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7)
7화. 힘의 증명 (1)
개인 방을 배정받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뻑뻑하지만 그래도 푹 가라앉는 감촉에, 내가 알던 중세와는 다른 세상이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중세의 여관이었다면 침대도 이것보다 덜 푹신하고 밑에 짚이나 깔았을 테니까.
‘적어도 여기는 근대니까 그나마 사는 데 불편함은 없겠네.’
물론 그것도 중세와 비교했을 때지, 현대에서 살던 내게는 이곳도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
즐겨하던 게임은 이제 즐길 수도 없다.
‘아니지. 지금이 게임 세상이잖아?’
그 생각이 미치자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인생게임은 좋아하지만, 게임이 인생이 되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방 한쪽에 마련된 거울을 살폈다.
거울 너머에서 검은 머리의 미남자가 이쪽을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피부는 하얗고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우수에 차 있었다. 별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걸 텐데도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몸도 우락부락하지 않고 호리호리하게 잘 빠져있다.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어딘가의 고귀한 가문의 도련님이라 생각하겠지.
이질감이 들면서도 익숙한 저 모습은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방랑기사의 모습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게임을 플레이 할 때 만들었던 캐릭터 커스터마이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들어갔기 때문에 방랑기사지만 둔탁하고 우직한 느낌보다는 상당한 미형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게임을 할 때 캐릭터가 미형이 아니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거 보면 진짜 커마 하나는 잘해서 다행이네.’
이 게임은 캐릭터를 생성할 때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도가 상당히 높았다.
기본적인 성별도 택할 수 있었으며, 피부색이나 얼굴을 손봐서 온갖 기괴한 형태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근육질의 몸매도 가능했고 신장을 작게 만든다거나, 혹은 노인처럼 바꾸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진짜 괜히 개성 살린답시고 이상한 커마를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흔히들 게임 속에서 고인물이라 불리는 놈들은 너무 할 것이 없어서 캐릭터 외형을 이상하게 꾸미는 걸로 유명했다.
옷도 무슨 누더기를 걸치면서 얼굴은 몬스터 뺨치게 기이하게 만들고 피부색도 핑크나 보라색으로 물들인다.
나도 그렇게 할까 고민을 했던 적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잘생기고 멋진 모습을 쭈욱 유지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이 정도로 잘생긴 모습이라면, 어딜 가서도 욕을 먹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직업은 아쉽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기사 대신 마법사를 키울 걸 그랬다.
게임의 난이도가 워낙 높아서 초반에 체력이 낮은 마법사는 뭘 해 보기도 전에 픽픽 죽어나가기 일상이었다.
후반에 아무리 빛을 본다고 해도 초반을 넘기지 못하면 그것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일 안정적인 기사를 택한 것인데.
‘아니, 됐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방랑기사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는 어지간하면 다 총을 들고 다니지만, 그래도 이 월등한 신체능력은 기사의 전유물이었으니까.
‘게다가 흑마법사나 거지 태생이 아닌 것이 어디야.’
흑마법사면 정말 범죄자로 낙인찍혀서 시작부터 도망쳐 다녀야 했고, 거지 태생이었으면 나는 갑옷에 검이 아니라 팬티 한 장에 맨손으로 움직이게 됐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지.’
정신은 현대인의 것.
육체는 중세 기사의 것.
그러면서 사는 세상은 근대다.
온갖 시간대가 뒤섞인 뒤틀린 혼종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육체에 적응하는 것이 나의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괴리감이 들었으니까. 내뱉은 내가 놀랄 정도로.
그것이 방랑기사 태생이 지닌 특성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평생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마냥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는 않다는 거였다.
실제로 나에게 총을 쏜 그놈들의 시체에서 지갑을 털 때도 몸이 딱히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아니면 원래 기사가 중세시대에 전국구 깡패 짓을 하던 놈이라 그런 걸지도.’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갑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의 삶이 꽤 고단할 거라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지만, 지금만큼은 전부 잊고 푹 자고 싶었다.
*
다음 날 아침.
오전에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주점의 1층 식당에,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지난 밤 이곳에서 술을 마셨던 용병들이었다.
“아직 안 나왔나?”
“기다려 봐. 금방 내려오겠지.”
두런두런 저들끼리 이야기를 하던 용병 무리 중 일부는 가게 테이블의 한쪽에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평소의 여유 있는 태도와 달리 초조함마저 느껴지는 로난 롤랑이 앉아 있었다.
평소와 같은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한 정장과 실눈이 인상적인 그는 답지 않게 팔짱을 낀 채로 손가락으로 팔뚝을 툭툭 치고 있었다.
로난으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 오시안의 실력은 진짜였다.
이 정도의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했는데 다른 중개인에게 빼앗긴다?
그렇다면 최소 1년은 제대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리라.
그러니 로난으로서는 지금 당장 최고의 조건으로 그를 영입해야만 했다.
그러나 너무 섣부르게 접근하는 것은 그거 나름대로 문제였다.
지난밤 오시안에게 좋은 조건을 내걸었을 때도 그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을 경계하는 기색을 띠기도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예의 바르게 제안을 건넬 생각이었다.
예의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으니까.
그 순간 철컥 철컥 하는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1층 식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했다.
이런 특유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갑옷을 입은 오시안이 1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시안에 대해서 소문만 듣고 남는 시간차에 찾아온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는 속으로 허, 하고 감탄을 흘렸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은 정신 나간 기사 흉내를 내는 놈이라고 하기에 어깨가 떡 벌어지고 근육이 넘치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만.
생긴 것만 보면 어디 귀한 집안에서 자란 도련님처럼 보이지 않은가.
그러나 섣부르게 시비를 걸거나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밤 오시안의 무위를 목격한 사람들이 그의 등장에 긴장을 하기 시작해서였다.
자연스럽게 분위기 자체가 정적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오시안뿐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착석하여 음식을 주문하고자 했다.
그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로난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던 로난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오시안에게 다가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시안 님.”
“아, 그래. 로난이라고 했었지.”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셨군요.”
“뭐, 워낙 인상 깊어서 말이야.”
실눈의 사람은 흔치 않아서, 라는 말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그 말에 로난은 기뻐했다.
오시안이 자신을 기억해 주었다고 말한 부분에서, 적어도 밉보이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였으니까.
다만 특유의 포커페이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술을 사 준다면.”
“어, 아침부터 드시려는 겁니까?”
“그냥 해 본 소리였다.”
“하하, 그랬군요.”
로난은 그 말에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고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왔다고 방심했다가 다 일궈낸 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건 이 업계에서 흔하지 않던가.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서.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좋은 제안을 건넬 생각이었다.
“그보다 로난.”
“예. 오시안 님.”
“저기 저 사람들은 자네의 동료인가?”
“예?”
로난은 그 말에 주점의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전날 싸움 때문에 부서진 문은 아직 미처 복구하지 못한 채였는데, 그곳에서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등지며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숫자는 총 세 명이었는데 전부 제각기 개성이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드레스 차림의 묘령의 갈색머리 여인이었다. 목에는 새하얀 짐승의 털목도리까지 두르고 있었는데, 20대처럼도 보였고 40대처럼 연륜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명은 정갈하게 차려입은 잿빛머리 노신사였다.
프록코트를 입은 노인은 얼굴에 테 없는 안경을 쓰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전부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마지막 한 명은 어딘가 자유분방해 보이는 남자였다.
다리에 딱 맞는 가죽바지와 와이셔츠, 귀나 입술에 징을 박았으며 머리색도 염색을 한 모양인지 약간 형광빛이 맴도는 푸른색이었다.
풀어헤친 가슴팍은 운동을 했는지 근육이 꽤 도드라져 있었다.
그들을 알아본 로난의 표정이 미약하게 굳었다.
저들은 로난과 같은 업계 종사자인 헤드헌터들이었다.
그리고 꽤 오래 전부터 서로 충돌하며 사람을 빼가거나 하는 경쟁을 일삼은 자들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초대받은 손님은 아닌 모양이군.”
로난의 미세한 반응에 오시안이 그렇게 말했다.
오시안이 있는 곳까지 다가온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말을 건 것은 묘령의 여인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이 어젯밤 나타났다는 정의로운 기사가 맞나요?”
“정의로운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라면 맞소.”
“그렇군요. 저는 이자벨라 로스라고 해요. 업계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중개인이죠.”
“그런가. 그렇다면 저 두 사람도 마찬가지겠군.”
오시안의 말에 노인과 청년이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허허,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스번 러셀이라고 합니다.”
“난 제이크 허드슨. 만나서 반갑다고, 형씨.”
제이크라 소개한 남자는 허락받지도 않고 의자를 끌고 와 오시안의 근처에 앉았다.
무례하게 비추어지는 그 행동에 로난이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제이크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자리에 로난이 없는 사람인 것마냥.
“휘유, 정말로 갑옷과 칼을 차고 있을 줄이야. 형씨 이야기는 들었어.”
“이야기?”
“어젯밤 그거 있잖아. 칼 한 자루로 갱단을 쓸어버렸다면서?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자시고도 없다.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
“그거 증명할 수 있어?”
제이크의 말에 오시안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로난은 그 모습에 난처해했으며 오스번과 이자벨라는 끼어들지 않고 관망의 태도를 취했다.
제이크 허드슨은 최근 갑자기 기세를 타고 급격하게 성장한 중개인이었다.
듣기로는 규모가 큰 마피아형 범죄조직을 뒷배로 두고 있다는 말도 나올 정도.
그만큼 제이크 허드슨의 성장세는 눈부실 정도였다.
그 지나친 성공 때문인지 제이크는 예의를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허물없이 다가간다고 좋게 보기도 했지만, 업계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저 행동은 지나친 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영입을 하러 온 상대방의 능력을 의심하다니.
싸우자는 생각으로 오지 않고서야 절대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로난은 오시안의 상태를 살폈다.
적어도 로난이 지난밤에 보기엔, 오시안은 걸어오는 시비나 싸움을 절대로 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증명이라.”
오시안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멋쩍게 웃으며 넘기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롭게 변한 채 제이크를 응시했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