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음모의 내막 (2)
“호오. 누구인가 했더니 그 해결사가 아닙니까.”
가면을 쓴 군인은 오시안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군계일학.
해결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오시안이라 멀리서 스쳐 지나가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이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검이라는 냉병기를 쥐고서 명성을 떨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설마 오를레아 왕녀를 데리고 이 먼 곳까지 피신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뭐. 그것도 이제 끝이군요. 그 짧은 시간이 멀리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우리 손아귀 안이니까요.”
“생각보다 빨리 왔군. 역시 잘 훈련을 받은 군인이라 그런가. 하지만 혼자서 괜찮나?”
“혼자? 누가 혼자라고 했습니까?”
오시안은 하나둘 늘어나는 기척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곳까지 도망친 지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았는데도 추적자들이 쫓아오는 속도가 빨랐다.
방금 전 소란을 듣고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미 이 주변에 광범위하게 포위망을 뿌려둔 것이다.
“군인들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거든요.”
가면을 쓴 군인이 자랑하듯 말했다.
그 목소리는 쾌활하고 가벼웠지만, 오시안을 향하는 가면 속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해결사라고 얕잡아 보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마지막 상황까지 오게 만든 상대를 향한 적대감과 짙은 경계심이 넘쳤다.
“지금이라도 오를레아 왕녀를 넘긴다면 없던 일로 해드리죠.”
“없던 일이라고?”
오시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자, 가면을 쓴 군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해결사니까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잖아요? 이번 일에 높으신 분들의 의지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을 거고. 몰랐으니 한 번 정도 봐줘서 나쁠 건 없죠.”
“혓바닥이 길군.”
“하. 기껏 자비를 베풀어 주려는데 말버릇이 너무 고약한 거 아닙니까? 고작 해결사 주제에.”
“자비를 베푼다고 말을 할 거면 눈빛의 살기부터 죽이지 그런가.”
오시안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검을 좌우로 크게 휘둘렀다.
서걱.
휘두른 검이 양 골목의 건물 외벽을 부드럽게 가르고 지나갔다.
안쪽에서 커헉 소리와 함께 몰래 대기하던 두 군인이 쓰러졌다.
“옥상에 포진한 놈들에게 시선을 쏠리게 만들고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포위하려는 시간을 벌려는 걸 모를 줄 알았나.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은 그만두지.”
“이 해결사 새끼가!”
가면을 쓴 군인은 허리춤에서 쏜살같이 총을 꺼내 들었다.
이쪽의 수작이 들킨 이상 더는 존댓말도 뭣도 없었다.
뽑아든 총은 평범한 권총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머스킷 위에 여러 장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개조총이었다.
피슝.
방아쇠를 당기자 공기를 미세하게 가르는 소리만 울렸다.
방금 전, 소리 없이 날아온 그 총알이었다.
오시안은 검을 수직으로 세워 총알을 비스듬하게 갈랐다.
좌우로 부드럽게 잘려나간 총알이 양 골목의 벽에 처박혔다.
오시안이 반격을 가하려던 찰나, 건물의 옥상 위로 그림자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가면을 쓴 군인에게 달려들려던 오시안은 뒤로 빠르게 백스텝을 하며 물러났다.
투타타타!
방금 전 오시안이 있던 차리에 총알이 박히며 바닥에 돌부스러기가 튀었다.
어느덧 진형을 갖춘 군인들은 오시안을 향해 라이플을 겨누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무차별적인 사격이 아니다. 정확하게 오시안의 퇴로까지 생각해서 펼치는 화망이었다.
오시안의 눈동자가 허공에 새겨진 붉은 점들을 포착했다.
오시안만이 볼 수 있는, 그 불길한 점이었다.
카가강!
오시안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잘려나간 총알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검으로 총알을 잘라내?”
“계속 쏴!”
일반적인 갱단이나 해결사들이었다면 이 광경에 얼어붙었을 테지만 군인은 역시 군인이었다.
잘 훈련된 그들은 사격을 늦추는 일 없이, 계속해서 오시안을 밀어붙였다.
‘이거 좋지 않은데.’
군인들은 오시안이 지금까지 싸웠던 적과는 다른 의미로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개개인의 판단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집단으로 움직였을 때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수십 명이 한 몸인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자신보다 거대한 포식자를 사냥하는 늑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지휘자라 할 수 있는 가면을 쓴 군인이 등에 매달은 거대한 장총을 꺼내 들었다.
그가 쏘았던 권총처럼 개조가 들어간 라이플이었다. 총알을 장전해야 할 부분에 전선이 연결되어, 그의 판초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오시안의 직감이 경고했다.
‘뭔가 온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알이 쏘아졌다.
총알의 형상을 한 그것은 황금색의 캡슐이었다.
‘저건…… 그때 흑마법사가 썼던?’
캡슐이 허공에서 분해되며 안에 담긴 에테르 워터를 드러냈다.
물컹거리는 반고체 형태의 에테르워터에 각인된 마법이 발동되었다.
푸화악!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는 고열의 화염.
불꽃이 파도처럼 골목길 전체를 일거에 휩쓸었다.
외벽에 달린 파이프들이 붉은 쇳물로 변해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널브러진 판자들이 새까만 숯으로 변했다.
사람 정도는 그 자리에서 산화시킬 위력의 화염이었다.
“쯧. 고작 해결사 하나를 위해 이 비싼 4성급 캡슐을 쓰게 하다니.”
오시안을 포함해 그 너머의 오를레아 왕녀까지 제거할 수 있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은 이걸로 끝…….”
그렇게 전하려던 남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붉은 화염이 가라앉으며 새빨간 불티가 흩날리는 골목길.
검게 타 버린 그 좁은 길목의 중심에 하얗게 빛나는 알이 놓여 있었다.
그 알의 끝이 스르륵 갈라지더니 마치 목련이 피는 것처럼 만개했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얀 망토를 두른 오시안과, 그 품 안에 안긴 오를레아 왕녀였다.
4성급 화염마법을 담은 캡슐의 공격 속에서도 두 사람은 멀쩡했던 것이다.
가면의 군인은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분명 제대로 적중했을 텐데…….”
오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몸에 닿자 가면을 쓴 군인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다들 피해……!”
그렇게 외치며 그는 몸을 납작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러지 못했다. 오시안의 망토가 날개로 변해 그가 날아오르자, 군인들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흰색 죽음이 내려앉았다.
새하얀 실선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 끝에 걸리는 것은 사람 물건 가리지 않고 잘려나갔다.
판초 안에 두른 장갑, 휴대용으로 챙긴 소형 가드, 몸 곳곳에 두른 총기까지.
그것이 얼마나 단단하더라도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토막 나고, 잘려 나가고.
그 짧은 순간에 옥상을 차지했던 군인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검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건물 곳곳에서 참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저히 검 한 자루로 보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오시안이 다시 오를레아 왕녀의 곁으로 착지했을 때, 살아있는 사람은 가면을 쓴 군인, 지휘관 한 명뿐이었다.
“이, 무…… 슨!”
잘 훈련된 부하들이 전부 당했다.
방심을 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상대가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해결사에, 심지어 혼자이며 무기는 칼 한 자루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서 총으로 압박을 가했다.
날아오는 총알을 쳐낼 정도의 검술을 지닌 것에도 개의치 않고 충분한 몰이사냥을 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그가 행한 모든 것의 결과였다.
‘평범한 뮤턴트가 아니잖아!’
날아오는 총알을 칼로 쳐낼 정도의 동체시력이라면 뮤턴트나 혹은 강화인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강화인간은 극소수인 데다가 겉모습부터 티가 난다.
저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은 뮤턴트일 수밖에 없었다.
신체강화 계열이라면 마법으로 제압이 충분히 가능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 새하얀 빛의 덩어리는 뭐란 말인가.
‘저런 건 들어본 적 없다고!’
아니 애초에 저건 대체 뭐란 말인가.
빛으로 이루어진 망토라니. 심지어 그 형상이 자유자재로 바뀌기까지 한다.
오시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가면의 남자는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 일부러 나만 살려뒀다!’
자신이 몸을 날려서 오시안의 검을 피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시안은 처음부터 자신을 살려 둘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자리에서 지위가 제일 높고 아는 것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리라.
‘수준을 너무 얕봤다. 감히 내가 상대할 녀석이 아니야.’
머리를 빠르게 굴린 그는 판단을 내렸다.
신속하게 군용판초 안에 손을 집어넣은 그는, 허리춤의 벨트 포켓에서 수류탄을 꺼내 핀을 뽑았다.
던진 것은 총 2개의 철제 원통.
오시안은 검 날로 그것을 좌우로 가볍게 튕겨냈다.
직후 푸쉬쉭 소리와 함께 투척물에서 새하얀 연기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연막인가.”
오시안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연막을 베어 내려 했다가, 묘한 느낌이 들어 뒤로 물러났다.
치이익.
새하얀 연막에 닿은 건물의 외벽이 뜨겁게 타올랐다.
오시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백린?”
오시안은 자신의 감각을 믿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설마 저런 것을 허리춤에 휴대용으로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뒤로 물러난 오시안은 오르레아 왕녀를 호위하듯 서며 망토를 움직였다.
펄럭이며 크게 휘둘러지는 별빛의 망토가 강풍을 일으켜, 새하얀 백린 연막을 저 너머까지 밀어냈다.
시간이 지나고 백린이 가라앉자, 다 타 버린 길목만 휑하니 남았다.
“도망친 건가.”
상황을 판단하는 머리가 상당히 빨리 굴러가는 놈이었다.
불리하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백린탄을 뿌리고 부리나케 도주하다니.
오시안은 다음번에 같은 상황이 생기면, 다리라도 자르고 시작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정도면 시간은 벌었으니, 우리도 이만 여기서 벗어나야겠군.”
자리에 주저앉아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오를레아 왕녀.
오시안은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기울여 눈을 맞추었다.
“일어날 수 있겠나?”
끄덕.
오를레아 왕녀는 말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방금 전의 비현실적인 광경 때문에 아직도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검을 휘두르며 군인들을 상대하는 오시안의 모습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비친 그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별빛을 두른 기사님 같았다.
“그렇다면 이동하도록 하지. 정말로 걸을 수 있겠나?”
오를레아 왕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살짝 울먹이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왕녀의 모습에, 오시안은 어쩔 수 없다며 그녀를 안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오를레아 왕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오시안의 옷자락을 꼬옥 쥐었다.
지금까지 죽음을 애써 의연하게 받아들이려고 어른스러운 척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또래의 아이처럼 보였다.
“그럼 가겠다.”
*
“제길! 제길!”
오시안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난 군인은 거칠게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씩씩거리던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이건 우리의 실책이 맞아.’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화를 내봤자 소용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하느냐다.
그는 허리춤에서 통신기를 꺼냈다.
“저입니다. 실패했습니다. 왕녀와 함께하는 해결사의 실력이 상정했던 것 이상입니다. 다음 플랜을 요청합니다.”
첫 번째 플랜은 오를레아 왕녀를 차에 탄 채로 죽이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저격수를 배치했고 운전수를 고용했으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차량 아래에 폭탄까지 달았다.
이 작전이 실패했을 때는, 직접 훈련받은 군인들이 나서서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이 서브 플랜이었다.
이 서브 플랜마저 실패한 지금,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 다음 플랜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기 너머로 지시가 내려왔다.
[허가한다.]“예. 그러면 합류 포인트 지점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라면 이쪽까지 가기도 전에 알아서 끝나야 할 일이었다.
사실상 불필요한 보험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가면의 남자는 빠른 발걸음으로 근처 빈 주택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들의 힘을 빌려도 좋은가.’
그럴 것이, 지금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놈들은 평범한 놈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굳이 분류를 나누자면 아주 위험한 부류의 존재들이었다.
미치광이 살인자, 테러리스트, 흑마법사, 위험분류 뮤턴트, 이단추종자.
군인으로서 혐오하지 않을 수 없는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진짜다.’
가면의 남자가 건물 안에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즉시 알아보고 경례를 취했다.
“울루아즈 놈들을 불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