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수호자의 정체 (2)
철그럭.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동시에 비릿한 피냄새가 퍼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 베어 넘긴 적들의 시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떠올랐다.
오시안을 그걸 보는 순간, 혹시나 하던 불안이 현실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저게, 수호자?”
발루드는 수호자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최소한 그가 지식으로 접한 수호자와 비교하면, 지금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많이 특이했으니까.
보통 수호자가 인간을 초월한 어떠한 존재임을 감안하면, 덩치도 크고 외형도 무섭게 생기거나 하는 경우가 파다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딱 사람 크기였다.
어디 그뿐인가. 모습도 사람을 닮았다.
“방심하지 마라. 놈은, 이 중에서도 가장 강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건, 나를 본뜬 녀석이다.”
오시안의 충격적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석판의 내용을 잊었나? 우리는 시련을 받을 거라고 했다. 그 시련은 사람이 다수가 모인다면, 가장 강력한 전사가 적으로 돌아선다 했지.”
“그 말은 설마…….”
일루아가 석판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유적의 수호자가 가장 강한 사람을 흉내 낸다는 건가요?”
“차라리 흉내만 내는 거라면 좋았으려만.”
오시안은 왜 이제야 저걸 떠올렸는지 작게 후회했다.
그 정도로 지금 나타난 유적 수호자는, 게임을 했던 사람으로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변종 도플갱어.
그가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마주한 무수한 보스 몬스터가 있지만, 저 녀석만큼 까다로운 적은 따로 없었다.
놈은 유저의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걸 흉내 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도플갱어라면 오히려 진짜의 하위호환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변종 도플갱어는 일반 도플갱어와 다르게 돌연변이라 불릴 정도로 특수한 개체. 녀석이 보스 몬스터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놈은 유저의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형태를 구현한다.
상대가 마법사면 마법사로.
상대가 기사면 기사로.
상대가 흑마법사면 흑마법사로.
그리고 지금.
저 변종 도플갱어는 이 유적에 들어온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의 힘을 얻었다.
바로 오시안이었다.
“잠깐만요. 그 말은 쉽게 넘기지 못하겠군요. 제일 강한 사람을 따라 했다면, 저를 따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당연히 마법사인 나를 따라 해야지!”
오시안을 따라 했다는 말에 발루드와 테렌스가 발끈하며 나섰다.
“아니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예요?!”
탈리아가 참지 못하고 지적했다. 남자들은 왜 이런 곳에서 서로 누가 최고인지 따지는 걸까.
그러는 사이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수호자가 일행들의 앞에 섰다.
이음매 곳곳이 불그스름한 빛이 맴도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얼굴에 착용한 투구의 틈새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고, 투구의 목덜미 아래로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기사의 체형은 여성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성이었다.
오시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특유의 직감이 뇌 속에서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스윽.
흑기사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이 어둠에 잠기기라도 한 것처럼 새까만 검이었다. 마치 흑요석을 깎아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을 쥔 흑기사의 안광이 강해지고.
화륵!
검에 별빛이 깃들었다.
오시안이 사용하는 순백의 별빛이 아닌, 보기만 해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검붉은 색이었다.
[살성검(殺星劍)]그것이 3m가량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며 유적의 벽에 닿았다.
치이이익!
유적의 벽이 고열에 견디지 못하고 주홍색으로 물들더니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녀석은 ‘변종’ 도플갱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순수하게 따라 하는 일반 도플갱어와 다르게 녀석은 뒤틀린 형태로 구현한다.
따라 하는 것은 오직 직업뿐.
그 외의 것은 ‘반대로’ 구현한다.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인 오시안이었기에, 녀석은 백색 머리의 여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반대로’ 구현하는 것이 스킬 쪽도 포함된다는 거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사제 직군과 마주할 경우가 그러했다.
사제는 보통 축복과 기도, 신성력을 이용해 화려한 빛과 금색 위주의 이팩트를 자랑한다.
하지만 변종 도플갱어가 변신한 사제는 그 반대다.
놈들은 보기만 해도 음울한 검은 기운과, 저주와 절망을 내리며 막대한 파괴를 자아낸다.
성기사도 마찬가지다. 변종 도플갱어는 성기사로 변하면 신성한 힘이 아닌, 불길한 피의 기운을 다룬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따라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그 모습을 보고, 유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불렀다.
직업이 반전된 존재.
흑화된 플레이어라고.
“다들 물러나라!”
오시안이 외치며 검을 뽑았다.
칼끝에서 백색과 하늘색이 뒤섞인 별빛이 솟구쳤다.
직후 수호자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검붉은 살성과 백색의 성광이 충돌하며 주변으로 빛과 함께 커다란 충격파를 뿌렸다.
오시안과 수호자가 딛고 있는 지면에 금이 쩍쩍 갔으며, 그 후폭풍만으로 일부 탐험가들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네 상대는 나다.”
오시안이 눈동자에서 별빛을 폭사시켰다.
수호자의 붉은 안광이 오시안을 응시했다. 이 순간 수호자도 가장 위험한 적이 누구인지 느낀 것이다.
수호자의 검을 튕겨낸 오시안이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손잡이를 쥐고 크게 휘둘렀다.
수호자도 지지 않고 검을 수평으로 세워 방어했다.
콰앙!
재차 폭발음이 울렸다. 오시안은 이대로 찍어 누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스탯 또한 나와 같다.’
힘도 민첩도 지구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킬의 경우에는 동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종 도플갱어가 사용하는 스킬이, 원본의 것보다 더 강하기까지 했다.
그야 당연했다. 놈은 포지션상 보스 몬스터다.
유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순수한 스펙은 당연히 녀석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처럼 유적을 입구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후문부터 들어가서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어.’
석판이 힌트를 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알아먹기 힘들었다.
그래. 다 의미 없는 변명이었다. 솔직히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기에 변종 도플갱어가 있다는 걸 알면 이쪽이 포기했을까?
어차피 들어올 사람은 들어올 거고, 변종 도플갱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 변했겠지.
‘게임 내에서는 녀석이 너무 강해서, 유저들이 꼼수로 사냥을 했었지.’
바로 보스룸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장비를 다 벗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보스는 유저와 같이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난다.
유저는 그 순간 장비를 다시 착용하면 되지만 한번 변한 도플갱어는 다시 변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무기가 없어서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는 도플갱어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달랐다.
보스룸이 따로 없으니 아마 유적의 어느 부분에 들어가는 순간, 놈이 알아서 침입자의 존재를 감지하고 변하는 형태이리라.
그걸 애초에 알 방도도 없거니와, 알았다고 해서 옷을 다 벗고 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오시안의 어깨 위로 별빛의 망토가 둘러졌다.
성광의 특성 중 하나인 [성운비단]이 발동했다.
그 모습을 본 수호자의 투구 속 안광이 빛나더니, 놈도 똑같은 기술을 사용했다.
오시안이 사용하는 찬란한 별이 아닌, 죽음의 별빛이 말이다.
[흑성남루(黑星襤樓)]검은 별의 누더기라는 뜻.
목 부근에 화려한 깃털까지 치장된 오시안의 것과 비교될 정도로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흉포해 보였다.
콰과과광!
새하얀 망토와 검은색 망토가 허공에서 뒤엉켰다.
두 망토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급소를 노리며, 그 사이에서도 두 사람의 검이 충돌했다.
그 싸움에 질린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저건 어떻게 끼어들 수 있는 전투가 아니었다.
오시안이 저렇게 강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반대로 수호자가 내뿜는 죽음의 힘에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정신 차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테렌스였다.
그는 여동생인 탈리아에게 외쳤다.
“탈리아! 사람들을 데리고 피신해!”
“하, 하지만……!”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개죽음밖에 되지 않아! 어서!”
테렌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탈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마법사들을 지휘했다.
테렌스는 오시안과 수호자의 싸움을 응시했다.
강하다. 남이 싸우는 걸 보면서 이렇게 경외심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뭡니까. 도망치지 않은 겁니까?”
“그러는 그쪽은.”
떠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발루드였다.
테렌스가 왜 그쪽은 가지 않았냐고 쏘아붙이자 발루드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저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요.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 봤자 부하들을 볼 면목도 없지 않습니까.”
“흥. 범죄자치고는 제법 정신머리가 박혀있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애송이 마법사 주제에 꽤 강단이 있군요.”
테렌스와 발루드는 이 순간 무언의 합의를 했다.
그러는 사이 힘 싸움에서 밀린 오시안이 뒤로 살짝 물러났다.
“으음. 역시 정면에서는 힘든가.”
오시안은 손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스탯은 같아도 스킬의 출력이 다르다.
방랑기사의 스킬은 모든 직업 중에서 최강의 대인전을 자랑했는데, 변종 도플갱어의 것은 그보다 반 계단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특히 저 살성검의 위력은, 성광검이라 하더라도 정면에서 승부를 피해야 할 정도였다.
오시안이 살짝 물러난 사이, 수호자가 검을 고쳐 쥐며 자세를 취했다.
검에 깃든 죽음의 별이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그 순간 싸늘한 냉기의 파도가 수호자를 집어삼켰다.
쩌저저저적!
냉기가 휘몰아치며 지면에서 얼음의 송곳이 솟구쳤다.
야만전사의 스킬 중 하나인 [서리의 파도]였다.
상대방을 삽시간에 빙결시켜 버리는 기술이었지만 수호자에겐 어림도 없었다.
수호자가 착용한 검은 망토가 저절로 움직이며 서리의 파도를 비롯한 얼음 송곳들을 막아냈다.
퍼석!
단단한 얼음 송곳들이 칼질 한 번에 부서지거나 녹아내렸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처음부터 시간을 벌기 위함.
그다음이 진짜였다.
“다들 물러나!”
3성 화염마법 체인 데토네이션이 발동했다.
‘저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오시안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테렌스가 오른손으로는 불을 일으키며 왼손으로는 다른 마법을 발동했다.
바람속성 3성 마법.
[토플 스퀄(topple squall)]연속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불시의 위로 바람이 덧대어졌다.
원래도 강렬했던 폭발이 순식간에 몇 배나 거대해지더니 공간 일대를 집어삼켰다.
퍼버버버벙!
뜨거운 불꽃이 폭발하며 그 속에서 산소가 연소되고 주위로 열기를 흩뿌렸다.
오시안조차도 조금 더 뒤로 물러나야 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었다.
‘동시에 2개의 마법을 사용해?’
오시안이 다시 봤다는 시선으로 테렌스를 바라봤다.
테렌스는 조금 지쳐 보였지만, 딱히 크게 무리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걸 동시에 펼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저 나이에 이 정도의 마법이라면, 분명 보통 재능이 아닐 터.
‘설마 저 녀석.’
오시안이 그런 생각을 품는 사이, 테렌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공간 너머, 검은 그림자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미친 괴물이냐? 그걸 맞고도 멀쩡해?”
테렌스는 웃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며 다음 마법을 펼쳤다.
테렌스가 발을 가볍게 툭 굴렀다. 수호자가 딛고 있는 지면의 한쪽이 푹 꺼지며 수호자의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순간 허공에서 번쩍이는 불똥과 함께, 수호자의 정수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꽈르르릉!
‘가이아 학파의 대지 마법에 이어 토난스 학파의 번개 마법까지?’
벌써 사용한 것만 해도 4가지 속성이다. 여기서 다른 속성을 더 사용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저 녀석 역시.’
오시안은 테렌스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부터 비범하다고 느꼈지만, 저 녀석 또한 영웅급 재능을 지닌 마법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해서 기뻐할 틈이 없었다.
번개에 직격당한 수호자가 아무렇지 않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어디 그뿐일까.
스르륵.
수호자의 머리 위로 달이 떠올랐다. 그것은 푸르도록 시린 만월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만월의 한쪽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초승달처럼 변한 달이 음울한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붉은 날에서 핏방울 하나가 수호자의 투구 위로 똑 떨어졌다.
그 방울이 떨어진 곳부터 해서 수호자의 검은 갑주가 삽시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튼튼한 중세 갑옷같은 디자인이, 마치 남부 사막의 무희가 입을 법한 하늘하늘한 형태로 바뀌었다.
한쪽 손에 쥐고 있던 검붉은 검이 어느덧 두 자루의 붉은 차크람으로 변했다.
“이런 미친 이건 또 뭐야.”
테렌스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핏빛 기운이 일렁이는 차크람을 쥔 수호자가 자세를 취했다.
[월식검(月蝕劍)] [신월무희(新月舞戱)]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