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scammer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세대교체
오르헬은 김이 팍 샌,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힘의 차이를 한 번 보여주겠다면서? 박살을 내서 정신도 못 차리게 하겠다면서?”
“제,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형님!”
“방금 그랬잖아. 나는 그렇게 들었는데?”
“아,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로한 형님한테……”
어느새 벌써 나에 대한 호칭은 형님이 되어 있었다.
그에 오르헬이 혀를 찼다.
“야, 인마. 상대도 안 될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 정도로 숙이고 들어가면 뱀파이어 로드 체면이 뭐가 되냐?”
“뱀파이어 로드라고 별수 있습니까? 강자 앞에서는 꿇어야지.”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거 아니냐?”
“당당하긴요. 사실대로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레메데스 형님이랑 로크 형님도 떠나신 거죠.”
리치몬드의 대답에, 오르헬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레메데스는 진작에 떠났다 치고. 그리고 보니, 로크는 또 왜 안 보이는 거야?”
“로크 형님이랑 레메데스 형님. 둘 다 갔어요.”
그 대답에, 오르헬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그도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가다니? 어딜 가?”
“거신족이요. 거신족이 찾아왔었어요.”
“거신족이? 여길 왜?”
“왜긴요. 자기네들 편에 붙어라.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되고 나면, 이걸 해주겠다. 또 저걸 해주겠다. 그러고 혀를 놀리더라고요. 물론, 말만 부드럽게요.”
오르헬이 오래간만에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진정 화가 났을 때 가끔씩 보였던 그 모습이었다.
“그래……지금 거신족 놈들이 우리 뱀파이어 로드들에게 ‘협박’을 했다는 거지?”
“협박 반, 꼬드김 반이었죠. 근데……넘어갔어요. 협박에 넘어간 게 아니라, 꼬드김에 넘어가더라고요.”
“보나 마나 레메데스 그 녀석이 먼저 나섰겠네?”
“뻔하잖아요. 예전부터 인간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에 불만이 많았으니까……드레트노어 형님이랑 같이요.”
“그래. 그랬지.”
대강 상황을 보니.
오르헬도 어느 정도는 예측을 한 모양이었다.
크게 당황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로크 놈은 또 레메데스 말이라고 곧이곧대로 따랐을 거고.”
“예.”
“넌 왜 안 갔냐?”
“저야 뭐 뻔하지 않습니까. 형님 없으면 아무 데도 안 가요.”
오르헬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인마. 그러다가 이 형님이 거신족이랑 싸우겠다고 나서면 어쩌려고?”
“그것도 별수 있습니까? 평소처럼, 아이고 내 팔자야! 욕하면서 따르겠죠.”
“그러다 지면?”
“뒤져야죠 뭐.”
오르헬은 괜히 욕을 내뱉었다.
“얼빵한 새끼. 야. 뒤지긴 왜 뒤져. 너 살길 찾아서 도망가야지.”
“형님이랑 같이 갑니다. 그게 저승이건, 지옥이건.”
“말은 잘해요, 하여간.”
“허허허.”
“웃지 마. 정들어 인마.”
지금까지는 약간 장난스러운 말투로 받아치던 리치몬드가.
순간부터 진지한 목소리로 변했다.
“그래서…..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오르헬 역시 이제는 웃음기를 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세대교체, 해야지.”
* * *
리치몬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대교체요?”
“어차피 드레트노어 놈도 죽었잖아.”
“……예.”
“새로운 로드가 나올 때가 된 거지. 왕이라는 게……영원한 자리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 새끼들도 그래. 너무 오래 평화를 만끽하니까, 옛날 일들을 다 잊어버린 것 같더라고.”
“……”
리치몬드는 한참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대답도 없이.
그리고 그것을 오르헬은 기다려주었다.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일일 터였다.
지금껏 지켜오던 뱀파이어 로드라는 자리.
그걸 내려놓자고 말하는 오르헬이었다.
리치몬드로서는 쉬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운 게 당연한 일이었다.
‘로드가 아니면, 잃어버리는 자격들이 있으니까. 반대로 로드여아만 할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때문에 나도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던가.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의 침묵이 이어지고.
리치몬드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때의 리치몬드는, 어느덧 완전히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두신 후보는 있습니까?”
“있지. 한 명은.”
오르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왔다.
‘이럴 생각이었군.’
단순히 나를 뱀파이어 로드로 만들려던 게 아니었다.
아예 새로운 로드들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야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뱀파이어 로드라는 직책은, 중간계의 존립을 지키는 것.
로드라는 이름 하에 중간계를 무너뜨리는 모든 것을 처단하여야 하는 게, 중간계에서 로드들이 가진 책무였다.
중간계를 노리는 놈들이야 어차피 악마 아니면 거신족.
둘 모두 지금도 적이기에 내 입장에서는 바뀌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생각은 좀 해봐야겠는데……’
과연 완전히 믿을만한 차세대 로드를 구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회의적인 입장이긴 했다.
다만 아직은 로드가 아니니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고.
‘일단 로드의 직위부터 얻고 나서.’
그 이후에 말을 해도 늦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리치몬드는 문득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생각해보니까요……”
“왜? 뭔데?”
“새로운 로드, 만들 수가 없는데요?”
* * *
“뭐? 그게 무슨 소리……”
대꾸를 하던 오르헬도,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멈추었다.
“숫자가…..안 맞구나.”
리치몬드와 오르헬의 대화를 듣던 앤드류가.
고개를 왔다 갔다 거리며 물음표를 띄웠다.
“뭔데요? 뭐가 문제인데요? 둘만 그러지 말고 우리도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 봐요, 좀.”
리치몬드가 그에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크흠. 이 형님이 알려주도록 하마.”
“오……”
“뱀파이어 로드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될 수가 있어.”
“뭔데요?”
“하나는 혈석의 인정.”
“혈석?”
리치몬드는 손가락으로 아래 방향을 가리켰다.
“이 블라드 캐슬의 지하에는 혈석이라는 물체가 존재해. 정확히 그게 어떻게 탄생한 건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지만……절대로 옮길 수도 없고 부술 수도 없지.”
“신기한……놈이네요?”
“그래.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뱀파이어 로드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혈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뱀파이어 로드들이 그 힘을 쓸 수 있다는 거야. 우리의 힘은 결론적으론 혈석으로부터 빌려 쓴다는 거지.”
앤드류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얼굴로 리치몬드의 말을 경청했다.
“헐. 처음 들어요.”
“당연히 처음 듣겠지. 외부인한테 말한 게 처음이니까.”
“근데 막 말하고 다녀도 돼요?”
“되겠냐? 동생아?”
“안…..되겠죠.”
“오르헬 형님이 직접 데려온 사람들이라 말해주는 거야.”
리치몬드는 한 템포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혈석의 인정과, 뱀파이어 로드의 인정.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해결 돼야 하는데. 뱀파이어 로드의 인정은, 한 명의 인정이 아니라 과반 이상의 인정이어야 해. 원래 뱀파이어 로드의 수는 다섯. 그러니 셋 이상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거지.”
“음……그런데 지금은 드레트노어가 죽어서 넷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앤드류의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은 오르헬이었다.
“반수 이상이어야 하니까 바뀌는 건 없다. 셋 이상의 인정.”
“그럼……하나가 모자란대요?”
“그래. 내가 계산을 잘못했어.”
“……?”
오르헬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레메데스와 로크 두 녀석은 원래도 이 성에 잘 붙어있지 않았어. 드레트노어 녀석처럼 나가는 걸 좋아했지. 그래서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 말을 들으니 앤드류는 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면 두 명뿐이잖아요?”
“그러니까. 브라더가 너무 막강하니까……착각을 했어.”
“엥?”
“뱀파이어 로드라고 계산을 해버렸단 말이지……나랑 리치몬드 그리고 브라더까지 치면 세 명이겠다. 그럼 과반 이상이네, 라고.”
오르헬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앤드류는 그런 그를 보며 어이가 없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무슨 그런 해괴한 계산을……”
“알아, 알아, 알아, 알아 나도. 나도 지금 황당하다고. 하, 씨! 왜 이걸 몰랐지?……”
괜히 뻘쭘해 말이 많아지는 오르헬이었다.
그에 나는 한 가지 의문 섞인 질문을 던졌다.
“두 명이 과반이 되도록 만드는 건 안 되는 건가?”
나의 그 질문 같은 의견에.
오르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다섯에 둘은 소수 쪽이었지.”
“그, 그렇지?”
“넷에 둘은 절반이고.”
“음?”
그쯤 되니 슬슬 오르헬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렇다면, 셋의 둘은?”
“……과반 이상이로군.”
나는 거기에 말을 보태었다.
“어차피 두 명의 로드는 거신족의 쪽으로 넘어갔다 하지 않았나. 그 둘 중 하나만 죽여도……”
“가능하겠지.”
오르헬과 리치몬드, 그 둘을 번갈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물론 너희 둘이 동의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그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이들 아니겠나.
오르헬과 리치몬드의 사이를 보니, 다른 자들과도 형 동생 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고.
나 또한 뱀파이어 로드의 힘이 탐나기는 하지만……마지막 결정권마저 앗아 올 생각은 없었다.
하나 오르헬의 대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의할 것도 없다. 본디 중간계에서 로드라고 불리는 자들의 역할은 하나. 중간계의 존립을 지키는 것. 이미 그 둘은 자신들의 책무를 저버렸다.”
리치몬드의 의견 역시 다르지 아니했다.
“같은 생각입니다. 이미 그 둘이 떠나는 순간, 저도 전쟁을 직감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그들의 결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레메데스와 로크. 그 둘은 처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그 간결한 대답에.
리치몬드는 약간 기가 눌린 듯, 마른 침을 삼켰다.
“허허허. 뱀파이어 로드를 처단한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하는 건, 로한 형님뿐일 겁니다.”
“……”
저 노인의 얼굴로 형님이라고 하니, 부담스러운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뭐, 알아서 동생 한다는데.
굳이 바꿀 생각도 없고.
“그건 그렇고. 그 혈석이라는 물건. 혹시 한 번 직접 볼 수……”
문득 혈석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긴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느닷없이 블라드 캐슬이 통째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나쁜 놈이다아아아아!”
바깥에서 나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나올의 존재를 모르는 리치몬드는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이게 누구 목소리지?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그러는 사이에도 굉음은 멈추질 않았으니.
콰아아앙! 쿵! 콰아아앙!
“로한 형님! 도와줘라! 오르헬 형님! 로한 형니이이임!
나와 오르헬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히고.
“정문 쪽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케이! 브라더! 나올아,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는 다시 성 밖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