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59)
59화. 불안감 (2)
사전에 알리지 않은 탓인지 새로 들어선 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아 꽤나 한산했다.
게다가 건물 옥상마다 배치되어 있던 군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더라도 목격자가 줄어드니 찾기 쉽지 않을 터.
‘좋지 않은데.’
오시안의 눈동자가 건물의 창가를 훑었다.
유리창은 빈말로도 투명하다 하기 힘들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창 안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상, 경계를 끌어 올려야만 했다.
비슷한 기류를 읽은 것은 해결사들도 마찬가지인지, 그들은 저들끼리 작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갑자기 진행 방향이 바뀌었어. 사전에 이런 말은 없지 않았나?”
하지만 수상한 것과 별개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역할은 병풍처럼 서 있는 것.
이 도시 한 바퀴를 다 돈다고 해도 묵묵히 따라야만 하는 게 그들의 처지였다.
‘솔직히 나와 관련 없는 일이니 이대로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맞지만.’
인적이 없는 거리에 들어서자 뇌리를 찌르는 느낌이 뚝 하고 끊기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건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와 같은 것.
여기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여기서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붙던 호위들도 은근하게 빠져서 숫자가 줄었어.’
특히 오를레아 왕녀의 주위에 배치된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누가 보더라도 노골적인 신호였다. 호위의 당사자인 왕녀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니.’
오시안은 보았다.
이전보다 수심에 잠겨 있는 오를레아 왕녀의 표정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저 얼굴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죽음을 각오했다는 건,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옆에서 사람을 이끌던 드뷔에 후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그 남자 또한 공범이라는 소리겠지.
‘근본도 없는 해결사들을 호위로 부른 것은 이런 이유였나.’
티르나의 군부, 그리고 카를레앙 왕국의 친위대.
전부 한패였다.
아마 이 근처에 왕녀를 죽일 암살자가 대기하고 있겠지.
방식은 어렵지 않다. 그저 총 한 자루만 쏠 줄 알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을 상황이 만들어졌으니까.
‘구해야 할 명분 같은 것은 없어.’
오히려 그녀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이 거대한 음모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셈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호위임무를 실패했다는 사소한 오명만 달고서 물러나는 것이 맞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이다.
하지만.
‘내 임무는 그녀의 호위다.’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저 앞에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억지로 떠맡기는 죽음은 타살이나 다름없다.
스릉.
오시안은 검을 뽑았다.
이전까지 희미했던 감각이, 검을 뽑는 순간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변했다.
‘보인다.’
누군가에게 죽음을 안겨 줄 점이 보였다.
허공에 생성된 붉은 점은 새까만 균열에 흘러나오는 악마의 눈동자 같기도 했다.
그 불길한 빛이 서서히 움직이며, 오를레아 왕녀의 심장을 가리켰다.
저거다.
불빛을 확인한 오시안은 검을 쥐고 지체 없이 움직였다.
누구도 오시안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오시안은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멀리서 총을 격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극한까지 예리해진 오시안의 시선에 날아오는 총알이 잡혔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시안이 검을 휘둘렀다.
총알의 끝부분이 오시안의 검과 맞닿는 순간.
─시간이 원래의 흐름대로 돌아왔다.
타앙! 캉!
총성이 울리는 것과 오를레아 왕녀의 눈앞에서 불똥이 튀기는 것, 잘려나간 총알이 바닥을 뒹구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무, 무슨…….”
옆에서 지켜보던 호위도, 운전을 하던 운전사도, 당사자인 오를레아 왕녀도.
모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채 오시안을 응시했다.
하지만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초, 총이다!”
“암살자야!”
모인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뿔뿔이 흩어졌다.
행렬을 이어 나가던 사람들도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라했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보고도 모르나? 호위 대상을 지켰을 뿐이다.”
위병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도와줘서 고맙다기보다는, 오히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책망과 일이 틀어져서 큰일 났다는 혼란에 가까웠다.
그런가.
이 녀석도 관련이 되어 있는 건가.
오시안의 시선이 아직도 자신을 멍하니 응시하는 오를레아 왕녀를 향했다.
이 작은 소녀는 자신이 목숨을 구원받은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겠지. 자신이 오늘 여기서 죽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그때 오를레아 왕녀의 자그마한 입술이 벌어지며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대는…….”
무언가 말하려던 오를레아 왕녀의 눈동자가 조수석을 밟고 선 오시안의 옆으로 향했다.
오시안은 왜 그러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몸이 한 바퀴 빠르게 회전했다.
서걱!
운전수가 꺼낸 권총이 깔끔한 단면을 드러내며 잘려나갔다.
“검?”
운전수는 손잡이만 남은 권총을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응시했다.
오를레아 왕녀를 구한 사람이 지닌 무기라는 것이 고작 검 한 자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은 눈치였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오시안의 발바닥이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피를 뿌리며 쓰러진 운전수.
오시안은 직후 새빨간 불빛이 자신의 몸 곳곳에 생성된 걸 발견했다.
“위험……!”
오를레아 왕녀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오시안의 검이 춤추듯 움직였다.
카가가가강!
급소를 노리고 날아온 총알 5발이 전부 조각나서 바닥을 뒹굴었다.
오를레아 왕녀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경고가 의미가 없는 것도 있지만 오시안이 보여 준 무위가 너무 터무니없던 것이다.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총알을 베어 낸다고? 그게 가능이나 한가?
오를레아 왕녀는 나이가 어리지만, 머리는 총명했다.
그렇기에 오시안이 보여 준 모습이 얼마나 상식을 초월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를레아는 오시안을 기억했다. 해결사치고는 그 외모가 지나치게 출중해서 기억에 남았었더랬다.
‘티르나의 해결사는 다 이런 괴물만 있는 건가?’
그러자니 이 상황에서 나선 것은 오시안이 유일했다.
이 남자만 주머니 속에 튀어나온 송곳처럼 특출 나다는 소리였다.
오를레아 왕녀의 판단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덧 오시안의 억센 팔뚝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기 때문이다.
“실례하지.”
“……!”
오시안은 오를레아 왕녀를 안아 들고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웃 왕국이라 하더라도 왕족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이것만으로 죄를 면할 수 없겠지만 오시안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방금 전 뛰어오른 차량이 붉은 불꽃과 함께 폭발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왕좌왕하는 시민들 사이로, 품 안에서 권총을 뽑아 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량에 폭탄을 설치. 그것도 모자라 주변에 따로 암살자까지 배치해 뒀을 줄이야.”
이런 짓을 벌인 것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용의주도하다는 것은 알겠다.
오시안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오를레아 왕녀는 여기서 죽었겠지.
하지만 이미 끼어든 이상.
“죽게 놔두지 않는다.”
오시안은 그렇게 말하며 건물의 벽 한쪽을 밟고 재차 도약했다.
오시안이 떨어질 때를 맞춰서 총격을 가하려던 암살자는 그가 오히려 높이 뛰어오르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친. 저거 뭐야?”
“하늘을 날았어?”
벽을 밟고 도약한 오시안은 건물의 옥상에 착지했다.
원래라면 저격수가 배치되었어야 할 옥상은 한산했다.
하지만 오시안은 안도하지 않았다.
이미 이 구역 전체가 오를레아 왕녀를 죽이기 위한 하나의 함정이 되었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암살자들은 쉬지 않고 몰아칠 것이다.
당장 건물 아래층이 어수선한 걸 보면, 암살자들이 계단을 통해 뛰어오는 모양이었다.
“소용없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오를레아 왕녀는 오시안을 향해 나지막이 경고했다.
물론 오시안은 그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검집에 검을 꽂은 뒤, 두 손으로 왕녀를 안아 들었다.
흔히들 공주님 안기라 부르는 자세.
오를레아 왕녀의 신분을 생각하면 실로 적절한 이름이었다.
“반경 3km 이내에 적들이 깔려 있다. 티르나의 군부도 마찬가지. 그들도 모두 한패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경고 하나 하지. 지금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오시안의 등 뒤로 새하얀 별빛이 드리워지며 망토의 형상을 갖췄다.
“혀를 깨물고 싶지 않다면.”
[성운비단(星雲緋緞)]오를레아 왕녀는 오시안의 등 뒤로 펼쳐진 별빛의 망토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등 뒤에 새겨진 망토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펄럭이더니, 새하얀 가루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밀어내기 위해 추진력을 가하려는 모양새.
이윽고 오시안이 바닥에서 발을 떼며 달리기 시작했다.
오를레아 왕녀는 자기도 모르게 오시안의 옷자락을 자그마한 손으로 꼭 쥘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오시안이 달리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도착했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막 옥상의 문을 부수고 들어온 암살자들은, 저 멀리 흰색의 꼬리를 그리며 멀어지는 오시안의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감히 쫓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뭐? 왕녀가 탈출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포위망을 벗어나? 술이라도 마신 거냐! 시간이 얼마나 됐다고 벌써 벗어났다는 거야! 포위 반경만 3km다! 1분 만에 벗어난다는 게 말이 되나!”
외부에서 대기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다.
“건물 옥상을 달려? 그래 봤자 구역이 나뉘는 대로변에 도착하면 갈 곳도 없어! 뭐? 그게 이쪽 방향으로 갔다고? 대체 어디에…….”
수화기에 대고 그렇게 외치던 사람은 불현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건물과 건물 사이, 무수한 증기자동차와 트램이 다니는 넓은 도로.
그 위를 가로지르는 유성이 있었다.
“이게 뭔…….”
그가 손에 쥔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일이냐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멀어지는 유성을 보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어두운 골목길.
오시안은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서 오를레아 왕녀를 천천히 놓아 주었다.
오를레아 왕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오시안의 손길을 벗어나기 무섭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더럽혀지는 걸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어쩌면 그럴 여력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왜냐.”
오를레아 왕녀는 오시안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나를 구했지?”
“그 반응을 보건대,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오를레아 왕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를 리가 있을까. 애초에 그녀가 티르나에 보내진 것은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티르나의 평화협정의 사절단으로 찾아와, 이곳에서 극단주의 사람에 의해 총에 맞아 죽는다. 그게 그쪽의 역할. 맞지?”
“……알고 있었느냐?”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판을 깔면 모를 수가 없지. 이웃 나라에 간 왕녀가 총에 맞아 죽었으니 자국민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을 터. 드뷔에 후작은 본국으로 돌아가, 티르나에 대한 성토를 할 거고.”
오시안의 입에서 내막이 흘러나오자 오를레아 왕녀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남자, 단순히 무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흠. 어디 보자, 본래라면 호위를 수행해야 할 군부가 갑자기 빠진 것을 보면…… 그쪽도 사실상 한패라 봐야겠군. 이번 협정을 추진한 것도 군부의 입김이 있었으니 처음부터 노린 건가.”
잠시 턱을 쓰다듬던 오시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목표는 전쟁이군.”
군부와 카를레앙 왕국.
둘은 손을 잡고서 오를레아 왕녀를 제물로 삼아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