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살막 장로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혈도를 제압당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탈혼신군의 무공이 뛰어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거리에서 셋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하다니.
연우혁은 그들의 아혈(啞穴)을 풀어주었다. 뻣뻣해진 목울대가 다시 움직여지자 십지십살 노척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이게 무슨 짓이오!”
무림에 자자한 악명과 달리 살막의 전력은 전부 다 합치더라도 무당파나 화산파 하나를 당해내지 못했다.
애초에 살수들의 무공은 그리 고강하지 않았다. 무림에서 남을 죽이는 일의 대부분은 무공보다는 심계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살막의 악명이 자자한 이유는 간단했다.
은밀함!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하오문이 흑도칠문을 포함한 여러 사파 세력들의 핍박에도 뿌리 깊게 유지된 것처럼 살막 또한 배교나 혈교 못지않은 은밀함을 자랑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한 수 위라고도 볼 수 있었다.
배교나 혈교는 교(敎)인 만큼 필연적으로 계속 은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신도들이 수상쩍은 사교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고 이러면 밖에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살막은 교가 아니라 막(幕)이었다.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근본 없는 살수들의 이익집단에 가까웠다.
교리를 떨쳐 천하를 뒤집기보다는 은자를 두둑히 챙기고 위험하면 몸을 뺀다.
이런 원칙이 살막을 오히려 안전하고 강하게 만들어줬다. 보복을 하려고 해도 근거지를 찾기 힘들고 세력도 별로 없으니 애초에 얽히는 쪽이 손해인 것이다.
그래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도 혈교와 달리 살막은 토벌하기 위해 그렇게 날을 세우지는 않았다. 살막도 당연히 눈치껏 무림의 명사는 건드리지 않았고.
오늘 탈혼신군을 찾아와 당당하게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도 결국 이런 배경을 토대로 한 자신감이었다.
조정의 고관들도 살막에게 일을 맡길 때는 후환을 걱정해 배반하거나 약조를 어기지 않았다.
탈혼신군이 부마도위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뒷일을 생각하면 살막의 요구를 관대히 들어주고 빚을 남겨놓지, 굳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는 않으ㄹ…
“지금 감히 어디서 건방지게 협박질이냐! 네놈들이 정녕 멸문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살막 장로들은 몇 가지를 간과했다.
일단 연우혁은 적조를 꽤나 아꼈다. 능력 있는 포두가 됐기도 했지만 그 사이 많이 친해진 것이다.
배교의 마두들이면 모를까 적조는 와서 내놓으라고 한다고 툭 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두 번째로 간과한 것은 연우혁의 경지였다. 절정의 경지라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막 장로들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혈마를 쓰러드리면서 벽을 넘은 연우혁은 장로들이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과한 것은 바로 연우혁의 지략이었다.
다른 자들과 달리 연우혁은 살막의 살수들이 숨어 있는 근거지들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대막(大漠)에 숨어있다고 해서 내가 네놈들을 못 찾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마라. 고위! 정수!”
연우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대막에 위치한 살막의 은거지 위치를 거침없이 던졌다. 물론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상대도 그 사실은 몰랐다.
당연히 살막의 장로들은 아까 점혈당했을 때보다 더욱 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살막은 은거지도 서로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마교나 혈교는 금제로 보호한다지만 살막은 그럴 능력이 부족할뿐더러 살수 자체가 워낙 배신하기 쉬운 것이다.
그렇기에 장로들은 각자 자신만의 은거지와 안가(安家)를 알 뿐 다른 장로들의 위치는 알지 못했는데, 연우혁은 가장 은밀한 대막 쪽 은거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짚은 것이다.
고위(古威)는 사막을 오고 가는 행상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여기서는 노 장로가 안정표국이라는 현판을 걸고 살수들을 키우고 있었다.
정수(定水)는 사막에서 보기 드문 강을 끼고 있는 곳이었다. 도 장로는 여기에서 사람 좋은 상단주 노릇을 하며 살수를 부렸다.
이런 사실은 적조도 알지 못했고 각 장로들도 서로 알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더 해보겠느냐! 대막뿐만이 아니다. 무림에도 네놈들이 뿌리를 내린 걸 알고 있다. 호북 경산(京山)에 있는 녹림채는 사실 네놈들의 은거지 아니더냐!”
평소 언제나 침묵하던 뇌도참살 종막이 ‘억’하고 짧게 비명을 내지르자, 다른 두 장로는 저 은거지가 종막의 은거지라는 걸 깨달았다.
“죽…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연 대인. 저희가 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같잖은 수작을 부렸으니, 두 눈을 뽑고 혀를 뽑아도 모자랄 중죄입니다!”
정신을 차린 노척은 일단 허둥지둥 빌기 시작했다.
살수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상대가 어디까지 꿰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빌고 나서 파악해도 늦지 않았다.
“내 적 포두의 체면 때문에 살막의 은거지를 알아도 굳이 치지 않았는데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당장 백만대군을 동원해 토벌해버리겠다!”
‘그럴 수가 있나?’
적조는 속으로 의아해했다.
혈교 토벌도 백만대군은 동원하지 못했는데 하찮은 살막 토벌에 동원할 수 있나 싶었다.
물론 겁에 질린 살막 장로들은 전혀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렇게 은거지를 꿰뚫고 있을 정도면 당연히 대군도 동원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탈혼신군 같은 자가 저렇게 은거지를 다 일일이 파악하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죽여주십시오!”
곧바로 대규모의 토벌군이 혈교를 쓸어버린 것처럼 각지의 살막 은거지로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장로들은 벌벌 떨었다.
“흥! 죽을 죄를 지은 건 아는 모양이구나.”
“이, 이 늙고 하찮은 놈이 고위에서 표국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지는 정말로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놈 표국이었나?’
연우혁은 살짝 당황했다.
일단 아는 걸 내뱉었는데 여기 장로 놈의 은거지였을 줄이야.
하긴 살막의 장로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은 만큼, 은거지를 말했을 때 여기 있는 장로와 관련된 곳일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놈들은 벙어리라도 됐느냐!”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수에서 상단주 노릇을 하는 걸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히 대인을 몰라 뵙고 이런 무례를…”
“경산채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신 걸 모르고 경망스럽게 굴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
기억나는 세 군데를 골랐는데 세 장로를 모두 맞혔다는 사실에 연우혁은 다시 한 번 놀랐지만,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건방진 놈들 같으니.”
“아주 때려 죽여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토벌해버리시지요!”
“살수 놈들은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마두들은 새로 생긴 주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떠들었다. 다 좋았지만 은림당 당주가 ‘살수 놈들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라고 떠드는 건 조금 어이가 없었다.
살막 장로들이 온몸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자 연우혁은 적조에게 눈짓했다. 적당히 겁을 줬으니 이제 풀어줄 때였다.
적조는 그 뜻을 오해하고 마두들에게 가세했다.
“건방진 놈들 같으니. 나랏일하는 포두를 감히 위협해!”
“……”
연우혁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전음을 보냈다. 적조는 뒤늦게 깨닫고 외쳤다.
“연 대인. 그래도 한때는 동문으로서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적 포두가 그렇게 말하다니 그냥 무시할 수가 없군.”
그 말에 살막 장로들은 반색했다. 사지(死地)라고 생각한 곳에서 한 줄기 활로를 찾은 것이다.
들어보니 탈혼신군이 적조를 꽤 아끼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강제로 포두 노릇을 했다지만 한경에서 소문이 날 정도면 제법 뛰어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적조는 살막의 대주를 맡을 정도로 고수였으니 그깟 포두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었으리라.
“일어나라.”
연우혁이 점혈을 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살막 장로들은 눈치껏 부복했다. 여기서 일어날 만큼 멍청하면 장로가 되지도 못했다.
“알고 있겠지만 여기 적 포두는 재주가 뛰어나 한경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예! 적 대주의 재주라면 그깟 포두 자리뿐만 아니라 뭘 시켜도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적조를 연우혁 밑에 넘겨주는 것으로 살막의 대대적인 토벌과 멸문을 막을 수 있으면 이득인 만큼, 노 장로는 기꺼이 외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다른 마두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연우혁이 포두 출신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금 마두들이 포두로 일해야 하는 상황 탓이 더 컸다.
안 그래도 포두 노릇을 해야 해서 울화통이 터지는데 웬 살막 장로 놈이 ‘그깟 포두’라고 지껄이니 분노가 안 몰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건방진 살수 놈 같으니.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그깟 포두? 포두가 국사의 근간을 책임지는 관직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그 정도는 아닌데.’
“네놈이 말하는 걸 보니 아직도 구밀복검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돌아가고 나면 바로 살수들을 보내 연 대인을 해하려 하겠지!”
“절,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살막 장로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탈혼신군도 포두 출신이었던 것이다.
하도 지위가 달라져서 잊고 있었는데 부하들이 저렇게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모시는 주인을 모욕한 셈 아닌가.
“됐다. 그만해라. 어쨌든 말하는 걸 보니 적조한테 뭘 시켜도 괜찮은 모양이로군. 맞나?”
“예! 대인께서 살막 살수들 전원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불평하겠습니까?”
“과연 그렇군. 내가 그런 은혜를 베풀었을 줄이야.”
“대인께서 너그러움을 베풀어주셨는데도 본인은 모르시니, 이는 진정 군자요 대인이십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적조는 살막 장로들이 저렇게 아첨을 잘 하는 사람들인 건 처음 알았다. 장로 자리에 앉아 꼿꼿하게 허리 세운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보니 아첨도 참 뛰어났다.
“그래도 방금 포두를 모욕한 건 좀 서운하군.”
“죽,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까지는 아니지. 대신 다른 방식으로 갚도록 해라. 여기 무인들처럼 말이야.”
연우혁의 말에 마두들은 씩 미소지었다. 살막 장로들과 달리 이들의 운명을 예감한 것이다.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살막 장로들은 어리둥절했다. 여기 무인들처럼 갚는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
“환령마군. 설명해주게.”
연우혁은 귀찮다는 듯이 떠넘겼다. 환령마군은 기꺼이 외쳤다.
“여기 있는 마두들은 지은 죄를 갚기 위해, 연 대인 밑에서 견마지로를 다하기로 했네.”
“???”
“포두로 일하게 됐다고.”
“……”
살막 장로들은 뒤늦게 깨닫고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들도…
포두로 일하란 말인가?
“잠깐!”
적안호리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연우혁은 의아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지?”
“나는 은림당의 당주고, 저 놈들은 고작해야 장로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은 죄가 한층 더 큰데 포두부터 시작하다니 불공평한 것 아닌가?”
“맞는 말씀입니다.”
배교 장로들도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살수 놈들 지위 내려가서 나쁠 게 없었다. 연우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것 같군. 그럼 포쾌부터 일하도록.”
“……”
무림에는 온갖 기인이사들이 많았다. 마두들 중에는 길가다가 어깨를 부딪쳤단 이유만으로 무인을 잡아가 일 년 동안 교군(轎軍, 가마꾼)으로 부려먹는 마두도 있을 정도였다.
정파라 하더라도 기인이 없지는 않았다. 예전 사천당문에는 모소서생(侮笑書生) 당엽이라는 무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마두만 만나면 독으로 얼굴을 마비시켜 영영 웃는 낯짝으로 고정시키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인이사들 사이에, 아니, 그 위에 새로이 탈혼신군의 이름을 올려야 할지도 몰랐다.
만나는 마두마다 붙잡아서 포두, 포쾌 노릇을 시키다니 이 무슨 괴상한 기벽이란 말인가??
“참. 살막의 다른 장로들도 빨리 불러 모으도록.”
하오문에 버금갈 정도로 오랫동안 그 뿌리를 유지했던 살막이었다.
그 살막은 오늘 멸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