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유적의 보물 (1)
부러진 칼날이 바닥을 뒹굴었다.
태양의 힘은 이미 사라지고, 칼날은 원래의 흑요석 형태로 돌아가 있었다.
오시안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수호자는 자신이 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로 부러진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후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한 것은 결국 오시안이었다.
유리한 고점을 점할 수 있었는데도 오시안은 불리한 상황에 몸을 던져 가면서까지 싸웠다.
미련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지식한 판단이었다.
그런데도 수호자는 패배했다.
입이 열 개가 있더라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오시안은 그런 수호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녀석은 부상을 입어서 이대로 놔둔다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목숨이 다할 수호자를 상대로, 굳이 검을 더 휘두를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고 녀석 또한 기사라면, 자신의 패배가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을 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지.’
검을 나누다 보면, 대화로도 느낄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었다.
스르릉. 탁.
오시안은 허리춤에 검을 다시 꼽았다.
마지막으로 수호자의 최후를 지켜보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수호자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벽을 밟고 그대로 유적의 무너진 천장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응?”
그건 오시안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호자가 도망쳤다.
유적을 지키는 수호자가 침입자를 상대로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오시안에게 더 큰 충격을 준 점은.
그래도 꼴에 기사인 녀석이 무기까지 버려 가며 도망쳤다는 사실이었다.
‘기사가 여기서 도망을 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놀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오시안이었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허.”
허탈한 그 한마디가 오시안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해 주었다.
그때 멀리서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던 테렌스와 발루드가 다가왔다.
“설마, 정말로 수호자를 쓰러뜨린 거야? 그 괴물을?”
테렌스는 멀쩡하게 서 있는 오시안을 보며 놀라서 물었다.
“내가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나? 최대한 멀리 도망쳤어야지.”
“어차피 당신이 죽으면 우리도 그다음 목표가 될 텐데, 도망가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발루드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무너진 천장의 일부를 응시했다.
“그보다…… 수호자가 도망을 친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처음 알았군요. 보통 수호자는 유적이나 던전을 죽을 때까지 지키는 존재였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건 오시안도 동감하는 바였다.
수호자는 유적을 지켜야 하는 존재인데 졌다고 자기 살겠다고 도망을 치는 경우가 어디에 있을까.
세월이 흘러서 무언가 변했다고 치부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경우였다.
‘녀석에게 지성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수호자의 의무를 때려치울 정도의 자아까지 생겨 버린 건가.’
아마 본인이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생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은 이 순간부터는 수호자가 아닌 살아있는 지성체라 봐도 무방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기사의 힘을 지닌 존재가 탄생하고 말았다.
*
이미 도망친 수호자를 두고서 떠들어 봤자 바뀌는 건 없었기에, 오시안은 당장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싸우면서 얻게 된 것은 있다.’
우선 [성광]과 [월흔]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전에는 성광만 사용할 때는 성광만, 월흔을 사용할 때는 월흔만 썼다.
게임 내에서는 다른 특성의 기술을 동시에 펼치는 게 불가능했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달랐다.
‘너무 게임의 지식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조금 더 넓고 다채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것만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다양성과 폭이 넓어졌다.
마지막에 사용한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월흔을 통해 극한까지 압축한 검을 휘두르면 어떨까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용한 기술.
주어진 기술이 언제 해금될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즉석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유로운 상상력.’
앞으로 있어서 새로운 활로가 되어 줄 그만의 열쇠.
‘그래도 얻은 게 있으니 나쁘지는 않네.’
다시 일행과 합류하게 됐을 때, 오시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못 달라져 있었다.
원래는 그냥 형식상 파티원 취급을 해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눈빛부터 경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자신들은 엄두도 못 낼 수호자를 단신으로 격파했다는 사실에, [그랜드 클로이스터] 아카데미 생도들은 오시안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이전까지 은근 해결사라고 깔보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테렌스가 직접 증언을 해주기까지 했으니 그럴 수도 없는 상황.
덕분에 오시안은 이 파티 내에서 귀족 취급을 받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오시안의 고용주인 일루아 또한 위상이 올라갔다.
“어, 뭔가 적응이 안 되네요.”
일루아는 자신에게 급격하게 친절해진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원래도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은 무슨 상전 취급을 받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대우는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익숙해져라.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테니.”
오시안이 수호자를 쓰러뜨린 덕분이라 해야 할까.
향후 이 유적에서 얻을 유물과 보상에 대한 일루아의 분배율이 거의 절반 넘게 육박하게 되었다.
그녀가 한 거라고는 오시안을 고용한 것이 전부였지만.
뛰어난 사람을 고용하는 것 또한 고용주로서의 덕목이자 능력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일루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풍부한 고고학 지식과 다양한 서적, 논문을 바탕으로 유적의 함정과 길, 숨겨진 공간을 찾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마법사야 마법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일루아가 그걸 해냈다는 점에서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탐사는 계속됐다.
처음엔 가득했던 긴장감이 지금은 꽤 풀어진 상황.
수호자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저 정도로 강한 수호자가 없어진 이상, 유적 내부에 그들의 목숨을 위협할 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호자가 또 나온다는 걱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여기엔 수호자를 단신으로 쓰러뜨린 사람이 떡 하니 있는데.
물론 당사자인 오시안 또한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유적의 메인 보스는 변종 도플갱어야. 최심부에 다른 보스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도플갱어와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지.’
게다가 변종 도플갱어야 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동면 상태에 빠져 있었기에 세월을 빗겨 나갔다고는 하지만.
이 유적의 최심부에 있는 보스의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보였다.
‘아마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긴 한데, 그래도 최소한 약해져 있기는 하겠지.’
탐사대가 마침내 최심부의 입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석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본래라면 문 양옆의 레버 장치를 가동해서 열어야 했지만, 장치가 삭아서 가동되지 않았다.
“이러면 문을 부숴야 하나.”
테렌스가 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다른 탐험가들이 극구 말렸다.
“자칫 잘못했다가 안쪽의 유물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게다가 이 문 자체도 고고학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습니다. 굳이 부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테렌스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문을 어떻게 연단 말인가?
그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결론이 났다.
바로 오시안과 발루드가 나서면서였다.
“여기까지 와서 힘 자랑이라니.”
“힘 자랑이라도 해야 뭐라도 먹지 않겠습니까.”
오시안과 발루드가 각기 석문의 한쪽을 맡은 뒤, 있는 힘껏 밀었다.
드드드드득.
오래된 석문이 굉음을 내면서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났다.
마법사들과 탐험가들은 그 광경을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시안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저 신체능력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런 오시안과 대등한 힘을 보여 주고 있는 발루드는 또 어떻단 말인가.
톤 단위의 석문을 밀어내는 것만 봐도 발루드도 보통 강자가 아니었다.
노스 블라인더스를 그냥 범죄조직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새삼 다시 보게 됐다.
오래된 먼지가 부스스 떨어지며 문 주변에 자욱하게 퍼졌다.
테렌스가 그걸 벤투스 학파의 바람 마법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먼지가 가라앉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회랑이었다.
“오오. 이런 건축 양식이라니.”
“지하에 이런 걸 짓고도 아직까지 멀쩡하다니. 고대인들의 건축 기술은 역시 우습게 볼 게 못 되는구나.”
고고학자들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건 일루아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서 조사하고 싶어요!”
오래된 회랑 곳곳에는 마른 나무 뿌리와 줄기가 가득했다. 지하에서만 자라는 식물인 걸까.
퀴퀴한 냄새조차도 그 어떤 향수보다 감미롭게 느껴졌다.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에 일루아는 기쁨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
이거라면 병상에 계신 아버지도 분명 기뻐하시리라.
“다들 방심하지 마라. 이곳에 또 다른 위험요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시안의 말에 마법사들이 곧바로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회랑 전체에 퍼지는 마력의 파동.
마법사들은 이윽고 회랑의 어둠 너머, 무언가의 존재를 감지했다.
“무언가 있다.”
테렌스의 말에 사람들이 곧바로 태세를 정비했다.
고고학 연맹의 탐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유적의 위험을 피부로 절실히 느꼈기에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다.
드르르륵.
무언가 몸을 이끄는 소리와 함께 유적의 마지막 수호자가 움직였다.
사실상 보스 몬스터라 불리는 녀석은, 이 회랑에 들어온 침입자의 존재를 진작에 눈치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나무로 이루어진 무언가였다.
“대체 왜 지하 유적에 식물이 자라나 있다 했더니, 저런 녀석이 지키고 있었던 거야?”
살아 움직이는 나무의 모습에 탈리아가 놀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놈은 몸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마치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팔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는 똑같이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둔기를 쥐고 있었다.
머리라고 추정되는 대충 뭉뚱그린 줄기 뭉텅이에는 눈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쪽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녀석이로군. 지하뿌리의 화신.’
지하뿌리의 화신은 이곳 유적의 마지막 수호자이자 보스 몬스터로, 유적에 내린 뿌리에서 태어난 몬스터였다.
‘그래도 식물이라 세월에 영향을 적게 받은 건가. 하지만 상태를 보면, 완전히 멀쩡한 것도 아닌 모양이고.’
지하뿌리의 화신은 적을 발견하는 순간 둔기를 양손으로 쥐고 쿵쿵 달려오고는 했다.
하지만 녀석은 둔기를 한 손으로 든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육체를 구성하는 나무 곳곳이 삭아서 움직일 때마다 부서진 조각들이 먼지와 함께 흩날렸다.
침입자가 찾아왔으니 움직이기는 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육체 자체가 삭아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을 잡으면 뭘 줬더라.’
대충 기억하는 걸로는 소량의 돈과 함께 포션병을 강화할 수 있는 재료템을 주었다.
다만 지금 세상에서는 포션병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 재료템이 무슨 쓸모가 있나 싶었다.
‘사실상 잡더라도 뭘 주지 않는다 봐야겠네.’
화신을 상대로 굳이 오시안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미 마법사들이 놈을 보는 순간, 마법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염 마법이 어두운 회랑을 주홍색으로 물들였다.
뜨거운 열기가 기둥의 줄기와 뿌리를 모조리 태워 버리며 화신을 집어삼켰다.
화신은 그 몸이 나무로 이루어졌기에 화염 속성에 극도로 취약했다.
게다가 이곳에 모인 마법사는 고작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일제히 쏟아붓는 열기에 화신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온 화신이었지만, 약해진 상태라 싸움에는 무력했다.
화신을 처리하고 회랑을 살핀 일행들은 더는 수호자나 몬스터가 남아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그 말에 사람들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즉, 지금부터는 유적에 숨겨져 있는 유물과 보상을 챙길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보물이라.’
오시안이 손으로 턱을 가볍게 쓸었다.
‘혹시, 그것도 남아 있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