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순위
세렌은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에이, 단순한 착각이겠지.’
이 바닥에서 구를 대로 구른 것도 모자라, 그 과거조차 불명확하고, 지니고 있는 무력은 자타공인 최강의 해결사라 불리는 남자다.
해결사라는 규격으로 묶는 것도 미안한 사람을 상대로, 이제 막 업계에 들어온 신입을 비교한다니.
세렌은 자신이 속으로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들 정도라면, 무언가 있는 건 맞겠지.’
지금까지 보여 준 태도와 일전 성공한 의뢰까지.
오시안은 신입이지만, 분명 그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일 것이다.
‘실력은 알겠어. 알겠는데, 인성은 과연 어떨까.’
해결사 업계는 항상 실력 지상주의다.
실력만 있으면, 아무리 성격이 개차반이고 불법을 저질러도 용인해 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세렌은 그것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세렌이 이 업계에 일하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재능 있고 젊은 해결사는 대게 성격이 개차반이거나 싸가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우선 첫인상만 보면 돈 많은 집안의 도련님 같고.’
벼락부자는 아니고, 어딘가 역사와 명망이 있는 고위급 귀족이라 해야 할까.
차분한 태도와 앙다문 입술, 자신을 보고도 별다른 동요가 없는 고요한 눈동자까지.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조각을 한 미남 같았다.
아니면 화가가 붓질 한땀 한땀 공을 들여서 그린 명화라거나.
바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데도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외모.
거기에 방점을 찍는 것은 그 표정이었다.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어필하고 있는데도, 거기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티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 애초에 관심 자체가 없다는 뜻.
세렌은 거기에 감탄을 하면서도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궁금한 거 없어? 뭐든지 대답해 줄 수 있는데.”
“뭐든지?”
그 말에 반응한 것을 보고 세렌이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 결국 이렇게까지 나오면 반응을 할 수밖에 없겠지.
“응, 뭐든지.”
“그러면.”
오시안이 세렌을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너는 여기서 얼마나 강하지?”
“으, 응?”
너무 상식 밖의 질문이라 세렌이 목소리를 떨었다.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서 오시안의 눈빛을 보았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었다.
보여 준 태도를 생각하면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 같은데.
‘얘, 원래 이런 성격이야?’
세렌이 눈동자를 스르륵 굴려 로난을 향해 물었다.
로난은 그 광경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로난 녀석이 또 재미있는 신입을 데려왔다 싶으면서, 세렌은 방긋 웃었다.
“조금 더 프라이버시한 질문을 해도 상관없었는데, 아쉽네.”
“관심 없다.”
“……아 그러셔?”
저렇게 딱 잘라서 말할 것까지 있나?
세렌은 살짝 심통이 난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방금 전 오시안이 한 질문에는 착실히 대답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강하냐 했지? 내 능력을 보면 알지 않을까?”
세렌의 모습이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세렌은 마치 신기루라도 된 것처럼 존재하지 않게 됐다.
오시안의 눈길이 가늘게 좁혀졌다.
분명 은신 능력인데 기척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발견할 수 있던 것은 세렌이 능력을 가볍게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처음 보는 기술이야. 도적 계열들이 사용하는 고유 은신과는 달라. 그렇다고 마법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실종된 고대 주술도 아니야.’
게임 속에 존재하던 온갖 지식들이 떠올랐지만, 세렌의 능력은 그 어느 하나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없었다.
뒤바뀐 세상 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부류의 능력이라는 소리리라.
눈으로 보이지 않으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 있다는 기척도 없다.
이런 능력이라면 확실히 로난이 데려올 만하다 싶다는 순간, 오시안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탁.
“어라?”
세렌은 오시안의 뺨을 찌르려던 손이 붙잡힌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심 당혹스러운 건 손을 잡은 오시안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뭔가 뺨이 찌르르 울려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고 말았다.
그랬는데 세렌의 손이 잡힌 것이었다.
“와, 신입 감 엄청나게 좋구나?”
세렌은 웃으며 말했지만, 오시안을 보는 눈빛이 한층 더 진지해져 있었다.
처음에 자신을 발견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잡아 줄 거야? 잘생긴 남자의 뜨거운 어프로치가 싫지만은 않은데, 슬슬 잡힌 손목이 아파 오려 그러거든.”
“……그래.”
오시안은 손을 놓아주었다.
“보다시피 내 능력은 이거야. 실상 전투에서는 크게 쓸모는 없지.”
세렌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시안은 그 대답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의 은신은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었고, 그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일에 대체가 가능했지만.
직감이라 해야 할까, 본능이라 해야 할까.
세렌 그라시아에게는 단순히 저 능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쪽이 이 사무소 서열 2위인가?”
“내가? 아하하. 그렇게 높게 봐줘서 고맙네. 미안하지만 나는 3번째야.”
세 개의 손가락을 펼치며 말하는 세렌.
“3번째라.”
“내 위에 둘이 더 있어. 그리고 여기 있는 디올란과 우리 귀염둥이 로레인은 5, 6번째고.”
“그러면 내가 7번째겠군.”
그렇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3명이 더 있다는 말.
세렌도 상당히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인데, 이 사무소의 서열 1위는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함이 들었다.
‘당장 로난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지만.’
로난이라면 오히려 웃으면서 직접 만나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묻지 않기로 했다.
대답을 강요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고, 이런 궁금증은 나중의 재미로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 오믈렛 다 식었다.”
로레인의 한마디에 일행들은 뒤늦게 식사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라?”
세렌은 자신이 식사를 방해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혀를 내밀었다.
“미안해, 친구들~.”
저렇게 뻔뻔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니 무어라 따지기도 그랬다.
“저는 우선 의뢰 관련해서 세렌 씨와 대화를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세렌은 자연스럽게 로난의 뒤에 따라붙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세렌은 오시안을 슬쩍 응시하더니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탁.
로난의 사무실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세렌이 입을 열었다.
“저거 뭐야?”
세렌이 말하는 저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아는 로난은 그저 미소를 흘릴 분이었다.
“놀라셨습니까?”
“놀라고 자시고, 내 은신을 꿰뚫어 봤잖아. 처음 거야 장난치려고 적당히 숨은 거라 감이 좋아서 들킬 수 있다 쳐. 하지만 그다음에 한 건 나도 나름 진심을 다한 거였어.”
그랬는데 걸렸다.
물론 손가락이 뺨에 닿기 직전까지 오시안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거의 직전, 섬전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낸 것이다.
직전에 은신을 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듣기로는 신체능력 강화계열 뮤턴트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감각이 지나치게 예리한 거 아니야? 뭔가 이상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신체강화가 아니라, 검에서 뭐 이상한 걸 뽑아낸다며?”
“본인 말로는 별빛이라고 하더군요.”
“과거도 알 수 없고, 티르나에 갑자기 나타났다 했었지.”
세렌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졌다.
“위험한 거 아니야?”
“…….”
로난의 실눈이 세렌을 응시했다.
평소와 같은 표정이지만, 그 희미한 눈빛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질책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그냥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야. 과거가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잖아.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디에 있어도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야.”
“이 도시에 그런 인물이 한둘은 아니죠.”
“그걸 감안해도 이상하다는 거야. 어쩌면 저 아이는 [흰 집]에서 나온 걸지도…….”
“세렌 그라시아.”
처음으로 로난이 존댓말 없이 세렌의 이름을 불렀다.
오시안에 대해 무어라 더 말하려던 세렌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그 이상의 말은, 저의 안목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해.”
백기를 든 것은 세렌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랬어. 이제 막 해결사가 된 신입에게 내 은신이 간파당했잖아.”
“이해합니다.”
로난은 다시 생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주 놀란 참입니다.”
티가 안 났을 뿐이지, 로난은 오시안이 세렌의 손을 잡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세렌의 능력에 대해서는 그녀 다음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이 로난이었으니까.
세렌의 은신은 5성급 이상 마법사의 탐지마법에도 걸리지 않던 전적이 있을 정도다.
5성급 마법사의 탐지가 땅속의 개미까지 찾아낼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가히 말이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그걸 오시안이 알아차린 것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당신이 놀랐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데?”
“정말입니다.”
“거짓말.”
“이런이런. 제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시다니. 너무 서운하군요.”
“날 위로해 줄 생각이라면 됐네요.”
진짠데.
로난은 자신의 진심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애석했다.
로레인은 그렇다 쳐도 세렌은 또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인데 말이다.
“오시안 씨에 대해서는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네. 내가 좀 많이 예민했나 봐.”
“이해합니다. 그 정도로 오시안 씨가 보여 주는 모습은 너무 상식 밖이라서요.”
오시안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로난이 오시안을 믿기로 했다면, 세렌도 이 이상 무어라 할 말은 없었다.
단순한 해결사와 중개인을 넘어서, 서로 신뢰관계로 묶여 있기에 가능한 타협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소식 못 들었어?”
“최근 들려오는 소식보다, 더 자세히 아는 분이 제 앞에 있지 않습니까.”
“뭐, 똑같아. 아저씨는 오지 탐험 중이고, 그 왕재수는 평소처럼 떠돌고. 버릇없는 꼬맹이는 지금 막 의뢰에 들어갔을걸? 성격 생각하면 다 때려 부수고 오겠지.”
“다들 무사하다니 다행이군요.”
“사막 한복판에 떨어뜨려도 죽지 않을 사람들이잖아? 그보다 그 소식 들었어?”
“무엇 말입니까.”
세렌은 은근한 눈빛으로 로난을 응시했다.
“카를레앙 왕국에서 티르나로 사절단을 보낸다 하더라고.”
“카를레앙 왕국…….”
왕국의 이름을 읊조린 로난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사절단이야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겁니까?”
“눈치 하나는 귀신같이 빠르다니까.”
소파에 옆으로 앉은 세렌은 팔걸이에 다리를 올렸다.
“카를레앙 왕조가 티르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알지? 절대왕권 국가에서는 자유의 도시를 껄끄럽다 못해 혐오하니까. 그래서 이전까지 보낸 사절단은 그저 행색만 갖춘 수준으로 했잖아.”
“예, 그랬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 카를레앙 왕국에서 보내는 사절단에, 왕족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고.”
그 말에 로난의 눈꼬리가 휘었다.
“왕족이, 말입니까?”
“응. 물론 막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서열 맨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야. 그렇다 해도 핏줄을 보낸다는 것은, 왕국이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다른 변화를 꾀한다는 소리겠지.”
세렌은 주머니에서 꺼낸 편지 하나를 로난을 향해 휘리릭 날렸다.
로난은 책상 위에 가볍게 착지한 편지의 인장을 제거하고 내용물을 훑었다.
“물론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와 함께 동봉된 사진에는, 작은 체구의 소녀 사진이 함께 끼어 있었다.
카를레앙 왕조의 핏줄이자, 현 왕위계승권 서열 꼴등.
새장 속 인형이라 불리는 오를레아 왕녀.
그녀가 온다는 것은, 티르나에서도 상당히 고위급 인사가 이번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도시에 비바람이 불겠군요.”
부디 그 비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길.
로난은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