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새로운 검 (2)
고글을 벗어던진 엘딘은 근처에 놓인 수건으로 뺨과 이마에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말해두는데 드워프들이 인기 있던 것도 감각으로 철을 분석하던 시절의 이야기야. 요즘처럼 합금강재가 발달한 세상엔 그런 종족의 경계 따윈 없어.”
아주 옛날에 드워프들이 대단한 무기를 만들 수 있던 것은 철에 내포된 탄소의 양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드워프들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종의 특성이었다.
드워프들은 감각적으로 철에 내포된 불순물의 존재 여부와 탄소의 함량, 철의 질까지 알아차린다.
그들이 장인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 차이를 좁혀 주다 못해 뛰어넘게 해 준 것이 바로 과학이었다.
현대의 제강기술은 인간조차도 드워프에 버금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래서 형씨는 뭘 보러왔지? 나야 만드는 게 워낙 많거든.”
“당연히 무기를 구하러 왔다.”
“무기라. 총 같은 경우에는 이쪽은 부품만 따로 주문제작을 하지 총 자체를 취급하지는 않아. 구하려면 총포상 쪽을 둘러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찾는 무기는 총 같은 게 아니야.”
엘딘은 그 대답에 의아해하다가 오시안이 허리춤에 찬 롱 소드를 보며 눈을 빛냈다.
“잠깐. 허리춤의 그거 설마 검이야?”
엘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거 놀랍네! 설마하니 아직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무기를 대놓고 들고 다니는 바보 같은 녀석이 있을 줄이야! 한번 봐도 되나?”
말은 그렇게 해도 엘딘은 꽤나 기뻐 보였다.
“안 될 건 없지.”
오시안은 롱 소드를 엘딘에게 건네주었다.
부러진 날도 회수를 했기 때문에 롱소드는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롱 소드를 세심하게 살피던 엘딘은 감탄사를 흘렸다.
“세상에 이건…….”
“왜. 생각보다 좋은 칼이라 놀랐나?”
“정말 쓰레기 같은 칼이야.”
“…….”
“이 투박한 디자인을 생각하면 절대 예장용 검은 아니야. 그렇다면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걸 텐데 이 정도로 철의 질이 나쁘다고?”
엘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몸에 박혔다.
검을 소중히 여기는 방랑기사로서, 비록 부러졌다 하더라도 자신의 무구가 욕보인다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문제가 있냐기보다는, 흠……다른 의미로 놀랍다고 봐야겠네. 그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검이야. 혹시 유물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어? 이쯤 되면 거의 1000년 전 물건일 텐데 관리 하나는 잘했네.”
실제로 거의 천 년 전 물건이라 하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까.
오시안은 그런 실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골동품으로 팔면 돈 좀 되겠어. 멀쩡했다면 말이야.”
“…….”
연이어 날아오는 혹평에 오시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랑기사는 세계를 떠도는 기사이지만 뒷이야기를 보면 한때 꽤 뛰어난 가문 출신이라는 설정이 존재했다.
방랑기사로 시작할 때부터 주어지는 롱소드는 당시에 사용하던 물건으로서, 게임에서도 중상급은 되는 무기였다.
아무런 부가효과가 달리지 않은 일반 롱소드가 그 정도의 평가인 것이다.
순수 바닐라 스텟 무기에서는 거의 정점이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천 년이 지나 제강법과 야금기술 그리고 금속가공이 발달한 지금.
오시안의 검은 시대착오적이다 못해 이제는 사용하지 않을 유물이 되고 말았다.
“요즘처럼 철에 원하는 원소를 비율로 조절해서 섞을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저급 탄소강 재질의 롱소드라니. 길거리 생선가게 아낙네가 사용하는 부엌칼도 이것보단 튼튼할걸.”
“…….”
오시안의 정신이 21세기 현대인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즉시 엘딘을 향해 결투를 신청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방랑기사의 육체가 격한 분노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참아. 내 안의 방랑기사.’
오시안은 멋대로 날뛰려는 자신의 몸을 최대한 억눌러야 했다.
그래서 입도 열지 않았다.
괜히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다가, 자기도 모르게 종족비하 발언이 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이런 무기를 새로 만들어 달라는 것은, 그쪽도 괴짜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해도 무방한 거겠지?”
오시안은 화를 식히기 위해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이쪽도, 라는 말은……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로군.”
“당연하지. 당장 형씨 옆에 있는 사람만 해도 그렇고.”
디올란은 그 지적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괴짜 대신 시대를 앞서가는 고독한 선구자라 불러주겠어?”
“어린놈이 벌써부터 이상한 소릴 하기는.”
디올란에게 가벼운 핀잔을 준 엘딘은 오시안의 모습을 잔잔히 살폈다.
피부는 하얗고 머리는 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잘 정돈해서 그런지 기품이 넘쳤다.
얼굴도 잘생겼다. 엘프라서 미적의식이 높은 엘딘조차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
‘어디 높은 귀족가문의 후계라도 되는 거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특유의 고귀함은 또 어떤가.
그녀가 주로 무기를 만들고 파는 주 고객층을 생각하면, 오시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 그를 봤을 때는 어디 귀족가문 도련님이 온 줄 알았다.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엘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시안은 엘딘의 말에서 새로운 호기심을 느꼈다.
“나 말고도 이런 부류의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나?”
“냉병기? 없지는 않지. 이 도시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놈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를 쓰려는 놈이 어디 없으려고.”
“하지만 검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맞아. 이렇게 ‘순수한’ 롱소드를 쓰는 사람은 없지. 냉병기라 해도 다 자신만의 「개조」를 거친 무기들이거든.”
“개조라고?”
“화기도 아니고 냉병기도 아닌, 굳이 따지자면 온병기 정도는 되려나?”
오시안으로서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머리로는 어렴풋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지만, 실제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혹시 그 물건들도 볼 수 있나?”
“뭐, 못 보여 줄 것도 없지.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거니까. 오랜만에 내 컬렉션들 좀 한번 개방해 볼까.”
엘딘은 괜히 장인이 아닌지 자신의 물건에 자부심이 넘쳤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길 바란다.
엘딘은 오시안과 디올란을 이끌고 작업장 옆에 붙어 있는 창고로 향했다.
간이식으로 창고라 불렀지만, 사실상 무기 진열대에 가까운 곳이었다.
“호오.”
오시안은 도열해 있는 무기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다 제각기 형태가 달랐지만, 냉병기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검, 창, 도끼, 너클, 톤파, 할버드, 철퇴 등등.
총을 구할 거면 괜히 총포상에 가라고 했던 말이 과언이 아니듯, 엘딘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요즘 시대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이었다.
물론 그것은 오시안의 감상일 뿐.
이쪽 업계에서는 엘딘의 무기는 나름 유명한 편이었다.
“한번 구경해 보겠어?”
“이건 뭐지?”
오시안은 한 손에 잡히는 봉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손잡이의 길이는 30cm남짓이었고 두께는 상당했다.
봉의 끝에는 아이 머리통만 한 검은 철구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생긴 것만 보면 메이스인데, 그러자니 형태가 너무 단출했다.
“아, 그거? 모닝스타야.”
“이게 모닝스타라고?”
“줘 봐.”
오시안은 자칭 모닝스타를 엘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엘딘은 창고 한쪽의 문을 열고 안으로 향했다.
사격장처럼 생긴 내부는 개발한 무기를 테스트 하는 공간이었다.
“잘 보라고.”
엘딘은 그렇게 말하며 20m정도 떨어진 철판을 향해 뭉툭한 철구 부분을 겨누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싶은 순간 새까만 철구에서 스파이크가 삐죽 솟구쳤다.
“호오.”
평소에 저걸 숨겼다가 드러내는 형식인가?
그러나 놀라운 일은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다.
“이 무기의 진가는 바로 이거야.”
엘딘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이윽고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를 달칵 눌렀다.
퍼엉!
그 직후 철구가 그대로 대포처럼 발사됐다.
봉의 한쪽에 탄피가 튀어나오고 동시에 새하얀 압축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쩌엉!
철구가 철판을 때리며 나는 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렸다.
오시안은 그제야 저 손잡이가 왜 두꺼운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구를 쏘아내기 위한 추진체와 와이어가 담겨 있어서였다.
이윽고 손잡이와 철구를 연결해주는 와이어가 팽팽히 당겨지더니 철구가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아왔다.
뾰족하게 솟은 스파이크도 모습을 감춘 뒤였다.
“어때? 이렇게 회수도 가능해.”
“……어떠냐고 물어도, 평범한 물건은 없는 건가?”
오시안은 눈앞의 광경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냥 메이스인 줄 알았는데 사실 모닝스타였고, 심지어 그것을 대포처럼 발사하다니?
이쯤 되면 모닝스타도 아니고 슈팅스타라 불러야 할 판이었다.
과학력에 놀랐다기보다는 냉병기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버린 비상식이 놀라울 지경.
이럴 거면 그냥 총을 쏘는 게 더 낫지 않나?
“평범한 거라니. 꽤나 까다로운 손님이네. 그러면 이건 어때?”
엘딘은 한쪽에 세워진 창을 가져와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여러 부착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봉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어. 게다가 이 버튼을 누르면?”
키이이잉.
창끝의 날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돌아가서 관통력을 올려주지. 그리고 손잡이를 한번 옆으로 휙 꺾어 주면.”
퍼엉!
창날의 끝에서 새하얀 증기가 터져 나오며 창날이 철판에 날아가 박혔다.
“이렇게 쏠 수도 있어. 압축증기 카트리지를 이용한 사출 방식이야.”
지금 세상은 괜히 증기공학이 발달한 것이 아니었다.
압축증기를 이용한 순간적인 폭발을 무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기이한 방향으로 발달한 세상.
오시안은 자신이 정말 별세계에 왔음을 실감했다.
“아니면 이 손도끼는 어때?”
“손도끼?”
오시안은 손도끼를 알아보았다.
그야 그럴 것이 손도끼는 [야만전사]가 사용하는 주무기 중 하나였으니까.
“이건 장갑이랑 세트야.”
“그건 또 무슨 특징이 있지? 혹시 도끼날이 발사하기라도 하나?”
“뭐? 내가 뭐 다 쏘는 것만 만드는 줄 알아?”
“……아니었다고?”
“하. 그거참 재미있는 선입견이네. 이거나 똑똑히 봐 둬.”
엘딘은 오른손에 쥔 손도끼를 들고 그대로 투척 자세를 취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듯 자세가 각이 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망치를 휘둘러온 탓인지 군살 하나 없는 탄력적인 근육이 도드라졌다.
엘딘이 있는 힘껏 손도끼를 던지자 손도끼는 일직선으로 날아가 철판에 박혔다.
지이잉.
저걸 왜 집어던졌지 하는 순간, 엘딘이 착용한 금속 장갑의 이음매에서 주홍색 빛이 흘러나왔다.
철판에 꽂힌 도끼가 바르르 떨리더니 회전하듯 날아와 그대로 엘딘이 착용한 장갑에 안착했다.
“어때?”
“……그건 좀 유용해 보이는군.”
자력을 이용해 투척도끼를 회수하는 방식이라.
도끼의 손잡이를 특수 재질로 만든 것이리라.
오시안은 일전에 싸웠던 다베르의 테슬라 암즈를 떠올렸다.
저 장갑 또한 테슬라 암즈와 비슷한 과학이 적용된 물건이 분명했다. 물론 열화판으로 말이다.
“북부 전사들이 사용하는 회수의 룬과 비슷하군.”
[야만전사] 태생은 도끼를 사용하고, 당연하게도 무기를 투척하는 기술이 존재한다.그리고 그 무기에 「룬 각인」을 통해 여러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회수의 룬」이었다.
“뭐야. 그런 것도 알고 있어? 그걸 따라한 게 맞긴 해. 다만 좀 더 사용하기 편하지. 룬각인은 거의 소실된 기술이거든.”
“소실됐다고?”
“애초에 북부 야만족 놈들은 맨날 치고받고 싸우는 것만 좋아하는 놈들이야. 심지어 외부와 왕래가 거의 없지. 기술이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하는 게 당연해.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
엘딘은 이 기술은 그런 소실된 것들을 과학으로 복구해서 만든 것이라 설명했다.
“어때? 내가 만든 무구들은, 이런 다양한 것들이 있어. 과학과 마법이 접목된 것들이지. 물론 가격대도 다양하고, 당연히 마법이 훨씬 더 비싸.”
“내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검이다. 그쪽 계열로 보고 싶은데.”
“안 될 건 없지.”
엘딘은 자신이 만든 공방의 제품이 비싸다고 말했음에도 오시안의 표정이 변하지 않은 걸 눈치 챘다.
즉 이 눈앞의 귀공자처럼 생긴 청년은 최소한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여기 이 검은 어때? 내 자신작이야.”
엘딘은 오시안에게 칼집에 들어간 검을 보여 주었다.
꽤나 특이한 형태의 검이었다. 손잡이부터 해서 코등이에 금속 재질이 붙어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가장 특이한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칼집이었다.
“칼집이 특이하군.”
“이건 특수합금으로 만든 칼집이야. 그리고 사용 방법은 간단하지.”
엘딘은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과연 검을 어떻게 뽑을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순간, 검이 빗살과도 빠른 속도로 뽑혀져 나왔다.
파앙─!
엘딘은 순수한 팔의 힘으로 뽑은 게 아니다.
칼집 아래에서 새하얀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그 반동으로 검을 뽑아 휘두른 것이다.
압축증기를 터뜨리며 그 반동으로 검을 뽑아 휘두르는 방식.
이른바 스팀발도술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