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의뢰 실패 (1)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빠진 양복으로 복장을 통일했는데 머리에 눌러쓴 모자까지 하면 누가 봐도 영락없는 마피아였다.
숫자는 서른가량.
전부 다 덩치가 상당한 것이, 육체를 쓰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해당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였다.
다들 짙은 남청색 수트에 흔히들 빵모자라 부르는 플랫 캡(Flat cap)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단 한 명만 달랐다.
몸에 딱 맞는 새하얀 수트와 머리에 쓴 흰색 중절모까지.
심지어 얼굴에는 테가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언뜻 목 언저리에 드러난 머리색은 짙은 회색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다들 험악한 인상을 지닌 것과 다르게 저 흰 양복의 남자만 선이 가늘고 깔끔한 외모였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대장이면 저 사람은 비서, 혹은 경리 같은 느낌.
‘뭔가 있어 보이는 건 확실하군.’
제일 우습게 보이지만 그렇기에 얕보면 안 되는 인간이 분명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도 살폈다.
온갖 인간군상이 모이는 도시인 티르나답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했다.
그중에서 다른 의미로 시선을 끄는 것은 폭주족 같은 인상의 집단이었다.
숫자는 10명 정도.
입고 있는 복장은 가죽 재질의 펑키한 스타일이었는데, 머리 곳곳에 스크래치 흔적을 남기거나 짙은 분홍, 녹색, 푸른색으로 염색을 해 놨다.
징 박힌 장갑이나 부츠만 봐도, 저들이 어떤 성향의 집단인지 쉽게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고, 아무래도 40번대 후반 구역의 고철더미 출신이 분명했다.
‘그리고 저기 서 있는 사람들은, 숫자가 꽤 적군.’
숫자는 셋.
집단이라고 부르기엔 꽤나 적지만, 그럼에도 저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다른 집단에 꿀리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저기 셋은 마법사니까.
활동하기 편한 면바지에 와이셔츠, 그리고 적당한 조끼를 입었다.
그 위에 현대복식에 맞춰서 리파인한 로브를 걸침으로써 자신들이 마법사라는 걸 피력했다.
게임 속 마법사는 바람만 불어도 엄청 휘날릴 것 같은 펑퍼짐한 의복을 주로 입었는데 지금의 마법사들은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젠 머리에 고깔모자도 안 쓰네.’
내가 마법사를 키우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마법사가 입는 옷은 기본적으로 폼이 안 났다. 룩덕질이 힘들다고 해야 하나.
기왕 할 거면 멋진 갑옷이 낫지 않냐고 해서 기사를 고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마법사는 그런 게 없어 보였다. 오히려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마법사를 키웠지.’
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주변을 탐색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무슨 구형 건식 잠수복을 입은 사람도 보였고, 의수를 단 채 중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범상한 자들이 하나도 없다.
전부 다 마녀의 의뢰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건가.’
아마 이 자리에서 놓고 본다면 내가 가장 연식이 짧을 것이다.
그럴 것이 해결사가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비록 여러 의뢰를 성공했다 하지만 티르나라는 도시 전체에서 보면 한없이 미천한 결과물일 뿐.
그러니 나는 항상 도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치이이익!
정차해 있는 열차에서 새하얀 증기가 우렁차게 뿜어져 나왔다.
이제 곧 출발한다는 신호에 역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열차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은 열차의 끝인 짐 수송 칸에 무언가를 싣고 있었다.
나는 로난이 구해다 준 표를 확인했다. 좌석은 2등칸이라고 적혀 있었다.
‘2등칸이라.’
자본이 중요해진 세상이 되다 보니, 이런 열차에서도 급이 나뉘었다.
1등칸, 2등칸, 3등칸, 그리고 짐칸.
1등칸은 열차의 량 하나 전체를 개조해서 만든 자리다.
열차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며 내부는 호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는데, 당연히 돈이 아주 많은 부유한 사람만 탈 수 있었다.
그리고 2등칸은 흔히들 일반석이라 부르는 곳이다.
다만 그렇게 좋은 건 아니고, 딱 앉아서만 갈 수 있는 수준.
그래도 3등칸보다는 낫다.
3등칸은 앉아서 갈 공간이 없다. 말 그대로 전부 다 서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기차를 탄다면 3등칸에 몰린다.
량 전체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가득 들어차, 덜컹거리는 열차 속에서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빨랫줄에 몸을 걸어서 잠을 청하는 곳을 숙박이라 하는 세상에 퍽이나 어울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 좌석이라도 얻은 것이 다행인가.’
로난의 꼼꼼함과 철저한 준비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좌석이 있는 열차칸에 들어오니 한 무리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방금 전 마피아들인가.’
진짜 마피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일단 그렇게 보여서 이름을 붙였을 뿐.
아무래도 내가 타려는 좌석의 칸은 이 마피아들이 모두 차지한 모양이었다.
저들 또한 나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모았다.
자신들이 전세를 낼 줄 알았던 칸에 의외의 사람이 있어서 탐탁지 않은 것일까.
어차피 나야 신경쓰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으려 통로를 걸었다.
툭.
그때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통로가 좁다 하더라도 이걸 못 볼 내가 아니었다. 상대가 일부러 내게 와서 어깨를 부딪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뻔한 반응이 돌아왔다.
“너 이 새끼 뭐야. 어? 사람의 어깨를 쳤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야.”
험악한 얼굴을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는 것이, 마치 잔뜩 구겨놓은 종이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녀석이 손을 들어 올려 내게 뻗었다.
이대로 내 멱살이라도 쥐려는 것으로 보였고, 나는 그 손이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잡는 순간, 그때는 내 검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거라고 다짐했다.
“뭐 하는 겁니까.”
그때 산통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열차 칸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들렸다.
내게 손을 뻗으려던 조직원은 사색이 되어 차렷 자세가 되었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무심한 눈으로 보았다.
그 사람이다. 새하얀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남자.
“제가 뭘 하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그, 그것이 이 사람이 저와 부딪쳐 놓고도 사과의 말이 없어서……죄, 죄송합니다!”
“열차에서 소란은 금지입니다.”
지극히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꽤나 뜬금없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직원은 그 말에 알겠다며 곧바로 물러났다.
싸움을 기대하던 다른 조직원들도 잔뜩 긴장한 채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저 모습만 보면 평소에 얼마나 엄격하게 조직원들을 다스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보았다.
그 또한 나를 보았다.
우리 둘은 상대를 탐색하듯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잿빛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실례가 많았군요.”
정중한 사과의 어조. 방긋 짓는 미소까지.
나 또한 그에 호응하듯 답했다.
“사소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상대는 내 말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녀석은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인 눈빛이 아니었으니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발루드라고 합니다.”
“오시안.”
“저희 직원의 무례에 대해서 다시 사과드립니다.”
발루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훌쩍 떠났다.
말투와 행동은 정갈하지만, 눈빛이 상당히 포악적이었다.
그래도 싸우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려나.
의뢰를 맡기도 전에 일을 벌이는 것은 나도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운이 좋게도 내 좌석은 창가 자리였고, 내가 앉기가 무섭게 창밖의 풍경이 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열차가 출발했다.
*
“들었어. 우리 막내 보냈다며?”
주점에 들어오자마자 로레인이 로난을 향해 힐난하듯 한 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왜 그걸 말리지 않았냐고 로난을 추궁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이 빠르시군요.”
“됐고. 지금 제정신이야? 페트라 교황청이 관련 있는 일에 걔를 보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 문제? 있지 당연히. 애초에 오시안 걔는 이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무력은, 솔직히 인정. 그 정도면 어딜 가서도 대접을 받겠지. 하지만 알잖아?”
“이 업계는 단순히 무력만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걸 말이죠.”
로레인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하고 쳤다.
“그래! 게다가 이번 일에 끼어든 놈들을 봐. 마법학파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크라임 펌 중 하나인 노스 블라인더스가 끼어 있잖아! 그 잔악한 마피아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로레인이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로난은 서류를 정리하면서 다루는 볼펜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회전시켰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블리딩 엣지」의 강화인간, 「고철더미」 출신의 폭주족들도 있죠.”
“그런 곳에 막내를 보내?”
“정작 본인 앞에서 막내 취급은 하지도 않은 사람이 할 말입니까?”
로난의 지적에 로레인이 말문을 잃었다.
그 모습에 로난은 작게 웃었다. 행동은 저래도 로레인은 오시안이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 것이다.
자신보다 강하고 상대하기 힘든 분위기를 지녀도,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는 동료이니까.
“제게는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오시안 씨 본인이 가겠다고 하셨죠. 그것은 본인의 의지입니다.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네 역할은 혹시 모를 고삐를 잡는 거잖아.”
“맞습니다. 정 위험하면 잡는 거죠. 잡지 않은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고요.”
“그 마녀가 탐이 난 것은 아니고?”
로레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로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며 바깥에서 버티다가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필시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테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시안 씨입니다.”
“너, 알면서도 보낸 거구나.”
“오시안 씨는 정말 믿기지 않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장세는 저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죠. 그렇기에 위험합니다.”
로난은 한층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성공은 좋죠. 세상 누가 그걸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때로는 실패의 고통도 필요한 법입니다.”
“절대로 평범한 중개인이 할 말은 아니네.”
보통 중개인은 해결사가 성공만 하면 좋아하지 실패하길 바라지 않는다.
의뢰의 성공은 곧 중개인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난은 그보다 오시안의 미래를 더 걱정했다.
언제까지고 성공가도를 달리다 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나고 만다.
그 순간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미리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나았다.
로레인도 로난의 속셈을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있지. 너는 역시 성격이 엄청 꼬였어.”
“이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정말 상처받는답니다.”
“엄살 부리기는. 그런 생각 하지도 않는 주제에.”
로난은 상처를 받았다는 듯 어깨를 침울하게 떨어뜨렸다.
물론 로레인에겐 그것이 그저 과장된 엄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로난은 그것이 참 슬펐다.
이쪽은 순수한 의도로 하는 건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심지어 진실을 말할 뿐인데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경계를 했다.
‘정말이지. 각박한 세상이네요.’
*
티르나를 벗어난 열차는 철로를 열심히 달렸다.
도시 바깥에는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의 들판 사이로 듬성듬성 수확기계가 보였다.
증기를 뿜는 사족 보행의 전차였는데, 전면부에 낫이 자동으로 회전하며 밀을 수확하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광경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도착지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 뇌리를 찌르르 가로지르는 느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뭐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콰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충돌이 철로를 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