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50)
50화. 마녀와 기사님
오시안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에나를 바라보았다.
싸움이 다 끝났는데 냅다 차로 받아 버릴 줄이야.
방금 전 황금불을 억제하면서 소리친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한 성깔 했다.
오시안은 곧바로 조수석에 탔다.
에나는 곧바로 지프차의 엑셀을 밟아 최고 속도로 달렸다.
마르티네스가 쓰러진 지금, 황금들판도 사라지고 없었기에 지프차는 막힘없이 쭈욱 나아갔다.
“저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
“누구요. 심판자요? 증기열차에 치이고도 그걸 녹여버린 괴물인데 고작 지프차에 치였다고 뭐 어떻게 되겠어요?”
하긴.
잘려나간 팔도 도마뱀 꼬리처럼 다시 되돌리는 놈인데, 이 정도로 치인 것에 죽을 리가 없다.
지금은 싸움의 여파로 가만히 있겠지만 금방 추스르고 회복하리라.
그걸 알면서도 에나가 냅다 들이받은 것은 지금까지 계속 쫓기던 사람의 울분이 터져 나온 결과였다.
“그보다 의외로군. 운전도 할 줄 알았나?”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하게 되더라고요.”
“마녀가?”
“그게 무슨 의미예요? 마녀면 뭐 위치크래프트로 돈 많이 벌 줄 알았어요?”
“아니었나.”
에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돈을 번 적은 있었어요. 정확히 돈 때문은 아니고,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죠.”
“그 환상을 보여주는 능력 말인가.”
“그냥 환상이 아니에요. 사용자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죠. 심지어 완전한 허상도 아니라 만질 수도 있고요.”
에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돈을 받고 원하는 환상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그걸 보여줌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해줄 수 있었으니까.
세간에서 비난하는 마녀의 힘이라 하지만 에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마녀의 힘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헛된 바람이었죠.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아이의 환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이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신문배달이나 잡심부름, 굴뚝 청소.
그중에서 가장 혹독한 일은 바로 탄광이었다.
탄광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광석을 옮기는 것은,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훨씬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그렇게 탄광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탄광이 무너지고 죽는 것 또한 아이들이었다.
에나에게 찾아온 노파는 그 탄광의 붕괴에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였다.
에나는 처음에 죽은 자식의 환상을 보여주었다.
죽은 자식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껴안는 어머니의 모습에 감동과 뿌듯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 노파는 계속 에나를 찾아와 자식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처음에 에나도 바라는 대로 해 줬지만, 계속 찾아오다보니 이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랬더니 교단에 저를 신고했죠. 저 간악한 마녀가 자기 자식을 납치해서 잡아먹었다는 망상에 빠져서요. 그때 절 보며 눈을 부릅뜨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꿈에 나올 정도로 무서웠거든요.”
참 웃기죠?
그렇게 묻는 에나의 표정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가장 원하는 환상을 보는 것은 좋지만, 성냥의 불이 꺼지는 순간 그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지죠. 말 그대로 바람 부는 순간 사라질 허상인 거예요. 그렇기에 짧고,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죠.”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공허하고 삭막한 현실이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달콤한 꿈을 꾸고 싶어 해요. 특히 현실이 힘들고 고될수록 더더욱. 저는 선의로 그 사람들을 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달콤한 환상은 마약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이나 다름없었다.
능력에 매몰되어 더 망가지고, 졸지에는 광기와 집착만 남아서 애원한다.
그리고는 목 놓아 외치는 것이다.
마녀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최대한 위치크래프트를 자중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배웠어요. 이 운전도 그 일환 중 하나죠.”
“힘든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군.”
“당신만 할까요?”
에나의 핀잔에 조수석에 앉은 오시안이 피식 웃었다.
그 가벼운 대꾸는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비춰 보여서 에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대체 그건 뭐였어요?”
“뭘 말하는 거지.”
“그, 검에서 뽑아낸 빛부터 해서 몸에 두른 망토요.”
“기사의 기본 소양이다.”
오시안으로서는 이렇게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성광검은 하늘의 기사가 사용하는 기본 특성 중 하나였다.
“기사요?”
에나는 자신이 뭘 잘못 들었다는 듯 물었다.
“농담이죠?”
“그렇게 들렸다면 어쩔 수 없겠지. 다만 마녀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아니, 마녀야 아직도 실존해 있잖아요.”
“기사도 실존하지 않나. 지금 바로 여기.”
에나는 그게 말이 되냐고 따지려 물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오시안이 기사가 아닐 건 또 뭐람?
검에서 눈부신 백광을 뿜어내고 몸에 새하얀 별빛의 망토를 둘렀다.
마법도, 성법도, 뮤턴트의 능력도,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오시안 본인이 지닌 고유한 무언가일 것이다.
그것을 오시안이 기사의 힘이라 명명했으면 기사인 것이었다.
‘게다가 뭔가,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과거엔 분명 기사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전설, 혹은 동화로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실존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이정표 삼아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일들을 해왔다고 전해진다.
에나도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정의로운 기사가, 악독한 용을 물리치고 공주님을 구하는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에게도 언젠가 멋진 기사님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기사님이라니.’
옛 그리운 추억을 떠올린 에나가 지금의 상황과 비교를 해보고 속으로 작게 웃었다.
동화 속 기사님은 악룡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 냈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기사님은 성직자를 물리치고 마녀를 구해 냈다.
동화 속 기사는 용맹하고 새하얀 말을 타지만, 오시안은 지프차를 타고 있었다.
그 기묘한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심판자를 상대로 그렇게 싸울 생각을 했어요? 무려 당대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 알려진 괴물이었는데.”
“많이 싸워 봤거든.”
성기사와 pvp는 질리도록 해봤다.
오시안은 굳이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주의였다.
그래서 상시 pvp창을 열어놓고 승낙을 기다렸다.
보통 호기로운 사람들이 오시안에게 pvp를 신청했는데 그중 성기사 직업의 비율이 유독 높았다.
방랑기사를 상대로 그나마 오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직업이라 그렇다.
참고로 그 다음으로 많은 직군이 흑마법사와 야만전사였다.
오시안의 대답은 그런 기억을 토대로 한 거였지만, 받아들이는 에나는 달랐다.
‘많이 싸워 봤다고? 교단의 성기사랑?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그러나 저 비밀이 많은 권태로운 모습을 보면 묻는다고 대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보다 괜찮겠어요? 결국 교황청과 적대관계가 됐는데. 심지어 이름까지 알려 주고요. 지금이라도 증거를 없애는 게 낫지 않았어요?”
“소용없는 일이야.”
오시안은 조수석 창가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황량한 벌판의 모습이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겼다.
“그 어린 심판자가 죽었다면 교단에서도 흔적을 쫓겠지. 그러면 자연히 우리와 마주했다는 것이 알려져.”
“그렇겠네요. 우리가 이 차를 타고 무사히 도시로 도착하면, 꼬리를 잡힐 테니까요.”
“그래서 살렸다. 적어도 완전히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겠다 한 거니까.”
물론 이것은 적당히 떠오른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진심을 뽑으라면, 즐거운 싸움을 한 자비를 베푼 것에 가까웠다.
덕분에 성운단포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피곤하군. 눈 좀 붙여야겠어.”
“네?”
“안전운전 부탁하지.”
겉으로는 멀쩡한 척했지만, 사실 오시안은 당장이라도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성운단포를 사용하게 된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처음 사용한 기술인만큼 엄청난 정신력을 잡아먹은 것이다.
어중간하게 사용했다면 모를까.
심판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처음 사용한 기술을 최대출력으로 쉬지 않고 내달렸다.
그 반동이 싸움이 끝나고 긴장이 탁 풀린 지금 밀물처럼 몰려온 것이었다.
오시안은 곧바로 눈을 감고 조용한 잠에 빠져들었다.
운전대를 쥔 에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야? 진짜 여기서 잔다고?
아니. 물론 고생하기는 했다. 무려 그 심판자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것이다.
그 별빛을 두른 검은 또 어떤가.
심판자가 자랑하는 신성연금까지 모조리 베어낼 정도의 고화력의 검이었다.
아니, 그걸 검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검의 형태만 했을 뿐 사실상 열량의 덩어리가 아닌가.
그걸 두르고 싸운다면,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을 터다.
그래도 뭔가 처지가 바뀐 거 같지 않은가.
이쪽은 도움을 요청한 의뢰주인데, 왜 갑자기 해결사의 운전수 역할을 하게 된 거지?
“씨이. 일어나기만 해 봐. 바로 따질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에나의 운전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마치 누군가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
오시안이 눈을 뜬 것은 티르나에 도착했을 때였다.
차를 안쪽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기에 근방의 정비소에 적당히 맡긴 뒤, 두 사람은 따로 내부 교통편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바이올렛 폭스 주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내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오시안은 문고리를 여는 대신 귀에 감각을 집중해 안쪽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제 슬슬 돌아올 때 아니야? 뭔가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선로가 부서졌다 했으니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설마 포기하지 않은 거려나요?
-소문 들었는데 고철더미 녀석들도 움직였다던데? 심지어 그 악랄한 마피아들도 끼어 있다 하더라고. 적당히 눈치 보면서 나오지 않을까?
각자 로레인, 로난, 디올란이 한 말이었다.
그때 로레인이 장담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해결사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로레인 씨가 그렇다고 확신하니까 뭔가 더 아닌 거 같군요.
-하. 그러면 뭐, 내기할까? 우리 막내가 임무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난 실패에 걸 거야. 왜. 쫄려?
피식.
자기가 없는 사이에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오시안은 문을 열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무어라 떠들던 세 사람은 오시안을 보더니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로난이 평소와 같은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오시안을 반겨 주었다.
“후후. 오셨습니까. 오시안 씨. 조금 늦으셨군요.”
“일 처리를 하다 보니 늦어지더군.”
“뭐, 너무 상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결사의 일이라는 것이 항상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는 거죠. 저희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지? 나는 실패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만.”
“예? 그게 무슨…….”
오시안은 대답 대신 자리를 옆으로 살짝 비켜주었다.
그러자 오시안의 등 뒤에 가려져 있던 에나 그룬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나를 본 세 사람의 표정이 제각기 변했다.
로난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며 가늘어진 눈이 더 길게 변했다.
디올란은 당황스러운 듯했고, 특히 로레인의 표정이 가장 알기 쉬웠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경악이 담긴 모습이었으니까.
“의뢰주 에나 그룬트다. 그녀를 무사히 데리고 왔지.”
오시안은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 특히 자신이 반드시 실패할 거라 말한 로레인을 주로 응시했다.
“어, 어어…….”
로레인은 식은땀을 흘리다가 곧바로 외쳤다.
“내, 내가 뭐랬어! 우리 막내 성공할 거라 그랬지!”
“예?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아! 그러고 보니 오늘 총기 손질을 깜빡했네! 나 잠시 먼저 간다!”
로레인은 대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쌩 하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 모습에 로난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디올란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큭큭 웃었다.
“……여기 해결사 집단 맞아?”
에나 그룬트는 그 우스운 광경에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시안은 에나 그룬트를 동료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로나 롤랑. 이 해결사 사무소의 중개인이다. 인사해라”
로난은 에나를 향해 신사처럼 부드럽고 예의 있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나 그룬트 양. 바이올세 폭스의 중개인 로난 롤랑
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로만 듣던 고명한 마녀를 만나게 되어 실로 영광입
니다.”
에나는 그런 로난을 빤히 응시하더니, 조용히 오시안의 등 뒤로 숨었다.
오시안은 얼굴만 빼꼼 내민 에나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지?”
“저 남자. 너무 수상해.”
대체 어디가 수상하냐고 물어볼수 없었다.
사실 오시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실눈이잖아. 저런 사람들은 항상 그래. 속이 어디가 검다고 해야 하나.
반드시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
그러는 사이 로난을 향한 에나의 평가는 계속됐다.
부담스러워서 등 뒤에 숨은 주제에,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한다.
심판자를 차량으로 들이받았을 때도 느낀 거지만, 확실히 에나는 한 성깔
했다.
“후후후.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여린 마음에 상처
를 입는답니다.”
“우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