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유령 사냥 (1)
로레인의 떨리는 동공이 오시안을 향했다.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빛이 보이지 않아 어딘가 무섭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대체, 왜? 왜 너만?”
“어, 언니. 본심이 나오고 있어요.”
에나가 로레인을 지적했지만, 로레인은 거기에 대답을 할 정신이 아니었다.
오시안이 이런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뭔가 억울했다.
로난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질투만큼 추한 것도 없습니다.”
“뭐 임마!”
“오시안 씨 덕분에 33번 구에 편성될 예산도 늘었고, 재건을 빌미로 자기 권한도 강화했으니 구청장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거기에 더해서 오를레아 왕녀와 좋은 관계를 맺기도 했고, 정치인으로서 이미지 또한 좋게 쌓았다.
아직 임기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다음 구청장 선거 때 재선의 확률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음. 그런데 그 이상으로 이 정도의 돈을 준 걸 보면 어딘가 속내가 보이는 거 같기도 하네요.”
에나 그룬트가 의외로 예리한 통찰력을 빛냈다.
“예, 맞습니다. 이 정도로 큰 액수를 준 것은 오시안 씨에 대한 구애나 다름없죠. 자기 밑으로 오라는 뜻입니다.”
“그, 그러면 괜찮은 거 맞아요? 그것도 무려 구청장이잖아요! 이렇게 큰돈을 흔쾌히 넘겨줄 정도면, 오시안 씨에 대한 집착이 보통이 아닐 텐데…….”
“공무원에는 관심 없다.”
에나의 걱정을 단칼에 잘라내듯 오시안이 내뱉은 말이었다.
“게다가 꼭 그 밑으로 들어가라는 법은 없다.”
“네?”
“그 남자도 내가 이런 금액에 혹하라고 보낸 건 아닐 거다.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정도겠지.”
“이, 이 정도의 돈인데도요?”
“그만한 돈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니까.”
오시안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해결사다. 공무원처럼 부리고 싶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하면 된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라는 듯한 말투.
그런 오시안의 태도에 로레인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름 해결사 일을 하면서 돈을 좀 만져 본 그녀조차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액수인데, 오시안은 마치 돈을 길거리에 나도는 쓰레기 보듯이 하고 있었다.
‘얘는 지금 놀라지도 않은 건가?’
로레인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시안의 생김새를 보면, 역시 어딘가의 귀한 집 자식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 정도의 금액이 눈에 안 찰 수밖에 없으리라.
정작 오시안의 속마음은 달랐다.
‘이 정도의 큰 금액이라니. 더럽게 부담스럽네.’
오시안은 속이 더부룩했다.
알베르토가 이만큼 큰 금액을 보수로 지불한 시점에서 그를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꺼림칙했다.
‘아래로 들어오면 더 주겠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그걸 보고 무턱대고 물었다가는 그때부터는 제대로 코가 꿰이는 거야. 지불한 거 이상으로 굴릴 테니까.’
오시안은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회사원으로서 조직의 톱니바퀴로서 살았다.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이 보수에 담긴 의도를 잘 알았다.
‘게다가 기사가 돼서 그런지, 묘하게 더 섬뜩하단 말이지.’
전생에서 이런 비슷한 느낌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더라.
군대에서 전역하기 전, 말년 병장이었던 자신에게 평소 사이좋았던 행보관님이 커피를 권할 때였나.
아니면 대학원생 때 교수님이 식사를 하자고 불렀을 때였나.
그때 오시안은 인간으로서의 강렬한 본능을 느꼈었다.
들어가는 순간 끝장이다!
그 느낌을 지금도 똑같이 받았다.
그런 속마음이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은 탓에, 에나와 로레인은 오시안이 전혀 한 치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고 철석같이 오해했다.
에나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아무튼 기뻐할 일이네요! 축하의 의미로 케이크라도 만들어야겠어요!”
“너, 케이크도 만들 줄 아니?”
“네. 제빵도 배웠거든요.”
제빵을 배웠다고 케이크가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였나?
로레인이 뜨악한 얼굴로 에나를 응시했다.
제빵사(baker)와 케이크류의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시에(Pâtissier)는 엄연히 다르다.
굳이 따지면 후자가 더 어려운 쪽에 속했다.
“혹시 다른 디저트도 만들 줄 알아?”
“아, 네. 어지간한 것들은 다 만들 줄 아는데요.”
“…….”
인증받은 파티시에들이 왕실에 전문적으로 헌상하는 디저트를 만든다는 걸 생각하면, 에나는 상당한 고급 인력이나 다름없었다.
로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우리 사무소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까.”
“그 말은 본인에게도 통용된다는 거, 잘 알고 계시죠?”
로난이 지적했지만, 로레인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에나는 장 본 물건들을 들고서 부엌으로 사라졌고, 로레인은 할 일이 없는지 그대로 의자에 앉아 탁자에 철푸덕 엎어졌다.
심심해한다기보다는 오늘 오시안이 받은 보수의 금액을 보고 약간의 현타가 온 것이었다.
“나도, 돈 많이 벌고 싶은데…….”
로난과 오시안은 그런 로레인의 투덜거림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뭐 어쩌겠는가. 현실이 이런 것을.
어차피 로레인도 딱히 크게 마음에 담아두고서 한 소리는 아니었기에, 하루 정도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여기가 바이올렛 폭스 맞습니까?”
오시안은 손님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새로 온 손님은 인간이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덩치, 녹색 피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아래 어금니까지.
‘오크?’
들어온 손님은 오크였다.
‘오크는 몬스터였을 텐데.’
오시안의 기억 속에서 오크는 야만민족 중 하나로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적대하는 몬스터였다.
물론 오크가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부족 생활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크는 몬스터였다.
그런 오크가 바이올렛 폭스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몸에 딱 맞는 검은 양복에, 눈가에는 테 없는 안경까지 쓴 채로.
‘오크가 양복을? 게다가 안경까지 쓰고 정중하게 묻고 있어?’
흑마법사들이 양지로 나와서 활동하면서 관련 교육기관도 있다는 것까지도 알았지만,
설마 몬스터였던 오크가 유창하게 말을 하면서 인간사회에 녹아들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시안이 속으로 놀라거나 말거나, 로레인이 오크를 보는 순간 테이블에 처박았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네! 여기가 바이올렛 폭스가 맞답니다! 무슨 의뢰를 하러 왔나요?”
로레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시안은 그걸 멀뚱히 바라봤고, 로난은 골이 아픈지 낮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왜 저러지?”
“돈 냄새를 맡은 겁니다.”
“흠?”
오시안이 오크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오크라는 것에 집중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저 오크가 입고 있는 양복의 재질부터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최대한 검소하게 입은 거 같은데 단번에 알아차린 로레인은 대체 뭘까.
그러거나 말거나 로레인은 오크를 향해 물었다.
“고객님. 무슨 의뢰를 요청하려고 그러시나요? 저 로레인 폰크. 바이올렛 폭스의 베테랑 해결사로서, 어떤 의뢰든지 성공해 보일 자신 있답니다!”
“어, 그게…….”
로레인의 적극적인 어프로치에 잠시 당황한 오크는 차분하게 물었다.
“혹시 이곳에 오시안이라는 해결사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
방긋 웃던 로레인의 얼굴이 금이 쩍 갔다.
그 모습에 로난은 재미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이씨.”
로레인이 로난더러 웃지 말라며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로난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알겠다고 한 뒤, 오크를 향해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바이올렛 폭스의 중개인인 로난 롤랑이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세바스티안이라고 합니다.”
오시안은 오크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뿜을 뻔했다.
순전히 그러지 않은 것은 고고함을 잃지 않는 육체 덕분이었다.
오크 이름치고는 너무나도 고풍스럽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세바스티안이라 소개한 오크가 말을 이었다.
“저희 주인님께서, 능력 있는 해결사를 구하고 계셔서 찾아온 겁니다.”
“호오. 주인이시라면?”
“델런 골디런입니다.”
오시안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로레인은 다른 모양이었다.
“골디런? 설마 금광 채굴권을 지니고 있다는 그 골디런 가문?!”
“아는 곳인가?”
“그걸 어떻게 몰라? 아주 유명한 곳이잖아! 금광을 발견해서 단번에 대부호에 오른 집안이라고!”
금을 채굴하고 그것을 얻었으니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을 터.
오시안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곳에서 대체 왜 해결사를 구하기 위해서 온 걸까.
“저. 그보다 오시안 해결사님을 뵙고 싶은데, 혹시 오늘 나오지 않은 것입니까.”
“나다.”
로난이 소개하기 전에 오시안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오시안을 본 세바스티안은 안경 너머의 눈을 크게 떴다.
“아, 당신이?”
“뭐가 문제지?”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분이셔서.”
세바스티안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오시안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몰랐다.
다만 그의 귀에 들리는 소문으로,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해결사라는 것만 알았을 뿐.
보통 해결사들이 거친 일을 한다는 걸 알았기에 세바스티안은 오시안을 매우 험악한 인상의, 혹은 어딘가 다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귀공자 같은 외모라니.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초면인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 나를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의뢰지?”
지금껏 물심양면 주인을 모셔 왔던 세바스티안은 그래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가 보기에 오시안은 분명 어딘가의 귀족 도련님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해결사 일을 하다니. 무슨 말 못 할 과거사라도 있는 걸까?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사실이 아니었기에 세바스티안은 정신을 차리고 질문에 답했다.
“제 주인이신 델런 님께서 뛰어난 실력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뛰어난 실력자라. 이유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가문 내부의 일이다 보니 여기서 말하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부분이.”
세바스티안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간단했다.
의뢰를 받아들여야만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다만 그 행동이 당당하다기보다는, 조금 눈치를 보는 기색이 있는 걸 보아 말을 하는 본인도 크게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대방에게 진실을 감추고서 일부러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이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억지라도 입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산 때문이 아닌지요?”
그때 로난이 불쑥 끼어들면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세바스티안이 애써 아닌 척하려 했지만, 그의 동공이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오시안은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이번 일이 초짜라는 걸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최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주이신 다이크 골디런이 인사불성에 빠졌다고요.”
“그, 그건…….”
“최대한 감춘다고 감췄지만,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분이 어언 몇 달간 두문불출하셨으니 그런 이야기가 새어 나올 수밖에 없죠. 이제는 80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딱히 이상해할 것도 없고요.”
“…….”
“델런 님은 제가 알기론 그중 세 번째 아들. 그런데 해결사를 모으고 있다는 것은…….”
루난의 실눈이 더욱 길게 찢어졌다.
“무력을 동원할 일이 필요한 거군요. 혹시 후계자를 정하는 일이라도 되는 겁니까?”
세바스티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이상, 더는 비밀로 할 수가 없었다.
“우선 방금 말씀하신 건 대부분 맞습니다. 다이크 님이 현재 인사불성에 빠진 것도, 그리고 후계자 관련된 것도.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뭐가 더 있다는 말이군요.”
후후후.
로난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수상함이 가득한 미소에 세바스티안이 잔뜩 굳어서 움찔거렸다.
로난의 미소를 마주한 그는 잔뜩 겁을 먹은 모양새였다.
자신보다 머리 2개는 더 작은 인간의 미소에 겁을 집어먹는 오크라니.
오시안은 또 묘하게 납득했다.
로난의 미소는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다들 왜 저를 그런 눈빛으로 보시는 건가요?”
정작 로난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크흠. 일단 말씀을 잇자면, 아직 후계자를 정할 때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해결할 일이 있기 때문이죠.”
“해결할 일이라. 흥미가 생기네요. 정확히 어찌 된 일입니까?”
“유령.”
세바스티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였다.
“다이크 가주님의 목을 거둬갈 유령을, 제거해 줬으면 합니다.”
동시에.
찌릿!
오시안의 미간을 타고 기묘한 전류가 흘렀다.
이것은 직감이었다.
이 의뢰를 받아야 한다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