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prince of an enemy country RAW novel - chapter (83)
제17장. 그 걸음 (3)
거대한 폭음이 카이리스 왕궁에서 터져나왔다.
인근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저택으로 들어서던 에반 브리센의 마차가 잠시 멈췄다.
에우리아가 마법사 협회 건물 옥상으로 뛰쳐 올라갔다.
멜피르와 테시드가 동시에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르센은.
발칸 부군단장의 로브를 어깨에 둘렀다.
* * *
“끝을 보여주겠다 하였으니. 이제 어찌 하겠느냐.”
실리케가 읊조리는 소리를 들은 시녀장이 고개를 돌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시녀장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짙고 검은 연기를 지켜보는 실리케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이 어려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시녀장은 오늘 줄곧 실리케와 함께 있었고 그래서 실리케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모조리 지켜 보아야 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떠올려 본 시녀장이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키려 제 두 손을 마주잡았다.
조금 전 라온의 기사단장이 실리케를 찾아온 뒤.
준비를 모두 마친 실리케가 응접실에 홀로 들어갔다. 시녀장이 알려주었던대로 라온의 기사단장이 그 곳에서 실리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실리케에게 예를 보인 뒤 준비해 온 검은 색 상자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위험한 물건입니다. 어떤 이유로 찾으셨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렇게 기사단장의 말을 끊은 실리케가 검은 상자를 잠시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뒤 하나를 꺼내들고는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단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경에게 무엇을 받았던가요.”
어깨를 움찔한 라온의 기사단장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 아닙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실리케를 대면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과연 좋은 선택을 한 것인지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 실리케 왕비의 전횡이 심각하여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바 기사단 카렌과 라온은 더 이상 실리케 왕비의 명을 따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에반의 편지에 적혀있던 내용이 계속 생각났다.
카렌의 단장은 분명 에반의 말을 따르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순간적인 욕심에 실리케를 찾아왔던 라온의 단장이었다.
일요일에 실리케를 만나고 돌아오던 그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심상치않은 물건을 가져다 달라 하던 실리케가 꼬리를 자르려는 의도가 분명한 말까지 하니 아무래도 영 불안해진 것이다.
“좋아요.”
가벼운 어투로 말한 실리케가 검은 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응접실 문 옆에 놓인 협탁에 상자를 올려둔 뒤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곧 돌아올테니.”
그리고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응접실에서 나갔다.
그렇게 라온의 기사단장을 두고 밖으로 나온 실리케는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시녀장과 시녀들을 보았다. 실리케의 눈이 유난히 눈에 띄는 얼굴이 된 시녀에게로 향했다. 머리 손질 중 손을 잘못 놀렸던 바로 그 시녀였다.
“이리 오거라.”
그 시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였다.
움츠러든 어깨가 펴지질 않았다. 입술은 터져 마른 피가 엉겨붙어 있었고 볼에는 시퍼런 멍이 든 탓에 퉁퉁 부어 있었다. 두 번의 따귀가 그녀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두었다.
그것을 본 실리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내 손이 과했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말이 아닌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실리케를 쳐다봤다.
실리케는 손 안에 든 작은 짐승을 어루만지는 듯한 보드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때문에 시녀장마저도 그 미소 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짚어내지 못했다.
······ 그렇게 오랫동안 실리케를 지켜봤으면서도.
“하나만 부탁하마.”
이렇게 말한 실리케가 조금 전부터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시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응접실 입구에 놓인 상자에 그것을 가져다 두고 나와 주려무나.”
최근 실리케는 시녀들은 물론 시녀장에게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간혹 그 입이 열리면 듣는 이들의 심장을 갈래갈래 찢을 것 같은 독기어린 목소리가 나왔었다.
그리하여 너무나 오랜만에 이런 자상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대한 시녀는 실리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네, 왕비님. 알겠습니다.”
흡족해한 실리케가 구슬을 든 시녀의 손을 감싸잡았다.
그리고 살짝 힘을 주었다.
– 딸깍.
불안한 소리가 시녀의 손 안에서 들렸다.
그것을 느낀 시녀가 실리케를 쳐다보자 실리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어 보였다.
“어서. 들어가보렴.”
그리고는 곧바로 뒤로 돌아서 걸어나갔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언제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 * *
헤이시아 궁의 폭발음을 들은 르메인이 고개를 들었다.
바쁜 걸음 소리가 아르피아 궁 이곳 저곳에서 들렸고 카에라의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와 르메인의 주변을 에워쌌다.
아르피아 궁의 집무실 창문은 왕궁 정문을 향해 나 있었다.
때문에 실리케가 머무는 헤이시아 궁은 르메인의 집무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시작했군.”
조용히 중얼거린 르메인이 정말 피곤하다는 얼굴로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폭음에 놀라거나, 그 원인을 확인하려 하거나, 혹은 밖을 살피려는 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시종장 라울이 놀란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간 뒤, 르메인의 뒤를 지키던 카에라 기사단장 렌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하. 마나실 경을 불러오라 하겠습니다.”
“마나실 경은 무슨 일로. 내 호위는 이 곳에 다 모여 있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 다른 호위가 또 있던가.”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한 렌이 입을 다물었다. 르메인은 여전한 얼굴로 말했다.
“마나실 경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상관없으나, 의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네, 전하. 주의하겠습니다.”
오래지 않아 집무실 문이 다시 열리며 라울이 들어왔다.
“헤이시아 궁입니다. 응접실 쪽에서 폭발이 있었다 하는데 다른 이들의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왕비께서는 무사하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말한 라울이 잠시 말을 얼버무렸다. 차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탓이었다. 르메인이 라울을 지긋이 쳐다봤고, 라울은 난처한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맺었다.
“아르센 헤르츠가 왕비님을 공격했다 합니다.”
아르센 헤르츠.
발칸의 부군단장 이름이 엉뚱한 곳에서 나오자 렌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르메인은 실소했다.
곧 르메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랄하네.”
* * *
테라스에 서 있던 칼리안이 몸을 돌렸다.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칼리안의 방으로 뛰쳐 들어온 키리에가 잔뜩 굳은 얼굴로 곁에 섰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얀이 들어왔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다던 얀은 식사 대신 재밌는 이야기를 칼리안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아침에 헤르츠 경이 실리케 왕비를 찾아갔다 합니다. 그리고 지난 번 습격의 주동자가 실리케라는 말을 왕자님께 들었다 주장하더니 일방적으로 공격을 했다 합니다.”
말을 하고 있는 얀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었고 말을 듣는 앨런과 키리에는 웃었다.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내가 헤르츠 경을 사주해서 실리케를 공격하게 했다는 소리네.”
“네. 그렇다는데요.”
죽일거면 내가 했지.
“그래.”
아르센의 폭음.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또 접하게 된 칼리안이 실소했다.
그레이의 마차가 폭발했다 하니 아르센이 화염구 쓰는 것을 퍽 좋아하는 줄로 안 듯 했다. 파벨의 기사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신경쓰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어찌됐건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레이의 마차가 폭발한 것과 실리케의 응접실이 폭발한 모양새가 퍽 비슷해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행방불명된 헤르츠 경을 꺼내 올 생각을 했다니. 기대한대로 제법 머리를 썼군요. 마력탄도 구한 듯 하고.”
칼리안이 아르센을 사주했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면 칼리안은 물론 발칸까지, 그리고 발칸의 군단장인 앨런도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할테니까.
“헤르츠 경이 붙들렸을 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우리가 해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까지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브리센 후작의 집에서도 헤르츠 경을 찾지 못했으니 내가 숨겨두고 있다는 것까지는 결론을 냈던 것 같네요.”
만약 칼리안 측에서 아르센을 보호하고 있었다면 실리케가 공격을 받은 그 시간에 아르센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칼리안이 변호해 보아야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실리케를 공격하라 사주한 것이 칼리안이니, 칼리안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 중 누구의 얼굴에서도 난처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칼리안은 여전히 걱정 없다는 듯한 얼굴로 얀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발칸 창단식에 늦지 말라십니다.”
창단식을 미루지 않았다.
르메인 역시 실리케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 * *
– 차르륵!
실리케의 부채가 센 소리를 내며 접혀들었다.
헤이시아 궁의 폭발이 있은 지 벌써 한참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조사를 하러 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르메인의 말이 전해져왔다.
– 왕비가 무사하다 하니 마법사단 발칸의 창단식이 마무리 된 이후 사고 조사를 하겠다.
실리케는 분명 사고가 아니라 하였다.
습격이 있었다 했고 범인의 이름까지 알렸다.
“사고라니.”
그럼에도 르메인은 ‘사고’라는 말로 일의 본질을 바꾸었다. 이런 일까지 벌였음에도 실리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만에 하나 이것이 정녕 사고였다 하더라도 행사는 미루어야 함이 아니더냐. 전하의 의중이 이제 명확히 보이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실리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실리케는 평정심을 찾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시녀장을 향해 말했다.
“기사단 라온의 부단장을 불러 라온 전원을 빌헬름 관으로 집결시키도록 하거라. 라온의 단장이 나와 함께 있다 하면 말을 들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칼리안을 잡아야 했다.
르메인이 나서지 않겠다 하니 직접 움직일 수 밖에.
곧 실리케는 몇몇의 호위기사들과 다른 시녀들을 대동한 채 발칸 창단식이 치뤄질 빌헬름 관으로 이동했다. 기사단 파벨이 사용하던 곳이었으니 빌헬름 관은 헤이시아 궁과 가까이 있었다.
때문에 그리 오래지 않아 행사장에 도착한 실리케는 부채를 쥔 손에 다시 한번 힘을 꾹 주어야 했다.
왕궁에 폭발사고가 생긴 이후였다.
그런데 그 누구의 얼굴에도 불안함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아침을 보내고 온 것 같은 얼굴들을 하고선 지극히 평범한 인사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 곳에 모인 누구도 폭발에 대해 입에 담지 않았다.
친 브리센 성향의 귀족들이 계속 눈에 띄었으나 그들은 아주 조용했다. 실리케에게 인사만 건넨 뒤 고개를 돌렸다.
앨런과 밀접한 발칸의 창단식이 있는 날이 아닌가.
그러니 앨런이 말했던 ‘눈에 띄는 큰 나무’에서 살짝 발을 뗀 것이다.
‘감히 나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 겪는 실리케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다가와 걱정어린 말을 했다.
“폭발이 있었다던데 괜찮으신 듯 보이니 다행입니다.”
말을 한 이를 쳐다 본 실리케의 눈에 독기가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실리케에게 사고 소식을 물어온 이는 칼리안이었다.
“네가 주도한 일을 가지고 참 뻔뻔하게도 묻는구나.”
실리케의 목소리가 상당히 컸고 주변은 조용했다.
장내에 있던 귀족들 창단식을 위해 모여있던 새하얀 로브의 마법사들 그리고 다른 두 왕자들의 눈이 모두 실리케와 칼리안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을 한번 둘러본 칼리안이 다소 굳은 얼굴을 했다.
“섣부른 말은 삼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행사가 끝나면 원인을 찾을 것이라 하셨지 않습니까.”
비아냥이 아니었다.
칼리안이 진심으로 실리케를 걱정하는 그런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칼리안은 평소 실리케를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지금 저 모습은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한 연기라는 것을 실리케는 알았다.
실리케만 알았다.
손에 들린 부채가 까드득 하는 소리를 냈다.
“그 마법사를 찾아오거라. 그 마법사의 소행임을 내가 똑똑히 보았으니 반드시 찾아와야 할 것이다.”
그 말에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역시나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실리케가 웃음을 지었을 때.
“그 마법사라 함은.”
실리케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왕비.”
익숙한 목소리.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실리케가 고개를 돌렸다.
에반 브리센이 그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던 한 명의 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정중한 목소리로 마법사가 실리케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아르센 헤르츠······ ‘그 마법사’ 입니다.”
실리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대체 왜 아르센 헤르츠가 칼리안이 아닌 에반과 함께 들어오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으므로.
그렇게 한 걸음 물러서 에반과 아르센을 쳐다본 실리케의 고개가 칼리안 쪽으로 돌아갔다.
칼리안은 웃고 있었다.
당신의 끝이 보이느냐는 질문이 그 웃음에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