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사드나팔 (2)
오시안은 얻어낸 정보를 통해 마녀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뛰기 힘드니 건물의 지붕을 밟으며 지나갔다.
그 발걸음은 빠르기도 하고 동시에 가벼워서, 사람들은 옥상 위를 달리는 오시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계속 달리다 보니, 규칙적으로 늘어선 건물이 하나둘 허름하게 변하며 판자촌이 나왔다.
‘여기가 사드나팔의 빈민가인가.’
거리에 내려선 오시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보상은 이곳에 마녀가 숨어 있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너저분한 거리에 길을 알기 힘든 구조를 생각하면 숨기 적합하군.’
그런 오시안을 향해 거지들이 눈을 빛내며 하나둘 접근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오시안은 그 누구보다도 돈이 많아 보이는 귀족이었다.
빈민가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매력적인 먹잇감은 없을 것이다.
“꺼져라.”
오시안은 그런 빈민가 거지들을 노려보며 짧은 한 마디를 건넸다.
그 목소리에 깃든 기묘한 힘 때문인지 빈민가 사람들이 멈칫했다.
하지만 막상 물러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말로 한다고 해서 제대로 들어먹었으면 이런 짓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찮게 됐군.
오시안은 여기서 괜히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녀가 언제 갑자기 페트라 교단에 붙잡힐지 모르는 지금 시간이 부족했다.
퍼엉!
그때 멀리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빈민가 거지들이 몸을 움찔 떨며 삼삼오오 흩어졌다.
오시안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저기로군.”
폭발은 계속 들려왔다. 폭발의 사이로 성스러운 황금빛 기파가 섞인 것이 보였다.
성직자가 사용하는 신성력이었다.
마녀와 페트라 교황청의 추적대가 마주친 것이 분명했다.
오시안은 폭심지를 향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빈민가 사람들의 틈새를 가로지르는데 어떠한 충돌도 없었다.
“뭐, 뭐지?”
“방금 뭐였어?”
빈민가 사람들은 오시안이 자신의 옆을 유령처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어리둥절했다.
오시안은 이윽고 바닥을 크게 굴렀다.
쿵, 하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지면이 크게 요동치며 단단한 대지에 족적이 새겨졌다.
커다란 반동을 받은 오시안의 몸이 높게 솟구쳤다.
허공을 부유한 오시안은 더 넓어진 시야로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도망치는 여인과, 그 뒤를 쫓는 새하얀 의복의 집단을.
눈에 별빛이 번뜩였다.
오시안의 몸이 먹잇감을 낚아채는 매처럼 떨어져 내렸다.
때마침 마녀는 막다른 길목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시안은 정확히 마녀와 페트라 교단의 추적대 사이에 떨어져 내렸다.
쿠웅!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근방의 허름한 판자촌 집들이 바르르 떨렸다.
이윽고 먼지구름이 가라앉으며 오시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도망치던 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교황청의 추적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추적대의 선두에 선 성기사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목과 턱이 두꺼운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의 단호한 시선은 적대감을 머금은 채 오시안을 향했다.
그 말에 오시안의 눈동자가 성기사를 향했다.
“……!”
오시안의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새하얀 불길을 보는 순간 성기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것은 다른 사제들과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심한 눈동자 사이에 일렁이는 저 빛을 보라.
신을 향한 무궁한 신앙심조차 순간이지만 물에 녹아내리듯 흔들리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하지만 추적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오시안을 둘러싸고자 했다.
오시안은 그 모습을 보며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여기서 뽑아야 하나.’
오시안은 곁눈질로 자신의 뒤에 있는 마녀를 슬쩍 살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겁에 질려 있었다.
‘싸우면 휘말리겠군. 게다가 교단과 굳이 척을 져서 좋을 것도 없겠고.’
오시안은 다시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모처럼 새로 만든 칼이었지만, 아직 사용할 때가 아니었다.
“실례하지.”
“뭐? 그게 무슨, 꺅!”
오시안은 곧바로 마녀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 모습에 성기사들이 뭘 하려는 거냐고 외치려는 순간, 오시안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나, 날았어? 마법사였나?”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지휘자는 그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아니야. 저건 순수하게 각력만으로 뛰어오른 거다.’
사람 하나를 안아 들고 제자리 뛰기만으로 저렇게 솟구칠 수 있다고?
뮤턴트인가? 아니면 강화인간? 그게 어찌 됐든 상대가 티르나에서 온 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죄인의 도시.’
페트라 교단은 티르나를 죄인의 도시라 일컬었다.
티르나는 능력과 돈을 우대한다. 그러니 마녀고 흑마법사고 세기의 범죄자고 티르나에서 대접을 받고 사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막강한 자금과 권력을 통해, 주변 왕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권을 넘어 그 이상의 영향력을 자랑했다.
페트라 교황청에서 몇 번이고 경고를 날려도 티르나의 시장이 코웃음으로 응대한 것은 꽤나 유명한 일화였다.
“뭣들 하나! 어서 뒤를 쫓아라! 이단이 탈출하게 둬서는 안 된다!”
추적대가 오시안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
*
오시안은 계속 달렸다.
판자촌의 복잡한 지리는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저 바람처럼, 지붕을 밟고 내달리면 그만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밟는 족족 집을 붕괴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시안은 최대한 발걸음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마치 깃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소리 없이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당혹감으로 몸을 뒤틀던 마녀도, 이제는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허공에 떠오르고 떨어질 때는 자기도 모르게 오시안의 코트 자락을 손으로 꼬옥 쥐기도 했다.
하지만 새빨간 후드 아래 가려진 눈동자는 오시안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당혹, 경악, 동시에 안도감.
빈민가를 벗어난 오시안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와 마녀를 내려주었다.
“걸을 수 있겠나?”
“네, 네.”
마녀는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지만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시안은 그제야 마녀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금발. 약간 웨이브진 머리카락은 어깨에 갓 닿을 정도로 짧았다.
후드가 달린 붉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신비한 인상이 강했다.
“망명을 요청한 마녀. 맞나?”
“……에나. 에나 그룬트예요. 그쪽은?”
“오시안. 티르나의 해결사이자 기사다.”
마녀 에나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녀를 상대로 기사라고 자기소개를 하다니. 이 분위기를 타파하려는 그 나름의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표정은 또 세상 진지해서 에나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뭐가 어찌 됐든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보다 다른 동료는 어디에 있죠?”
“없다.”
“예?”
에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오시안에게 되물었다.
“있었는데, 오는 길에 헤어지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 없다. 처음부터 나는 혼자였다.”
“무슨…….”
에나는 머리가 아파 왔다.
위기의 순간 오시안이 자신을 구하러 와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라니? 방금 전으로 보건데 능력은 대단히 뛰어난 모양이지만, 그래도 혼자는 무리가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당연하죠! 지금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요? 그 페트라 교황청이란 말이에요!”
“어차피 안 싸우고 이 도시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지금 이 도시에는……괴물이 하나 와 있다고요.”
“괴물?”
“……반응을 보니 모르는 모양인데 그런 녀석이 하나 있어요. 그래도 누구보다도 먼저 도착하셨으니 이 도시를 빠져나갈 방법은 있으시겠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나름의 대비책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하지만 그 기대감은 무참히 박살났다.
“없다.”
“어, 없다고요? 돌아가는 열차편은요?”
“열차를 타고 가려고 해도 의미 없을 거다. 이곳으로 통하는 급행 선로가 박살났거든. 게다가 교단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역을 지켜보고 있겠지. 변장을 해서 뚫고 간다면 모를까.”
“그건 안 될 거예요. 저들은 이단을 추적하는 데 이골이 난 자들이니까요. 제가 아무리 모습을 바꿔도 근처에 있다면 단번에 알아차릴 거예요.”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에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아니면 따로 몰고 갈 차량도 없나요?”
“없다.”
애초에 오시안은 여기까지 달려왔다.
비록 절반의 거리라고는 해도, 절대로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오시안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방금 전처럼 안아 들고 티르나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 같은데.’
혼자면 모를까 둘이 되면 확신이 힘들었다.
문득 오시안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있었다.
아주 튼튼하고 빠른 차량을 몰고 온 자들이.
“어쩌면 방법이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요?”
“그래. 다만, 조금의 귀찮은 일은 감수해야 해.”
“귀찮은 일이요?”
그 말에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에나의 표정에 일순 망설임이 깃들었다.
“……어쩔 수 없겠죠. 이 도시에 계속 남아있으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요.”
“그렇다면 가도록 할까. 곧 놈들이 여기까지 들이닥칠지 모르니 다시 이동한다.”
“아. 잠깐만요.”
에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한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 안에서 무언가를 조심히 꺼내 들었다.
그것은 자그마한 성냥갑이었다.
안에서 성냥 하나를 꺼낸 에나는 불을 붙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냥의 불꽃 주위로 공간이 일렁이더니, 이윽고 에나와 똑 닮은 환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저것이 위치크래프트(Witchcraft).’
다른 이름으로는 마녀공예(魔女工藝)라 부르는, 마녀들의 고유한 마법.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다르며, 마녀마다 타고난 위치크래프트가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능력의 모티프가 전부 동화에 기인한다는 것.
오시안이 게임 속에서 보았던 마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혹자는 마녀의 마법을 메르헨(Märchen)이라고도 불렀다.
위치크래프트는 위력도 성능도 제각각이다.
바꿔 말하면 힘이 수치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왕국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수준의 마녀가 존재했으니까.’
실제로 마녀 ‘룸펠스틸츠헨’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힘으로, 왕국 전체를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참 지독하기는 했다.
왕국에 발을 들이는 순간 황금 게이지라는 것이 생기고, 그것이 최대치가 되면 체력이 몇이고 자시고 무조건 황금으로 변해 즉사 판정이니까.
오시안도 마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많이도 죽었었다.
그래서 대부분 공략법이라는 것이, 해당 마녀가 각성하기 전인 회차 초반에 그녀를 찾아 죽이는 것이었다.
그만큼 무수한 게이머들이 도전할 바엔, 차라리 싹을 제거하자고 입을 모았을 정도였다.
물론 오시안은 황금성에서 직접 잡아냈지만 말이다.
‘이쪽의 능력은 성냥을 통해 환상을 보여 주는 쪽인가.’
그 수준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망치는 데는 꽤나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교단의 추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이런 능력 덕분이리라.
“이걸로 시간은 조금 벌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바로 움직이지.”
*
사드나팔의 도시 외곽.
그곳에 정차된 커다란 지프차를 발견한 에나의 눈에 광채가 흘렀다.
“저거라면 충분히 도시를 벗어날 수 있겠어요.”
“그래.”
“하지만 험악한 사람들이 차량을 지키고 있는데 괜찮겠어요?”
에나의 걱정대로 차량을 관리하는 인원이 남아 있었다.
하나같이 경계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서 다가가는 즉시 발각될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방법이 있으니까.”
“정말요?”
오시안은 곧바로 행동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신체능력으로 차량에 접근해 경계를 서는 자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것이다.
에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그런 오시안을 응시했다.
“다 끝났다.”
“……네. 정말 훌륭한 방법이네요.”
피지컬이 뛰어나면 이런 일도 쉽게 하는 법이구나.
에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차량에 탑승하기로 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그러면 안 되죠. 남의 차량을 몰래 도둑질하려고 하시다니.”
“…….”
오시안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게다가 우리가 모시려던 마녀님까지 데리고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하얀 양복과 흰 모자.
그 아래에 쓴 무테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흉악하게 빛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