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회피의 미학
맞으면 아프다고 말했지만, 오시안이 공격을 튼튼한 몸으로 때우지 않은 것은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안 맞을 수 있으면 안 맞는 게 최고니까.’
오시안이 플레이하던 게임은 아무리 체력을 높여도, 보스 몬스터에게 맞으면 소용없었다.
한 대만 맞아도 체력이 뭉텅 까이는데 맞딜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필드에 널린 일반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공격 패턴이 단순해서 그렇지, 만렙이라 하더라도 맞으면 체력이 많이 달았다.
그러다 보니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주로 필요한 것은 회피였다.
전조모션을 보고 어떤 공격을 할지 읽은 뒤, 패턴을 분석해서 공격을 피하거나 막는 것이 우선되었다.
그래서 이 게임에는 여러 이동기가 많았다. 히트박스 또한 아주 잘 구현되어 정말 기가 막힌 스킬의 모션으로 피하는 것도 가능했다.
오시안은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고, 그러다 보니 더욱 회피에 집중했다.
그게 일종의 버릇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무언가에 맞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금기시 된 경향도 있었다.
맞딜 또한 나름의 전투 방식이지만, 그러면 꼭 패턴을 분석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웠다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은가.
보스를 잡는데 한 대 맞았다?
그러면 그날 자존심 상해서 잠을 못 잤다.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클리어 하는 노히트 퍼팩트 게임.
그게 하드코어 유저들에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기도 했다.
질문: 님들. 저 67회차 보스 클리어 했어요. 잘 했죠?
-피가 달았네? 인정 못함.
-포션을 마셨네? 인정 못함.
-뭐야. 무기에 인챈트를 발랐어? 음식 버프도 먹었네? 구르기 평타로만 잡아야 하는거 모르냐?
-나 인정협회인데 이거 인정 못한다.
오죽했으면 하드코어 유저들을 지칭해서 인정협회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아무튼 인정협회에서도 [사람 아니야….] 인증마크를 받은 오시안으로서는, 공격이란 반드시 회피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서는 굳이 그런 인정을 바랄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지.’
물론 현실이 된 지금, 공격을 맞으면 실제로 통각이 느껴지기에 피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자신의 육체가 이 정도로 튼튼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 실험해 보겠다고 공격을 억지로 맞을 수도 없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총알이 날아오는 게 눈으로 보이고 칼로 베어낼 수 있으면 피하거나 막아야지, 그걸 몸으로 받아내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다만 조금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다.
아론의 기습은 효과적이었다.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던 그가, 설마 캡슐을 근거리에서 사용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오시안에겐 날카로운 감각이 있었다.
위험을 알려 주는 육감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아론의 기습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반응은 하고 있다. 다만, 더 큰 위험에 반응을 하고 있어서야.’
오시안은 그 이유를 알았다.
아론이 사용한 3성급 전격마법 캡슐보다도, 더 위험한 무언가가 이 유적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그의 감각은 유적 내부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려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캡슐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다.
‘더 큰 위험이 존재한다면 다른 작은 위험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건가. 이 감각이 꼭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었네.’
그렇다면 그 큰 위험이라는 것이 뭘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대답은 빠르게 나왔다.
‘유적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 혹은 아직 마주치지 않은 수호자.’
때마침 뒤로 생긴 벽을 살피던 발루드가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혔습니다.”
“괜찮겠나?”
오시안이 발루드에게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의 부하들과 떨어지게 된 것이다.
대부분 무기와 짐이 부하들에게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좋지 않은 징조였다.
고작 셋이서 이 유적을 탐험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으니까.
“안 괜찮다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이 근처 지형이 변해서 돌아갈 길도 막혔으니까요.”
“뭐가 됐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 그래도 일단 괜찮을 거예요. 식량이라든지 탐사에 필요한 재료 같은 것은 충분하니까요.”
일루아가 걱정 말라며 말했다.
아론 일행들이 지니고 있는 짐만 하더라도 상당히 값진 물건들이 많았다.
오히려 머릿수가 적으니, 셋이서 다 사용하기도 힘들 지경.
우선 굶어 죽거나 물이 없어서 죽을 일은 없었다.
“우선 움직이도록 하죠.”
“그 상태로 괜찮겠나?”
오시안이 발루드의 상태를 지적했다.
방금 전의 전투로 발루드의 옷 곳곳이 해지거나 찢어졌다. 상처야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발루드는 괜한 걱정이라며 자신의 옷을 툭툭 털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헤지고 더러워진 의복이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이었다.
“자동 수선?”
“한 조직의 이사이니 이 정도 고급스러운 물건 정도는 써 줘야죠.”
흰색 양복은 어느덧 핏자국까지 말끔하게 지워졌다.
자동 수선에 자동 클리닉까지. 옷 자체에 새겨진 마법의 힘이었다.
‘세월이 흐르니 저런 잡다한 마법도 다 나오는군.’
발루드의 깔끔한 성격을 생각하면 또 퍽이나 어울리는 의복이었다.
그걸 제외하고서도 자체 수복기능이 있는 의복은 상당히 좋아 보였다.
‘나도 돈을 벌면 저런 의복이라도 하나 맞출까.’
이 도시의 위상을 생각하면, 방탄 기능도 있는 의복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것도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겠지.’
오시안은 일루아와 발루드를 살폈다.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끝까지 가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걸.
“움직이도록 하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차례 싸움으로 주머니는 더욱 풍족해졌지만, 사람과 싸워야 한다는 경계심으로 마음의 여유는 더욱 줄었다.
그렇게 가던 도중 또다시 길을 마주했다.
양갈래 길이었고, 이번에도 보란 듯이 석판에 글귀가 적혀 있었다.
‘게임에서는 이걸 읽을 수도 없었고, 그저 배경 텍스처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된 지금, 이 석판의 글귀야말로 유적을 탐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발루드와 일루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시안을 향했다.
그 눈빛이 뭘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오시안은 다시금 석판에 시선을 던졌다.
‘이번에도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글을 눈에 담는 순간 자연스럽게 읽혔다.
처음부터 이 언어를 알고 있었다는 듯, 글을 읽는 순간 그 해석과 뜻이 머릿속에서 바로 떠올랐다.
“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곧 시련을 맞이할 것이다.”
오시안은 자신이 읽은 석판의 글을 그대로 번역해 주었다.
“그대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며, 그대들이라면 가장 강인한 자를 적으로 맞이하게 되리라.”
“조금 뜬구름 잡는 소리군요.”
발루드는 오시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일루아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대, 라고 말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단수에 속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명만 올 경우에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거죠.”
“그 뒤에 말한 문장은 여러 명이 왔을 때를 말하는 겁니까?”
“그럴 확률이 높아요. 그대들, 이라는 점에서 특히나 그렇죠.”
“가장 강인한 자를 적으로 맞이한다는 건…….”
“아마 여기 들어온 다수의 사람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을 적으로 삼는다는 모양 같아요.”
흠, 하고 팔짱을 낀 발루드가 의견을 냈다.
“제일 강한 아군이 적이 된다. 일종의 정신 지배 같은 것일지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또 이상해요. 혼자 들어올 경우에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요.”
발루드와 일루아의 시선이 오시안을 향했다.
마치 그쪽의 의견은 어떠냐는 눈빛.
하지만 오시안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기에 쉽사리 대답해 주지 못했다.
‘자기 자신이 적이 된다?’
게임에서는 읽은 적이 없는 문구다.
하지만 오시안은 무언가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와 비슷했던 것을 분명 겪었던 기억이…….’
기억을 더듬으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그때였다.
오시안과 발루드가 일루아의 앞에 서며, 한쪽 복도 너머를 응시했다.
“무, 무슨 일이죠?”
“누군가 온다.”
기척이 느껴졌다. 숫자는 꽤 많았다. 대략 스무 명 정도려나.
그렇다는 것은 이 유적의 수호자나 몬스터, 함정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일행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사람이라 하더라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저 너머에서 오던 사람들도 석판 앞에 서 있는 오시안과 발루드, 일루아를 발견하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불편한 침묵이 양쪽 사이를 맴돌았다.
‘아마 저쪽도 불안한 모양이겠지.’
이쪽이 고작 셋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의심이 들 것이다.
적은 숫자로 방심을 유도하고, 어디선가 숨어 있는 다른 이들이 기습을 가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 순간 후우웅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은 미약한 마력이었다.
‘탐색 마법?’
저쪽에 마법사가 있었다.
그들은 마법을 통해 주변에 적이 없는지 확인을 끝마쳤다.
‘좋지 않아. 이쪽이 셋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설마 마법사가 끼어 있는 파티였을 줄이야.
이쪽이 셋밖에 없다는 걸 알자 저쪽에서 두 사람이 걸어나왔다.
오시안의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레몬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남녀 한 쌍. 입구 근처에서 보았던 [그랜드 클로이스터] 소속 마법사 남매였다.
머리색만으로도 남매라는 걸 알았지만, 가까이서 얼굴을 보니 더 남매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눈매가 닮았다. 대신 얼굴에서 드러난 표정만 보면 성향은 반대처럼 보였다.
사글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와, 반대로 눈을 가늘게 뜨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남자.
오시안은 그들을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용무지?”
“너……!”
오시안을 알아본 것인지 남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시안은 그 반응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을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 아카데미생과 충돌을 빚은 기억이 없어서였다.
‘유일하게 마법사와 싸웠던 것은 골디런 가문에서 살라만 학파와 싸운 건데.’
그쪽은 학파고 저쪽은 아카데미 생도다.
엄연히 둘의 소속은 달랐다.
추측이 안 되니 오시안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나를 아나?”
“당연히 알지. 어째서 그녀는 너 같은 걸…… 읍!”
남자의 입을 막은 것은 여자 쪽이었다.
“아이 참. 오빠도 지금 뭘 하는 거야.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와?”
저쪽이 여동생이었구나.
“죄송해요. 저희 오빠가 성격이 워낙 그래서.”
“……아니, 상관없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탈리아 프로게넨. 이쪽 모지리는 저희 오빠 테렌스 프로게넨이에요.”
“푸하! 탈리아 너! 멋대로 남의 입을……!”
“조용히 하라니까!”
투닥거리는 남매의 모습 때문일까.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물론 방심은 하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행동했다가 갑자기 기습을 가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 너무 경계는 하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통성명 정도는 괜찮잖아요?”
“음. 그렇군. 내 이름은 오시안이다. 해결사이면서 기사지.”
“기…… 사요?”
탈리아는 오시안의 소개가 이해가 가지 않는지 머리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상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저는 발루드라고 합니다. 노스 블라인더스 소속 이사를 맡고 있죠.”
“저, 저는 일루아라고 해요. 고고학 연맹의 탐험가에요.”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정보라도 공유할까요?”
탈리아는 상당히 싹싹한 성격이었다.
마법사라고 하면 으레 거만하거나 그런 사상을 지닐 법도 한데, 그녀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친근하게 대했다.
정작 오빠인 테렌스 쪽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종일관 뚱한 얼굴이었다.
특히 오시안을 향해 힐끔거리며 곁눈질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마에 주름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은 다행인가.’
저들은 아무래도 다른 이들을 약탈하거나 하는 파티는 아닌 모양이었다.
마법사들 또한 아카데미 생도인 것도 한 역할을 했다.
사회의 때가 덜 탔다는 소리였으니까.
일루아는 상대 파티의 탐험가와 만나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교환했다.
어디에 무슨 함정이 있거나, 혹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말이다.
그중에서 역시 이들의 공통된 관심은 바로 하나였다.
이 유적의 수호자.
“수호자 때문에 벌써 한 파티가 당했어요.”
“하나가 아닙니다. 저희가 본 것을 합치면 둘이겠죠.”
“그, 그런…….”
“아무래도 이 유적의 수호자는 보통 강한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저희끼리 손이라도 잡는 것이.”
“저, 저희는 셋밖에 안 되는데…….”
“셋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전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좋아요.”
그렇게 서로 동맹이 체결되었다.
그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테렌스가 오시안을 향해 다가와 경고하듯 말했다.
“말해 두겠지만, 나는 너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아.”
“……궁금해서 그런데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뭐? 너, 설마 그 이유도 모르는 거냐!”
테렌스가 충격받았다는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오시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을 안 해주는데 어떻게 아는가.”
“이, 이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이 말은 더욱 역효과인 모양이었다.
테렌스가 분한 얼굴로 오시안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너, 너! 엘리제 데나로바를 모른다 하지 않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