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업계 선배 (2)
생각해 보니 바이올렛 폭스에서 만난 해결사는 로레인밖에 없었다.
정작 그 로레인은 선배로서 괜찮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뭐, 왜.”
오시안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로레인이 과민하게 반응했다.
오시안은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롤랑에게 물었다.
“그래서 만나면 인사라도 해야 하나?”
“아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겁니다만.”
로난은 조금 난처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오시안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2층 계단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한 사람이 계단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너냐?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엄청난 신입이!”
귓가를 크게 울리는 야성미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오시안은 자신을 응시하는 호박색 눈동자를 보며 상대방을 살폈다.
체구가 꽤 건장한 미청년이었다.
피부는 갈색. 오랜 야외생활을 통해 태운 것이 아닌 선천적인 피부색으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피부색보다 더 어두웠다. 약간 갈색기가 도는 부분에서 흑발인 오시안과 차이점이 있었다.
새하얀 치아 사이로 언뜻 보이는 송곳니가 그의 야성을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하나 잡아끄는 것이 있었으니, 다리에 착용한 부츠였다.
유일하게 저것만 오래되어 꽤 헤져 있었는데, 상당히 아끼는 신발 같았다.
“소문은 들었어! 그 선혈 형제단 녀석을 혼쭐을 내 줬다면서? 엄청나게 강한 모양이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오시안을 향해 손가락을 척 가리켰다.
“한판 붙어 보자!”
“…….”
오시안이 이게 대체 뭐냐는 시선으로 로난을 돌아봤다.
로난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봐! 내 말 안 들려? 누가 더 강한지 승부를 내자고!”
“디올란 씨?”
로난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갈색 피부의 남자, 디올란을 응시했다.
“초면에는 예의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않으면 제가 곤란하거든요.”
그 미소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압박감에 디올란이 어버버거렸다.
“조용히 해 주실 거죠?”
“아니, 그게…….”
“이런. 아무래도 제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디올란 씨. 제가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말은 부탁이라고 했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야생의 늑대처럼 굴던 남자는 삽시간에 강아지처럼 쪼그라들었다.
“후후. 감사합니다. 역시 디올란 씨와는 말이 잘 통한단 말이죠.”
말이 통한다고? 협박이 아니고?
오시안이 그 광경을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로레인이 추가로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 이 녀석은 디올란이야. 바이올렛 폭스 소속 해결사고 일단은 업계에서 꽤 이름 날리는 녀석이지. 나보다도 먼저 들어왔어.”
“그쪽의 선배였나?”
“그래. 전혀 안 그래 보이지? 보다시피 이 녀석, 완전히 천방지축 날뛰는 놈이라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거든.”
“아니 내가 언제…….”
억울함에 뭐라고 따지려던 디올란은 로난이 다시 지그시 바라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야말로 인간상성이 따로 없었다.
로레인보다 업계 선배라면 이곳에서 일한 지 꽤 됐을 텐데 이런 취급이라니.
‘하지만 다부진 몸 봐도 보통 단련을 한 것은 아닌 걸 알겠어. 무기는 따로 없는 모양이고, 총은 안 쓰는 건가?’
이 도시에는 마법사, 흑마법사, 뮤턴트, 아인종 등 워낙 많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저렇게 보여도 마법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확인해 보자! 그 소식 정말이야? 무려 그 선혈 형제단을 쓰러뜨렸다면서?”
디올란이 호박색 눈동자를 빛내며 오시안을 응시했다.
그 눈빛 안에는 강자를 향한 호승심이 담겨 있었다.
초면에 한판 붙어 보자고 말을 했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매우 호전적인 성향이 분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쓰러뜨린 건 아니고 녀석이 도망쳤지만 말이야.”
“그것도 대단한 거 아니야? 그것도 칼 한 자루로 상대했다며! 혹시 무슨 특별한 아티팩트라도 쓴 건가?”
“그냥 평범한 검이다.”
오시안은 그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기대감으로 가득 찬 디올란의 표정이 이내 황당함으로 뒤덮였다.
“부러졌는데?”
“부러졌지. 싸우다 보니 내구도가 다 했더군.”
진짜로 평범한 철검이라고?
디올란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부러진 검을 응시하다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무기가 그래서야 아쉽게 됐네!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는데!”
디올란은 초면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호기롭게 외쳤다.
그때 옆에서 로난이 디올란을 지그시 응시했다.
“……농담이었어.”
로난에게는 꼼짝도 못 하는군.
이해는 한다. 로난은 오시안이 보기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언제 갑자기 뒤통수를 때릴지 모르는 배신자의 상이 아닌가.
그런 로난의 아래에 모인 해결사 사무소라.
다른 해결사들은 또 얼마나 특이한 놈들이 있는지 이쯤 되면 호기심마저 들었다.
“계속 서 있는 것도 그러니 다들 자리에 앉을까요.”
로난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게 원형 테이블에 네 사람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디올란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합석한 꼴이 됐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미 소식을 전해들은 로난이지만, 그래도 사건의 당사자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것만은 못하다는 걸 안다.
오시안은 자신이 그날 겪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갱들을 제압해 나가던 도중 다베르가 습격을 했고, 그가 군부에서 탈취했던 테슬라 암즈를 사용했다고.
“테슬라 암즈라니.”
그 부분에서 로난은 솔직하게 놀랐다.
“그게 뭔데?”
디올란이 산통을 깼다.
다만 그 얼굴은 정말로 모르는 기색이 가득했다.
로레인이 가자미눈을 뜨며 말했다.
“기업과 군부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특수등급 의수야. 정제된 에테르 워터를 원료로 사용하고 마법까지 접목시켜서 개인이 대대에 버금가는 힘을 발동할 수 있다는 물건이지.”
“만든다고 소문은 무성한 물건이었죠. 설마하니 완성이 됐을 줄은 몰랐군요. 아무래도 최종 테스트 단계에서 빼앗긴 모양입니다.”
그 귀중한 걸 테러리스트들에게 탈취당하다니.
물론 선혈 형제단이 평범한 테러리스트들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런 다베르를 오시안이 쓰러뜨렸다는 거다.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빛을 냈다던데, 혹시 지금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아쉽게도 지금은 안 된다.”
성광도 그 절체절명의 순간 겨우 뽑아낸 것이다.
처음 사용한 것이라 원한다고 바로바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말이다.
로레인은 숫제 질렸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골치가 아파 보이는 것은 로난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선혈 형제단이 끼어들었다니. 이거 불안해지군요.”
“문제 있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들은 이름에 형제단이 붙은 것처럼 조직원들끼리의 관계가 꽤나 좋은 편입니다. 거기의 막내를 건드렸으니, 형누나들이 오시안 씨를 찢어발겨 개밥으로 주고 싶어 할 겁니다.”
“그거참 고상한 표현이로군. 그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일까?”
“형제들은 매일 서로 투닥거리지만, 밖에서 동생이 맞고 들어오면 누구보다 분노하는 법이죠.”
그렇게 말하니 묘하게 확 와 닿았다.
오시안은 다베르의 실력을 떠올렸다.
4성급 마법도 어렵지 않게 구현하는 다베르는 분명 대단한 마법사가 맞았다.
그런 놈이 한 조직의 일개 막내라니.
그렇다면 그 형제단의 두목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성광만으로는 부족하겠는데.’
느긋하게 굴 생각은 없었지만, 나머지 특성도 빨리 개방할 필요가 지금 하나 더 늘었다.
“그래도 당장에는 형제단이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도 눈치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이번 일로 티르나 시에서 눈여겨볼 테니, 형제단이라 하더라도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겠죠. 군부도 이를 악물고 찾으려 들 겁니다.”
“그건 다행이로군.”
“뒤늦게나마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이번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내셔서 다행입니다.”
물론 이번 단체 의뢰는 본래의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
상대는 갱단도 아니었고 심지어 발전소의 일부는 무슨 전쟁을 벌인 건지 반파되었으니까.
도중에 죽은 용병들도 꽤 많았다.
그래도 핵심 시설은 지켜냈고, 결과적으로 발전소 탈환은 성공했다.
거기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당연히 오시안이었다.
“이번 일로 오시안 씨의 명성이 매우 올랐습니다.”
“그런가?”
“티르나 전체로 보면 아직 모자라지만, 이쪽 업계에선 벌써부터 뜨겁더군요. 아마 다른 네임드들도 슬슬 오시안 씨를 눈여겨보기 시작할 겁니다.”
물론 업계 최고라 해도 해결사들 사이에서의 평가다.
해결사는 온갖 일들을 다 해 주지만, 도시 전체에서 보면 그 직종은 결국 마이너일 수밖에 없다.
마이너의 메이저가 되어도, 메이저의 마이너보다 평가가 박할 수밖에.
그렇다고 해결사의 네임드가 또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이 도시엔 그만큼 강자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다만 썩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경쟁이 심한 업계이니, 대부분은 오시안 씨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겠죠. 어쩌면 일부는 오시안 씨가 더 자라기 전에 짓밟으려 들 겁니다.”
로난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남 일이라고 쉽게도 말하는구나.
“짓밟는다라.”
오시안은 그 말을 중얼거리다가 디올란과 눈빛이 마주쳤다.
단순히 우연이었지만 디올란은 그렇게 느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난 그렇게 안 하거든?”
아무래도 방금 전 싸우자고 했던 말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호승심 넘치던 것과 비교하면, 생각 이상으로 소심한 반응.
오시안이 로난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뭐, 길 가다 습격이라도 당한다는 이야기인가?”
“없지는 않죠.”
어? 정말로?
오시안이 그런 시선으로 묻자 로난이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선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습니다.”
“그거참 살벌하군.”
“그래도 당장엔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일단 저희 사무소는 회색등급이니까요.”
“회색등급?”
또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오시안이 그게 뭐냐고 묻자 로난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해결사 업계는 도시 전역에 뻗어 있을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말이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중개연합이 생겨났고, 그 아래에 해결사 사무소들이 저마다의 등급을 받게 됐습니다.”
“그 회색이라는 것도 중개연합에서 부여한 등급인가?”
“예. 해결사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보니, 분류할 필요가 있거든요.”
해결사 사무소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흑색.
백색.
그리고 회색.
“백색은 정직하고 합법적인 일을 처리해주는 곳이죠. 사람을 찾는다거나 정보를 모아온다거나 도시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돕는다거나 하는 일로요.”
“흑색은 그렇다면 그 반대겠군.”
“맞습니다. 그들은 반대로 지저분한, 불법적인 일을 처리하죠. 사실 갱단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면 위험하죠.”
“그렇다면 회색은…….”
“둘 다죠.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의뢰를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색 사무소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모든 일을 다 처리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순간 백색이나 흑색이 되기 때문이다.
백색이라고 나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흑색이라고 합법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전부 정도의 차이다.
회색 사무소는, 어떤 의미로는 두 일을 전부 균형 있게 처리하는 곳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칭호에 가까웠다.
“그렇군. 소수로도 잘 굴러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나.”
합법과 비합법의 일을 모두 진행한다면 주변에서 경쟁자들의 견제도 꽤나 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올렛 폭스는 멀쩡하게 굴러간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사무소의 주인, 로난 롤랑이라는 인물의 뛰어난 수완 덕분이겠지.
그 이상으로 소속 해결사들의 실력도 우습게 볼 수 없으리라.
소수로 굴러간다면 그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번 일로 꽤나 큰돈을 벌게 됐으니 다시금 축하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맙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모처럼 생긴 큰돈이지만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을 겁니다. 은행에라도 맡기는 편이 좋겠죠.”
“그러면 그쪽이 또 추천하는 은행이 있겠군.”
“그렇죠.”
“소개해 준 김에 수수료도 떼고.”
“이런. 못 당하겠군요.”
로난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중개인이란 그런 것으로 돈을 버는 직종이었으니까.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 있다.”
오시안은 자신의 옆구리의 칼집을 손으로 툭 치며 말했다.
“무기를 새로 맞춰야 하거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