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강화인간 (1)
오시안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통신도 먹히지 않는 고대유적 안쪽.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깥사람들이 알 길이 없었다.
당연히 안쪽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저들끼리 싸운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가 누굴 죽였는지 어떻게 아는가.
죽은 사람이 유적의 함정에 죽었는지 수호자에게 죽었는지 사람에게 죽었는지 목격자가 없어서 모르는데.
그렇기에 유적 안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각오를 다져야 했다.
유적에서 단순히 몬스터나 수호자와 싸우는 것이 아닌, 사람과도 싸워야 한다는 걸.
오시안의 몸에 혈류가 빨리 돌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이 우월하다 착각하는 강화인간이 과연 얼마나 강할까.
오시안은 그것이 정말 궁금했다.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던 부류의 사람.’
강화인간은 발전한 마법과 과학을 바탕으로 유전자가 개조된 인간이다.
당연히 과학이라고 할 것의 편린조차 존재하지 않던 게임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뭐? 기대?”
오시안의 그 발언에 강화인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면, 이런 순간이라도 어떻게든 허세를 부려서 우릴 겁먹게 할 속셈이냐?”
“그렇게 들렸다면, 생각해도 상관은 없다만.”
“아무래도 너는 적당히 손봐 주는 걸로 끝내선 안 되겠군.”
강화인간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한층 더 강해졌다.
옆에서 자세를 잡던 발루드가 오시안에게 핀잔을 주었다.
“적들을 더 자극해서 뭐 하자는 짓입니까?”
“어차피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한 놈인데, 더 자극하고 말 것도 없지 않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발루드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하며 적들에게 집중했다.
‘다행히도 한꺼번에 달려들지는 않을 모양인데.’
강화인간은 자신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들.
고작 둘을 상대로 10명이 모두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발루드의 상대는 백발을 허리까지 기른 여자 강화인간이었다.
인형 같은 얼굴에 미묘하게 눈꼬리가 휜 것이 기분이 나빴다.
“잘생긴 오빠네.”
곧 죽고 죽일 상대에게 외모를 칭찬하는 것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난 그런 사람 죽이는 게 제일 좋더라.”
“…….”
하여간 여간 또라이들이 아니군.
마피아 일을 하다 보면 온갖 인간군상들을 만나지만, 강화인간들은 그걸 뛰어넘는 불쾌함이 있었다.
실험만 받다 보니 뇌가 망가지기라도 한 건지, 놈들은 대부분 사이코패스였다.
차라리 돈 때문에 싸우겠다고 하는 놈들이 선녀처럼 보일 지경.
발루드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강화인간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음. 그렇게 차갑게 굴면 상처받는데. 하지만 좋아. 그래야 나중에 비명을 지를 때 더 감미롭게 들리는 법이니까.”
“싸움을 말로만 배웠습니까?”
발루드가 참지 못하고 도끼날을 앞뒤로 까닥였다.
“들어오십시오.”
“재밌네. 너무 그러지 마.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당신 동료부터 걱정하는 게 어때?”
그 여자의 말대로였다.
오시안과 마주 보던 강화인간, 그것도 이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격인 그가 오시안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아론을 비롯한 그의 팀원,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강화인간들이 동시에 생각했다.
곧 오시안의 팔다리가 찢겨 나갈 거고, 방금 강화인간이 경고한 대로 그의 눈알이 산 채로 파이겠지.
그 당당함에 이유가 없지는 않았지만, 발루드는 그렇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동료를 걱정하라고?’
웃기는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최소한 자신이 싸웠던 오시안은, 고작 저런 강화인간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서걱!
피를 뿌리며 잘려나간 것은 오시안을 향해 달려들었던 강화인간의 팔이었다.
“무슨?”
강화인간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그의 시야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어느덧 오시안이 한쪽 발목을 잘라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대로 쓰러지려는 강화인간의 목을 향해 칼날이 떨어졌다.
강화인간은 한쪽 팔로 지면을 짚은 뒤 몸을 뒤로 강하게 밀었다.
오시안의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놀란 눈치로군.”
거리를 벌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강화인간을 향해 오시안이 덤덤하게 말했다.
강화인간은 그 말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전, 자신의 손아귀가 오시안의 어깨를 노렸다.
목표는 우선 검을 쥔 팔을 뜯어내려는 것.
하지만 오히려 잘려나간 것은 자신의 팔이었다. 더욱 웃긴 것은, 검이 자신의 팔을 가르며 지나가는 동안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그보다 눈은 괜찮나?”
“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화인간의 눈을 가로지르는 붉은 실선이 생겼다.
촤악 하고 피가 튀었다.
“크아아아악!”
아무리 강화인간이라 하지만 눈을 베이는 고통을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론을 비롯한 강화인간들이 모두 놀랐다.
“대체 언제?”
방금 전 그들의 우두머리 격인 강화인간은 오시안의 검을 분명히 피했다.
그랬는데 눈이 잘려 나갔다. 설마, 처음부터 눈을 노렸다는 건가? 그런데도 이쪽이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후드득 떨어지는 붉은 피.
우두머리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일어났다?’
오시안은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잘려나갔던 다리가 원래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잘려나간 팔이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모습이 보였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상처가 부글부글 끓으며 도마뱀 꼬리처럼 치솟는다.
눈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가로지른 자상이 삽시간에 아물고, 잘려나갔던 눈도 원상복구 되었다.
“죽여버리겠다.”
하지만 이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바로 오시안을 향한 노골적인 감정이 표정에서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표정이 없어서 얼굴이 고장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군. 더 보기 좋아.”
오시안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물론 강화인간들 입장에선 자신들을 도발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른 강화인간들이 나서려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우두머리가 외쳤다.
“다들 멈춰! 저 새끼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끼어드는 놈은,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
으르렁거리며 말하는 우두머리의 말에 다른 강화인간들이 다시금 뒤로 물러났다.
오시안이 그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차라리 여럿이서 덤비는 것이 나을 텐데?”
“너는 방금 큰 실수를 저질렀다. 기회가 있었을 때 나를 확실히 죽였어야 했어. 이젠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강화인간이 오시안을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괜히 이름에 강화가 붙은 것이 아닌지, 그 움직임은 날렵하면서도 표홀했다.
강화인간은 단 한 걸음으로 몸이 수 미터씩 쑥쑥 나가더니 오시안의 지척까지 삽시간에 도달했다.
그 속도는 적당히 가지고 놀려고 할 때보다 2배는 더 빨랐다.
그리고.
오시안은 그런 속도에도 반응했다.
번쩍!
오시안이 쥔 엘븐제 롱소드가 움직였다. 날카로운 예기가 강화인간의 손목을 재차 노렸다.
이번에도 저 손목을 잘라 주겠다는 목적.
캉! 소리와 함께 오시안의 검이 손목에 막혔다.
“흠?”
“내가 또 당해 줄 줄 알았나?”
강화인간이 히죽 웃었다.
오시안의 검을 막은 그 손목에는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재생하는 걸 보면서 느낀 건데, 정말 도마뱀이었나?”
“아직도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여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비늘로 뒤덮인 손으로 오시안의 검을 밀어낸 강화인간이 발차기를 날렸다.
맨다리로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리에도 날카로운 비늘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오시안이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의 코끝을 파충류의 다리가 훑고 지나갔다.
뒤로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오시안은 몸이 덜컥 떨리는 걸 느꼈다.
어느덧 그의 발목을 붙잡은 도마뱀 꼬리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시안의 검을 붙든 강화인간의 손바닥 위로, 새로운 손바닥이 다닥다닥 돋아나 그의 검신을 휘어 감았다.
보기만 해도 생리적인 혐오감이 절로 차오르는 광경.
“과연.”
오시안은 그제야 깨달았다. 왜 강화인간과 개조인간을 따로 구분하는지.
“처음 보는 순간 실험용 쥐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틀리지 않았군.”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보여 주는 수밖에.
오시안의 검에서 성광이 치솟았다. 모든 것을 불사르는 장렬한 백염(白炎)이 강화인간의 팔을 통째로 태워 버렸다.
특히 검을 쥔 손은 완전히 재가 되어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섬광으로 팔을 잘라낸 오시안이 튀어나온 꼬리도 가볍게 베어냈다.
강화인간이 눈을 부릅떴다. 상처가, 평소와 다르게 재생되지 않는다.
성광검의 고열로 상처를 지져 버린 탓이었다.
그는 빠르게 상처 부위를 억지로 절단해 재생을 재개하려고 했다. 오시안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보려 하지 않았다.
서걱.
그의 검이 다시 한번 휘둘러지며, 강화인간의 두 눈을 불태웠다.
“크아아악!”
시야가 가려지니 강화인간이 입을 벌리며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츄릅 거렸다.
그것만으로 오시안의 위치를 단번에 파악한 놈은 오시안에게 고개를 고정하며 전신에 비늘을 둘렀다.
비늘만이 아니었다. 등 뒤로 의복을 찢으며 호저와 같은 가시가 우수수 솟아났다.
“어디 한번 와 봐……!”
오라고 외치기도 전에 별빛이 춤을 췄다.
오시안의 칼은 가시와 비늘을 너무나도 부드럽게 갈라 버렸다.
잘려 나간 사지가 사방을 뒹굴고, 그 끝내 몸뚱이만 남은 강화인간이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어, 어떻게……. 내, 내가 하등한 인간에게 질 리가…….”
이 상황이 억울한지 무어라 말하려던 강화인간의 목이 툭 떨어졌다.
오시안은 깔끔하게 잘린 머리를 무시하며 다른 강화인간들을 응시했다.
놈들은 우두머리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당하자 놀라서 경악하고 있었다.
“놈이, 당했다고?”
“대체 어떻게?”
성격이 더럽다고는 하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일개 해결사에게 당했다.
그들이 그토록 열등하다고 깔본 인간에게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시안의 검이었다.
주변의 어둠을 밀어내듯 일렁이는 새하얀 검은 강화인간의 단단한 피부조차 버터처럼 손쉽게 갈라버렸다.
신묘한 검술도 마찬가지. 그들은 새하얀 빛의 궤적이 우두머리의 몸을 몇 번 휙휙 지나간 것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강화인간들은 상황판단이 빨랐다.
어리둥절하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론과 다르게, 그들은 곧바로 자세를 잡으며 오시안과 발루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발루드는 도끼를 고쳐 쥐었다.
자신과 가장 먼저 싸울 거라 예상한 여자 강화인간이 달려든 것이다.
“죽어!”
조금 전 여유는 어디로 갔는지, 목소리에는 표독함이 가득했다.
강화인간들은 무기를 쥐고 있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육체가 곧 흉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콰앙!
교차해서 막은 손도끼 위로 떨어지는 주먹. 그러나 위력이 상당해서 발루드의 몸이 크게 떨렸다.
“이걸 안 밀려?”
놀란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도 이걸 맞으면 뒤로 날아가는데, 발루드는 지면에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굳건히 버텼다.
꽈득.
재차 말아쥔 강화인간의 주먹 위로 바위가 둘러졌다.
콰앙! 쾅!
주먹이 수차례 손도끼를 때렸다. 발루드의 몸이 크게 출렁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빈틈이 드러난 순간, 발루드는 한쪽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고작 그따위 도끼 가지고!”
도끼가 노리는 곳은 강화인간의 쇄골 쪽.
강화인간 여인은 그 위에 단단한 바위를 둘렀다.
쩌억!
발루드의 도끼가 바위를 가르며 그대로 뼈를 부러뜨렸다.
“어?”
당황한 강화인간을 향해 발루드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도끼로 고작 바위 하나 못 갈라서야, 어찌 노스 블라인더스 이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강화인간의 몸에 힘이 쫘악 빠지며 다리가 풀렸다. 재생력이 먹히지 않았다.
‘피, 피부가 괴사하고 있어.’
바로 도끼에 어린 서리의 힘 때문이었다.
발루드는 안경 너머, 차가운 시선으로 강화인간을 응시했다.
“살…….”
“저는 당신처럼 비명을 듣는 취미는 없으니, 깔끔하게 보내드리죠.”
쩌억!
미간에 도끼가 박혔다.
곧바로 하나를 정리한 발루드를 향해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동료를 잃고 분노한 강화인간의 기습이었다.
명치를 맞고 튕겨 나간 발루드가 자세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끝도 없군요.”
발루드가 퉤 하고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자세를 잡은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것은 강렬한 번개였다.
파지지지직!
푸른 전류에 휘감긴 발루드를 본 일루아가 놀라서 외쳤다.
“발루드 씨!”
아무리 발루드라 하더라도 이건 위험했다.
저 정도의 공격에 당했다면 숯덩어리가 돼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루드는 죽지 않았다.
몸 곳곳에 그을린 흔적이 있고, 그가 걸친 옷도 군데군데 타서 피부가 드러났다.
화상을 입은 피부에 진물이 흘러내렸다.
작지 않은 상처였지만, 그 정도 공격에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화인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걸 맞고도 살아?”
“아아. 오랜만에 열이 받는군요.”
항상 깔끔하게 뒤로 넘겼던 발루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
“오늘 한번 푸닥거리 좀 해야겠습니다.”
야만전사의 모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발루드.
그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또 하나의 특성 [광포한 곰]이 발동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