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블라섬 티어 (1)
‘이게 되네.’
나는 내가 하고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칼질 몇 번으로 마법을 베어 버리다니.
‘아니. 이미 칼 잭슨이 사용한 마법을 베기는 했는데.’
그거야 [골격창]은 뼈니까 잘라낸 거고, 매연 같은 건 검풍으로 가른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림자를 칼로 자르다니?
물론 진짜 그림자는 아니고,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일 뿐이지만.
칼질로 이게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 인게임 PVP에서는 이런 게 불가능했는데.’
기본적으로 게임은 1인용 RPG지만, 다른 유저들의 세계에 들어가거나 혹은 그 유저를 내 세계에 부르는 온라인 모드는 가능했다.
만나면? 당연히 서로 채팅으로 수다를 떨거나 함께 던전을 돈다.
하지만 역시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역시 플레이어들끼리의 대결, 즉 PVP(Player Versus Player)다.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답게 PVP에서도 높은 순위를 자랑했다.
방랑기사 PVP랭킹 1위.
딱히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놈은 못 만나봤다.
‘PVP도 엄청 했었지.’
그것도 꽤 즐거운 추억이었다.
문제는, 나중에 소문이 퍼진 건지 초대를 해도 아무도 내 세계에 오지 않았다는 거려나.
그래서 남의 세계에 멋대로 쳐들어가서 다 썰어버리기도 했다.
억지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꽤 많은 패널티를 짊어져야 하는데, 나는 그 패널티를 짊어지고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재미없어서 오래 안 하고 그만뒀지만.’
아무튼 PVP에서 마법사를 상대할 때, 기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직 2개뿐이었다.
막거나 피하거나.
막는 것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마법은 방패로 막아도 체력은 깎인다. 게임 수치상 저항률 100%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마법사를 상대로는 열심히 움직여서 공격을 피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 새로운 방법이 가능해졌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던가.’
그거 마음에 든다.
나는 눈앞의 흑마법사를 향해 칼끝을 까닥였다.
*
오시안의 도발에 흑마법사가 반응했다.
무미건조하던 그 목소리에 조금은 힘이 들어갔다.
“……제대로 가겠습니다.”
흑마법사가 손에 쥔 스태프를 들어 올리더니 이윽고 바닥을 쿵 찍었다.
촤르륵!
방금 전과 같이 흑마법사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오더니 오시안을 향해 덮쳐들었다.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그림자의 손길은 얼핏 밀려오는 파도 같았지만.
‘예상 범주 내야.’
오시안에겐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시안은 다가올 그림자의 손을 향해 검을 휘두를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서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림자의 손이 변화를 보였다.
푸확─!!
거대한 손이 2개로 갈라졌다.
‘늘어났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개로 갈라진 그림자의 손은 4개로. 4개는 다시 8개로.
그림자는 분열한 만큼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 숫자는 눈대중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마치 풀어놓은 실타래처럼 퍼진 그림자가 오시안의 주위를 에워쌌다.
흑마법사는 일부러 검의 사거리에 도달하기 전에 타이밍을 맞춰서 손을 분열시켰다.
그 찰나의 순간 오시안의 검의 사거리, 그 속도를 분석한 것이다.
그림자가 이윽고 거미줄처럼 오시안과 칼 잭슨을 뒤덮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동그랗게 감싸며 고치의 형태로 묶기까지 했다.
흑마법사는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고치를 손대지 않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
잠시 뒤 저 고치 안에서 기절했을 해결사를 내버려둔 뒤 칼 잭슨을 회수하면 임무는 그걸로 끝.
흑마법사는 그림자로 뒤덮인 고치를 향해 다가갔다.
직후 흑마법사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머리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다.
“……?”
스스로가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었지만, 직후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그 행동은 정답이었다.
쩍! 검은 고치가 쪼갠 장작마냥 세로로 갈라졌다.
그 안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오시안을 보며 흑마법사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어떻게?”
닿기만 해도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패닉에 빠뜨리는 공격인데, 거기에 갇히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정신력이 보통 강인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오시안은 정신력을 수치상으로 99까지 최대로 찍었기에, 이런 공격에는 거의 면역에 가까웠다.
콰앙!
오시안의 상체가 살짝 숙여지더니 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그의 신형이 사라진 직후,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땅이 쿵 울리며 먼지 구름이 치솟았다.
초월적인 각력은 둘 사이의 거리를 찰나에 좁혔다.
오시안이 검이 번뜩이며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흑마법사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겼다.
오시안이 그렇게 확신을 한 순간이었다.
카앙!
‘음?’
검이 무언가에 막히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흑마법사가 쓰고 있는 염소 뼈 가면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어 마법진? 단순한 가면이 아니라 아티팩트였나?’
가면의 뻥 뚫린 동공을 통해 안쪽이 안 보인다 싶어서 무언가 마법적인 처리를 했다고 생각은 했다.
설마 거기에 더해 방어마법까지 새겨놓았을 줄이야.
힘을 빼서 휘둘렀다 해도 이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감안하면 막아낸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흑마법사는 그 타이밍에 재차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다.
이쪽이 빈틈을 보였으니 그것을 비집을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나 오시안은 그 뻔히 보이는 속내에 당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시안은 밀려나려는 검에 힘을 줬다. 카가가각! 마법진과 검날이 마찰하더니 이내 마법진을 베어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칼날이 뼈 가면까지 닿았다.
서걱─.
반 토막 난 마법진과 함께 뼈 가면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얕았다.
가면만 잘라냈을 뿐 흑마법사는 아직 멀쩡했다.
휘둘렀던 검을 회수한 뒤 다시 내지르려는 순간 오시안은 자기도 모르게 검을 멈추고 말았다.
뼈 가면이 잘려나가며 안에 있던 흑마법사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가면 안의 흑마법사는 여자였다.
인형 같은 외모에 은발을 지닌 그녀는 귀족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귀티가 났다.
체구가 작아서 늙어빠진 노인네라고 생각했던 오시안에겐 꽤나 큰 충격이었다.
‘아니 요즘 시대는 이런 꼬맹이가 흑마법을 배운다고?’
오시안은 자신이 보았던 흑마법사들을 떠올렸다.
게임 속에서 흑마법사들은 으레 음침하고 기괴하게 생긴 녀석들만 가득했다.
개중에는 여자 흑마법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경우도 뭐라 해야 할까, 딱 봐도 흑마법사 하게 생겼다.
무슨 의미냐면 끔찍할 정도로 못생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기절한 소녀는 아무리 나쁘게 보려 해도 흑마법사답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직업 차별이겠지만, 눈앞의 흑마법사는 오시안의 관상학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존재였다.
‘보통 게임에서 이 정도 외모의 NPC였으면 스토리상 무조건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오시안의 검에 찰나의 망설임을 주었다.
“정지! 멈춰!”
그때 골목길 너머에서 황급히 달려온 로레인이 오시안을 향해 외쳤다.
로레인은 오시안이 검을 휘두르기 직전인 모습을 보며 거의 영혼이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저 사람. 흑마법사 노동조합 출신 아닌가? 아무리 업무상 충돌한다 해서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자였다.
“운이 좋았군.”
오시안은 흥이 식었다는 듯 허리춤에 검을 꽂아 넣었다.
상대도 딱히 이쪽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옛날에는 흑마법사라 하면 그냥 죽여도 됐는데.’
사실 지금도 그의 몸은 검을 휘두르고 싶어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흑마법사라는 이름이, 그의 육신에 깊게 각인된 [기사도]를 건드리고 있어서였다.
다만 오시안의 이성은 현대인의 것이었기에, 상대가 흑마법사라 해서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려 하진 않았다.
“후우. 흑마법사는 안 건드린 거 맞지?”
“보다시피. 그보다 왜 이렇게 늦은 거지?”
오시안이 로레인을 힐책하듯 물었다.
로레인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늦기는 무슨. 이쪽은 쉬지도 않고 발에 땀 나도록 뛰었는데 뭐가 늦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따지려던 로레인은, 이미 쓰러져서 기절한 칼 잭슨을 발견하고는 입을 합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잡았네?”
“그럼 가짜로 잡는 경우도 있나?”
“게다가 저기 쓰러져 있는 저 흑마법사…….”
로레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아는 사이인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아는 얼굴이야.”
“꽤 유명한가 보군.”
“유명? 그런 수준이 아니야. 엘리제 데나로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흑마법의 천재야.”
“흑마법의 천재?”
“젊은 나이에 벌써 4성급 흑마법사이면서, 흑마법사 아카데미의 수석이기도 하다고!”
“잠깐. 흑마법사 아카데미라니?”
오시안이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었다는 듯 물었다.
“흑마법사 아카데미는 당연히 흑마법을 가르치는 대학교지. [칼리고 비블리오]라고 못 들어봤어? 엄청 유명하잖아.”
“……혹시 여기 갱단 아카데미 같은 곳도 있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어? 뭐 깡패 육성이라도 하게?”
흑마법사 아카데미를 들은 내 기분이 지금 딱 그러거든.
오시안 갈 곳 잃은 그의 시선은 엘리제라는 흑마법사를 향했다.
어느새 깨어난 엘리제는 멀뚱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레인도 그 투명한 시선을 느꼈는지, 오시안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괜찮은 거 맞지? 혹시 다치게 했다거나 한 거 아니고?’
‘칼을 휘둘렀는데 가면이 잘 막아 줬으니 다친 곳은 없겠지.’
‘뭐? 이 미친……!’
로레인은 화를 내려다 생각에 잠겼다.
‘아니 4성급 흑마법사를 어떻게 이긴 거야?’
아무리 뮤턴트라 해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상태를 보아하니 오시안이 기습을 가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쓰러진 칼 잭슨과, 주위에 새겨진 흑마법의 흔적까지.
이미 한 바탕 전투를 겪은 것이 맞았다.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녀석이야?’
로레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오시안을 응시할 때였다.
골목길 한쪽이 어수선해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가 떡 벌어진 덩치들에, 전부 상당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오시안과 로레인은 그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 저놈들. 일 다 끝나니까 모습 드러내는 거 봐라.”
로레인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블라섬 티어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해결사인가?”
고압적인 말투와 이쪽을 깔보는 듯한 시선.
이쪽을 아래로 본다는 걸 전혀 숨길 생각이 없었다.
로레인은 살짝 욱했지만 참았다. 오시안이 가만히 있어서였다.
“해결사 되냐고 물었다.”
“그렇다.”
일단 이번 임무를 수주한 것이 자신이었기에 오시안이 그렇다고 답했다.
기업에서 나온 팀장은 오시안을 보며 ‘이 자식은 뭐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쪽에 숙이지는 못할망정 당당하게 반말로 나서니 적잖게 당황한 것이다.
그의 시선이 오시안의 모습을 발끝부터 머리까지 스윽 훑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운이 좋았나?’
오시안의 복장은 아무리 봐도 흑마법사와 싸우기 적합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가죽바지에 와이셔츠, 그리고 조끼를 걸쳤을 뿐이다.
화살받이로 영입한 해결사가 설마 도망친 칼 잭슨을 사로잡다니.
‘칼 잭슨은 3성급 흑마법을 담은 캡슐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 팀만으로는 무리라 판단했는데.’
그렇기에 회사 측에서는 캡슐을 대신해서 ‘소모’시켜 줄 해결사를 먼저 보낸 거였는데.
그 해결사가 덜컥 의뢰를 성공해 버렸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판단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칼 잭슨은 이만 우리가 데려가도록 하지. 보수는 곧바로 중개인을 통해 보내겠다.”
팀장의 뒤에서 부하들이 기절한 칼 잭슨을 데려가려 했다.
오시안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지?”
팀장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오시안을 노려봤다.
오시안은 그런 팀장을 향해 말했다.
“우리 아직 계산해야 할 게 남아 있지 않았던가?”
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