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성운비단
살았다.
오시안은 에나 그룬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의도치 않은 도움을 받고 말았다.
그때 에나의 시선이 오시안과 마주쳤다.
“이걸로 목숨 빚은 갚았어! 그러니까 꼭 이겨!”
그 당찬 외침에 오시안은 웃음을 흘렸다.
“기꺼이.”
심판자가 그 광경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단 따위가 신의 뜻을 우롱하는가.”
“꺄악!”
에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끝에서 타오르는 성냥의 불길이 확 강해지더니, 이윽고 성냥을 모조리 태워 버린 것이었다.
에나는 반사적으로 성냥을 놓았고, 봉인되었던 성화가 다시 심판자의 몸에 깃들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오시안이 거리를 벌리기에 충분했다.
심판자는 그런 오시안을 무시하고 에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마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오시안과 드잡이질을 하면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에나는 다급하게 성냥갑에서 새로운 성냥을 꺼내려 했지만, 그보다 심판자의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더 빨랐다.
방사형으로 뿜어진 황금불은 에나를 향해 들불처럼 밀려들었고.
그대로 성광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좌우로 흩어지는 뜨거운 황금빛을 본 에나가 떨리는 시선으로 오시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오시안은 그런 에나의 반응을 무시하며 심판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녀석은 강하다. 그냥 강한 것도 아니고 괴물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스텟을 최대치로 찍은 자신조차, 저 괴물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
순수한 힘의 차이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러니 응당 이런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았다.
오시안은 스스로를 기사라 소개했지만, 그의 본질은 그저 게임을 좋아하는 소시민 회사원이다.
기사의 육체가 내미는 용기보다도, 머릿속에서 차분하게 내리는 계산이 더 우선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은 것은 그 소시민이었던 자신이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처럼 싸우라고. 도망치지 말라고.
이 전까지 존재했던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이 순간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혈 형제단과 싸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오시안은 자조하듯 웃었다.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기사가 어울렸던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기에 오시안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것이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어둠일지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하게 타오르니까.
“……무슨.”
오시안의 마음가짐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심판자는 좋지 않은 직감을 느끼고 신성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쏴아아아.
황금 들판이 그의 의지에 따라 풍랑을 맞은 바다처럼 요동쳤다.
저 백열하는 검은 확실히 위험하다.
그 절삭력은 이쪽의 신성연금을 쉽게 잘라내며 정화와 심판의 불길마저 갈라버릴 정도였다.
순수한 힘의 밀집도와 예리함만 따지면, 이쪽이 사용할 수 있는 어떠한 규율의 기도도 저 검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저것은 양날의 검이다.
검이기에, 한쪽 방향에서 오는 것만 벨 수 있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완전한 자비의 불길로 전부 타오르게 하소서.”
심판자가 기도를 읊자 들판에 불길이 확 번져나갔다.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은 심판자의 의지를 따라 꿈틀거리며 오시안과 에나를 향해 덮쳐들었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광경.
전후좌우.
피할 공간 없이 동시에 밀려드는 성화는 칼 한 자루로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끝이다.”
심판자의 선언과 동시에 불길이 오시안과 에나를 집어삼켰다.
이것으로 저들은 황금의 재가 되어 정화되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심판자는, 황금의 불길 속에서 꿈틀거리는 빛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불길이, 밀려난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황금의 불길이 무언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힘이 다한 성화는 서서히 가라앉으며 잠잠해졌고, 그 성화를 견딘 힘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새하얀 구체였다.
마치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따와 그대로 지상에 옮겨놓으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순간 새하얀 구체가 정수리부터 갈라지며 꽃잎처럼 펼쳐졌다.
목련 꽃봉오리가 봄을 맞아 만개하듯, 사방으로 펼쳐지는 빛은 이윽고 한 남자의 몸에 깃들어 하나의 형태로 변했다.
그것은 망토였다.
찬란한 별빛을 잘라서 원단으로 만든 것 같은 망토가 바람 없이 펄럭였다.
목과 어깨 부분에 산들거리는 새하얀 깃털이 영롱히 빛났다.
[성운비단(星雲緋緞)]하늘의 기사의 특성, 성광이 지닌 스킬 중 하나.
별빛의 힘이 깃든 망토를 몸에 둘러 모든 저항력과 방어력, 이동속도를 상승시켜주는 자버프 스킬.
별빛의 망토를 두른 오시안은 한층 가라앉은 시선으로 심판자를 응시했다.
“이제야.”
망토의 틈새로 쥐어진 검에는 여전히 성광검이 뜨겁게 이글거렸다.
“서로 비슷해졌군.”
“……!”
심판자는 다급하게 불길을 일으켰다.
스스로가 왜 그렇게 초조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다시금 들판에 성화가 번지며 사방에서 오시안과 에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그 순간 오시안의 망토가 움직였다.
크게 확장되듯 펄럭이던 망토가 오시안과 에나의 몸을 휘감으며 고치처럼 변했다.
그 위를 성화가 쏟아졌지만 두 사람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오시안은 성운단포를 다시 망토의 형태로 되돌렸다.
꽃이 만개하듯 펼쳐지던 고치가 망토로 변해 오시안에게 붙는 모습은 일견 아름답기까지 했다.
에나는 그 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검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도 신기했는데, 황금의 불길을 막아내는 저 망토는 뭐란 말인가.
‘마치, 신화 같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에나는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성냥갑에서 여분의 성냥을 꺼낸 에나는 오시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저는 이제 괜찮으니, 가보세요.”
“그러지.”
오시안은 자세를 낮췄다.
달려 나가기 위해 취하는 자세였다.
촤아아악!
그 직후 망토가 거대한 에너지를 양어깨에서 분사시켰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별빛의 가루가 스프레이처럼 뿜어지고 오시안은 그 반동을 발판삼아 심판자를 향해 돌진했다.
서걱.
오시안과 심판자 사이의 황금 들판이 반으로 갈라졌다.
마치 세상이 쪼개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심판자는 본능적으로 신성연금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세 겹.
그가 이토록 많은 방패를 만든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서걱!
단 일격에 3개나 되는 신성연금 방패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너머에 있던 심판자의 오른팔 또한 잘려 나갔다.
“……!”
잘려나간 팔은 의복과 함께 곧바로 수복됐지만, 심판자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방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저 망토의 효과인가?
원래도 뛰어난 절삭력의 검이, 망토가 부가해 주는 속도와 시너지를 일으켜 더 예리해졌다.
그러는 사이 심판자를 지나친 오시안이 방향을 틀었다.
자리에서 멈추는 일 없이, 망토의 가속을 그대로 받은 오시안의 몸이 옆으로 크게 선회했다.
그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새하얀 섬광이 허공에 잔류하듯 남았다.
마치 혜성이 지나가며 생기는 오로라를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지상을 내달리는 혜성이 다시금 심판자를 향해 돌진했다.
그 성스러운 힘은 도저히 이단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단의 것이 아니라고?’
심판자는 자기가 본능적으로 떠올린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투철한 신앙심이 순간이지만 무너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부정하듯 심판자의 양손에 황금의 불길이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길이 무기의 형상을 취했다. 대부분의 신성력을 그대로 눌러 담은 폴 암이었다.
방패를 몇 겹을 둘러도 저 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면 이쪽도 똑같이 무기로 되받아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비천한 어린양을 굽어살피소서.”
심판자는 기도를 읊었다.
간절하게.
진실하게.
그 신실한 신념은 전신을 내달리며 그에게 용기와 힘을 선사해주었다.
길이만 5m가 넘는 대형 폴암을 쥔 두 손에 황금빛이 깃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의 위에 황금의 고리가 맺히며 헤일로(Halo)가 생겼다.
헤일로의 모양은 바깥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나무 왕관을 닮았다.
“나 간절히 믿나니. 이 손에 영광의 승리를.”
무표정했던 심판자의 얼굴에 감정이 깃들었다.
그것은 지금 상황에 대한 답답함, 분노를 넘어 오시안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바치겠나이다.”
심판자를 향해 돌진하던 오시안은 그의 표정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좋은 표정이군.”
그 중얼거림을 상대가 들을 수 없었겠지만, 이쪽을 향한 적의가 더 강하게 타오르는 걸 보면 대충 낌새는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심판자는 자세를 잡았다.
오시안이 다가오는 타이밍에 맞춰 모든 신성력을 응집한 금빛 폴암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자신의 몸에 온갖 버프를 둘러 최대치로 강화시켰고 최대 신성력을 담은 연금무기까지 준비됐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하려는 속셈.
오시안은 그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등 뒤의 망토가 분사하는 별가루가 더욱 선명하고 강렬해졌다.
오시안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심판자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심판자는 기다렸다는 듯 폴암을 휘둘렀다.
성광검과 금빛 폴암이 충돌했다.
그 힘의 충돌에 빛이 크게 번뜩였다.
빛은 한 점으로 응축되더니 이윽고 서서히 크기를 불려 나갔다.
구체로 흩어지는 금빛에 닿은 황금들판이 가루처럼 흩어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에나도 두 손으로 눈가를 가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윽고 빛이 서서히 가라앉은 걸 확인한 에나가 눈가를 가린 팔을 내렸다.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폭발의 중심지를 바라봤다.
황금 들판이 사라진 자리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이겼어?”
자리에 멀쩡히 서 있는 것은 오시안이었고, 쓰러진 것은 심판자였다.
결국 오시안이 승리한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심판자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지상에서 벌어진 소란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마치 세상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대체 얼마 만에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가.
아버님은 저 위에 계시다 했지만, 그는 기도를 위해 항상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위가 아닌 아래를 보며 이단과 악인을 향해 피의 철퇴만을 휘둘러 왔다.
거부감은 없었다.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하지만 처음으로 패배를 겪고 말았다.
척.
오시안의 검 끝이 심판자의 턱 아래를 겨누었다.
이글거리던 그 유구한 별빛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몸 상태를 생각하면, 그 별빛이 아니더라도 목을 베는 순간 끝나리라.
끝인가.
심판자가 그렇게 생각할 때 오시안이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은?”
“……?”
그건 갑자기 왜 묻는단 말인가.
설마 죽이기 직전에 이쪽을 모욕이라도 할 생각인가.
하지만 심판자는 곧바로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싸우면서 느낀 오시안은, 절대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하려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름이 궁금해서 묻는다는 건데.
“……마르티네스.”
대체 왜 이름을 답했는지 심판자는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을 들은 오시안은 꽤나 신기하다는 듯 그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더니 이내 검을 치웠다.
“오시안이다.”
“……죽이지 않는 건가?”
“그래.”
“어째서?”
오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한 번의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니, 나도 너에게 한 번의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맞으니까.”
거짓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시안은 지금의 상황에 꽤나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넘어, 성광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모처럼 성기사와 PVP를 하는 느낌이 들어서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고.’
마르티네스와의 싸움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모처럼 자비를 베풀려는 것이었다.
“……교단은 너희들의 존재를 용납지 않을 거다.”
“그래? 그러면 몇 번이고 찾아와도 좋다.”
오시안은 오히려 그 소식을 기꺼워했다.
이런 강자와 싸우다 보면 새로운 특성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르티네스는 오히려 반가워하는 오시안의 모습에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어려 보이는데, 벌써부터 세상 다 살았다고 하지 마라.”
오시안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회수해 칼집에 집어넣었다.
마르티네스는 그런 오시안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끼이익. 쾅!
무어라 말을 하려던 마르티네스를 지프차가 들이받았다.
마르티네스는 그대로 멀리 튕겨 날아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오시안은 멍한 표정으로 날아간 마르티네스를 응시했다.
그때 차량 운전석의 창문이 열리며 에나가 후련한 얼굴로 말했다.
“자, 이제 가요!”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