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Knight After the Ending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습격 (1)
보상은 나중에 차로 건네주겠다는 약조를 마친 채로 오시안은 저택을 떠났다.
다이크는 가만히 창밖을 응시했다.
붙어 다니던 심복인 더스틴도 내보냈기에 그 곁을 지키는 것은 셋째인 델런뿐이었다.
다이크가 불쑥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사람을 보는 눈이 많이 좋아졌더구나. 아주 좋은 녀석으로 골랐어. 흔치 않은 사람이다. 이번 의뢰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 나가도록 하거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렇군.
다이크가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델런. 아직도 나를 원망하느냐.”
“제가 어떻게 원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겠습니까.”
“그렇겠지. 너는 누구보다도 나를 닮은 아이니까.”
잠시 마음을 정리한 다이크가 말했다.
“돈이라는 건 말이다. 참으로 추해.”
“…….”
“사람들은 이 돈 때문에 싸우고 헐뜯고 서로를 죽이지. 이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거리의 오물도 핥아먹을 놈들이 널렸어. 애써 아닌 척하는 놈들도 정도의 차이지 결국엔 돈을 바라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오랜 세월, 많이…… 너무 많이 봐 왔다.”
다이크가 이 세상을 돈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세상은 옛날과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살기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풍족해진 것과는 반대로 세상은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됐다.
부유한 자들은 끝도 없이 부유했지만 가난한 자들은 뱃가죽이 말라서 썩을 정도로 가난해졌다.
가혹한 노동환경은 아이라고 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굴뚝 청소를 하면서 숯검댕이가 되거나, 질식되거나, 혹은 불에 타 죽었다.
차라리 굴뚝 청소는 나을지도 몰랐다.
탄광에 끌려간 아이는 더욱 가망이 없었으니까.
어른이 지나가기 힘든 좁고 어두운 긴 탄광의 길.
아이들은 그저 덩치가 작아 움직이기 용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주 6일.
하루 12시간.
습하고 어둡고 숨이 턱턱 막히며 빛조차 들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은 노동에 시달렸고.
그렇게 죽어갔다.
다이크의 기억 속에 아직도 그 광경이 선했다.
흔들리는 갱도. 무너지는 천장.
함께 일하던 친한 형 동생들이 깔려 죽으며 아래에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무너지는 갱도 속에서 다이크만 살아남았다.
가히 천운이라고 자부해도 될 일이었다. 약간의 상처는 있었지만, 장애가 될 만한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너지는 갱도 속.
바깥에서 누군가 구해주러 올 때까지 식량도 물도 없는 곳에서 버틸 때.
그는 보고 말았다.
탄광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맥을.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빛나는 그 영롱한 황금색을.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죽음의 위기 속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그렇게 금(金)의 광인이 탄생했다.
“지금의 아내도 사랑 때문에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중매가 왔고 당시에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하기에 가장 용이한 가문의 여식을 만난 것일 뿐이니까.”
결국 지금의 안주인도 돈이라는 욕망으로 빚어진 관계일 뿐이었다는 것.
다이크가 세상만사를 다 돈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네 어머니는 달랐다.”
“…….”
어머니가 언급되자 무뚝뚝한 가면을 쓰고 있던 델런이 움찔 떨었다.
“나는 세상 모두가 돈에 대한 욕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오만방자하고 그런 확신에 몸을 담았을 때였다. 그래. 그냥 툭 터놓고 말해서 애새끼였지. 나이만 먹은 애새끼.”
“어머니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겁니까?”
“그냥 우연히 새로운 금광의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발견해서 근처에 직접 탐사하러 갔을 뿐이다. 그러다 들린 마을에서 우연히 마주쳤지. 외진 곳에 있는 사람 치고는 매우 아름다웠다는 것 정도려나.”
그러나 다이크는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오만방자한 나를 상대로도 싫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친절하게 대해 줬지. 그러면서 욕심은 얼마나 없는지. 막대한 부를 쥐여 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었어.”
“놀랍군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셨다니.”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그 당시 혈기왕성했던 나는, 그게 진짜 사랑인 줄 몰랐거든. 돌이켜 보니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아 버린 거야. 멍청하게도.”
다이크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내가 떠나면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도 숨겼고, 내가 남겨놓은 돈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더군.”
델런의 어머니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델런을 키웠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삯바느질을 하고 집안 청소를 도왔다.
평생을 먹고 살 돈이 있었음에도 일절 손대지 않았다.
다이크의 돈이었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녀가 과로로 쓰러져 죽게 되고, 다이크는 뒤늦게 그녀의 사망 소식과 델런의 존재를 깨닫게 됐다.
“내가 살면서 만난 유일한 빛이었다. 황금보다도 더욱 값지고 아름다웠던 빛. 은은하게 웃어 보이던 그 모습이, 그래…… 마치 밤하늘을 희롱하던 달빛 같더군.”
그가 문스톤을 보고 계속 근처에 두고 다닌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의 빛이 떠올랐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남긴 자신의 혈육.
못난 첫째와 둘째보다도 훨씬 더 자신을 닮았던, 눈동자에 야수를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다시는 그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넓더구나. 오늘 이렇게 또 한 명을 마주하게 됐으니까.”
다이크는 오시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황금을 제시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던 눈동자를.
욕망 속에서도 초연하게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눈동자를.
사랑했던 그녀가 은은한 달빛 같았다면.
오시안을 뭐라고 해야 할까, 별빛 같았다.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찬란한 별빛.
“델런. 너는 내 아들이다.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이자 유일한 선물이야.”
“…….”
“이제 와서 너에게 부성애를 보여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전대 가주로서, 차기 가주에게 하는 인생의 조언 정도라고 생각해라. 듣고 그냥 한 귀로 흘려도 좋아.”
창가에서 시선을 뗀 다이크가 델런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 사람을 절대 놓치지 마라. 네가 조금 숙이고 들어가도 좋다. 그런 사람과 맺는 관계는 황금보다 더 귀한 거니까.”
“금의 광인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아주 정상적이군요.”
“나이를 먹다 보면 변하는 거야. 뭐, 나머지 그 3명의 미치광이 노인네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
오시안은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골디런 가문에서 붙여 준 최신형 자동차로, 운전수도 같이 딸려 보내주었다.
‘세무사의 경우에는 나중에 따로 보내 준다고 했던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응시하며 오시안은 이번 의뢰로 얻은 것들을 상기했다.
‘의뢰도 성공했고 세금을 줄이는 법도 알게 됐으며 골디런 가문과의 확실한 연줄도 만들었어.’
무려 차기 골디런의 가주인 델런 골디런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된 것이다.
목숨의 빚만큼 무거운 것은 없는 법.
적어도 오시안이 판단한 델런은 빚을 지고도 그걸 무시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해결사에게 부족한 가장 든든한 뒷배를 얻은 거야.’
해결사들은 중개인과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것은 아니다.
바이올렛 폭스가 특이한 거지 기본적으로 그들의 관계는 차가운 비즈니스였다.
해결사에게 문제가 생기면 중개인은 관계를 끊어내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중개인 조합도 해결사를 지켜 주거나 하지 않는다.
해결사는 철저하게 개인이었다.
‘해결사끼리 모여서 노조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웃기게도 프리랜서인 해결사들이야말로 오히려 뭉치기 어려운 관계지.’
보통 노조를 만들 정도라면 업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정도 되면 굳이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철저한 각자도생의 세계.
가끔 의뢰를 함께하기도 하지만, 다음날 바로 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흔했다.
어제의 전우가 오늘은 서로 총질을 하는 가혹한 세계.
그런 곳에서 활동하니 해결사들은 ‘뒷배’의 존재를 간절하게 원했다.
‘명성을 얻은 해결사들이 어디 기업에 소속되거나 어떤 조직의 휘하로 고용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
그중 아주 든든한 뒷배가 무엇일까.
거대 기업? 티르나의 공무원? 군부?
사람마다 선호하는 것이 달라서 답변이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오시안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주 돈이 많은 대부호.
그것도 그의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빚지게 해서 맺는 은인의 관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관계보다도 더 중요한 걸 얻게 됐어.’
바로 월흔(月痕)의 힘이었다.
성광(星光)과 함께 하늘의 기사의 일각을 담당하는 힘.
어떻게 보면 단조롭기만 한 성광과 다르게, 무수한 상황에서 다양한 대처를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
‘월흔의 힘. 그리고 그 월흔이 어떤 형태로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됐는지도 확인했지.’
월흔은 문스톤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다른 힘의 파편도 이런 돌처럼 남아있는 걸까?
오시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광의 경우에는 오를레아 왕녀와 지내면서 더욱 크게 발전했어. 그렇다는 것은, 힘의 파편이 단순히 문스톤 같은 물질적인 형태로만 남아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지.’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에서도 힘은 강해질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사람에게 힘의 파편이 깃들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고.’
그걸 모르는 채로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힘을 다루는 사람도 필시 나타나게 될 터.
‘해야 할 일이 늘었군.’
대체 어디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번 유령 사태도 그렇고, 기사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감각이 안내를 해줬기 때문이다.
‘감각이 기이할 정도로 좋아진 건 좀 의외기는 해. 원래 하늘의 기사에는 이런 특성까지는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를레아 왕녀가 암살당하기 전, 그녀를 노리는 총구를 붉은 무언가로 본 것도 그렇고.
위험한 장소를 새빨간 무언가 일렁이는 광경으로 본 것도 그렇고.
기사의 육체가 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위기에 대한 감지 능력이 거의 예지에 가까울 정도로 상승했다.
타인에 대한 위험은 잘 보지 못하지만 자신에 대한 위험은 확실하게 감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령 바로 지금처럼 차체 내부가 붉은 기운으로 넘실거리는 경우 말이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차량이 크게 뒤집히며 바닥을 굴렀다.
원인은 외부에서 날아온 박격포 때문이었다.
구역과 구역 사이의 미개발 지역을 지나가면서 생긴 기습적인 공격이라 운전수가 반응하고 뭐고도 없었다.
게다가 최신형 차량답게 어지간한 총알에는 꿈쩍도 안 하는 방탄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폭발의 위력은 그걸 아득히 상회했다.
“휘유! 성능 죽이는데!”
미처 지어지지 못한 건물들 사이에서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붉은 화염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내뿜는 폐차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돈값을 한단 말이야. 아무리 비싼 자동차여도, 이렇게 화약 한 방이면 쾅! 끝이잖아? 안 그래?”
“안쪽에 타고 있는 놈은 바로 뒈졌겠군.”
“그러라고 쏜 거니까. 거 참 안타깝게 됐어. 최근에 해결사치고는 과분한 거금을 만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걸 제대로 사용하기도 전에 훅 가 버렸으니까 말이야.”
“이 정도 위력이라면, 아무리 신체강화계열 뮤턴트라도 숯덩이가 됐겠어.”
습격자들은 킬킬 웃었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죄책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나를 노리고 기습을 한 것이로군.”
“누구냐!”
습격자들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허름한 철근의 위쪽에 오시안이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기습으로 날린 박격포였다. 습격을 눈치채고 대응할 시간 따윈 없었을 터.
오시안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불길한 붉은 기운을 보자마자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갔고, 직후 차가 폭발했으니까.
그 폭발에 시선을 빼앗겨서 습격자들은 오시안이 무사히 빠져나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안타깝게도 운전수는 그러지 못했다.
“나름 마음에 드는 차량이었는데, 아쉽게 됐군.”
해결사 일을 하다 보면 어딘가에서 원한을 쌓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대낮부터 기습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네놈들이 누구의 사주로 움직였는지는,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오시안이 허리춤에 뽑은 검이 푸르스름한 서리를 휘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