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수단의 변화 (1)
오시안은 엘리제와 대화를 더 나누면 자신만 피곤해질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월흔의 힘을 사용한 것 때문에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
처음 성광을 깨우쳤을 때와 비슷한 탈력감이었다.
짜증이 나는 피로감은 아니고, 오히려 실컷 운동을 하고 난 뒤와 같은 개운함에 가까웠다.
월흔의 힘으로 실컷 날뛰었던 걸 생각하면 굳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보다 저택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다이크 측 고용인들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는군.’
한 번쯤이라도 확인을 하러 올 법도 한데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는 것은, 그쪽에도 무언가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오시안의 시선이 다리가 풀린 채 주저앉은 데이빗 골디런을 향했다.
“히익! 이, 이 살인마!”
데이빗은 오시안과 눈이 마주치자 사색이 되어 외쳤다.
사람 죽이라고 마법사를 고용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오시안은 그걸 무시하며 데이빗에게 물었다.
“대답해라. 또 뭘 꾸미고 있지?”
“뭐, 뭘? 나, 난 몰라.”
“대답하지 않겠다면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 그러면 아마 기억이 떠오르겠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른다고!”
“셋을 세겠다.”
데이빗이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오시안의 눈빛.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그 눈빛은 진심이었다.
저 미친 검사는 정말로 골디런 가문의 장남인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가면서 고문을 할 생각인 것이다!
“하나.”
“흐아아악! 몰라! 진짜 몰라!”
“둘.”
“이, 이 개새끼야! 모르는데 어떻게 말해!”
“끝내 경고를 무시하는군.”
오시안이 셋이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오시안을 말린 것은 집사, 더스틴 크루거였다.
검을 휘두르려던 자세를 잡은 오시안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다이크의 충실한 심복인 더스틴 크루거가 용병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오시안은 자연스럽게 검을 허리춤의 칼집에 꽂아 넣으며 2층 난간에 선 더스틴을 응시했다.
‘이 남자. 설마 처음부터?’
더스틴은 오시안의 표정을 보는 순간 자신이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오시안은 데이빗의 손가락을 자를 생각이 없었다. 이 일련의 모든 행동은 단지 그를 부르기 위해서 과시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대로 한 방 먹었다는 사실보다도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오시안은 이미 뭔가를 눈치챈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 리가.’
더스틴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그 순간, 오시안이 물었다.
“이제 슬슬 이 저택의 진짜 주인을 만나게 해주면 고맙겠군. 너무 오래 기다렸어.”
“……그게 무슨 소리인지요.”
“계속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오시안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더스틴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다이크 골디런. 지금 멀쩡하지 않나.”
“……!”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그가 만들어 낸 자작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였지.”
그 말에 옆에서 엘리제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시안의 말이 매우 충격적이었는지, 공포에 질린 장남과 차녀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멀쩡하다고? 이게 전부 자작극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가주가 아픈데 이런 별장에서 요양을 하는 것도 그렇고, 유령이 나타났다면서 가주가 있는 방 근처만 지키는 것도 그렇고.”
“그 유령과 싸워 본 입장이라면 알 텐데요? 당연히 가주님을 지키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식들이 이렇게 사람을 고용해서 저택 내부에서 흉흉한 분위기를 유지해도 거기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지. 오히려 이렇게 되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억측입니다. 저는 그저 가주님의 안전만 신경 쓸 뿐, 도련님들이나 아가씨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게 가주의 자리에 위협이 되는데도 말인가? 봐서 알지 않나. 저택에서 이 정도로 난리가 났는데, 단순히 자식들이 사이좋게 힘을 합쳐서 제 아버지를 구하려고 그랬을 것 같나?”
더스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오시안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이 어찌 모를까.
장남 데이빗과 차녀 마실리는 반역을 꿈꿨다.
그래서 장남은 살라만 학파의 마법사를, 차녀는 슈프리머시 소속 뮤턴트를 고용했다.
표면적인 명분은 저택의 유령을 없애기 위해 한 팔 거들겠다는 거였지만, 그 속내는 아버지의 자리를 끌어 내리고서 자신들이 재산의 지분을 먹겠다는 욕망이 가득했다.
동시에 겸사겸사 가장 거슬리는 사생아인 셋째를 제거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고 말이다.
“전부 실패한 와중에도 저택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그 누구도 상황을 확인하겠답시고 코빼기 한번 비추지 않더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오시안이 손을 저으며 더스틴의 말을 중간에 끊어냈다.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한 행동이라, 더스틴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헙 다물고 말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애초에 다이크 골디런은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없다고. 지금 벌어진 이 일련의 행동은 전부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거, 거짓말이야!”
마실리가 목소리를 떨며 오시안의 말을 부정했다.
그 늙어빠진 노인네가 일부러 이렇게 판을 짰다고? 자신들의 행동이 전부 계산된 것이었다고?
평생 남을 돈으로 부리는 것밖에 하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현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 아니죠?”
마실리의 간절한 눈빛이 더스틴을 향했다.
하지만 더스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오시안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부정을 좀 해봐요!”
“…….”
더스틴은 오시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말에 긍정하지도 않았지만, 이게 거짓이었다면 애초에 그렇지 않다고 쐐기를 박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 아아.”
마실리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패륜을 저지르려고 했던 짓이 들켰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했지만, 자리의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시안은 더스틴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
“모든 진실을 알아 버린 나를, 여기서 입막음으로 제거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당돌한 질문.
하지만 더스틴은 오시안의 행동에 더욱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 혼자 있었다면 정말로 입막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오시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엘리제 데나로바. 막내 아가씨의 친구이자 세기의 천재 흑마법사 소녀도 진실을 들어 버린 것이다.
입막음을 하려면 엘리제까지 제거해야 하는 것이 옳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일부러 이걸 노리고서 모두가 있는 앞에서 이야기를 한 거다.’
더스틴은 자신이 제대로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엘리제 데나로바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다.
특히 현재 그녀가 꺼내놓은 [신랑]과 [신부]는 매우 특별한 가공을 거쳐서 만든 특급 소환수.
이 자리의 모든 화력을 쏟아낸다 하더라도 잡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오시안도 문제였다.
유령을 상대하고, 첫째와 둘째가 고용한 사람들과 싸웠는데도 상처 하나 없이 너무 멀쩡했다.
그렇다는 것은 오시안이 그에 준하는 강자라는 소리였다.
그런 둘을 상대로 과연 입막음을 할 수 있을까?
‘교활한 남자다.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야. 상황을 읽고 이용할 줄 아는 두뇌도 겸비하고 있어.’
결국 더스틴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후우. 맞습니다. 다이크 님은 멀쩡하십니다. 지금 벌어진 일들도 결국 그분께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렇다는군.”
마실리는 고개를 더욱 숙였고 데이빗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잠깐.’
오시안은 데이빗을 주시했다.
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현실을 마주한 것치고는 어딘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이미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오시안은 볼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 사이에서 번뜩이는, 아직은 미세하게 남아있는 희망의 빛을.
‘설마?’
오시안이 더스틴에게 물었다.
“지금 가주가 머무는 방의 병력은 얼마나 있지?”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걱정하지 마시죠. 가주님이 지키는 곳에는 50명이 넘는 고용인들이 남아있으니까요.”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 50명 중 가주에게 충성하는 진짜가 몇 명이냐는 거다.”
“그게 무슨…….”
더스틴은 오시안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눈을 부릅떴다.
축소된 동공이 자신이 왔던 길을 향했다.
“설마?”
불안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순간 복도 너머에서 총성과 함께 폭음이 울려 퍼졌다.
“가주님!”
더스틴이 놀라서 병력을 이끌고 가주가 머무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오시안이 장남 데이빗을 노려보았다.
“큭. 큭큭큭.”
데이빗이 해냈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아.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여기까지 오는 건 상정조차 하지 않았는데.”
“너, 너 뭐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실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오빠, 데이빗에게 물었다.
“뭐긴 뭐야. 다 계획이라는 거지.”
“계획? 멍청한 네가 여기까지 계획을 짰을 리가 없잖아! 말해. 누구야. 누가 한 짓이야?”
“그걸 내가 말할 거 같아?”
마실리의 질문에 대신 답한 것은 오시안이었다.
“그렇군. 안주인도 한패였던 건가.”
깜빡하고 잊고 있었다.
이 집안에는 다이크와 그의 집사, 그리고 4명의 자식들 말고도 다른 1명이 더 있다는 걸.
골디런 가문의 안주인이자 저 아이들의 어머니.
그리고 다이크 골디런과 반평생이 넘게 함께 살아온 여인.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
데이빗이 오시안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그 빌어먹을 사생아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리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시안은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그는 저택을 빠르게 내달리며 델런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조금 더 빨리.’
쩌저적.
오시안의 의지를 읽은 월흔의 힘이 그에게 깃들었다.
지면에 서리가 끼더니 이내 매끄러운 얼음의 길이 생겼다. 오시안은 그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델런이 머무르고 있는 방 앞에서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해 있었다.
쉘터를 방불케 하는 튼튼한 방의 문이 반쯤 부서지며, 그들이 막 안쪽으로 돌입을 하려던 차였다.
오시안은 그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어?”
“저건 뭐…….”
오시안을 발견한 자들이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의 머리가 농익은 열매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의 목이 있던 자리에는 냉기를 머금은 푸른 궤적 2개가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총을 든 자들의 사이로 빠르게 파고든 오시안은 검무를 췄다.
월광이도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급소를 베인 자들이 끅 소리를 내며 절명했다.
베인 상처도 상처이지만, 그 안쪽으로 서리의 기운이 침범하며 뼈와 근육, 피까지 얼려 버렸다.
“이, 이 새끼 뭐야!”
앞의 동료가 고기방패가 되어 준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오시안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타.
피할 공간 없이 전체에 흩뿌려진 화망.
오시안의 몸이 총알에 무수히 꿰뚫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에 안도하기도 잠시, 쓰러진 오시안의 몸이 푸른 크리스탈 입자로 변하며 파스스 흩어졌다.
“어?”
진짜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오시안은 천장에서 뚝 떨어지며 남은 병력의 중심에 착지했다.
두 다리가 지면에 닿는 것과, 그의 몸이 한 바퀴 빙그르르 도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궤적 안에 있던 자들이 모조리 서리에 뒤덮이며 쓰러졌다.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침입자를 모두 정리한 오시안은 부서진 문의 틈새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쪽에서 델런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오시안은 숨을 삼켰다.
델런은 멀쩡했다.
문을 부수기 위한 폭탄의 충격에 휩쓸렸는지 그의 머리카락이 엉망이고, 이마에서 한 줄기가 흘러내렸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대신 그의 곁에는 등이 걸레짝이 된 세바스티안이 쓰러져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