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왕족 호위 (2)
오를레아 왕녀의 호위라는 말에 오시안의 눈썹이 살짝 위로 휘었다.
이웃 나라 귀빈이 도시에 찾아오니 그녀를 위한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위 또한 그 일선 중 하나였다.
국가 단위의 귀중한 손님이 찾아오면 거의 대관식을 연상케 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귀빈이 찾아왔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도로를 통제하고.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고.
그 사이를 위풍당당하게 행진한다.
해당 국가에서 찾아온 사람은 귀빈만이 아니다.
보좌와 경호를 위해 함께 딸려 오는 숫자만 해도 세자릿수가 넘는다.
상대가 왕족이니 그 규모는 가히 성대할 터다.
그런데 여기서 호위 임무가 왜 나오는 건지, 오시안으로서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압니다. 그 정도의 귀빈이면 굳이 호위 같은 걸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거. 이미 누구보다 든든한 위병들이 있을 테니까요.”
“하물며 이곳은 해결사 사무소다. 보통 이런 일을 맡기기엔 적합하지 않을 텐데.”
아무리 해결사가 티르나에서 각광받는 직군이라 하지만, 이런 이벤트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할 수는 있으리라.
해결사 업계에서 손꼽히는 자들은 그 실력이 어느 국가를 가도 대접을 받을 정도니까.
그걸 고려해도 이상하다.
이런 건 보통 해결사조합을 통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프렌피츠는 로난을 개인적으로 찾아와 반쯤 협박까지 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행동은 비정상적이었다.
오시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숨겨진 내막이 더 있는 모양이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난은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여유 가득한 실눈의 표정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로난이 오시안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번 의뢰, 함정입니다.”
“함정이라고?”
“저희를 노리는 함정이 아닙니다. 흔히들 업계에서 하는 말이죠. 규모가 크고 보상이 많은데, 의뢰 내용 자체가 시답잖은 것이라면 으레 숨겨진 위험이 존재하는 법이거든요.”
“선혈형제단 사건 때처럼 말이지.”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대에겐 해결사에게 급하게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다급한 일이 있어 보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요. 그래서 저는 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괜찮겠나?”
오시안은 로난의 반응을 살폈다.
과거의 이야기를 일부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로난이 유품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로난은 그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유품입니다. 실질적인 가치는 전혀 없는 무의미한 산물이죠. 그걸 위해서 저희 해결사들을 위험한 임무에 밀어 넣으라니, 그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로난의 말은 단순히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사람을 보낼 바에 어머니의 유품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이다.
“역시, 너는 평범한 중개인이 아니야.”
오시안도 여러 일을 하면서 듣는 귀가 생겼고 보는 눈이 뜨였다.
해결사 업계는 거대한 조합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무소들이 산재한 형태로 굴러간다.
당연히 기본적인 골자는 사무소를 차린 중개인과, 그런 중개인과 계약을 한 해결사들이다.
중개인이 일을 받아오면, 해결사가 그걸 처리한다.
보상은 해결사가.
중개인은 약간의 수수료를.
악어와 악어새처럼 구성된 관계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중개인들은 위험한 의뢰라는 걸 알면서도 해결사에게 숨기고 떠넘기기도 했고.
반대로 일부 해결사들은 자신이 받은 보수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중개인과 분쟁을 일삼기도 했다.
오히려 로난 같은 케이스가 극히 손에 꼽을 정도로 이상한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다들 저에게 그렇게 말하곤 하더군요.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고.”
“너는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
“걱정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까요.”
오시안은 문득, 주점에 들어왔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언제나와 같은 표정의 로난이었지만, 실눈 속 그의 시선이 유난히 테이블 위의 유품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어머니의 것이라 했었지.’
문득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내던 고아에게 부모님의 존재는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움마저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분명 낳아 준 생물학적인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소리였으니까.
오시안은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내게도 어머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손을 잡고서 어디를 놀러 가고, 잔소리를 하고, 아침에 깨워 주는.
그런 가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마음 때문인지 로난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그 프렌피츠라는 남자. 왕녀의 호위를 요청한 걸 보면 그쪽 파벌이겠지?”
“거의 확실하다 봐야죠.”
“호위를 요청한 걸 보면, 그만큼 다급한 일이 있다는 거겠고. 내막은 설명해 주던가?”
“그럴 리가요. 그 남자는 저희가 뛰어나서 찾아온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이용하자는 쪽이죠. 저를 찾아온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소리겠군.”
왕녀를 추종하는 프렌피츠가 발품까지 팔아가며 일을 벌이려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사건이 크게 벌어진다는 걸 의미했다.
어쩌면 이번 평화 사절단 자체는 눈속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음모가 있다. 아주 커다란 음모가.
“로난.”
“예, 오시안 씨. 말씀하십시오.”
“절박한 사람에게서 주어진 의뢰보수 말고 얼마나 더 뜯어낼 수 있지.”
“지금 그게 무슨…….”
“의뢰를 받아들이겠다. 왕녀의 호위, 해보도록 하지.”
그 말에 로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시안 씨, 저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요.”
“정말로 괜찮은 것이 맞나?”
로난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바로 답했다.
“……괜찮지 않더라도, 이건 제 일입니다. 제 개인사에 오시안 씨를 끼어들게 할 수 없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자못 진지한 어조.
그 말에는 약간이지만 질책의 감정도 담겨 있었다.
일에 사적인 감정을 넣지 말라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내린 선택이었다.
오시안이 그걸 무르겠다고 했으니 로난으로서는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 개인사지. 하지만 너는 나와 계약한 중개인이 아닌가.”
“그건…….”
“그리고 나는, 네가 고르고 고른 해결사 중 하나다.”
오시안이 로난을 뚜렷하게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새하얀 별빛이 불꽃처럼 튀었다.
로난은 그 시선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도와달라고. 그 한 마디면 된다.”
“그렇게 말하면.”
로난이 입술을 떨며 물었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기꺼이.”
단호한 대답에 로난의 입이 다물어졌다.
오시안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도시에 떨어진 내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이 너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말입니까?”
“고작 그런 이유. 그걸로 부족한가?”
할 말을 잃은 로난에게 오시안이 말했다.
“중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사람으로서 네가 해야 할 말은 오직 하나다. 로난 롤랑. 너는 그 말이 뭔지 알고 있겠지.”
“…….”
“그러니 말해라.”
오만하고 고압적인 말.
하지만 이상하게 그 행동이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하. 이런.”
로난은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이내 평소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탁합니다, 오시안 씨.”
*
오를레아 공주의 환영식이 거행되었다.
비행선을 타고 온 그녀는 친위대와 함께 정거장에서 내리고, 환영인파 속에서 움직일 채비를 맞추었다.
“너희들의 역할은 간단하다. 형식상이라지만 호위의 흉내를 내는 거지. 적당히 표정관리 하면서 행렬을 따라가기만 하면 돼.”
티르나의 공무원이 서류철에 적힌 명단을 살피며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그녀는 안경알을 번뜩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기대는 하지 않아. 어차피 티르나의 경찰과 군부대 호위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냥 사고만 치지 말고 적당히 머릿수만 채워.”
그 목소리에는 해결사라는 직종 자체에 대한 모멸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반박하는 해결사는 없었다.
티르나의 공무원과 굳이 마찰을 빚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상으로 이 자리에 모인 해결사들의 수준이, 공무원에게 대놓고 항의를 할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오시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날을 세우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쪽을 깔보는 언행은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다.
티르나 시의 공무원들이 프리랜서인 해결사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지만.
그걸 지식으로 아는 것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한 마디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던 그때.
오시안을 향한 여 공무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물론 오시안 씨는 믿을 만하니까 걱정하지 않지만요, 호호호.”
“…….”
다른 해결사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
오시안을 향한 그윽한 눈빛에는 약간의 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이번 일이 끝나면 식사라도 같이하실래요?”
“…….”
“어쩜. 과묵한 것도 이리 멋있으셔라.”
일부러 무시하듯 반응을 안 했는데 과묵한 것이 멋있다고 한단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싶다가, 멀리서 동료가 여성 공무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제정신 좀 봐. 다음 브리핑 있다는 걸 까먹었네요.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던 그녀는 오시안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자리를 떠났다.
오시안으로서는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사실에 속으로 작게 안도했다.
‘일단은 허울뿐인 호위인가.’
실제로 모인 해결사들의 면면을 보면 업계에서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자들뿐이다.
어떻게든 행렬에 끼기 위해 최대한 차려입었지만, 험하고 거친 일을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 지경.
그런 곳에 오시안이 서 있으니 군계일학을 넘어 혼자 태양처럼 빛이 나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최근 이름값까지 생각하면 오시안이 제일 나은 해결사이기도 했고.
‘시장의 관저에 방문하기 전까지 행렬은 이어질 테니, 그때까지만 호위하는 것이 이번 의뢰의 내용이었지.’
오시안은 관자놀이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또 이 감각이다.
‘이런 기분이 느껴질 때마다 뭔가 일이 있었는데.’
무언가 일이 터질 거라는 직감.
동시에 자신의 새로운 힘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이 느껴졌다.
‘자세한 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한 뒤에야 알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그때, 비행선 선착장 한쪽에서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니 공무원들과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해결사들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쪽을 응시했다.
비행선의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화려한 복식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뒤를 따라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오를레아 공주.
이번 의뢰의 핵심이자, 오시안이 호위를 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물론 말만 호위일 뿐, 오시안은 그녀의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는 것이 그 처지였다.
‘어차피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형같이 생겼다는 말이 어울리는 소녀였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치렁치렁한 금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그녀가 조금만 더 자라면 경국지색의 미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지금도 그 미모에서 빛이 난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오시안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오를레아 왕녀의 표정이었다.
‘마치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이네.’
생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
오히려 어딘가 침울한 기색마저 엿보인다.
그럼에도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미색이 출중하다는 뜻이리라.
오를레아 왕녀는 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움직였다. 함께 온 친위대도 함께였다.
비행선 선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다.
왕족의 행차인 것이다.
그 길목에 선 해결사들도 황급히 좌우로 물러났다.
그렇게 오를레아 왕녀가 이쪽을 스쳐 지나가는 그때였다.
앞만 보고 걷던 왕녀의 시선이, 오시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별생각 없이 지켜보던 오시안은 왕녀와 눈이 마주치는 꼴이 됐다.
오시안을 본 왕녀의 공허한 눈동자가 살짝 이지만 크게 떠졌다.
‘뭐지?’
대체 왜 자신을 보고 저러지 싶은 순간.
“이 무엄한 놈!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고개를 뻣뻣하게 드느냐!”
굵은 남성의 질타 어린 목소리가 오시안을 향해 쏟아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