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4)
4화. 기사의 등장 (2)
나는 홀로 밤 도시의 골목길을 걸었다.
노동자들과는 금방 헤어졌다.
나를 향한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데 같이 있기 어색해서였다.
터덜터덜 골목길을 걷던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람이 없는 밤거리였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불 꺼진 버려진 공장지대와 다르게 이곳은 빛으로 가득했으니까.
저 멀리 우뚝 선 높은 건축물들이 보였다.
“티르나.”
나는 도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티르나는 말 그대로 거대한 도시였다. 건축 양식만 놓고 보면 19세기의 배경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발달한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빛으로 가득한 건축물들을 보니 감정이 복잡해졌다.
내가 즐겨하던 게임은 중세 판타지 게임이었다.
하지만 지금 펼쳐진 풍경은 근대나 다름없었다.
중세에서 근대. 햇수로만 치면 수백 년은 흘렀을 것이다.
원작 배경이 약 14세기 느낌의 중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니 거의 500년은 지났다 봐도 좋았다.
맙소사 500년이라니. 그것도 최소치로 잡은 거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되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던전과 유적, 보스몬스터들은 모두 세월의 풍파 아래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했다.
이래서야 내가 이 세상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몸뚱이뿐.
‘그래도 이게 어디야.’
눈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검으로 총알을 베어낸다.
이것만 해도 거의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좋았다.
‘게임 속 내 캐릭터의 레벨은 만렙. 기사로서 올릴 수 있는 스탯은 죄다 올렸지.’
이 게임에서 스탯은 [근력] [민첩] [체력] [정신력] [지력] [신앙]으로 총 6대 스탯이라 부른다.
[근력]은 당연하게도 신체의 힘을 구성한다.근력이 높을수록 근접무기의 공격력이 강해지고 무거운 무기와 갑옷의 착용이 용이해진다. 당연히 방랑기사의 주 스탯이다.
[민첩]은 기동성이며 손재주이기도 하다. 무기 중에서는 기량이 많이 필요한 무기가 더러 있고, 스킬 중에서도 손재주가 필요한 것이 있다 보니 민첩 또한 근접캐릭터에겐 필수였다. [체력]은 당연히 최대 HP를 의미한다. 동시에 지구력까지 영향을 준다. 이 게임 내에서는 지구력 게이지가 있어서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붓거나 달리는 것이 힘들다.체력이 높다면 그것이 훨씬 더 용이해진다.
[정신력]은 반대로 MP, 즉 마나를 의미한다. 거기에 더해서 상태이상, 정신공격, 속성공격에 대한 저항률을 올려주기도 한다. [지력]은 마법사나 흑마법사들이 올리는데 주문이나 마법의 위력을 높여주는 쪽이다.나는 방랑기사라 태생적 한계 때문에 올릴 수 없는 스탯이었다.
[신앙]은 6대 스탯에서 [성직자]와 [성기사]가 담당하는 스탯이다. 다만 이 부분은 방랑기사 또한 올릴 수 있었고 나는 이걸 다 올렸다.모든 스탯은 최대 99까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내 캐릭터는 6대 스탯 중에서 지력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99까지 찍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나였고.
‘어디 길 가다 시비에 휘말려 죽을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렇지만 몬스터는 다르다.
이 게임은 만렙이어도 길가의 잡몹에게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미친 게임이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다.
내가 이 세상에 빨려 들어온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돌아갈 방법도 있다는 거고.
나는 원인과 이유를 찾아야 했다.
칼 한 자루로.
강철과 기계태엽, 증기와 화약이 가득한 도시 속에서 말이다.
꼬르르륵!
그 순간 갑옷의 복대를 뚫고 나오는 우렁찬 소리에 나는 걷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입에 뭘 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물며 물 한 모금조차도 말이다.
게임 내에서는 공복도 시스템이 없다 보니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만렙 캐릭터도 굶으면 얄짤없는 것이다.
특히 이 꽉 찬 근육이 가득한 몸뚱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막대한 열량을 소모해, 많은 음식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밥부터 먹자.’
*
티르나의 한 술집.
딸랑!
문에 달아 놓은 방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손님이 찾아왔다.
시끄러웠던 주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로 맥주가 가득 담긴 오크통 술잔을 부딪치며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사람들은 그 손님의 등장에 시선을 모았다.
“…….”
“…….”
“…….”
평소였다면 그저 밥이나 술을 먹으러 온 사람이겠구나 싶었지만, 이번 손님은 그 행색부터가 지나치게 독특했기 때문이다.
손님은 지금 시대에서 보기 드문, 아니 어딜 가서도 보기 힘든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철컥. 철컥.
걸을 때마다 철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일하게 머리에만 투구를 끼지 않아서 얼굴이 훤히 드러났는데, 새하얀 피부에 흑발, 귀티 나는 수려한 외모가 어딘가 잘사는 집안의 도련님을 연상케 했다.
갑옷을 입은 청년, 오시안은 바 테이블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모두가 그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일부는 자신이 술에 너무 취해서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오시안은 갱단에게서 털어온 돈을 꺼냈다.
“이보게 주인장. 여기 주문하나 하지.”
그가 입을 열며 카리스마 있는 미성으로 말을 꺼내는 순간 주점의 모두가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웅성웅성.
“저건 또 뭐야.”
“기사? 아니면 기사에 심취한 또라이?”
“정신이상자인가? 요즘 시대에 누가 갑옷을?”
이 주점은 험악한 일을 하는 용병과 해결사들이 모이는 술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사를 보며 그를 분석하려 하거나 혹은 그의 기행에 적대감을 보이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오시안 또한 적대감을 느낀 것인지 술집의 손님들을 돌아봤다.
스윽.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일부 사람들에게 과시하듯 옆구리에 찬 검을 보여 주었다.
-이쪽은 칼을 지니고 있다. 이래도 까불 테냐.
오시안은 행동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에 대응하듯 노려보던 일부 용병들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 우리는 총 있다. 어쩔래?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음.”
오시안은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향했다.
오시안은 구태여 자신은 이 칼로 총알도 벨 수 있고 동체시력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피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말해 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까.
다만 오시안의 그 행동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총을 꺼내든 용병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오시안도 그걸 알았지만 대놓고 따지지 않고 그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기만 했다.
“여기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오시안의 앞에 모락모락한 연기를 내뿜는 양념 바른 양고기와 버터와 치즈를 발라서 구운 빵, 그리고 야채수프가 놓였다.
오시안은 그것을 한껏 들뜬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술은 어디 있지? 밥을 시키면 술도 기본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오시안은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진심으로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정확히 술을 원하는 오시안의 ‘육체’가 벌이는 행동에 가까웠으니까.
다만 그 거만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노년의 바텐더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물었다.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제일 독한 걸로.”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그렇게 말하며 술병으로 가득 찬 찻장에서 해골모양 마크가 그려진 술병을 꺼내더니 투명한 잔에 부드럽게 따랐다.
주홍빛 술을 본 오시안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게 손을 뻗어 우선 이 고단한 세상에서의 첫 술을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형씨. 맛있는 거 먹는데 우리도 끼워 주지 않겠어?”
방금 전 오시안을 향해 웃어 보였던 3명의 용병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오시안의 근처에 다가왔다.
오시안은 술잔을 쥐려던 손을 멈칫했다.
주점의 손님들은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두트리 삼형제로군.”
“저 괴짜 녀석도 운이 없지. 하필이면 저런 악질들이 있을 때 들어와서는.”
3인방은 얼굴이 비슷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형제였다.
두트리 삼형제로서 그들은 뒷세계에서 용병으로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자들이었다.
폭력의 세상 속에서도 나름 용병으로서 인지도가 있었지만, 그것이 썩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건 주변의 말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오시안이 고개를 찬찬히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 삼형제의 장남을 바라보았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볼일?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우리 고귀하신 기사님께서, 갑자기 무슨 이유로 이런 술집을 찾아왔나 말이야.”
장남은 그렇게 말하며 오시안이 마시려던 잔을 빼앗더니 한입에 자신의 목구멍에 털어놓았다.
“크으허! 독하긴 더럽게 독하군.”
“그건 내 술이다만.”
“우리 범생이 기사님이 못 드실 거 같아서 내가 대신 먹어 드린 거요. 왜, 고마워서 그러시나?”
장남의 말에 차남과 삼남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 모습에 오시안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시안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감히 나를 욕보이기 위해 다가온 것이로군.”
그 말에 두트리 삼형제는 서로를 돌아보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
그 웃음은 삼형제 말고도 주점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오시안이 사용한 고상한 말투도 말투지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것을 이제야 확신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 보통 우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시안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듯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나는 기분이 좋다. 그러니 그대들의 방금 전 무례는 내 관대한 아량으로 넘어가 줄 테니 그만하고 볼일이나 보러 가도록.”
“……하, 이 새끼 이거.”
오시안이 배려하듯 말하자 장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자식 이거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어이 형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여길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커스단은 다른 곳에 있으니 당장 꺼져.”
“…….”
“뭐 노려보면 어쩌게. 이 새끼 이거 눈 치켜뜨는 거 봐라. 왜, 허리춤에 있는 그 잘난 칼이라도 뽑게?”
장남은 그렇게 말하며 오시안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오시안의 갑옷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보다 더 빠르게 오시안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장남의 얼굴이 주먹의 형태로 움푹 들어갔다. 코뼈가 주저앉고 이빨이 핏물과 함께 비산하듯 흩어졌다.
얻어맞은 장남은 그대로 주점을 가로질러 문을 부수고 바깥까지 튕겨 나갔다.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웃던 손님들이 일제히 웃음을 멈췄다.
“…….”
“…….”
그들의 시선이 주먹을 뻗은 오시안과 부서진 문을 번갈아 향했다.
‘방금 주먹으로 사람을 저만큼 날린 거야?’
‘두트리 삼형제의 장남의 덩치를 생각하면 무게가 거의 90은 넘게 나갈 텐데.’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때 삼형제 중 남은 두 사람이 반응했다.
“형!”
“이 씨발 새끼가!”
차남과 삼남이 동시에 허리춤의 총을 뽑았다.
그것은 근거리에서 산탄으로 적을 박살낸다는 소드오프 샷건이었다.
형제가 오시안을 향해 총을 뽑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시안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2번 휘두르기엔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투둑. 툭.
“어?”
“이게 무슨…….”
둘째와 셋째는 잘려나가 바닥을 나뒹구는 총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잘려나간 총의 단면은 예리한 무언가로 베어낸 것처럼 매끈했다.
두 형제가 갑자기 벌어진 현실에 미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검을 다시 허리춤에 건 오시안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퍼억!
깔끔한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
맏형처럼 얼굴을 얻어맞은 둘째와 셋째는 똑같이 날아가 주점의 문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주점은 다시금 침묵에 휩싸였다.
모두가 방금 전 오시안이 보여주었던 믿기지 않는 신체능력과 무위에 경악 내지 감탄을 했다.
정작 그 광경을 자아낸 오시안은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바텐더를 향해 가볍게 말했다.
“부서진 문 값은 저 세 놈에게 받아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바텐더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