다고 위험한 짓을 하는 연우혁의 모습에 장 독주는 매우 못마땅해했다.
“며칠 기다린다고 일이 그리 크게 달라질까! 그걸 못 기다려서 이렇게 돌아다니다니. 쯧…”
못마땅해 하면서도 장 독주는 그렇게까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연우혁의 무위 자체가 워낙 대단한 만큼 솔직히 다치리라는 걱정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 있느냐?”
“그, 그것이. 반 시진 전에 올라온…”
“내놔라.”
장 독주는 다음 장계를 받아서 읽었다.
혈마가 있을지도 몰라 고왕의 장원에 몰래 잠입하겠ㄷ…
털썩!
장 독주는 들고 있던 장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환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이걸 말리지 않았단 말이냐?”
“죽,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게 그럴 권한이 없어서…!”
“이런 미친 놈이!”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라고 붙여놨으니 망정이지, 첩자가 앞에 대놓고 나타나서 ‘가시면 안 됩니다’하고 건방지게 굴었다가는 연우혁한테 바로 한 대 맞을 수 있었다.
그래도 보고를 받았으면 바로 달려와서 알렸어야지 제독동창 본인의 밀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니!
“그, 그게…”
“또 뭐냐!”
제독동창이 잔뜩 분노한 상태라 보고를 해야 하는 환관은 눈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 독주는 이를 갈며 외쳤다.
“더 머뭇거리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숨긴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라!”
“그, 어사께서 혹시 모르니 동창의 무인들을 좀 동원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설마 거절했느냐?”
“아, 아닙니다. 그… 보내드렸는데… 제게 권한이 없는 일이라… 괜찮은지…”
장 독주는 앞에 엎드린 젊은 환관을 일으켜 세우고 확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외쳤다.
“너는 앞으로 내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