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바로 그렇다네.”
궁 판관은 평소보다 훨씬 더 진중한 표정으로 적조를 쳐다보며 말했다.
평소 한경의 판관이든 지부든 야밤에 만나면 칼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만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적조였지만, 상대가 자신을 명포두라고 부르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아니! 난 평소부터 자네가 한경에서 제일가는 명포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연 판관의 공업을 누가 보필했겠는가? 자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
적조는 적잖이 감동했다.
그냥 은자만 밝히는 탐관오리 새끼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 것이다.
“저들을 설득해주게. 명포두.”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적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택 담벼락으로 향했다. 위로 올라가서 분노한 한경의 사람들을 설득해볼 요량이었다.
포두를 보낸 궁 판관은 진흙을 툭툭 털어냈다. 그런 다음 저택 안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하급 관리 몇몇과 같이 있는 사 포쾌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이보게, 사 포쾌!”
“판관 어른!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연 판관이 없으니 대신할 수 있는 건 사 포쾌 자네밖에 없네. 자네 같은 명포쾌가 또 어디 있겠나.”
“…제가 말입니까?!”
“난 평소부터 자네가 한경에서 제일가는 명포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적 포두의 일을 누가 보필했겠는가? 자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
사 포쾌는 크게 감동했다.
은자만 더럽게 밝히는 돼지 같은 탐관오리 새끼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을 줄이야.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리게. 때가 되면 내가 지시를 내리도록 하지.”
“예!”
의욕이 충만해져서 외치는 사 포쾌를 본 궁 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포두가 실패하면 바로 포쾌도 올려보내야겠군…”
“……”
옆에서 궁 판관을 호위하고 있던 개방의 거지들은 경악의 눈빛으로 판관을 쳐다보았다.
은자만 미친놈처럼 밝히는 천하의 둘도 없는 탐관오리 새끼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 몇 마디로 포두와 포쾌들의 목숨을 걸게 만드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판관 자리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다른 포쾌들도 찾아봐라.”
궁 판관은 거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경 가운데에 위치한 지부의 저택은 흡사 장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호화찬란하고 넓었다. 그리고 그 넓은 저택에는 지금 다급히 도망친 관리들부터 시작해서 뇌옥에 갇혀 있다가 지부의 부름을 받고 빠져나온 정파 무림인들까지 가득했다.
분노한 한경 사람들을 확실히 설득하려면 적 포두나 사 포쾌 말고도 연우혁 밑에서 일하던 다른 똘똘한 포쾌들을 더 찾아놔야 했다.
평소 판관에게 받아먹는 게 많은 만큼 거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엇. 저기 오 포쾌가 있습니다.”
“저 놈은 쓸모없다. 다른 놈을 찾아봐라.”
“……”
궁 판관은 오 포쾌를 제외한 연우혁 밑의 포쾌들을 몇 명 더 찾아서 설득하고 대기시켰다. 지부는 그 모습에 기대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역시 궁 판관이야. 자네가 고금제일판관은 아니더라도 한경제일판관은 충분히 하고도 남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지부는 궁 판관의 일처리에 흡족해하며 칭찬했다. 궁 판관은 겸손하게 그 칭찬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연우혁이 떠난 이상 한경의 제일가는 판관은 본인 아니겠는가?
* * *
“이보시오! 다들 진정하시오!”
“저 관리 놈이 어디서 감히!”
적조가 저택 외곽을 빙 둘러싼 높은 담벼락 위에 올라가자 바로 진흙덩어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적조는 당황하지 않고 포두에게 주어지는 묵곤(墨棍)을 재빨리 휘둘러 진흙덩어리들을 쳐냈다.
그 신위에 한경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몇몇 사람들이 적조의 얼굴을 알아보고 외쳤다.
“적 포두! 적 포두님 아니신가!”
“적 포두님이라고!?”
“바로 그렇다! 다들 진정해라! 연 판관께서는 정말로 잡혀가신 게 아니다. 조정의 중직을 맡아서 올라가신 거다!”
적조는 내공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저택 안에서 보고 있던 무림인들은 적조의 경지에 깜짝 놀랐다. 포두 중에서 무공을 익힌 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저 정도로 높게 익힌 자는 매우 드물었던 것이다.
한경 사람들도 적조의 외침에서 무언가 느꼈는지 주춤주춤 기세가 줄어들었다. 실제로 연우혁을 따라다니면서 쌓은 신뢰도 있었던 만큼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적 포두님께서 거짓말을 하는 분은 아니시지.
-그럼 정말 급히 올라가신 게 맞나?
“지부 대인께서는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물러나면 관대히 용서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서…”
정확히는 백성들을 처벌하는 순간 조정에 ‘한경에서 소란이 일어났고 지부가 도망쳤다’라는 장계도 올려야 했고, 그런 장계를 올리려면 ‘왜 한경에서 소란이 일어났는데 바로 제압도 못 했지?’란 설명도 해야 했으며, 그럼 이제 ‘지부가 은자를 넉넉히 받고 군역을 넘어가줬다’까지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지부가 덕 있는 사람이라 용서해준다는 설명이 서로에게 좋았다.
“그럴 수 없소!”
“!?”
소란이 끝난 줄 알았던 적조는 누군가의 외침에 당황했다.
어째서?
“왜 그럴 수 없다는 거냐?”
“연 판관께서 계시지 않다면 우린 그 개잡ㄴ… 아니, 궁 판관한테 대소사를 모두 부탁해야 하오!”
“!”
누군가의 외침에 다른 백성들도 퍼뜩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분노해서 잊고 있었지만 연우혁이 누명을 쓰고 끌려가지 않았어도 충분히 문제였던 것이다.
앞으로 한경의 대소사는 궁 판관이 맡게 된다!
누구한테 물건을 뺏겨서 호소하고 싶어도 일단 포쾌한테 은조각을 주고 잘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고, 관졸한테 은조각을 주고 잘 전달해달라고 또 부탁하고, 하급 서관에게 은조각을 주고 잘 전달해달라고 또 또 부탁해야 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그 사실이 한경 사람들을 다시 격분하게 만들었다.
“연 대인 돌려내라! 연 대인 돌려내라!”
“아니! 조정으로 올라가셨다니까?!”
적조의 고함에 한경 사람들은 멈칫했다. 아무리 한경 사람들이 분노했어도 황제 폐하의 부름을 무시하고 돌려보내라는 억지를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경 사람들 중에는 충분히 교활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재빨리 좋은 핑계를 만들어냈다.
“연 대인의 얼굴을 봐야 믿을 수 있겠소! 연 대인을 부르겠다고 약조해주시오!”
“…너희들, 설마 오면 못 가게 붙잡으려는 속셈이냐?!”
살수 출신답게 적조는 사파스러운 수법을 바로 알아차렸다. 한경 사람들은 들켰다는 표정을 지었다.
관리가 왔을 때 백성들이 단체로 읍소하고 소매를 잡으며 떠나지 말아달라고 늘어진다면 조정에서도 미담으로 여기고 들어줄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연우혁이 얼마나 출세한지 아는 적조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여기 궁 대인께서도 연 대인 못지않게 청렴결백하신 분이니까. 궁 대인! 이들에게 약조해주십시오! 앞으로 은자를 받지 않겠다고!”
‘아니 저런 미친 놈이?’
궁 판관은 눈을 부릅떴다.
일을 해결하라고 보냈더니 이 포두 놈이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판관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지부마저 시선을 외면했다.
‘아! 세상이 더러운데 나 홀로 깨끗하고(擧世皆濁我獨淸), 만인이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어서(衆人皆醉我獨醒)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
“어서요!”
궁 판관은 이미 대세가 결정되었음을 느끼며 속으로 비분강개의 눈물을 흘렸다. 진심만 따지면 옛 시인 굴원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슬프도다! 내가 재액을 만나(嗟予遘陽九) 재주를 펼치지 못한 것인가(隸也實不力)?”
정기가(正氣歌)의 구절이 파도치듯이 넘실거렸지만 불행히 여기서 궁 판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적조는 재촉하듯 궁 판관을 떠밀었다. 살수 출신답게 인정사정이 없었다.
“…약조하겠네!”
“와아아아!”
한경 사람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잠깐!”
‘또 뭐야?’
적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까부터 일이 해결될 기미를 보일 때마다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꼬였던 것이다.
“왜 그러나?”
“외람된 말이지만 판관 어른께서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맞소?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소이다!”
궁 판관은 괘씸함에 얼굴을 씰룩댔지만, 병장기를 들고 아래 모인 역도들을 자극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호통을 치는 대신 설득을 해야 하리라.
“걱정할 것 없다. 연 판관이 없더라도 그 밑에서 일하던 명포두와 명포쾌들이 여기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흘 전에 일어난 일을 해결해주시오!”
“맞다, 맞아!”
“그러면 되겠군! 판관 어른이 과연 할 수 있을지 보자고!”
궁 판관에게 평소 맺힌 게 많았던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호응했다. 물론 궁 판관이나 적조는 당황할 뿐이었다.
사흘 전에 일어난 사건이 대체 뭐길래?
“…이보게. 알고 있나?”
“아. 아니오. 애초에 지금 이 소란이 보름은 족히 되었는데, 어찌 일어난 일을 확인했겠습니까.”
평소라면 한경에서 벌어진 특이한 일들을 다 확인했을 적조였지만, 이렇게 소란이 일어나고 저택에 갇힌 상황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대체 사흘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저택 밑에 모인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쳐가며 사흘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걸 들은 사람들도 어디 한 번 궁 판관이 일을 해결할 수 있나 지켜보겠다는 듯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올려다보았다. 궁 판관의 등허리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연 판관이야 타고난 사람이니 듣는 자리에서 해결한다지만 원래 사건이란 건 면밀한 조사와 고찰을 필요로 하지 않던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탐관오리 놈이 개수작을 부린다고 습격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 * *
“그래서 무슨 일이었나?”
이야기를 듣던 연우혁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다른 마두들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분노한 한경 백성들이 판관 놈을 시험하기 위해 맡길 정도라면 꽤 희한한 일 아니었겠는가.
“한경에 꽤 크게 포목점을 하는 장사꾼이 있는데, 그, 아실 겁니다. 남쪽 자성문 근처에, 송가라고…”
“아. 그 사람. 안다.”
“그 상인이 최근에 새로 일꾼을 하나 고용했는데, 그게 무림인이었나 봅니다. 그것도 낭인이라고.”
“과연.”
무림인이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칼만 휘두르지는 않았다. 경지가 낮고 궁한 무림인들은 병장기를 던지고 어디 가서 날품을 파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그게 낭인 출신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무래도 크게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졌던 것이다.
“다른 일꾼들은 말렸다는데 그 송씨 상인이 워낙 인심 좋은 사람이다 보니 결국 낭인을 고용해줬다는군요. 그런데 이제 이 일꾼이 창고 앞을 지키는 날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 아닙니까.”
창고 앞 마당에 면포를 대량으로 쌓아놓은 탓에 일꾼들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야 했다. 그런데 낭인이 보초를 설 때 도둑이 들어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신분이 수상쩍은데 낭인이 보초를 설 때 도둑까지 들었으니 안 몰릴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관청에 가기도 전에 두들겨 맞았을 테지만, 이 낭인 출신 일꾼은 강하게 주장했다.
자신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놀랍게도 찾아보니 정말로 있었다. 근처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가 그 날 일이 많아서 안팎을 들락날락했는데 계속 정문 앞에 있는 일꾼을 봤다는 것 아닌가.
마두들은 수군거렸다.
“낭인 놈이 자기가 정문에 서있는 동안 다른 놈을 담벼락으로 들여보내 털어먹은 것 아닌가? 별로 어렵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당연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주변이 워낙 번화한 곳이라서 들키지 않고 넘는 건 힘들어. 게다가 옮겨야 할 면포가 얼마나 많나.”
적조의 반박에 마두들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민에 잠겼다.
정문을 지키던 놈이 슬쩍 짐수레를 들여보내 털어먹은 것도 아니고, 담벼락으로 도둑들이 오간 것도 아니면 어떻게 면포를 빼돌렸단 말인가?
“혹시 아시겠습니까?”
“그래. 짐작이 가는군.”
“!”
연우혁의 말에 마두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아직 짐작도 안 가는데!
“잠, 잠깐! 조금만 더 고민할 시간을…”
“답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보다 적 포두. 이걸 해결했을 지가 걱정인데. 혹시 해결했나?”
“예!”
“!?”
마두들은 더 놀랐다.
그들은 아직 짐작도 안 가는데 어떻게 저 살수 놈이?
“어떻게?!”
“다행이군. 점소이가 수상쩍다는 걸 눈치채고 그 점을 캐물었겠지?”
“어… 그, 점소이가 좀 수상쩍어서 캐묻긴 했습니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눈빛이 떨리고 말을 더듬어서…”
적조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연우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유를 모르면 캐물을 방법이 없지 않나?”
“…실은 자백할 때까지 두들겨 팼습니다…”
“……”
옆에 있던 마두들은 속으로 매우 기꺼워했다.
‘저게 바로 이치에 맞는 방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