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스멀거리는 자매 (2)
“죄송하지만 이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프렌피츠가 해결사 사무소에 들르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오스번 러셀.
잿빛 머리의 노신사인 그는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꼽히는 중개인 중 하나였다.
그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그 속뜻은 우회의 여지가 없이 직설적이었다.
잠시 눈두덩이를 매만진 프렌피츠가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어째서지?”
“몰라서 묻는다 생각하시면, 더욱 심각한 일이겠죠.”
오스번은 새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테 없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지금 벌어지는, 오를레아 왕녀 암살미수 사건에 저희 해결사를 고용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되나? 의뢰비가 부족하다면, 더 챙겨주겠네.”
“아무래도 의뢰주께서는 저희들의 소식통을 너무 얕잡아보신 것 같군요. 이미 고용했던 해결사들이 모두 실패해서 그런 겁니까?”
폐부를 찌르는 말에 프렌피츠가 입을 다물었다.
“오를레아 왕녀의 암살사건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 사실을 숨긴 채 의뢰로 해결사들을 불러 모으셨죠.”
“그건…….”
“그것만으로도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인데, 이 상황에서 또 발품을 팔며 의뢰를 요청하시다니.”
오스번 러셀이 눈을 번뜩였다.
인자한 노신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래된 관록을 지닌 중개인의 카리스마가 빛났다.
“우리 업계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
프렌피츠는 식은땀을 흘렸다.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파 보면 우습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해결사라 해 봤자 그저 돈으로 고용해서 갈아끼는 파츠,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우리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죠.”
러셀은 목을 축이기 위해, 자신의 앞에 놓인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잔을 내려놓은 그는 새하얀 손수건으로 입술을 톡톡 닦은 뒤 말을 이었다.
“이번 일에 군부가 개입해 있다는 건 이미 다 퍼졌습니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군부가 고용한 놈들입니다.”
놀랍게도 군부는 범죄자들까지 고용했다.
문제는 그 범죄자들이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점이리라.
“울루아즈 교도소. 들어는 봤을 겁니다.”
티르나는 거대한 도시답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당연히 그에 걸맞은 규모의 범죄들이 일어난다.
자유의 도시라는 멋진 이름.
반대로 그러한 자유의 아래 깃든 그림자 또한 짙고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시민이 총을 들어도 위협적인데, 고등급 뮤턴트나 마법사, 흑마법사들이 범죄자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울루아즈 교도소는, 그런 특수 범죄자들만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그곳에 수감된 범죄자들은 하나하나가 아주 위협적인 존재들.
그런데 군부는 그 범죄자들마저 이번 일에 끌어들인 것이다.
“당신이 고용했던 해결사들 또한, 울루아즈 교도소 출신의 범죄자들에게 모두 당했겠죠. 아, 물론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죠.”
“한 명이라면…….”
“알면서 뭘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현재 오를레아 왕녀를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구해 주고 있는 해결사가 있는데.”
프렌피츠의 머릿속으로 오시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오스번은 그런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했다.
“그자가 남아 있으니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가 성공할 거라고 보는 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감히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군요. 대신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죠.”
“적합한 사람이라니.”
오스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멀리서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린 프렌피츠는 상대를 알아보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로난 롤랑.”
금발에 실눈,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미남자.
로난 롤랑이 테이블에 합석했다.
“이런이런. 프렌피츠 씨, 많이 곤란하신 모양이로군요. 어디, 일이 잘 진행되지 않습니까?”
주먹을 불끈 쥔 프렌피츠는 분노를 가라앉힌 뒤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괜찮은 건가? 지금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네가 애지중지하는 해결사, 과연 얼마나 버틸 거라고 생각하지?”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시안 씨는 아주 유능하신 분이거든요. 오히려 성공 이후를 생각해야 하죠.”
“하. 성공 이후라고? 지금 이야기 못 들었나? 그 흉악 범죄자들이 끼어든 이상, 그쪽의 해결사도 죽는 건 시간 문제야. 당장 새로운 사람을 보내지 않으면…….”
“내기하시겠습니까?”
로난의 말에 프렌피츠가 입을 다물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오시안 씨라면, 분명히 이번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낼 거라고요.”
“……내 말을 뭐로 들었지? 당장 그 범죄자들 사이에서 이단의 신을 섬기는 광인들까지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알고 있습니다. 잊혀진 고대신을 섬기는 「스멀거리는 자매」는 유명하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야. 드뷔에 후작은 본인이 직접 문제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나설 거다. 군부도 계속 수색을 이어 나가겠지. 고작 해결사 하나가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나?”
“그러니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기를 하자고요. 저는 오시안 씨가 성공한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멍청한 건가, 아니면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가? 그 해결사가 성공한다 치면, 내겐 좋은 일일 텐데?”
로난은 후후후 웃으며 서류 한 장을 프렌피츠에게 내밀었다.
“오히려 프렌피츠 씨는 저희가 실패하길 빌어야 할 겁니다.”
서류의 내용물을 훑은 프렌피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건…….”
“해결사 업계가 우습게 보이셨나 봅니다. 의도적으로 위험을 숨기고 의뢰를 여기저기 넣으셨더군요. 안 그래도 이번 사건 때문에 [조합]에서 소송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중개인 조합은 돈이 아주 많거든요.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한 본보기를 보여드릴 겁니다.”
“뭐? 그게 무슨…….”
“그러니까 제 말을 요약하면.”
로난이 실눈의 사이로 서슬 퍼런 눈빛을 흘렸다.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당신은 끝이라는 겁니다.”
*
쏟아지는 촉수 다발.
빨판이 달리고, 그 끝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그것은 기형적인 문어의 다리를 보는 것 같았다.
미끌거리는 피부 위로 점액질이 흐르는 다리 수십 개가 치마폭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광경은 현실성과 아득히 멀어 보였다.
징그러운 광경에 사람은 압도되기 마련이다.
오를레아 왕녀는 무수한 문어 촉수가 격류처럼 다가오는 모습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 순간 오시안이 나섰다.
뽑아 든 검 끝에서 치솟는 새하얀 빛.
별의 힘이 담긴 검이 횡으로 휘둘러지며, 공간을 새하얗게 찢어발겼다.
검의 궤적 안에 담긴 것은 뭐든지 찢겨 나갔다. 무수한 문어 촉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히, 히익! 어, 어떻게……!”
그 광경에 오히려 겁을 집어먹은 것은 스멀거리는 자매 중 동생 쪽인 아틸라였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걸 넘어서, 오시안의 검 끝에서 터져 나온 별빛을 보고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하! 형씨,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나 보네?”
그때 오시안의 등 뒤로 접근한 것은 언니인 크루아였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오시안의 후방을 접한 그녀는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서 오시안을 향해 내질렀다.
주먹의 위로 녹색의 기운이 맺히더니, 심해에 사는 아귀의 머리가 튀어나와 오시안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크루아의 주먹은 완전히 내질러지지 못했다.
어느덧 그녀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새하얀 빛줄기들 때문이었다.
“뭣?”
오시안이 두른 별빛의 망토가 여러 개로 갈라져 크루아의 몸 곳곳을 묶었다.
평범한 기운이 아니라는 걸 느낀 크루아는 주먹을 내지르는 대신 발을 크게 굴렀다.
꿀렁.
그녀의 발바닥이 바닥을 찍자, 둔탁한 소리 대신 지면이 수면처럼 찰랑이며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그리고 단단한 지면 속에서 거대한 녹색 상어의 머리가 튀어나오며 오시안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크루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크루아는 곧바로 몸을 뒤로 날렸다.
쩌억!
수직으로 그어진 새하얀 섬광이, 상어를 장작처럼 쪼갠 것을 넘어 크루아가 있던 자리마저 갈라버렸다.
좌우로 갈라지며 흩어지는 상어의 잔해 속에서, 오시안이 멀쩡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크루아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꼈다.
‘저 녀석, 대체 뭐야?’
본인의 공격에도 그랬지만, 동생인 아틸라의 모습을 보고도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보통 강철심장이라 하더라도 무수한 촉수 다발을 보면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느껴서 움직임이 굼떠지기 마련인데, 오시안의 표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떻게 돼 먹은 담력이야? 저 새하얀 빛은 대체 뭐고. 우리가 사용하는 힘이 쪽도 못 쓰고 있잖아.’
크루아는 바르르 떨리는 주먹을 보며 혀를 찼다.
오시안이 다루는 빛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이 다루는 힘과 아주 상극이라는 것은 알겠다.
성기사가 다루는 신성연금과는 다르다.
신성연금이 누군가에게 빌려온 성스러운 힘이라면, 저것은 한 개인이 갈고닦은 순수한 힘 그 자체였다.
“어, 언니. 저 사람, 위험해.”
아틸라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루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두 사람은 고대의 신으로부터 힘을 받아서 강해졌다.
그중에서 동생인 아틸라는 신이 가장 총애했기에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 그런 그녀인 만큼 그 의지를 읽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아틸라가 저렇게 겁에 질렸다는 것은, 그 날카로운 영성으로 상대의 강함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했다는 소리다.
“큭.”
당장 무심하게 이쪽을 응시하는 저 검은 눈동자만 봐도 그렇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크루아는 불끈 쥔 주먹이 땀으로 흥건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흐음.”
정작 오시안은 크루아와 아틸라 자매를 꽤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힘.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그거였구나.’
게임 속에서도 저런 힘을 다루는 존재가 있었다.
고대의 신.
미지의 세계에서 넘어온 외신으로서, 그 존재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라고 한다.
서브컬쳐에서 유명한 요소를 게임사가 오마쥬와 어레인지 해서 만든 이벤트성 보스였다.
‘메인 스토리와는 관련 없고, 그저 이벤트성 짧은 스토리가 전부였지만 상당한 임팩트를 남겼지.’
게임 속에서 몬스터들의 끔찍한 외형에, 많은 유저들이 입에서 욕설을 남발하게 만든 원흉.
난이도는 난이도대로 높고, 그에 비해 주는 보상은 너무 적어서 이걸 깨라고 만든 건지 의문인 이벤트였다.
심지어 이벤트의 최종 보스는 고대 신의 화신체로서, 그 난이도가 극악을 달려서 게임 내에서도 최악의 보스를 꼽을 때 항상 한 손 안에 들어갈 정도.
오시안도 이벤트를 깨기 위해서, 정말 셀 수도 없는 많은 도전을 했었다.
‘추억이네.’
완전히 달라진 세상 속에서도, 자신이 그토록 애정하고 즐기던 게임의 요소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에 오시안은 감회에 젖었다.
그런 오시안의 기색에, 두 자매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어, 언니. 저 사람…….”
“그래. 저 녀석.”
크루아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지금 즐거워하고 있어.”
세상에.
고대의 신을 섬기는 자신들의 힘을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압도한 것을 넘어서 이제 이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어, 언니. 도망치자. 이, 이건 승산이 없어.”
“도망치면? 계속 그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게? 모처럼의 기회야. 자유의 몸으로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하, 하지만 이런 꼴로는…….”
“우리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왔잖아. 여기서 물러날 수 없어. 아틸라, 그걸 부탁해.”
“……알겠어. 언니의 뜻이 그렇다면.”
크루아의 말에 아틸라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녀들은 이단의 신을 섬기는 존재였지만,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신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신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간을 고르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고대의 신에게 선택받은 두 자매의 운명은, 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게 뒤틀리고 만 것이리라.
그래서 두 자매는 이 힘을 얻는 순간 결심했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남아서, 행복한 삶을 쟁취하기로.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눈앞의 남자를 쓰러뜨려야 했다.
아틸라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오소서.”
그 순간 무언가 박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던 아틸라가 몸을 활처럼 꺾더니 눈을 까뒤집으며 간질 환자마냥 바르르 떨었다.
오를레아 왕녀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온다. 무언가 오고 있다.
아틸라의 머리 위.
그곳에 파칫, 소리와 함께 공간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공간의 균열을 비집고 자그마한 촉수 하나가 튀어나오나 싶더니, 삽시간에 크기를 불려 나가며 거대한 무언가로 탈바꿈했다.
중앙에 떠오른 것은 뒤룩거리는 커다란 눈동자.
그 눈동자를 중심으로 살덩어리들이 새끼줄처럼 꼬이고 뭉쳐지며 전반적으로 커다란 불가사리의 형상을 띄었다.
고대신의 살점 일부를 강림시킨 것이었다.
화신체의 등장에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차가운 심해의 깊은 곳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쉬기 힘들어지고 피부에 오한이 돌았다.
간절한 부름을 받은 화신체는 눈알을 뒤룩거리며 오시안을 응시했다.
그리고 오시안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
화신체는 경악했다는 듯 동공이 작게 축소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