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다이크 골디런 (1)
상황 정리가 끝났다.
들것에 실려 가는 세바스티안을 보며 델런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
머리에서 흐르던 피의 지혈을 끝낸 델런은 오시안을 이끌고 자신의 아버지, 다이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문객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저택의 2층.
다이크의 방 앞에서 벌어졌던 사태도 이미 정리가 끝나 있었다.
주변에 시체들은 이미 다 치워서 없었지만, 곳곳에 새겨진 핏자국과 총알 자국, 그리고 검게 그을린 흔적이 이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오시안은 그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50여 명의 사람 중 태반이 넘는 자들이 배신자였을 거라는 건, 벽과 바닥에 박힌 총알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털어낸 총알만 물경 수천 발이 됐을 터.
그런데 유독 특이한 부분이 눈에 밟혔다.
‘이건 대체 뭐지?’
유난히 멀쩡한 구역이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폭력의 흔적이 닿지 않은 듯 벽은 멀쩡하고 카페트도 말끔했다.
마치 이 주변만 성역이라도 되는 것마냥 총알과 폭탄이 피해 간 것 같았다.
‘사람의 형태?’
오시안은 총알자국이 그린 형상이, 어쩐지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신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던 페르난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쪽도 뭔가 있는 모양이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더스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델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이 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더스틴이 델런에게 보여 주는 모습은 장남보다 훨씬 더 깍듯해 보였다.
“다이크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지.”
델런 또한 그런 더스틴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그는 마음의 준비를 끝낸 뒤였다.
더스틴이 문을 열어 주었고 델런과 오시안, 엘리제는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쪽에는 커다란 침대와 함께 온갖 화려한 물건, 명화,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침대에는 노인 한 명이 상반신을 일으킨 채 앉아 있었다.
“왔느냐.”
오늘내일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노인치고는 지나치게 정정한 목소리였다.
그 이상으로 힘이 깃들어 있었고, 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다르게 눈빛에는 형형한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델런이 여기서 수십 년은 늙는다면 딱 저렇게 될 것 같았다.
“일어나셨군요.”
델런은 자신의 아버지, 다이크를 향해 가벼운 안부를 전했다.
이미 모든 것이 그의 자작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인사를 던져서일까, 다이크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자식들 중에서는 너와 막내가 내 걱정을 해주는구나.”
“제가 자식이었습니까?”
뼈가 있는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다이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럼 네가 내 자식이 아니면 뭐냐. 바깥에 데려가면, 다들 너와 나를 부자처럼 볼 텐데.”
“그래서 이제 속은 좀 시원해졌습니까?”
“도려내야 할 썩은 살을 도려냈으니 시원하지 않겠느냐.”
다이크의 시선이 자신의 침대 맞은편에 향했다.
그곳에는 제압당해서 무릎을 꿇고 있는 3명의 사람이 있었다.
첫째 데이빗 골디런.
둘째 마실리 골디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중년의 여인까지.
그녀가 바로 다이크의 아내이자 골디런 가문의 안주인인 달시 골디런이었다.
실제 나이는 60이 넘었겠지만, 피부 시술과 돈의 힘 덕분인지 그녀의 외모는 40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도 대접을 받을 돈 많은 사모님이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반역을 꿈꾸었지만 끝내 실패한 패배자.
달시를 바라보는 다이크의 눈빛에는 어딘지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영 찝찝해 보이십니다.”
델런의 지적에 다이크는 실소를 흘렸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반평생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 온 부인이 자식들과 짜고서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말이다.
다이크의 그런 감정을 직감한 걸까.
그 말 많고 눈치 없던 막내조차도 지금은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도 늙기는 한 모양이다. 예전 같지 않으면 말이야.”
“예전이었으면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같이 화를 내겠지.”
“지금은 화가 안 나십니까?”
“안 난다하면 거짓말이겠지. 화는 난다. 다만 예전처럼 그걸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 담아 둘 뿐.”
“속으로 담으면 화병 납니다.”
“지금 이 늙은이를 놀리는 거냐?”
“걱정해 준 거죠.”
델런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다이크가 나름의 사건을 겪은 것처럼, 델런도 자신이 아끼던 세바스티안을 잃을 뻔했다.
사생아이자 셋째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기라도 한 모양일까.
“너를 보면 내 젊을 적이 떠올라.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직도 내가 네 나이일 때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구나.”
다이크가 기특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하지만 너는 오히려 예전의 나보다 더 낫구나. 이미 화를 안으로 가라앉힐 줄 알고 있으니까.”
“대체 왜!”
그때 무릎을 꿇고 있던 데이빗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다이크를 향해 증오 어린 눈빛으로 따졌다.
“왜 저딴 사생아 새끼한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겁니까!”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빌어도 모자랄 판에 따지고 드는 장남에게 화가 날 법도 한데, 다이크는 오히려 한층 차분한 얼굴로 답했다.
“그걸 물어보는 시점에서 네가 안 된다는 거다.”
“저는 장남 아닙니까! 아버지의 사업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보필해 왔습니다!”
“네가 한 게 뭐가 있지? 다 내가 일군 사업이지. 경험 좀 쌓으라고 던져 준 쥐꼬리만 한 사업체 몇 개 좀 굴려 봤다고 네가 머리가 커진 줄 아는 거냐?”
“더 큰 기회를 줬다면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크게 말아먹었겠지. 너에게 이런 설득을 하는 것도 이제 지친다.”
데이빗은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에도 다이크가 장남인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핀잔을 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제 핏줄이니 기대했지만, 이번 일로 그 기대를 완전히 접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기 내조한 사람의 자식은 모두 쳐내겠다 이건가요?”
얌전히 있던 달시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다이크는 자신을 표독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아내를 심드렁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내가 아프다는데 오히려 나를 죽이려던 사람을 쳐내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내가 지금 당장 너희 년놈들을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그 눈빛에 주눅이 든 데이빗이 눈을 피했다.
하지만 달시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돈 많은 집안의 사모님이지만, 그녀도 나름의 역경을 딛고 이 자리까지 온 여인이었다.
“데이빗과 마실리는 제가 사주해서 움직인 거예요. 그러니 아이들만은 봐주세요.”
“시킨 대로 했다고 그게 죄가 아니게 되는 건가? 그거참 편한 계산법이군.”
씨알도 먹히지 않자 달시는 이번에는 혈육의 정에 대고 호소했다.
“당신은 자식에 대한 정도 없어요?”
“부모와 남편에 대한 정을 먼저 끊어낸 건 그쪽이었지. 너무 칼같이 끊어내서, 내가 뭐 이어 볼 틈도 없던데.”
“그래서, 정녕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거예요?”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 아닌가?”
달시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와 오랫동안 지내온 당신이라면 알 텐데. 내가 한번 정한 것은, 하늘이 뒤집혀도 바꾸지 않는다고.”
“그건…….”
“난 기회를 줬고,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제 발로 차버린 것은 전부 너희들이야. 그러니 원망하려면 날 원망하지 말고 멍청했던 너희들의 과거나 원망해.”
다이크가 고개를 돌려 막내 마리아에게 물었다.
“너도 이 아비의 결정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마리아는 자신은 이번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바로 물러났다.
‘이럴 때 보면 또 상황판단은 귀신 같군.’
오시안은 마리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
결국 마땅한 방법이 없던 달시는 표독한 시선으로 델런을 노려보았다.
증오가 뚝뚝 묻어나오는 시선. 눈빛만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다면 델런은 시체의 형체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네놈만, 네놈만 없었더라면!”
“그러게 저 두 모질이의 교육 좀 잘 시키지 그랬습니까.”
“뭐, 뭐라고?”
“그러니까 저 같은 사생아에게 왕관을 넘겨주게 된 거 아닙니까.”
“이, 이……!”
델런의 신랄한 말에 달시는 머리끝까지 붉게 물들었다.
너무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델런은 이미 지나간 대화로, 자신이 차후 골디런의 가주직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할 것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겁니까? 아버지.”
델런은 일부러 아버지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달시 골디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주변 경호원이 그런 달시를 눌러서 자리에 앉혔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 니들 해고당하고 싶어?!”
데이빗이 발끈하며 소리 질렀지만, 경호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악을 써대는 데이빗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달시, 그리고 그 와중에 불쌍한 척을 하면 봐주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는 마실리까지.
“도무지 못 볼 꼴이로군. 내보내.”
다이크의 말에 경호원들이 세 사람을 이끌고 나갔다.
그들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려 했지만, 우악스러운 경호원의 손길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해 보였다.
“그리고 마리아.”
“네. 안 그래도 저도 친구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이만 가 볼게요!”
마리아는 다이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엘리제의 손을 이끌고 가 버렸다.
이 일련의 상황 자체에 흥미조차 느끼지 못한 엘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시안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다이크와 그의 충실한 심복 더스틴 크루거, 델런, 오시안 총 4명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 거다.”
“예, 뭐. 기왕 쓰게 된 감투, 한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성격도, 예전의 나보다 나으니까.”
“아버지의 옛날은 그러면 오죽 개차반이었나 봅니다.”
“크흐흐. 이 못난 놈. 자기 자리를 확신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조금 더 기뻐해도 될 텐데.”
“기뻐하기엔 제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워낙 많아서요.”
그 말에 다이크가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나를 원망하느냐? 네 어머니를 챙기지 못한 나를 말이다.”
“원망이야 하겠습니까. 이런 별장보다도 더 좋은 저택에서 맛있는 거 먹게 해주고 좋은 옷 입혀 주셨는데.”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삶이었다. 이 나이 와서 겨우 뒤를 돌아보니, 참으로 후회할 일들만 가득하더구나.”
이 전까지 냉철하고 딱딱하게 말하던 다이크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풀렸다.
“이제 와서 너에게 용서해달라 빌지 않겠다. 그러자니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고 깊어서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조언은 해주마. 네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잘 보살피거라. 내가 유일하게 잘한 것이 바로 그거다.”
그 말에 더스틴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버지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잘 가려서 보고.”
다이크의 시선이 오시안을 향했다.
“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어디 이름만 번지르르한 조직보다, 네가 고른 해결사 하나가 백배 천배는 더 나으니까.”
다이크는 오시안을 보는 순간 그가 평범한 해결사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나지.”
오시안의 말에 더스틴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다이크가 칭찬을 해 줬는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오만하게 답변하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다이크는 그런 오시안의 대답에 눈을 잠시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그래! 더 뛰어나지! 누구 아들이 고른 사람인데!”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자식 자랑으로 넘어가는 다이크도 만만치 않았다.
혹시라도 다이크가 건방지다며 화를 낼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더스틴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참을 웃던 다이크가 이내 오시안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의뢰를 받았겠지만, 그래도 아비 된 입장으로서 자식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의뢰 보수와는 별개로 보상을 줘야겠는데.”
보상이라는 말에 오시안의 눈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그래. 해결사 양반. 티르나에 손꼽히는 부자인 내게 뭘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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