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발푸르기스의 밤 (2)
성광검.
지상에 강림한 별빛에 카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건, 뭐지?
그녀의 눈동자가 오시안의 손에 쥔 검에 못 박힌 채 떨어지지 않았다.
검에서 갑자기 새하얀 빛이 솟아났다? 설마 저 사람도 마녀인가? 하지만 마녀는 여자만 될 수 있는데.
눈속임이라는 생각에도 미쳤지만, 카렌은 저 검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느껴진다.
하늘색과 흰색이 뒤섞인 불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이.
저것은 닿는 것은 뭐든지 베어 버리는 고열량의 검이다.
동시에 카렌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품고 말았다.
아름답다고.
“어떻게 할 거지? 여기서 한번 붙어 볼 생각인가?”
오시안은 카렌을 향해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이곳이 바이올렛 폭스였기에 당장 휘두르지 않았을 뿐이지, 이 경고마저 무시한다면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카렌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에나를 잠시 빤히 응시하더니, 이내 손에 쥔 작두를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커다랗던 작두는 허리춤에 거는 순간 크기가 확 작아지더니 사라졌다.
“흥. 재미가 없어졌어. 카렌은 갈래.”
카렌은 등을 돌리더니 바이올렛 폭스 주점을 그대로 떠나 버렸다.
갑자기 나타나서 에나 그룬트를 협박한 것치고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떠나는 모습.
“후아, 다행이군요.”
그때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던 로난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것은 디올란과 로레인도 마찬가지였다.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혹시나 이대로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나, 정말 속으로 쩔쩔맸는데 말이죠.”
“……무서워한 것치고는 꽤 당당하게 말하던데.”
“후후, 무섭다고 도망을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로난은 웃으며 대꾸하고는 에나를 돌아봤다.
“에나 그룬트 양. 괜찮으십니까?”
“아, 네. 네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오히려 더 나빠질 것 같아서 주제도 모르고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아, 아뇨.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 감사하고 있기도 하고요.”
에나는 방금 전 카렌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설마 여기 오자마자 다른 마녀가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티르나에서 마녀는 꽤나 귀중한 존재라고. 그러니 다른 마녀들이 욕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죠.”
“그 마녀집회라는 곳이 그건가요?”
에나의 물음에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금 전 찾아온 마녀 카렌은 티르나에 단 2개 있는 마녀 집회 중 하나인 발푸르기스의 밤 소속입니다.”
“2개나 있다고?”
오시안도 그건 몰랐기에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하나는 들으셨다시피 발푸르기스의 밤입니다. 마녀들끼리 모여서 힘을 합치고, 서로 잘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직이죠. 사실 조직이라기보다는 모임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뭐든지 하기 위해서 힘을 합칠 뿐, 조직으로써 갖춰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은 모든 구성원들이 마녀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마녀 다과회」입니다.”
“꽤 아기자기한 이름이로군.”
“이쪽은 공적인 조직의 성향이 강한 곳이죠. 마녀의 힘을 지녔지만, 도시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티르나 시와 공조하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도시를 위협하는 자들을 상대하거나, 혹은 다른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나서는 곳이죠.”
“마녀도 성향에 따라 갈린다 이건가.”
“그래도 전력은 다과회 쪽이 더 강합니다. 듣자하니 그쪽에는 전설의 마녀가 소속되어 있다고도 하니까요.”
전설의 마녀라.
오시안은 문득 게임 속의 마녀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녀에게 딱히 주어진 수명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쩌면 자신이 알던 존재가 지금까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상념은 로난의 이어지는 말에 끝났다.
“에나 그룬트 양은 그런 의미에서 요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마땅한 소속이 존재하지 않는 마녀. 티르나에 들어왔기에 이전까지 눈여겨보기만 하던 자들이 직접 접촉하겠죠.”
에나의 가치는 그녀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사건에 휘말리게 되리라.
에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건 오시안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말인가?”
“이번 의뢰. 솔직히 말해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더라도 확률은 1할 아래라고 보았죠.”
“그거 꽤 자존심이 상하는 평가로군.”
“기분이 나쁘시겠지만 이게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하지만 오시안 씨는 그걸 보란 듯이 해내셨습니다. 마피아와 폭주족, 마법사들, 그리고 교황청의 추적자들 사이에서 말이죠.”
그것은 오시안이 한 명의 해결사로서 완성이 되었다는 소리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방해와 질시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오시안 씨를 눈여겨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조심하란 말은, 로난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
발루드는 부하들을 이끌고 회의장에 향했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노스 블라인더스는 주기적으로 이사진들이 모여서 여러 안건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시장은 어떻고, 도시의 세력다툼은 어떻게 흘러가고,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은 어떤지, 지금 진행하는 사업의 진척은 잘 되는지.
발루드도 이사 중 하나였기에 회의는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그는 평소처럼 정갈한 백색 양복을 입은 채 흐트러짐 없는 머리를 유지했다.
“오오. 이야, 이게 누구야? 항상 깔끔 떠는 우리 발루드 이사님 아니야? 참 먼 길도 행차하셨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니 반겨주는 경박한 목소리.
“여전히 격 떨어지는 언행이군요, 쿠르샤.”
말을 건 사람은 불꽃 같은 새빨간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인상적인 남자였다.
와이셔츠를 가슴팍까지 풀어 헤친 채 비스듬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태도에서부터, 그의 자유분방한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스 블라인더스 마피아의 이사 중 하나인 쿠르샤.
그는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다는 듯 입꼬리를 스윽 말아 올렸다.
“어때. 요즘 일은 잘되나? 내가 최근에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지.”
“…….”
“오. 이런.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고? 하긴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겠지. 천하의 발루드가 풋내기 해결사를 상대로 실패를 맛봤으니 말이야. 크하하!”
발루드는 쿠르샤의 말을 무시하며 주어진 자리에 앉았다.
다른 자리에는 이미 도착해 있는 이사들이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대화에 끼어들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지켜볼 뿐.
발루드는 천천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생각했다.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곳이야.’
모두가 동등한 이사의 자격을 지녔지만, 동시에 서로의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이쪽이 실패를 했으니 그걸 빌미로 물어뜯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럼에도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더 강하고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겠지.
‘미친개 역할은 원래부터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쿠르샤에게 떠넘기고 말이지. 쿠르샤 녀석도 그걸 알면서 기꺼이 진행자 역할을 떠맡았군.’
그래 봤자 같잖은 수작질이다.
이쪽이 반응하지 않고 무시하면, 저 녀석도 제풀에 알아서 나가떨어지겠지.
하지만 발루드의 생각과 다르게, 쿠르샤는 모처럼 잡은 기회를 쉽게 놓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 발루드 이사가 마음이 약해졌나 봐. 고작 핫바리 해결사 하나 상대 못 해서 말이야. 혹시 봐주기라도 한 건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내 말은, 그쪽의 실력이 너무 녹이 슨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
쿠르샤가 이죽이며 하는 말에 발루드에게서 강렬한 살기가 일어났다.
발루드는 얼굴에 쓴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렸다.
안경알이 하얗게 빛나며 그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그러면 이 자리에서 확인을 해 보시겠습니까?”
“오, 그거 재미있는데.”
쿠르샤도 지지 않고 새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넘실거렸다.
뜨겁게 가열되는 둘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얼굴에 검버섯이 핀 초로의 노인이었다.
“둘 다 그만하게. 이런 자리에서 식구들끼리 싸우면 되겠나. 곧 회장님께서도 오시는데.”
그 말에 발루드와 쿠르샤가 기세를 거둬들였다.
발루드는 애초에 그냥 해본 소리였다는 듯 평소의 태도를 고수했고, 쿠르샤는 킁 하고 코웃음을 쳤다.
‘저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 풋내기 해결사와 제대로 싸워서 승부를 내지 못한 모양인데.’
발루드와 견원지간처럼 으르렁대는 사이라 하지만, 쿠르샤는 발루드의 실력을 알고 있다.
이 노스 블라인더스라는 역사가 있는 조직에서, 어느 날 갑자기 가입한 북부 야만족이 삽시간에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발루드는 본인도 뛰어난 전투력을 지녔지만, 사람을 부리는 용병술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그렇기에 그가 담당하는 부서는 주로 용역, 인력사무소 쪽으로 치중되어 있었다.
남들이 다 물건을 통해 돈을 만지는 것과 다르게, 사람으로 돈을 버는 스타일.
그래서 다른 이사진들은 발루드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투박한 방식이라며 말이다.
‘참으로 야만족다운 짓이지만, 그래도 그 실력만큼은 진짜란 말이지.’
강한 흥미가 들었다.
망명 요청을 한 소문의 마녀를 데려간, 그 잘난 해결사가 누구인지.
팀을 이룬 것도 아니고 혼자서 발루드를 상대한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그 뒤를 쫓아온 교황청의 미친개를 상대로도 살아남았단다.
마주치고도 살아남은 건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도주에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존 자체만으로 그 오시안이라는 해결사는 근래 보기 드문 녀석이라는 뜻.
그리고.
‘바이올렛 폭스 사무실이라 했지?’
해결사 업계에서도 극히 소수만 소속되어 있으며 빡빡한 규정 속에서도 회색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사무실.
자신의 귀에도 은근히 이름이 들릴 정도라면, 나름 알아주는 곳이리라.
‘와하핫! 이거 재미있네.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가도 나쁘지 않겠어.’
*
“새로운 마녀가 도시에 들어왔다고 해요.”
어두운 공간.
새까만 어둠 속에서 새하얀 식탁보가 펼쳐진 테이블만 놓인 곳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그 말에 다른 방향에서 감탄에 찬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 그게 정말이니?”
“그럼요. 듣자하니 페트라 교황청에 쫓겼다고 하던데, 무사히 도달했다고 하네요.”
“그거참 다행이구나. 도시의 바깥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가혹한 곳이었을 텐데. 아직도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을 줄이야.”
“그 때문인지 벌써 발푸르기스의 밤이 나선 거 같아요.”
“생각보다 빠르네.”
“우리가 늦은 거야.”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꺄르륵거리는 웃음소리.
차를 호록 마시고, 찻잔을 놓고, 주전자로 새로운 홍차를 따르고.
그렇게 담소를 나눈다.
마녀들의 다과회는 이런 곳이었다.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있다.”
그때 테이블의 중심에서 황금색 불길이 화륵 피어올랐다.
그 목소리에 웃으며 떠들던 마녀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의 이목이 황금 불길에 집중됐다.
“새로운 마녀를 도시까지 안전하게 데려온 해결사가 있다더구나.”
“그건 놀랍네요. 마탑의 마법사도, 뒷세계의 범죄조직도 아니고 일개 해결사가 그걸 해내다니.”
“게다가 그 정화 심판자를 상대로 살아남았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그게 뭐죠? 큰 언니.”
“그자가, 별빛을 다룬다더구나.”
별빛이라는 말에 주변 마녀들이 웅성거렸다.
고고히 타오르는 황금의 불이 말했다.
“이제는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유산이 다시 나타난 것인지는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
결정은 그 뒤에 하리라.
놔둘 것인지, 손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싹을 제거할 것인지.
*
“흐응.”
도시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의 꼭대기 층.
그레이스 시커는 손에 쥔 와인잔을 흔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그 남자가 이번에 또 일을 저질렀다.
물론 이런 소문은 아는 사람만 아는 거라, 막 커다란 명성까진 기대하기 힘들지만.
글쎄 그 남자가 과연 여기서 멈출까.
그레이스 시커는 이게 시작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후후. 재미있어.”
권태에 젖어든 도시의 삶이, 조금은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
“특히 이번 일로 마녀의 영입을 실패한 사람들은, 오시안 씨에게 더욱 적대감을 키울 겁니다.”
“그렇겠지.”
“이 업계가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을 우러러보면서도, 어떻게든 그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하죠. 경외는 하지만,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는 자들의 욕망이 더 강합니다. 여긴 그런 곳입니다. 그래도 되는 곳이죠.”
그것이 바로 티르나의 뒷세계였다.
오시안은 이번 일을 기점으로, 이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이민 것이다.
이제 벗어나려 한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 들어온 지옥과 수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뿐이다.
“앞으로 많은 위기가 생길 겁니다.”
방금 전처럼 카렌과 충돌할 뻔한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더 많은 사람들.”
티르나의 위병, 집행관, 갱단, 범죄자, 마법사, 흑마법사, 교황청의 심판자.
“더 위험하고 강한 조직들.”
해결사 연합, 도시의 대기업, 마탑, 마피아, 흑마법사 조합, 티르나 방위군, 마녀 다과회.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들.”
선혈형제단, 발푸르기스의 밤, 교황청의 12성부, 도시에 암약해 있는 다른 비밀조직까지.
“오시안 씨는 그들과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무시하면서, 점차 마모되어 갈 겁니다.”
순간이지만 로난의 표정에 미소가 사라지고 진지함이 깃들었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할 수 있으십니까?”
로난은 오시안이 여기서 으레 겁을 먹고 대답을 유보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디올란도, 로레인도 마찬가지였다.
“더 다양한 놈들을 만날 수 있다라.”
하지만 오시안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은근한 미소마저 머금었다.
“재미있군. 누구라도 좋아. 얼마든지 와 보라고 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