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다이크 골디런 (2)
다이크 골디런이 오시안에게 물었다.
무엇을 원하냐고.
다이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봤다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백만장자 소리를 넘어서 억만장자라 평가받는 다이크가 본인의 입으로 보상을 주겠다 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이런 쪽으로는 절대로 허튼 말을 하지 않아. 주겠다고 한다면 확실하게 주는 편이지.”
물론 다이크에게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티르나 전체를 둘러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다이크에게 직접 보상을 받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가치는 훨씬 더 빛났다.
“어떤가. 돈을 원하나? 원한다면 지폐로 목욕을 시켜줄 수 있네. 아니, 지폐가 아니라 금으로도 가능하지. 방 전체를 황금으로 가득 채워 줄 수 있어.”
다이크는 상상을 해보라는 듯 오시안의 욕망을 자극했다.
넓은 방 전체를 눈부신 황금이 가득 차 있는 풍경을.
황금의 도시 티르나에 사는 사람이라면, 돈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눈이 뒤집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그게 아니면 이 별장을 원하나? 어차피 모든 사건이 끝난 이상 이 별장의 용도는 이제 끝이지. 그러니 그냥 누구에게 줘도 상관없고. 조금 망가지기는 했는데 인부를 부르면 금방 고칠 수도 있어.”
달려도 끝이 없는 거대한 저택을 별장이라는 이유로 그냥 준다는 말도 만만치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렇게 크고 화려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을 터.
저택 자체가 지닌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한다면, 이 또한 믿기지 않는 규모가 분명했다.
하지만 오시안은 여전히 다이크의 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늙은이가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저런 걸 물어보는 건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어떤가.”
다이크는 오시안의 대답을 은근하게 재촉하며 물었다.
그가 갑자기 오시안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한 것은 단순히 감사의 표시만이 아니었다.
‘가주님께서는 저 해결사의 됨됨이를 확인하고 싶은 거다.’
다이크가 뭘 원하는지, 그의 충실한 심복인 더스틴은 곧바로 눈치챘다.
‘금광 채굴권을 지니고, 거기에 더해 온갖 다양한 이권사업을 쥐고 있는 골디런 가문의 가주가 건넨 제안이야. 아무리 비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제안을 듣는 순간에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인간의 내면에 가작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때가 언제인가.
다이크 골디런은 항상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 사람의 욕망이 가면을 비집고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그래서 그는 오시안의 욕망을 자극했다.
저 무뚝뚝하고 어딘가 권태로운 얼굴 아래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오시안. 평범한 해결사가 아니라는 건 그 태도와 이번 결과물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은 어떨까.’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단순하다.
아주 막대한 돈만 있으면, 그 사람은 밑바닥까지 무너지며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게 된다.
다이크는 어떤 의미로는, 돈으로 인간의 내면을 엿보려고 하는 고약한 성격의 노인네였다.
그게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고, 그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정말 아무거나 요구해도 되나?”
오시안이 물었다.
다이크는 그 모습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뭐든 요구를 해도 좋다네.”
“그렇다면.”
오시안이 다이크를 향해 투명한 눈동자로 물었다.
“이번 사태가 그쪽의 자작극이라 했지. 그렇다면 유령도 그쪽이 이용한 건가?”
“…….”
보상을 말하라니 갑자기 유령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오시안의 태도에 다이크는 의아해하면서도 답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유령은 내 예상 밖의 일이었어. 갑자기 나타나서 내심 놀라기는 했지.”
“거짓말을 하고 있군.”
“뭐?”
“알고 있지 않나. 왜 유령이 나타났는지.”
오시안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다이크는 오시안을 잠시 빤히 응시하더니 물었다.
“그게 궁금한가?”
“그렇다.”
“그 말은 즉, 이 질문을 보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거겠지?”
“상관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더스틴과 델런이 속으로 경악했다.
다이크가 직접 건네주겠다는 보상을 그저 질문 하나로 퉁치겠다니?
지금까지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결코 없었다.
“…….”
다이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해서 자존심이 상한 것 같으면서도, 오시안이 일부러 저러는지 그 속내를 파악하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충실한 심복인 더스틴은 오히려 다른 느낌을 받았다.
‘뭐지? 가주님께서, 오히려 기뻐하시는 것 같다. 그 이상으로 어딘가 그리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한데, 내 착각인가?’
그 표정은 너무 찰나라서 제대로 확인이 힘들었다.
어느덧 마음을 다잡은 다이크가 오시안에게 물었다.
“기다리게.”
다이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근처의 서랍으로 갔다.
그는 서랍의 안쪽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돌을 꺼냈다.
“이거네. 아주 먼 옛날, 광산을 채굴하다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돌이 발견됐다고 해서 가져오라 시킨 물건이지.”
푸른색의 돌은 아직 가공되지 않은 보석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은 어딘가 익숙한 것이었다.
“마치 밤하늘의 달빛을 담은 것 같아서, 나는 이걸 문스톤이라고 불렀지. 하도 특이해서 여러 보석상에게 감정을 맡겼는데, 그들은 이게 대체 무슨 원리로 빛이 나는지 모르더군. 뭔가 평범한 게 아니다 싶어서 계속 지니고 있었지. 일종의 부적처럼 말이야.”
다이크는 아직도 은은하게 빛이 나는 돌을 보며 옛 추억에 잠겼다.
그냥 아름다운 빛이 나는 것 빼고는 어떠한 효과도 없는 돌이었다.
하지만 다이크는 이 돌에 희미하지만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수십 년이 넘게, 가까운 곳에 계속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쓰러지기 전보다는 조금 더 빛이 줄어들었군.”
“그런가?”
“그래. 확실해. 수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봐 온 물건이니까. 어쩌면 그 기운이 다한 걸지도 모르겠어.”
“그게 유령의 정체다.”
오시안의 충격적인 말에 더스틴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유령을 목격을 한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텐데?”
“그건…….”
“그 돌에 깃든 기운이 저택을 배회하며 유령의 형태로 변한 거였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더스틴은 오시안의 말을 이상하리만치 쉽게 수긍했다.
가주인 다이크가 쓰러지면서 돌의 빛이 줄어들고 유령이 나타난 것에 일종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기도 했고 말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다이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걸 내게 보여달라 한 이유가 뭔가.”
“방금 전 뭘 원하냐고 물었지. 그걸 받고 싶다.”
“이걸? 대체 왜? 네 말대로라면 이건 이제 그 힘조차도 잃은, 그저 빛나는 돌이 아닌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까.”
깊은 확신과 확고한 믿음이 깃든 목소리.
다이크는 오시안의 말을 곱씹다가 자기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 흐허허허.”
처음엔 작게 시작된 웃음은 어느덧 자지러지듯 변했다.
“크하하하하! 그거, 그거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로군!”
웃음을 그친 다이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정말로 다른 보상은 필요 없나?”
“필요 없다. 어차피 의뢰를 받았기에 한 일. 그 외에 다른 보상에는 별다른 관심 없다.”
“진심이군.”
진심이야.
다이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시안은, 자신이 감히 판단을 내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자존심 상하는구먼.”
불현듯 꺼내는 다이크의 말에 오시안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있다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거지. 아무리 고귀한 귀족이라 한들, 남들에게 우러러 받는 연예인이나 배우라고 한들 억만금을 쥐여 준다고 하면 귀신같이 태도가 돌변하고 말아.”
다이크에게 당돌하게 굴었다가, 돈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다이크는 졸부다.
그의 골디런이라는 성도 나중에 돈으로 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다이크가 존중과 경외를 받는 몸이라지만 예전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다이크는 그런 사람들의 미묘한 업신여김과 경멸의 시선을 아주 잘 알았다.
“그렇게 목이 뻣뻣하던 것들이, 돈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지. 돈이 뭔가. 금이면 더 환장을 했어. 눈부신 황금색. 그것만으로 아주 눈이 다들 뒤집어지지.”
그들을 돈으로 무릎 꿇리면서 다이크는 일종의 확신을 품었다.
결국 세상은 돈이 전부라고.
아닌 척하는 놈들도 돈을 밝히는 쓰레기라고.
이번 사건만 봐도 그랬다.
그의 유산을 차지하겠다고 가족끼리 추잡스러운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자네는 다르군. 아닌 척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돈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이미 충분히 있으니까.”
“그래. 이번에 큰 건을 하나 해결하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받았다지?”
그런 것도 알고 있냐고 놀랄 법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델런도 나름의 정보망으로 오시안의 비범함을 알아차렸는데 다이크가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돈을 받았으면 눈에 안 찰 수도 있지. 하지만 돈을 벌어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이네.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떵떵거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누가 그걸 마다할까.”
그런데 오시안은 그러지 않았다.
다이크는 오시안에게 문스톤을 내밀었다.
“내가 졌군. 자네가 이겼어.”
자존심이 강하고 다혈질인 다이크가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정작 치욕스럽거나 화나기보다는 오히려 개운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누구 아들인지는 몰라도 사람 하나는 아주 잘 골랐군.”
“고맙게 받지.”
오시안은 문스톤을 받았다.
손에 쥐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역시 이건 월흔의 힘이 깃든 돌이었다.
유령을 쓰러뜨리며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아직 이 문스톤 안에는 월흔의 힘이 더 남아 있었다.
문스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월흔의 힘 이상으로 큰 수확이 생겼다.
바로 자신의 다른 힘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였다.
‘내 힘이 이와 비슷한 형태, 혹은 다른 무언가에 깃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막연하게라도 어떻게 힘을 되찾는지에 대한 해답이 주어진 것 같아서, 막혔던 속이 뚫린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런 힘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른다는 장벽이 남았지만,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이번 의뢰를 받아들이길 잘했어.’
돈보다도 더 좋은 보상을 받았으니 오시안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장사였다.
그런 감정이 눈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걸까.
다이크가 쳇 하고 혀를 찼다.
“진짜 그거 하나로 만족하다니. 자존심이 팍 죽는구만. 안 되겠어. 이대로는 나 다이크 골디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하니, 조금 더 챙겨주도록 하지.”
“돈은 필요 없다만.”
“돈을 직접 주는 것은 아니야. 다만 다른 방식으로 건네주는 거지.”
다이크가 이건 몰랐을 거라며 씨익 웃었다.
“티르나는 황금의 도시답게 아주 악독한 도시네. 이곳에서 살려면 뭐든 돈이 들지. 하지만 무엇보다 악독한 것은, 수입에서 일정 부분 떼어가는 세금일세.”
티르나의 세금은 꽤나 악명이 높았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그 수익에 비례해서 세금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그래서 티르나의 부자들은 세금이라면 치를 떨었고, 그 세금을 어떻게든 회피할 방법을 강구했다.
“자네도 이번 의뢰로 받은 수익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뜯기고 싶지는 않을 테지.”
“그건 차마 부정하기 힘들군.”
돈 자체에 큰 욕망은 못 느끼지만, 없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있으면 좋다. 그리고 막상 얻게 된 돈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뜯기면 솔직히 속이 쓰릴 것 같았다.
“그러니 그쪽에게 내가 주로 애용하는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 주겠네. 원래 이런 건 돈 많은 사람이나 하는 거지만, 그쪽의 실력을 보면 언젠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것 같아서 말이야.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지 않겠어?”
법으로 명시된 부분을 정당하게 활용해서 세금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거라 불법도 아니었다.
“전담 세무사 하나를 붙여 주겠네.”
“뭐, 그렇게까지 해준다는데 고맙게 받지.”
오시안은 알아서 굴러들어 오는 호박을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의외로군. 이렇게까지 챙겨줄 줄은 몰랐는데.”
“내가 아무리 4대 광인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정도는 아는 편이니까.”
“4대 광인?”
“처음 듣나? 티르나의 아주 뛰어난 투자자에게 붙은 일종의 칭호지.”
뛰어난 투자자에게 붙는다기엔 광인이라는 이름이 여간 불온한 게 아닌데.
오시안의 그런 속을 읽은 것인지 다이크가 답했다.
“원래 이 정도로 돈을 벌려면 미쳐야만 가능한 거야. 나는 금에 미쳤다고 해서, 뒤에서 금(金)의 광인이라 부르고 다니더군.”
사실상 이상한 사람을 취급하는 칭호였지만, 적어도 다이크에게는 그만한 극찬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지간하면 마주하기도 힘든 세기의 괴짜들이지. 그런데 자네라면 왠지 그 광인들을 마주할 거라는 직감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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