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한경에 도착하기 전 동행했던, 흑도칠문과 손을 잡으려 했던 문파입니다.”
“아. 그걸 말하는 거였군.”
뒤늦게 떠올린 연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쾌를 늘릴지 말지 고민하느라 정작 탁씨세가의 이름은 기억에서 흐릿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왜 감사한단 말이냐?”
“무림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탁씨세가의 이탈을 꽤나 염려한 모양입니다.”
천문세가와 같이 이름이 언급될 정도였으니, 탁씨세가의 세력이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탁씨세가의 가주는 공동파 속가제자 출신인 만큼 정파와의 인연도 꽤 깊은 편 아닌가.
이런 문파의 이탈은 단순히 전력의 문제를 떠나 정파의 체면에 먹칠을 할 수 있었다. 여러 문파들이 진지하게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긴 그렇겠군. 그런데 벌써 감사인사를 하러 오다니 신기하구나.”
“한경에 후기지수들이 여럿 갇혀 있었지 않습니까?”
동창의 환관들은 기본적으로 유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환관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지금 연우혁에게 보고하는 환관도 연유를 캐물으면서 다른 것들도 확실히 조사해 온 뒤였다.
한경에는 저번 용봉지회 때 갇혔던 후기지수들이 여럿 있었고, 이들 때문에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꽤 한경에 머무르게 됐으며, 덕분에 탁씨세가가 이탈을 포기했다는 걸 바로 알게 된 것이다.
“네 말이 맞다. 그랬었지. 참으로 잘 알아왔다.”
“감사합니다.”
“참. 후기지수들이 갇혀 있다고 하니 생각난 건데, 이들을 포쾌로 부리면 어떨까?”
“……”
연우혁의 칭찬에 엎드려서 기뻐하던 환관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두들은 그나마 뒤탈이 없다지만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포쾌로 부려먹었다가는 그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아무리 연 대인이 고관이라 하더라도 정파무림과 사파무림 양쪽에서 광인 취급을 받는 건 조금…
“음. 농으로 한 소리였는데.”
“…너, 너무나도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환관은 재빨리 외쳤다. 연우혁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풀려날 이들이니 포쾌로 부리는 건 무리겠지. 좀 더 오래 남아 있어야 했다면 모를까.”
“……”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운이 좋았다. 만약 한경의 뇌옥에 더 오래 갇혀 있어야 했다면 정말 포쾌로 끌려 나갔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무림 역사상 유래가 없는 포쾌 집단이 되었으리라.
동창의 환관은 무림인들에게 다시 한 번 엄중히 경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운 좋게 풀려났다지만, 두 번째에도 운이 좋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 * *
“연 대인. 혈마와의 사투로 내상을 입으셨단 말을 들었습니다.”
“아. 그거 말이냐. 거짓말이었다.”
“……”
무림인들이 당황하자 연우혁은 친절히 설명해줬다.
“한경의 관리들이 이번 유람을 핑계로 백성들에게 은자를 받아내려 하더군. 내 어찌 가만히 그걸 지켜볼 수 있겠느냐.”
“대인…!”
점창파의 무인, 남익은 솔직히 감동했다.
한경의 뇌옥에 갇혀 있었을 때만 해도 이 젊은 판관이 실로 두려웠었다. 단순히 무공의 고하뿐만이 아니라 뇌옥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다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은 박식함 때문이었다.
용봉지회에서 지은 죄 때문에 뇌옥에 갇혀 있는 무림인들인 만큼 아무리 명망 높은 후기지수라 하더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혈교 토벌, 혈마와의 대결 등 여러 소문이 들리자 두려움은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연우혁이 한경을 떠난 것이었다.
연우혁이 한경을 떠나자 남은 관리들이 이 후기지수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정말로 잠시 나갔다 와도 됩니까?
-물론이오. 하지만 혹시 도망칠 수도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은자를 맡겨놓으셔야 하오.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고쳐줄 수 있겠습니까? 여기 은자를 좀 드릴 테니…
-뇌옥을 고치는 것은 당연히 관의 일. 걱정하지 마시오. 아예 고치는 동안 나가서 쉬지 않겠소? 대신 그에 상응하는 은자를 더 맡겨놓으셔야 하오.
-……
-조용히 있고 싶으신가보군. 주변을 조용하게 해줄 수도 있소. 그에 상응하는 은자만…
이게 뇌옥을 맡은 관리인지 아니면 은자에 환장한 녹림도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후기지수들은 새삼 연우혁처럼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가 얼마나 드문 존재인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청렴함은 아무리 명망이 높아지고 출세했다 하더라도 달리지지 않은 것이다.
‘수상불변(守常不變)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해 있는 말이다!’
“반드시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하하. 실로 믿음직스럽다. 만약 비밀이 새어나간다면 여기 무인들이 대신 포쾌로 일해야 하겠구나.”
연우혁의 말에 후기지수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부마도위의 농담이 보통 웃긴 게 아니었다.
옆에 있던 동창 환관만 속으로 진땀을 흘릴 뿐이었다.
‘절대 사고치지 마라, 애송이 놈들…’
“탁씨세가를 설득해주신 일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무불통지라는 별호가 어떻게 붙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후기지수들은 연우혁이 평소 하던 대로, 그러니까 상대의 곤란한 사정을 먼저 꿰뚫고 그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서 감화시키는 방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탁씨세가의 서중대호가 간교한 효웅이라지만 세가의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해주는 인덕에는 감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설득이야말로 내 장기다.”
“……”
옆에 있던 환관은 슬며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기지수 놈들이 예전의 기억 때문에 너무 크게 착각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혹시 가주께서 싫어하지는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하자 가주도 흔들리더군.”
“과연…!”
청성파의 무인, 도운표는 연우혁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다른 문파들을 상대해야 할 때 오늘 얻은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펼쳐보리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연 대인. 용봉지회 때 저희가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했는지 배웠습니다. 조정에 선처를 부탁한 지부 대인께도 감사할 뿐입니다.”
“저런.”
연우혁은 살짝 안타까웠다.
저런 쓸데없는 상소를 올렸을 줄이야?
“덕분에 제갈세가의 길경(吉慶)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갈세가에 경사라니. 그게 무슨?”
“아. 이번에 제갈세가에서 혼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대인께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규 공자가…”
“!”
나름 친분 깊은 제갈규의 이름이 나오자 연우혁은 반색했다.
“제갈규라면 나 또한 친분이 깊다. 상대는 누구지?”
“제가 듣기로는 한경 명문가의 규수라고 들었습니다. 청군 정씨…”
연우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청군 정씨라면 정여혜. 적조와 인연이 깊은 살막 장로의 외손녀였던 것이다.
저번에 봤을 때 제갈규를 눈독 들인 것 같았는데 그 사이 이렇게 관계가 진행되었을 줄이야.
‘적조가 들으면 매우 기뻐하겠군!’
“잘 됐다. 나도 가서 축하해야겠군.”
마침 천기수사도 한 번 만나고 싶었던 만큼 연우혁은 기꺼이 말했다. 무림인들은 기뻐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
“대인께서 방문해주시면 영광일 겁니다. 하오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와병중이신데 어떻게 출발을…?”
“밤에 몰래 떠나도록 하자. 어차피 회포는 저번에 다 풀었다.”
“핫핫핫! …아. 농을 던지신 게 아니었습니까?”
* * *
연우혁은 정말로 저녁을 틈타 한경을 빠져나왔다. 무림인들과 청군 정씨의 하인들, 그리고 동창 환관들과 포쾌들까지 모이자 거의 일군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규모가 만들어졌다.
저 멀리 번쩍이는 한경의 불빛을 보며 환관들은 괜히 미안해졌다.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조금도 도와주지 못했군.’
‘우릴 원망하지 말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네.’
받은 만큼 일해 주는 게 환관이라지만 윗사람의 엄명이 있을 때는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쯤 한경의 관리들은 단꿈에 젖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용화공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상공께서 교훈을 주신 것이니 이는 미담이지 전혀 무례함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하의 절반만큼이라도 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는 길에 마두들이 보이면 개의치 않고 교훈을 주셔야 합니다.”
“반드시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대화에 포쾌들은 몸서리를 쳤다. 애틋한 대화가 이렇게 섬뜩하게 들리기도 힘들 것 같았다.
저 앞에서 상단의 일꾼들이 오다가 무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어이쿠. 이 사람들은 대체…?”
“혹시 취옥산장에서 벌어진 일 때문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겠나? 저기 보게. 보통 깃발이 아니잖나.”
지나가던 연우혁은 환관을 불러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본데 확인하고 가도록 하자.”
“예? 대, 대인. 사소한 일 아니겠습니까?”
가는 곳마다 억울하고 힘든 사람이 있을 텐데 그 때마다 멈추면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었다. 환관은 어떻게든 연우혁을 설득해보려고 노력했다.
“공주 전하께서도…”
“전하께서는 이런 일을 확인하는 걸 나보다도 더 좋아하신다. 혹시 포쾌 일이 하고 싶으냐?”
“…예!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정신이 번쩍 든 환관이 움직였다. 누가 봐도 지체 높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상단 일꾼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인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 그것이. 취옥산장에서…”
“취옥산장?”
뒤에서 듣고 있던 용화공주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 예전에 해결하신 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전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지요.”
“일을 저지른 게…”
“무공을 익힌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공께서는 그걸 어떻게 알아맞히신 겁니까?”
옆에 있던 환관 몇몇이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예전에 연우혁의 뒷조사를 하던 환관들은 자연스레 연우혁이 풀어낸 사건들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그 중에는 연우혁이 굳이 설명하거나 해명할 필요가 없어서 넘어간 일들도 몇 개 됐다. 취옥산장이 바로 그런 건이었다.
‘마침 잘 됐다. 연 대인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했는데.’
“그건 사실… 잠깐. 취옥산장에서 일이 또 벌어졌단 거냐?”
설명하려던 연우혁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취옥산장에서 사건이 다시 벌어진 거면 여기서 떠들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취옥산장에서 두 번 일이 일어났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지?”
“웬, 웬 무림인이 갑자기 취옥산장의 옛 비사를 풀어보겠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접근하지 못하게 엄포를 놓았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듣기로는 그 대단한 제갈세가의 무인이라고…”
“…혹시 그 무인이 이렇게 생겼나?”
연우혁은 설마 싶은 마음으로 천기수사의 용모파기를 물었다.
* * *
천기수사는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시간을 더 줬으면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제갈세가에 경사가 있는데 이미 끝난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취옥산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던 천기수사는 연우혁이 소매를 잡아당기자 못 이기는 척 끌려나왔다.
“그리고 취옥산장의 옛 비사라면 혹시 그 앉은뱅이 고수가 벌인 일 말입니까?”
“그래. 아주 흥미로워서 내가 다시 풀어보려고 했지.”
“안 그래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같이 들으시죠.”
“아니! 내 스스로 알아내보겠다. 기다려라.”
천기수사는 답을 듣기보다는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무인이었다. 그 고고한 태도에 환관들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안 궁금하면 자기 혼자 꺼질 것이지 왜 와서 방해를 한단 말인가?
말 위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천기수사는 문득 떠오른 게 있었는지 연우혁을 불렀다.
“그러고 보니 물어볼 게 있었는데.”
“취옥산장 말입니까?”
“아니. 그거 말고. 요즘 마두들을 포쾌로 만들고 다닌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혹시 광증 같은 건 아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